소설리스트

테라포밍-408화 (409/497)

Chapter 408 - 408. 기도 (8)

"···그럴 리가 없지. 죽어 가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살아남기 위해서 이토록 격하게 발버둥 치는 중인데."

한참의 침묵 끝에 연대장이 한 말이었다. 그는 망가진 인식표를 다시 한번 손으로 굴렸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다친 사람들을 시야에 담고 있는 중이었다.

연대장도 알고 있었다. 단순히 말만 그렇게 했을 뿐, 정말로 죽기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들은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렇게 말을 했던 건 죽음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되려 죽음을 언급함으로서 자신들이 현재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걸 체감하고 싶어 했다는 것에 가까웠다.

그래, 결국 그가 그때 내게 했던 말은 무슨 의도를 가졌든 간에 틀린 답이었다. 내가 본 이곳 사람들은 죽어 가고 있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힘든 하루를 서로의 어깨에 기대 버텨가면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절대로 죽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다.

"연대장님, 이제 마지막입니다. 저를 믿고 따라와 주세요. 제가 앞장서서 길을 열겠습니다."

나는 연대장의 잔뜩 주름 진 손을 보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내게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허나, 마지막 기회라는 것이 코앞까지 오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았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방향은 죽음이 있는 곳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곧 다가올 죽음을 대비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본인이든, 주변의 다른 누군가의 죽음이든 비탄에 미리 대처하기 위함인 것 또한 아니었다.

나는 그 점에 기대어 도움을 요청했다. 세상을, 미래를, 아이들을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나를 도와달라고. 그에게 하는 말은 곧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번이 정말로, 정말로 마지막 기회이니까."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누가 들으면 내가 여기서 포기라도 하는 줄 알겠어. 저번에도 말하지 않았나. 우리 인간은 마지막 기회까지 놓칠 정도로 바보가 아니라고 말일세."

여전히 잔뜩 지친 기색이 가득한 얼굴을 들어 시선을 위로 향한 연대장. 그는 무언가를 상상한 듯 픽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작전은 이미 시작됐다네."

그런 그가 입에 담은 건 마지막 작전인 세계수 방화 작전이었다. 자신을 만물의 어머니라 칭하는 거대한 나무를 처리하기 위한 작전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작전이···. 그럼 연대장님,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연대장의 말을 곱씹던 박지영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

"그래, 박지영 소위. 나도 자네가 믿는 것처럼 최명철 상병이 살아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이 뿐만 아니라 방화 작전이 성공할 거라고 믿지. 물론, 그 여부는 이현우 자네가 연구소에서 증폭기를 가동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연대장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자세한 건 해가 뜨고 이야기 해주지. 일단 그렇게만 알아두게. 아직 할 일이 많아. 그러니 지금 쉴 수 있는 이때 최대한 쉬어두게나."

그는 바람 좀 쐬러 가야겠다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위로 올라가는 출입구로 향하던 연대장은 잠시 걸음을 멈춰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그의 등은 많은 생각과 짐이 왜소하게 보였다. 허리가 굽기는커녕 실제로는 꿋꿋하게 걷고 있는데 말이다.

무거운 짐이 올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걸음을 멈추지 않는 모습이었다.

"흥, 좀 쉬라니까 고집하고는. 뭘 또 움직이겠다고···."

난쟁이 칸이 투덜거리면서 벽에 등을 기댔다. 자신은 여기서 아주 그냥 푹 쉴 거라는 말을 중얼거리는 건 덤이었다.

그런 칸의 시선은 연대장이 올라간 출입구를 향해 있었다. 그는 어깨의 부상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에라이! 나도 바람 좀 쐬고 오마! 답답해서 못 있겠어! 너희는 따라올 생각 말고 여기 있거라!"

이윽고, 우리에게 엄포를 놓은 칸 또한 연대장이 올라간 출입구로 향해 따라 이동했다.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는 모습이 보이다가 사라진다.

"어르신! 아니, 벌써 저기까지 갔네. 가시더라도 붕대라도 갈고 나가시지···. 에휴."

가방을 뒤적거려 깨끗한 새 붕대를 꺼내고 있던 박지영이 급하게 불렀으나, 그 외침을 들었는지 듣지 못했는지 벌써 저만치 이동한 칸은 갈 길을 그대로 갈 뿐이었다.

"······."

"······."

멍하니 그 모습을 보던 나와 박지영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동시에 벽에 등을 기댔다. 괜히 고집 부려서 따라갔다가 호통을 듣기는 싫었다.

앞으로 계속 움직여야 하니 연대장이 말했던 것처럼 쉴 수 있을 때 쉬어 둬야겠지.

***

시간이 지난 아침. 오전 07시 23분.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지만, 그래도 축적된 피로를 풀어 주고 나니 몸은 많이 나아진 상태가 되었다. 이곳저곳이 아직 삐걱거리는 느낌이 강하긴 해도 부축없이 움직일 수 있을 정도까지는 회복이 된 것이다.

부스럭- 부스럭-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괜스레 건빵 봉지를 괴롭히고 있던 박지영도 조금 전까지 부목을 덧대고 있었던 팔을 조심스레 움직여보았다. 지금 그녀의 팔에는 부목이 없었다.

내 몸이 어느 정도 호전됨에 따라 빈 수정에 입자를 채워 넣을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충전한 치료용 수정으로 부상을 치료해준 덕분이었다.

"팔은 어떻습니까?"

"음···, 좋아요! 속이 살짝 뻐근하기는 한데 이 정도면 일상 생활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고마워요."

"아직 완전히 다 나은 건 아니라서 격하게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알고 있어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나름 자연치유력이 좋아서 금방 다 낫겠죠."

박지영은 부상이 덧나지 않게 천천히 팔을 주고 있는 참이라며 답했다.

바로 그때.

"으응···?"

예린이 뒤척이는 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아이는 낯선 곳에서 잠을 잔 탓인지, 어제 힘든 일이 있었던 탓인지 몰라도 얼굴이 살짝 부어 있었다.

"오빠···, 잘 잤어요?"

고양이처럼 상체를 숙이는 기지개를 키면서 묻는 예린.

"어, 잘 잤지. 너는?"

"저두요···. 읏차."

간단하게 아침 인사를 나눈 예린은 일어나서 아빠 다리를 하는 내 위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곧장 손등으로 눈가를 비비기 시작했다.

일어나서 꼬리가 밟히지 않게 앉고, 눈을 비비는 행동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굳이 여기에 앉아서 얼굴을 정리하는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굳이 밀어낼 이유도 없었기에 나는 예린의 머리에 삐친 부분을 손빗으로 정리해 줄 따름이었다.

"흐응···. ······아."

아직 잠이 덜 깬 듯 몸을 앞뒤로 흔들던 예린은 이내 건빵 봉지를 괴롭히고 있던 박지영을 그제야 발견했다.

"군인 언니도 안녕히 주무셨어요?"

"어, 응···."

어색한 아침 인사를 나누는 박지영와 예린. 그녀들은 서로 어색하게 시선 처리하다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예린에 이어지수, 한세아, 최미소, 엘리가 순차적으로 눈을 떴다. 일어나서 제각기 다른 기지개 자세를 키는 걸 보니 무심코 웃음이 픽 흘러나왔다.

아기인 지안이는 아직 꿈나라에 있었지만, 지안이를 제외한다면 대피소에 있는 사람들은 벌써 거의 다 일어난 상태였다. 잠에서 깬 그들은 일어나자마자 어떤 물건들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현우씨, 일찍 일어나셨네요?"

한세아가 흘러내린 어깨 끈을 정리하며 내게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세안용 물티슈가 들려 있었다.

"언니, 아저씨는 아까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났을걸요? 보니까 그때 눈 뜨고 안 잔 모양이예요."

나 대신 답을 한 건 한세아가 나눠준 물티슈로 얼굴을 꼼꼼하게 닦고 있던 지수였다.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왜 다시 안 잤어요. 어디 얼굴 한번 봐요."

지수의 말에 곧장 내 얼굴을 착 붙잡는 한세아. 그녀는 내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며 상태를 확인했다. 무슨 시상에 와서 재료 신선도를 확인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불만이 들었지만 가만히 있었다.

다행히 신경이 쓰일 만큼 상태가 나쁘지는 않은지 걱정스러운 눈빛에서 안도의 눈빛으로 바뀌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부스럭- 부스럭-

나, 지수, 예린, 한세아, 최미소, 엘리, 박지영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먹기 시작했다. 준비라고 할 것도 없이 봉투를 팍 뜯어 펼친 후 건빵을 하나씩 집어먹는 식사였다.

양도 충분하지 않고, 맛도 그다지 없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창고 구역을 수복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예린과 엘리는 기운이 없는 표정으로 건빵을 우물거렸다. 오도독, 오도독 소리가 사방을 채운다.

"엘리, 예린아. 퍽퍽하면 이거랑 같이 먹어. 그럼 좀 나아질 거야."

최미소가 그녀들에게 별사탕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딱딱한 건빵의 맛에서 설탕 맛이 추가가 되니 조금은 표정이 밝아진 예린과 엘리. 그녀들은 순식간에 자신들의 몫으로 나온 건빵을 분쇄했다.

"아저씨, 오늘 아침에 그거 한다고 했었지?"

"응. 아마 바로 시작할 거야. 이제 슬슬 일어나면 될 것 같아."

둘을 보며 피식 웃던 나와 지수는 곧 있을 무언가를 언급한 것과 동시에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우리들의 눈에는 군인들이 상자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어떤 물건들을 넣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중이었다.

다른 상자에는 인식표를 수거하기도 했다. 전부 다 주인을 잃은 인식표들이었다.

대피소 사람들이 군인들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들이 상자를 들고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자 모두 일어나서 군인들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지수, 예린, 한세아, 엘리, 최미소, 박지영도 주변을 정리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도 갑시다."

죽은 이를 떠나 보내는 과정. 이른 장례식을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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