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09 - 409. 기도 (9)
벙커 인원 대부분이 어느 공터에 모여 있다.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인원이었다.
시설 재정비로 인해 눈코 뜰 새 없이 한창 바쁜 난쟁이들도 지금만큼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중이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 같이 어두웠다. 이유는 단순했다. 온갖 잔해와 부스러기가 굴러다니는 공터 중앙에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말을 하지도, 숨을 쉬지도,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는 그들은 어제 습격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표정이 발하는 무거움 탓일까.
공터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것에 비해 주변은 매우 고요했다. 그저 훌쩍이는 소리와 조용히 흐느끼는 소리만이 들려올 따름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와 연대장은 선두에 서서 시신들 위에 나뭇가지를 올리고 있었다. 땅에 묻을 수 없으니 화장을 하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지수, 한세아, 엘리, 예린, 최미소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들은 씁쓸한 표정으로 가만히,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준비 됐나?"
총 31명의 이름이 적힌 석판을 보며 연대장이 내게 물었다. 누구보다 먼저 공터에 도착해 준비를했던 그는 눈가가 좀 더 거뭇하게 변한 상태였다. 그 잠깐 사이에 새치가 더 늘어난 건 말할 것도 없었다.
"네."
나도 마찬가지로 석판을 보며 답했다. 석판에 새겨진 이름의 주인은 변종들의 습격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지금 벙커 인원이 공터에 모여 있는 건 이른 장례식을 하기 위함이고.
하루. 고작 하루가 채 지나지도 않았건만, 그럴듯한 위패도, 제대로 된 과정도 아무것도 준비 되지 않았건만, 아직 죽은 이들을 놓아줄 마음을 먹지도 못했건만. 지금 이때 하는 것이 그나마 최선이었다.
여기서 시간이 더 지난다면, 죽은 사람들이 최악의 형태로 되살아날 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윽고.
화르르륵!
연대장이 신호에 맞춰 가득 쌓인 나뭇가지에 불을 붙이는 것과 동시에 나는 붉게 타오르는 불에 푸른 불을 더해주었다. 살아 있을 때 사람을 태우지 않던 불은 그들이 죽고 나서야 옮겨붙었다.
죽어서 시신이 검은 입자에 벌써 오염이 되기 시작했다는 걸까. 아니면 시신에 남은 혼을 달래주기 위해 타오르는 걸까.
어느 쪽이든 간에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후자였으면 좋겠네.'
나는 점점 불길이 거세지는 전방을 바라보았다. 너울 거리는 불길 너머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슬픔을 달랠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야속한 현실에 사람들과 아이들은 가만히 서서 하늘 위로 타오르는 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니, 눈가에 가득 고인 눈물을 떨어트리며 소리 없는 울음을 토해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한 명씩 앞으로 나와 불길에 물건을 집어넣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죽은 이들이 아꼈던 물건 혹은 그들에게 있어 큰 의미가 있는 물건들을 시신과 함께 태움으로써 그들이 미련을 최대한 남기지 않도록.
사진, 작은 조각상, 십자가, 펜던트, 목걸이 등등. 사람들이 들고 있는 물건은 그 수만큼이나 다양했다.
푸른 불에 물건을 넣기 위해 가장 먼저 발을 내디딘 건 한 아이였다. 그 아이는 어떤 소녀의 손을 잡은 채 천천히 앞으로 나섰고, 손에 들린 것을 눈에 담았다.
"······누나, 형도 이제 못 봐? 엄마랑 아빠처럼?"
"···응."
아이의 물음에 힘겹게 답하는 소녀. 나이 차가 크게 나 보이지 않는 소녀는 불길 한가운데를 하염없이 보고 있었다.
"······오늘 같이 놀기로 했는데."
"오, 오빠가···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하다고 했어."
"그렇구나. 미안, 누나. 더 안 물어볼게."
결국 참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아 오열하는 자신의 누나를 본 아이는 손에 들린 테니스 공을 불길에 있는 힘껏 던졌다. 마치 불길 너머에 공을 받아줄 형이 있다는 듯이.
허나, 당연하게도 불길에 던져진 공이 바깥으로 나오는 일은 없었다.
"······."
자기 누나처럼 일렁거리는 불길을 보던 아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눈가를 거칠게 닦았다. 피부가 쓸려 눈시울보다 더 붉어질 때까지.
타닥- 타닥-
장작 타오르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른다. 하늘 위로 퍼져가는 연기는 미련이었다.
죽음을 애도하는 건 어린아이도 똑같다. 아이라고 해서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건 아니니까.
죽음이라는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는 있어도, 죽은 사람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쯤은 아이들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저토록 울고 있는 거겠지. 한때 죽은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겼던 물건을 품에서 놓아준 채로.
거세게 타오르는 불에 물건을 집어넣는 사람들의 행렬은 불길이 산의 숨을 서서히 꺼트리기 시작할 때까지 이어졌다.
마침내 마지막 인원이 불길 앞에서 몸을 돌렸을 때.
"어제는 정말 힘든 하루였다. 괴물들의 습격에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말았지. 그래도 나는 여기서 주저앉지 않을 거다."
연대장이 나지막한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낮은 그의 목소리는 사람들 사이에 울려 퍼졌다. 그가 말을 이었다.
"전우가 죽었다. 병장 성예준, 상병 강준우, 일병 박건우, 일병 최도현, 병장 김지훈, 일병 김현민, 상병 김지민···."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석판 앞에 놓인 상자 속 인식표를 매만지며 전사한 군인들의 이름을 입에 담는 연대장. 그는 장벽에서 싸우다 전사한 군인들과 벙커 내부에서 괴물들과 싸우다가 전사한 군인들의 이름을 전부 알고 있었다.
인식표가 너무 많이 손상되어 이름을 확실하게 알아볼 수 없어도 말이다.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손상된 인식표 대부분은 장벽에서 가져온 것들이었다.
"예준이, 이 녀석은 특히 뺀질거렸어. 시키면 잘하면서 말이야. 준우는 고참답지 않게 FM대로만 움직였고. 나중에 부사관 시키면 참 좋겠다 싶었어. 현민이는- 후우···. 동기들과 얼굴 붉히는 일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착했지. 이 아이들이 이틀 전만 해도 근무를 마치고 시시덕거리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더 이상 볼 수가 없구나."
그는 이어서 군인들이 아닌 일반 시민들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들에 관한 짤막한 이야기들까지도.
최현지는 인간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는데 소질이 있었다. 단순히 이름만 알고 지낸다는 말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 상대를 깊게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사이가 나빠진 사람들 사이에 그녀가 끼면 분위기가 곧잘 좋아지기도 했다.
뭔가 내가 할 일을 뺏긴 듯한 느낌에 매번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녀 덕분에 벙커 분위기가 좋게 유지되고 있어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는, 그랬던 최현지는 사람들을 인솔하다가 괴물에게 습격 당해서 죽었다. 추운 겨울이 지나 따뜻한 봄이 오면, 남자친구와 결혼할 예정이라며 자랑스레 말했던 것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김민수는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다. 특히 작은 물건을 세밀하게 만드는 것에 탁월했다. 난쟁이들이 그 소질을 알아보고 자신들의 기술을 배워보지 않겠냐고 물었었을 때, 그는 하늘을 날 새라 기뻐했었지.
어렸을 적부터 얼굴에 검댕이를 묻히고 살기를 잘했다며 기뻐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을 감으면 보여. ···그만큼 엄청 기뻐했었으니까. 제대로된 기술을 배워서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말에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작디 작은 수정 파편 하나를 손에 꼭 쥔 채 구조 활동을 하던 그는 10명이 넘는 인원을 구조하다가 토사를 뚫고 튀어나온 나무뿌리에 맞아 죽었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공터 곳곳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들의 죽음을 전부 기억한다. 내가 직접 수습을 했기 때문이 아니야. 전부 여기서 죽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지."
"······."
연대장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연대장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래, 이렇게 죽을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건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을 거다. 우리에게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슬픔을 달랠 기회가 있었을 거야. 하지만 그런 시간은 존재하지 않고 그나마 남아 있는 시간조차 우리가 행동하기에 모자라. 그러니 나는 멈추지 않을 거다."
우리가 언제까지 당하고 있어야 하냐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그저 연대장 본인의 다짐을 이야기할 뿐이었다.
"열심히 달리다가 어느 순간 뒤돌아보게 되는 날이 왔을 때, 내가 남긴 발자취 하나하나가 자랑스럽게 여겨졌으면 하니까.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믿으니까."
"······."
"나는 그런 내 발자취가 지워지지 않게 계속 걸을 거다. 앞서 희생한 자들이 남긴 발자국이 지워지지 않게."
단순히 돌진을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않은 채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였다.
"내 발걸음이 너무도 약해 찍어지지조차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속 밟다 보면 흔적은 남겠지."
그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포기하지 않겠다. 물러서지 않겠다. 주저앉지 않겠다. 어떻게든 한 걸음 더 내디뎌 길을 만들겠다.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부를 위해서도 아니고. 나는 그저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았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은 거야. 미래에 태어날 아이들을 위해서. 그러기 위해서는 작전을 성공 시켜야겠지."
인간은 마지막 기회까지 놓칠 정도로 바보가 아니다. 연대장은 그리 말하고 있었다.
"작전은━! 이미 시작됐다!!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야. 그러니 작전에 계속 참여할 의향이 있는 자만 이 자리에 남아라."
그의 외침이 퍼진 직후, 공터는 지독한 침묵에 잠겼다.
***
모두가 침묵을 유지하는 한편, 몸을 돌려 사람들을 본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게, 움직인 자들은 아무도 없었으니 말이다.
남들의 눈치를 보았기에 움직이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원래부터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는 듯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을 침묵을 깨며 품속에 간직하고 있던 다짐을 하나, 둘씩 꺼내기 시작했다.
"···부탁 받았습니다. 인식표만이라도 가족에게 돌려달라고. 그러면 살아야 합니다. 살려면 저 개 같은 나무를 불태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래야, 전우의 부탁을 들어 줄 수 있습니다. 나중에, ···절 살리고 죽은 그 새끼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나도 한 손 거들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약속을.
"참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저 2년이라는 시간을 군대에서 보내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얼떨결에 총을 잡고, 얼떨결에 방아쇠를 당기고, 얼떨결에 동기가 물어뜯겨 죽는 모습을 수도 없이 봤습니다. 사실 아직도 얼떨떨합니다. 대체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제가 살려면 이곳에서 이룬 가족을 지키려면, 연구소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누군가는 수호를.
"이제 돌아갈 집도 없어졌습니다. 그곳에 있던 가족들도 이미 전부 죽었습니다. 처음에는 전쟁을 빨리 끝내고 돌아갈 생각뿐이었는데, 이제 제게 남은 건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괴물 새끼들을 죽일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복수를.
"······많이 죽을 거다. 허무하게 죽을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나."
"죽는 건 무섭습니다. 무섭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압니다. 지금까지 보아왔다는 말입니다. 바깥을 돌아다니는 괴물들이 친구를, 가족을, 전우를 어떻게 죽였는지. 지금까지 저희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그들 중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없었다.
허나.
"그러니까, 저희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습니다!!"
그 마음의, 각오의 끝은 같았다.
"···좋다. 지금 이 자리에 남은 인원들은 곧 속행할 작전 참여자들로 이해하겠다. 이 작전을 완수하고 나면, 다들 집으로 돌아가자. 이게 마지막이야. 그리고 이제 전역해야지. 다들 이거 하나만 기다리고 있잖은가?"
"예!!"
군인들의 외침과 동시에 내 시야를 가득 메우는 것 하나.
"나라를- 아니, 이게 아니지. 집. 그래, 집을 되찾자. 우리의 집을. 지금부터 이틀 후 같은 시각에! 작전을 속행한다!!"
그건 칼카타가 내게 남긴 불씨가,
꺼지지 않은 사람들 안의 불씨가,
여전히 타오르고 있는 공터의 불씨가,
옆으로, 점점 옆으로 퍼져 나가서 사람들의 의지를 연료 삼아 불길이 되어가고 있는 광경이었다.
'···칼카타. 우리 인간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어요. 아직, 지지 않았어요.'
당신이 살린 불씨가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