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413화 (414/497)

Chapter 413 - 413. 기도 (13)

어느 때처럼 똑같이 잘 먹겠다는 외침이 들린 직후,

"······."

"······."

테이블 주변으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크게 한 숟가락 떠서 스프를 입에 넣으려던 예린도,

스프 표면을 살짝 그러모아 자연스럽게 식은 부분만을 숟가락에 모은 한세아도, 스프보다는 밥을 더 선호하기에 밑반찬으로 같이 먹을 통조림 하나를 방금 막 깐 참인 나와 지수도, 지안이가 잘 있는지 확인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온 최미소도, 모두 멍하니 엘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크림 스프에 밥을 말아버린 엘리였다.

그보다 더 정확히는, 이미 스프와 뒤섞인 밥을 우물거리고 있는 엘리였다. 뭐가 잘못된 것인지 깨닫지 못한 그녀는 생각보다 맛이 괜찮은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먹고 있는 중이었다.

"······엘리?"

나는 저녁 식사로 준비된 음식과 엘리를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번갈아 바라보았다. 오늘 먹을 음식의 조합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각 메뉴를 보았을 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무렇게나 굴려도 다시 오뚝 일어서는 상표가 그려진 스프는 일관된 맛으로 어지간해서는 성공을 보장했고, 스프로 성에 차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밥과 통조림도 실패할 수가 없는 맛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걸 섞어 먹는다는 건 문제가 분명했다. 왜, 굳이, 어째서, 어떻게 그런 짓을, 이런 감상이 들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네?"

"···맛있어?"

"맛있어요! 근데 왜 그렇게 봐요?"

엘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쏠린 시선에 의아함을 품었다.

"···아니야. 맛있게 먹어. 네가 만족했으면 됐지."

말을 잇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서 지수가 교통 정리해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들은 나도 동의했다.

그래, 누가 뭘 어떻게 먹든 무슨 상관일까. 먹는 본인이 만족한다면 그걸로 끝나는 이야기다. 엘리가 우리에게 스프에 밥 말아먹어 보라며 강제로 우리 스프에 밥을 말아서 준 것도 아니고.

"엘리 언니는 가리는 거 없어요? 못 먹는 거라던가."

엘리의 괴식에 신경을 끄고 자기 몫의 밥을 먹던 예린이 한 말이었다. 아이는 한세아가 깐 통조림을 나눠 먹었다.

"그러게? 가만 보면 참 잘 먹는단 말이야. 가리는 것도 딱히 없는 거 같고."

지수가 여전히 스프 밥을 우물거리고 있는 엘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음···. 딱히 못 먹는 건 없어요. 이쪽으로 넘어오기 전에는 뭐든 먹어서 배를 채웠어야 했거든요. 그래서 일단 먹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면 입에 넣었어요. 뭐, 그것뿐만이 아니라 원래도 그냥 잘 먹는 편이기도 했지만요."

재앙에 의해 망가진 고향의 이야기를 입에 담는 엘리. 그녀의 얼굴에는 씁쓸함이 올라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가끔 튀어나오는 고향에 대한 이야기는 그다지 좋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대부분 힘들었던 이야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부족하면 더 먹으렴, 엘리."

최미소가 엘리를 안쓰럽게 보며 반쯤 비워진 그릇을 다시 채워주었다.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스프를 본 엘리는 조금 전에 지었던 표정이 거짓말이라는 듯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나, 지수, 예린, 한세아는 엘리가 그런 식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이해했다. 물론, 그렇다고 그녀처럼 스프에 밥을 말아먹지는 않았다.

***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식사를 끝마친 우리는 방 청소를 마저 힘을 내서 끝낼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지수, 한세아, 최미소는 흙이 잔뜩 묻은 이불을 세탁하기 위해 방을 나선 상황이었다.

방 청소를 마무리하던 도중에 지하수와 연결한 수도관과 수정 발전기가 정상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말을 전달 받았기 때문이다. 수도관이 이어진 곳은 아직 공용 세탁실과 화장실뿐이었던 탓에 그녀들은 그곳까지 가는 수밖에 없었다.

나, 예린, 엘리는 방을 청소하면서 나온 흙을 포대에 담아 지상에 버리고 방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지안이는 예린이 안은 상태로 같이 돌아다녔다.

그리고 간단하게 저녁을 해치운 예린이 지안이를 침대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벽면에 기대진 돗자리 하나를 펼쳤다. 그것도 방구석에 말이다.

조금 낡은 감이 있는 돗자리가 촤라락 펼쳐진다. 예린은 돗자리 위에 푸른 가루가 담긴 유리병을 올려 두었고, 이내 자신도 돗자리 위에 올라가서 자리를 잡았다.

"예린아, 갑자기 돗자리는 왜 펴?"

잠자코 아이가 하는 행동을 보고 있던 나는 또 뭘 하려고 하나 싶은 심정으로 물었다.

"엘리 언니가 알려 준 게 있어요. 지금 그거 하려는 중이예요. 그러니까 오빠, 잠깐 동안만 쉿! 집중해야 한다구요. 사람 많아지면 집중 안 되니까 지금이 기회란 말이예요. 비나이다···, 비나이다···."

예린은 그 말을 끝으로, 두 손을 착 모아서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다. 집중을 한다는 말이 빈말은 아니었는지 살랑거리던 꼬리도 움직임을 멈췄다.

'···뭘 알려 줬다는 거야?'

포대의 흙을 지상에 버리고 오는 길에 둘이서 이야기를 계속 나누더라니, 그때 나왔던 이야기일까. 나는 의문이 담긴 시선을 예린에게서 엘리로 옮겼다.

"예전에 제가 서로 연결된 수정을 무전기처럼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해 주었거든요. 그냥 지나가듯이 해준 말인데 기억하고 있었나 봐요. 가루로는 하기 힘들 텐데 일단 한 번 해 보겠다고 하네요."

엘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내 의문을 풀어 주었다. 그녀는 수정으로 단순히 정령에게 말을 걸어 부탁하는 용도가 아닌 의념을 담아서 편지 비슷하게 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혹시 모르니 되든 안 되는 간에 내일모레에 속행할 작전과 사람들의 안녕을 위한 기도하고 싶어 했다고.

비록 아무것도 연결되지 않은 상태이며, 온전한 수정이 아닌 가루에 불과한 터라 예린의 기도가 다른 이에게 닿는 일은 없을 테지만 말이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예린이처럼 감응력이 높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도는 일종의 마중물이예요. 세상에 퍼진 입자와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마중물이요. 그들이 하는 기도는 단순한 기도가 아니게 되거든요. 높은 감응력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주변의 입자와 이어지고 마니까."

"그럼 지금 뭐라도 된다는 거 아니야? 되면 어떻게 되는데?"

"에이, 아까도 말했는데 가루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돼요. 온전한 수정이 있어도 하기 힘든 일이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아무리 시도해도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무조건 실패한다구요."

엘리는 곧바로 부정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연달아서 3번이나 부정했다.

기도.

가장 원시적인 입자 사용법.

그녀는 뜻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고, 발현된 가능성도 낮아서 사용하기에 어려운 방법이지만, 가장 기본적이고 입자와 직접 연결되는 방법.

엘리는 그런 방법인 만큼 만약 발현이 된다면 그 어떤 사용법보다 효과가 강하게 나타난다는 말을 덧붙였다. 강한 효과가 발생함에 따라 강한 반동이 잇따른다는 말과 함께.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굳이 발현이 된다고 가정하면━"

엘리가 무어라 말을 이으려는 그때.

"끄아아앙···!"

근처에서 느껴지던 입자가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유리병을 앞에 두고 있던 예린이 힘없는 비명을 내지르며 털썩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적으로 아이에게 시선이 향한 우리는 예린이 몸을 옆으로 뉘인 채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저런 식으로 사용자에게 랜덤한 반동이 오는데···. ······어?"

잠시 서로를 마주 본 나와 엘리는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채 예린에게 곧장 달려갔다. 옆으로 쓰러진 모습이 꼭 죽은 것처럼 생기가 없었다.

"예린아! 왜 그래!"

나는 쓰러진 아이를 일으키며 다급하게 외쳤다. 작은 체구의 아이는 간단하게 들렸다.

"배···."

다행히 보이는 것처럼 기절은 하지 않은 듯 내 외침에 바로 반응해주는 예린이었다. 아이는 힘없이 내게 고개를 기대며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애썼다.

"배, 뭐?"

"배고파요···."

그리고 이어진 예린의 답에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예상치 못한 답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 예상과 달리 심각한 상황은 아닌 듯했기에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아니, 방금 밥 먹었잖아? 우리 밥 먹은 지 한 시간도 안 지났어."

"몰라요. 갑자기 배고파졌어요···. 초코바···, 빨리 초코바······."

보아 하니 단순히 초코바를 먹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실제로 안색이 좋지 않기도 했고 말이다.

속으로 한숨을 삼킨 나는 엘리에게 초코바를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고, 내 손짓을 받은 엘리는 금방 초코바를 가져와주었다.

우물우물-

이내 초코바를 입에 문 예린은 점점 안색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텅 비어 버린 초코바 비닐이 늘어날 때마다 더 빨리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뭐야? 갑자기 왜 그런 거야? 장난친 건 아니지?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나는 아직도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따뜻한 체온이 손에 전해지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아니에요! 그냥 속으로 아무나 도와주세요! 라고 기도만 하고 있었는데 힘이 쭉 빠지더니 엄청나게 배고파졌단 말이에요."

"지금 몸 상태는 어때? 으슬으슬 떨린다거나 어지럽다던가 그런 건 없어?"

"없어요. 배 채우니까 멀쩡해졌어요."

"후우, 그건 다행이네."

한차례 상태를 살피던 나와 예린은 내가 말하기도 전에 일단 벽부터 보고 서 있는 엘리를 바라보았다.

"엘리, 넌 또 왜 그러고 있어?"

"뭔가 벽 보고 서 있으라고 할 것 같아서요···. 미리 하고 있었어요."

"······괜찮으니까 그냥 돌아와."

"네!"

호다닥 달려온 엘리가 얌전히 의자에 앉았다. 말없이 이어지는 내 시선에 몸을 잠시 배배 꼬던 그녀는 작게 헛기침하며 시선을 회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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