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15 - 415. 지원 (1)
수십 명의 군인들이 느닷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한 여성과 까마귀 한 마리를 노려보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러니까 갑자기 까마귀가 날았고, 날다 보니까 도착한 곳이 여기다?"
"어··· 네. 맞아요."
나와 신아현은 천천히 대화를 이어 나갔다. 서로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마찬가지고, 지금 상황을 머리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매한가지다.
의왕시 캠프에서 작별 인사를 한 후, 솔직히 다시 만나게 되는 때는 한참이 지나서야 만날 거라며 생각하고 있던 와중이었건만, 이렇게 뜬금없이 재회하게 된 것이다.
"간만에 얘 씻는 거 좀 도와주고 있었는데, 이 녀석이 말릴 새도 없이 날았다니까요? 아무리 멈추라고 말해도 들어 먹지도 않아서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건 떨어지지 않게 꽉 붙잡는 것뿐이었죠."
까마귀 등에 올라타서 스스로 씻을 수 없는 뒤통수 부분을 깨끗하게 닦아주고 있다가 봉변을 당했다는 신아현. 그녀는 하늘을 나는 도중에 온몸으로 맞은 세찬 바람 때문에 머리가 이렇게 되었다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사방으로 뻗친 모양새 그대로 굳은 상태였다. 완전히 산발이 된 모습이었다.
공중을 부양하는 것처럼 머리칼이 뻗친 신아현이 자신을 둘러싼 군인들을 보며 여전히 멍한 얼굴을 해 보이는 한편, 까마귀는 그러거나 말거나 부리로 자기 깃털을 정리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중이었다.
녀석은 산발이 된 신아현의 머리와 그녀가 덤으로 딸려왔다는 사실은 자신의 알 바가 아니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까마귀는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체구가 반절은 더 커져 보였다. 얼마나 잘 먹고 잘 잔 것인지 깃털에 윤기가 흐를 정도였다.
"일단···, 신아현씨는 잠시 대기해주십쇼."
나는 골치가 아파지는 걸 느끼며 그리 말했고, 이곳에 모인 사람들 만큼이나 당황한 표정인 지수, 한세아, 예린을 불러들였다. 샤워하고 나온 직후인 그녀들이 호다닥 달려온다.
그와 동시에.
"박지영씨, 총은 내리셔도 됩니다. 경계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분은 신아현씨라고 하는데 제 지인입니다. 음···, 동료였다고 하는 게 더 맞겠네요."
군인들에게 경계를 풀고 총구를 내리라는 말을 전했다. 군인들은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생각하고 있을 테니 이렇게 하는 게 우선이었다. 게다가 곧 있을 작전 준비 탓에 신경이 한껏 날카로워지기까지 했으니 더욱 그러하지 않은가.
"···저 여자는 그렇다 치고, 저 새는 뭐예요? 아니, 애초에 새가 맞기는 한가요?"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뒤로 넘긴 박지영이 총구를 살짝 아래로 내렸다. 그녀의 신호에 따라 다른 군인들도 총구를 서서히 내리다가 이내 완전히 내렸다. 다만, 총구의 방향만 그러할 뿐 눈빛만큼은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했고, 방심을 늦추지는 않고 있었다.
그게 당연한 반응이었다. 한 차례의 습격을 버티고 겨우 안심을 하려던 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거니까.
"크기는 좀 크지만, 새는 확실하게 맞아요. 그리고 까악이? 까악이 맞지?"
나는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간단하게 설명하려다 말고, 몸을 돌려 까마귀를 바라보았다.
[까아아악-]
자기 이름이 불리자 부리를 살짝 열어 울음을 내뱉는 까마귀. 경박하게 우는 걸 보니 우리 까악이가 확실하게 맞았다. 녀석은 지수, 한세아, 예린과 다시 만난 것이 반가운 듯 검은 부리를 일행에게 마구 비벼댔다. 경계하는 기색은 일절 없었다.
"보시다시피 인간에게 우호적인 친구예요. 보통 새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그냥 영물이라고 보시면 상황 이해에 편할 겁니다. 아르마딜로 변종처럼 까마귀도 변했다고 보면 되고요."
내가 다음 말을 이으려는 순간.
"어!? 이 목걸이!"
후방에서 예린이 경악성을 토해내는 소리가 들렸다. 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어서 나는 박지영에게 양해를 구한 뒤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지수와 한세아가 그나마 제일 마른 수건으로 아주 산발로 변한 신아현의 머리를 가라앉혀 주며 상황 파악을 위한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고, 예린이 까마귀 목에 걸린 낡은 주머니를 보고 있었다.
"까악이 너 이거 계속 가지고 있었어?!"
아이는 당황과 기쁨이 섞인 얼굴로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아이의 반응에 위풍당당하게 날개를 살짝 펴 보이는 까마귀였다.
그리고 주머니 입구를 풀어 안을 본 예린이 순간 몸을 굳히고 나와 눈이 마주친 건 거의 동시였다. 주머니 안에는 예린이 수리산의 아이들과 작별할 때 선물로 준 소량의 푸른 가루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
"······."
나는 그 모습에 예린의 기도를 까마귀가 받았다는 걸 직감했고, 그 직감은 곧 확신이 되었다. 사용하지 않았다면 빛을 간직하고 있어야 할 푸른 가루가 빛을 잃은 상태였으며, 예린도 그것을 이해한 듯 얼굴이 하얗게 질렸기 때문이다.
아이의 눈은 지상에 모인 많은 군인들 사이를 방황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모든 상황이 엘리가 알려 준 기도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우리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직 상황 설명을 더 요구하는 박지영과 군인들에게 말해야 하는 게 하나 더 늘었다는 사실이 막막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현우씨, 일단 당신이 말한대로라면 벙커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거죠?"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박지영이 한 말이었다.
"···네, 그렇죠."
"다른 누구도 아니고 이현우씨가 그렇게 말하니 저희가 더 할 말은 없지만, 자세한 설명은 더 필요해 보이네요. 그리고 이건 감인데, 지금 상황이 당신- 아니, 저 아이랑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이것도 맞나요?"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에휴······."
기가 막힌 듯 손으로 이마를 짚는 박지영. 그녀는 무전으로 상황 해제를 알리며 벙커 사람들과 본부를 안심시켰다. 뒤이어 전해지는 피곤한 연대장의 음성에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어느새 다가온 예린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군인들에게 허리를 숙였다. 꼬리와 귀가 축 늘어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뭐, 괜찮아. 다친 사람도 없고, 별일 아니었다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인 일이지. 아무튼 이현우씨, 저 사람이랑 까마귀에 대해서는 직접 말씀드릴래요? 연대장님께요."
기 죽지 말라며 예린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은 박지영이 그게 낫지 않겠느냐며 물었다. 그녀와 군인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으나, 내 말에 우선 뒤로 물러나는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일단 이 사람 신원하고 까마귀가 안전하다는 건 제가 보장하겠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당연히 제가 책임지고요."
연대장에게 내가 보고해야 그나마 마음이라도 편할 것 같았다. 안 그래도 피곤한 군인들이건만, 괜히 보고를 두 번 하게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럼 남은 문제는 저 사람이 어디서 지내느냐, 인데···, 일단 알겠습니다. 이건 제가 연대장님에게 따로 말씀드릴게요. 자, 다들 해산! 많이 피곤할 텐데 이제 안심하고 푹 자러 가! 내일할 일이 산더미이니까 딴 짓 하지 말고!"
박지영은 지상에 모인 군인들을 해산시켰다. 상황의 완전 종료를 알리는 외침에 군인들은 기운 없는 걸음으로 삼삼오오 흩어지기 시작했다.
상황이 일단락된 모양새에 나는 한숨을 속으로 삼키며 예린을 데리고 지수, 한세아, 신아현, 까마귀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오빠, 이거 저 때문이죠···?"
사고를 쳤다는 생각에 침울한 목소리로 묻는 예린. 아이는 예전에 자신이 까마귀에게 준 선물인 주머니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작게 한숨을 폭 내쉬는 건 덤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네 기도를 까악이가 들었다는 건 맞는 것 같네. 그래도 괜찮아. 아무도 안 다쳤잖아? 조금 놀라기는 했어도."
주머니 안의 푸른 가루를 보고 나서도 솔직히 긴가 민가 했으나, 가까이서 보니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예린의 기도가 까마귀가 가지고 있던 주머니의 가루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도 예린이 가지고 있는 유리병과 까마귀의 주머니가 서로 연결이 된 것처럼 희미한 선이 보였던 것이다. 빛을 잃은 모습이 서로 비슷하다는 것도 확신을 주는 것에 한몫하고 있었다.
비록 상황이 이렇게 되고 말았지만 예린이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게, 일부러 놀래키려고 한 일도 아니고 본인도 모르고 있지 않았나. 누군가 다친 사람이 없으니 다행이라는 박지영의 말처럼 한밤중에 일어난 대소동으로 넘어가면 그만인 일이다.
'굳이 따지자면 나와 엘리 잘못이긴 하지.'
예린이 보호를 받아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니긴 해도 안일하게 행동한 우리 잘못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군인들이 빠져 한순간에 휑한 느낌이 가득해진 지상.
"예린아, 현우씨."
그곳에서는 한세아가 팔짱을 낀 채 나와 예린이 가까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반가움을 마구 표현하던 까마귀는 어느 순간부터 자기 혼자서 아련한 눈빛을 한 채 하늘에 뜬 달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심상치 않아진 분위기에 딴 짓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