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16 - 416. 지원 (2)
"예린이 네가 잘못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놀랐을 테니까 나중에 사정 설명은 하자. 알았지? 다음부터는 상의하고 나서 하고. 뭔가 새로운 일을 할 때는 말이야."
한세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한 말이었다. 그녀는 누구도 이렇게 될 줄 예상하지 못했으니 대소동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네···."
힘없이 대답하는 예린. 귀와 꼬리가 아래로 축 늘어졌으나 내가 귀를 만져 주며 옆에서 달래자 처짐의 정도가 조금은 원상 복구되었다. 그건 한세아가 풀이 죽은 예린을 안아서 달래는 것으로 완전히 원래대로 돌아오게 되었다.
어찌 보면 대소동으로 원인이라고 볼 수 있는 나와 예린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표정을 지었다. 크게 혼나는 줄 알았는데.
그리고 아직 멀뚱멀뚱 서 있는 신아현과 아직도 달을 보는 척을 하고 있는 까마귀를 바라보았다. 까마귀를 씻기는 도중에 날아왔다는 것이 빈말은 아닌지 신아현이 입고 있는 옷 군데군데가 물에 젖어 있는 상태였다.
날아오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물은 강제로 마르거나 날아갔지만, 등 쪽을 비롯한 전체적인 부분이 덜 마른 상태였던 것이다. 우선 급한대로 지수와 한세아가 가지고 있던 수건으로 물기를 어느 정도 닦아내기는 했으나 옷의 물기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빨리 갈아입을 옷을 줘야만 했다.
시간이 갈수록 기온이 떨어지고 있으니 더욱 그러했다. 이능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튼튼한 몸을 가지고 있어서 고작 이 정도 추위에 감기가 걸리지 않기는 해도 추위를 느끼는 건 매한가지였으니 말이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까마귀는 혼자 뽀송뽀송한 깃털을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삐죽 튀어나온 깃털을 부리로 정리하는 행위가 끝나자 깃털은 매우 가지런하게 보일 정도로 말끔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누가 우리가 아는 까악이 아니랄까 봐 혼자 멀쩡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에 웃음이 픽 나왔다.
"신아현씨, 일단 오늘은 여기서 주무시죠. 당장 돌아가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그러기는 힘들어 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저희 마음도 편치 않아서요."
"네, 그래야 되겠어요. 어차피 당장은 못 가요. 여기까지 날아왔으니까 돌아갈 때도 날아서 돌아가야 하는 판인데다가 까악이 저 녀석, 당장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이거든요."
밤도 늦어가니 오늘은 이곳에서 밤을 보내고 가라는 내 말에 신아현은 으슬으슬 떨리는 팔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아현씨, 여기 온 거 누구 아는 사람 있어요? 캠프 사람들한테 말하고 오지는 못했을 것 같은데요? 듣자 하니 그럴 상황도 못된 것 같구요."
옆에서 신아현을 챙기던 한세아가 의뭉스레 물었다.
"어휴!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제가 여기 있다는 건 저희 캠프 사람들 아무도 모르고 있을 거라 제가 사라졌다는 걸 알면 진짜 걱정할 텐데···."
"······."
"아닌가? 워낙 요란스럽게 날아가서 누군가가 보기는 했을라나? 근데 뭐 확실한 건 캠프 사람들이 저를 봤든 보지 못했든 간에 어쩔 수 없다는 거죠. 당장 돌아갈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으이구, 저 밉상 때문에 이게 대체 무슨 꼴이람?"
충분한 안전 장비없이 하늘을 날면서 비명을 내지른 탓에 목이 조금 쉬었다는 신아현의 말에,
"죄송합니닷···!"
허리를 푹 수그리면서 사과의 말을 외치는 예린이었다.
"···응? 왜 네가 사과해?"
"까악이가 여기 오도록 부른 게 저인 것 같- 아니, 저예요···!"
"······."
뭐라 말하려던 신아현은 이어진 나와 예린의 설명을 묵묵히 들었다. 설명이 이어질 때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이내 숨을 천천히 길게 내뱉었다.
"우연이 아니었구나···. 하긴 우연이라고 보기 힘들긴 하네요. 뜬금없이 날아서 온 곳이 당신들이 있는 여의도일 확률이 얼마나 되겠어요? 내심 속으로 이상하긴 하다고 계속 생각하긴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된 거였네요. 그럼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야기나 한번 들어 보죠!"
"안 혼내요?"
"왜 혼내? 이상한 생각이나 심심풀이로 해 본 것도 아니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인가 뭔가 하다가 이렇게 된 거라며? 조금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그뿐인 일이지. 그러니까 너무 풀 죽지 마. 표정 그렇게 하고 있으면 나중에 얼굴에 이상한 주름 생긴다?"
"힉···!"
아직 심장이 쿵쿵거리긴 하지만 색다른 경험했다고 치면 된다고 답한 신아현이 실실 웃으며 이은 말에, 예린은 화들짝 놀라면서 손바닥을 뺨에 가져다 대었다. 울상인 표정을 강제로 피기 위함이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이 정도 가지고요. 돌아가면 언니가 화 좀 낼 것 같지만 나중에 제가 밤에 달래주면 되는 일이고요. 그나저나 이제 안내 좀 부탁해도 될까요? 근처에 강이 있어서 그런가 바람이 너무 차서요."
"아, 네. 신아현씨는 지수랑 세아씨 따라가시면 되고, 까악이는···."
나는 말을 하다 말고 잠시 멈춰야만 했다. 빠른 눈치로 상황이 끝났다는 걸 직감한 까마귀가 자기 이름이 불리자 냅다 나한테 총총 뛰어온 까닭이었다.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검은 부리를 마구 비벼대는 모습은 반가움을 표현하는 듯했다. 그것이 너무 격할 뿐이지.
"그래그래, 까악아. 만나서 반갑고 너는 여기 있어. 너 커진 거 보니까 밑에는 못 들어올 것 같아."
[···까악?]
그러던 까마귀는 이어진 내 말에 몸을 굳혔다. 자신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에 충격을 크게 받은 것인지 녀석의 까만 눈망울이 잘게 떨린다. 진심이냐는 듯, 지금 자신이 들은 말이 맞냐는 듯한 울음소리를 내뱉기도 했다.
나는 혼자서 시간이 멈춘 까마귀를 슬그머니 뒤로 밀어내며 급히 말을 이었다. 연대장에게 현 상황에 대한 보고를 하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
밤도 늦어가는 데다가 이런 보고는 빨리 전달되어야만 하는 사안이기에 급히 가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까악이는 어쩔 수 없이 바깥에서 지내야 하니··· 음. 지수야, 우리 차 트렁크에서 방수포 좀 꺼내서 천막 설치해 줄 수 있지? 비가 오진 않을 것 같긴 한데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그 정도야 쉽지.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니고."
지수와 한세아가 여긴 자신들이 맡을 테니 어서 내려가 보라며 손짓을 했다. 그리고 그녀들이 까마귀를 위한 천막을 설치하기 위해 차로 움직이려는 사이에 예린이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저도 도울게요!"
"아니야. 예린이 너는 밑에 내려가서 미소 언니랑 엘리에게 이야기 좀 전해 줘. 아현씨도 예린이 따라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방에 가서 옷도 갈아입으시구요. 사이즈는 얼추 맞을 거예요. 저랑 지수도 금방 뒤따라갈게요."
예린은 한세아의 말에 알았다고 답했으나, 신아현은 고개를 저어 여기 남아서 돕겠다고 했다. 지금 까악이 내버려 두면 삐치는 것이 며칠은 간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실제로 내 말에 충격을 받은 까악이는 한참을 굳은 상태로 있다가 다시금 아련한 눈을 한 채 흐릿한 달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아예 몸을 반대로 돌린 모습은 자기 마음이 상했다는 걸을 표출하는 모양새였다.
바로 그때.
"······이현우씨, 저 까마귀 정말로 위험하지 않은 거 맞습니까?"
아직 지상에 남아서 까마귀를 구경 중이던 군인이 슬쩍 다가와서 물었다.
"괴롭히지만 않는다면 안전해요. 그리고 사람이 하는 말 다 알아들으니까 이상한 말은 하지 않는 편이 좋아요. 반응 자체는 사람이랑 비슷하거든요. 생각보다 지능이 높기도 하고요."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했습니다. 나중에 동료들한테 주의를 주어야겠습니다. 꼭 무협지에서나 보던 영물 같네요."
신기한 눈으로 아직도 마음이 상한 상태인 까마귀를 보던 군인은 이내 나와 예린을 데리고 벙커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군인과 함께 연대장실로, 예린은 우리의 방을 향해서.
벙커로 내려가기 직전, 나와 예린이 본 후방의 풍경은 신아현이 까마귀를 달래고, 지수와 한세아가 임시 천막을 짓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던 그녀들은 방에서 보자며 손을 흔들었다.
***
지하 벙커.
나, 예린, 군인들은 지하 벙커로 내려왔다.
벙커 내부를 요란스럽게 울리던 비상벨은 진작에 멈춘 상태였다. 다급하게 움직이던 사람들도 이제는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복도에 널브러진 청소 도구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듯이 벙커는 참 소문이 빨리 퍼진다. 특히나 지금처럼 다 같이 모여서 일하고 있을 때는 더욱 그러했다.
"···위에 엄청 큰 까마귀 한 마리랑 사람 한 명이 왔다면서?"
"그렇다니까. 내가 몰래 가서 봤는데 까마귀는 어지간한 중형차보다 컸고, 같이 온 사람은 젊은 여자였어. 이야기를 살짝 들어 보니까 그 사람이랑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
군인 1명을 대동하고 방으로 간 예린과 헤어지고 연대장실이 있는 복도를 걷고 있는 내 귀에 들리고 있는 수군거림들이 내게 참 묘한 느낌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세상이 참 요지경이야. 민철이 너, 그 까마귀 보겠다고 말도 없이 위로 올라가기만 해? 진짜 혼난다."
"그럼 말하고 구경하러 가면 괜찮아?"
"반드시 여럿이서 가고, 함부로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그럼 내일 애들 모아서 보러 갈래!"
아이에게 주의를 주는 부모가 있었고,
"그나저나 그 사람 지인이 여자라고 했지? ···또 여자네? 대체 몇 명이야?"
"내 말이 그거야. 세상이 참 요지경이라니까. 뭐, 우리가 신경 쓸 건 아니지만."
나를 빤히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헛기침을 작게 내뱉은 나는 애써 고개를 당당히 든 채 발을 더 빨리 놀렸다. 가슴 한 켠에 자리한 내심 억울한 감정이 그렇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