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417화 (418/497)

Chapter 417 - 417. 지원 (3)

묘하게 억울한 마음을 억누르고 어찌어찌 도착한 연대장실 앞. 나와 군인은 서두른 발걸음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들려오는 대답을 기다릴 것도 없었다. 그도 그럴게, 애초에 문이 열려 있어서 안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접근을 눈치채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사람들이 퀭한 시선을 보내는 중인 것도 우리가 빨리 들어가게 만드는데 단단히 한몫하고 있었다.

연대장실 내부에 있던 인원인 연대장과 민머리 사내 독고수리.

그들 중 연대장이 나와 군인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겨우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 혼이 빠진 얼굴로 앉아 있는 중이었다.

뒤로 밀려난 의자가 몇 개 더 있는 걸 보니 조금 전까지 난쟁이들이 있다가 별일 아니라는 보고에 바로 자러 간 모양인 듯했다.

"대략적인 이야기는 무전기를 통해 들었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여성과 거대한 새 한 마리가 자네 동료라고?"

"···네."

"알겠네. 그럼 그건 그렇게 이해하지. 하지만 타이밍이 너무 공교롭지 않나.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자네, 다른 곳에 있는 동료에게 연락할 수단을 가지고 있었던 건가?"

"그건 아닙니다. 오늘 일어난 일은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아니,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상황이 좀 맞지 않네요."

나는 지상에서 박지영에게 설명해주었던 것과 같이 동일한 이야기를 반복했다. 예린이 이능을 통해 전혀 다른 위치에 있는 까마귀에게 의념을 전달했다는 것을 말이다.

"허허, 이거 참.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아무튼 위험하지 않은 건 확실하다는 말이지?"

일련의 이야기를 들은 연대장이 한숨을 속으로 삼키며 손으로 마른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가 겨우 쉬는 시간을 가지고 있는 와중에 이 소동이 일어났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나는 조심스럽게 그렇다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 부분은 제가 보장할 수 있어요."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그 까마귀 말이야. 말만 들으면 괴물이 아닌 영물이나 다름없더라고. 사람 말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알아듣는지 알려줄 수 있나?"

이번에는 묵묵히 마체테를 손질하고 있던 독고수리가 입을 열었다. 그는 머리만큼이나 반들거리는 마체테를 계속 닦고 있었다.

"일상 용어로 대화하는 건 무리가 없는 수준이예요. 전문 용어나 줄임말 같은 경우도 알려주면 곧잘 이해하는 편이고요."

"인간에게 우호적이고,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도 대화가 통할 만큼 그걸 이해하는 지능이 있다라···. 이거 나보다 똑똑한 거 아닌가? 바뀐 세상이 참 무섭구만. 그 아르마딜로 변종도 그렇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것들이 점점 더 많이 늘어날 수도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으니까."

까마귀나 아르마딜로, 카멜레온, 넝쿨, 나무 같은 동식물들도 전부 바뀌고 있다는 것을 새삼 체감한 독고수리는 마체테를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세상이 변함에 따라 그에 속한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에 침음을 흘리는 그였다.

"까마귀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은 낯설어서 경계하는 것이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나중에 서로 거리감이 줄어들면 착한 녀석이라는 걸 몸소 이해하실 겁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까마귀를 보았을 때 흠칫 놀라기는 했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보다 체구가 반절은 더 커져 있는 까닭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신체 구조 차이 탓에 크게 느껴지던 녀석이었건만, 이제는 고개를 들어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커진 것이다.

이미 까악이를 알고 있었던 나, 지수, 한세아, 예린도 내심 놀랐는데, 그렇게 커다란 까마귀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어떻겠나. 다른 건 몰라도 우리보다 놀라거나 경악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본능적으로 자신보다 큰 체구를 가진 동물을 경계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혹시- 아니, 아닐세. 이건 내가 먼저 말할 사안이 아니군. 그 외에 또 우리에게 알려 줘야 하는 사안이 있는가? 아니라면 이만 나가보게. 내일은 오늘보다 더 바쁠 테니."

손목 시계로 현재 시각을 확인한 연대장. 그는 이내 내게 축객령을 내렸다. 그가 자세한 이야기를 더 듣지 않고 보내는 건 본인이 피곤하기 때문이 아닌 나를 믿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눈치채고 있는 나는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 따름이었다.

애초에 본인이 피곤하다고 소동을 그대로 방치할 사람이 아니기도 했고.

연대장이 급히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이름이 신아현이라고 했던가. 생각해 보니 그 여성의 거처 문제가 남아 있었어. 자네 방에서 재울 생각인가?"

"아뇨, 방을 따로 주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본인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겠지만요."

애초에 나와 그녀들이 지내는 방은 꽉 찬 상태다. 같이 자려면 잘 수야 있겠으나, 조금 불편한 자세로 잘 수밖에 없겠지.

"알겠네. 그건 내가 따로 사람을 보내도록 하지. 다시 붙잡아서 미안하군. 어서 가보게."

"네, 이만 가 보겠습니다. 소란 피워서 정말 죄송합니다···."

"무얼, 사과는 됐네. 아이들이 다치지만 않았다면 나는 그걸로 족해."

피로가 상당히 늘었지만 말일세, 라며 허허 웃는 연대장의 모습에 나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가 웃는 건이 진짜 웃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천천히 뒤로 물러나면서 연대장실에서 퇴장했다.

***

한산해진 복도를 지나 도착한 방.

"아저씨, 왔어? 막 혼나진 않았지?"

"이야, 이현우씨. 살림 제대로 차리셨네요. 얼굴 못 본지 얼마나 됐다고 방에 아주 그냥, 흐흫."

일어나서 나를 곧장 반기는 지수와 신아현이 지수, 한세아, 예린, 최미소와 한창 이야기를 나누다가 방으로 들어온 나를 보며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최미소는 금방 친해진 듯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엘리는 낯선 인원의 등장에 어색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친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그녀이다 보니 어색함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한세아와 예린은 테이블에 올려진 주전부리를 하나씩 집어먹고 있었다. 그녀들도 지수처럼 손을 살짝 흔들며 나를 반겼다.

나도 눈짓으로 반겨주는 그녀들에게 화답했다.

바로 그때.

"그보다 이현우씨, 내일 모레에 저 나무 부수러 간다면서요? 제일 중요한 걸 왜 말 안 해줬어요. 도움을 바라서 기도했다는 말이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는데 이제서야 이해가 가네요."

까마귀에게 천막을 설치해주고 방으로 돌아와 일행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막 들은 참인 신아현이 말했다.

"상황이 상황이었잖습니까."

"하긴, 이것저것 다 이야기하기에는 주변 시선이 곱지 않긴 했죠. 아무튼 내일 모레에 있을 작전, 그거 제가 도울게요."

찌뿌둥한 몸을 풀며 내가 한 말에 곧장 말을 잇는 신아현. 그녀는 우리를 돕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네? 내일 바로 안 돌아가시고요?"

"바로 어제도 습격 당하고, 내일 모레에 엄청 중요한 작전이 있다는 걸 알아버렸는데 어떻게 그냥 가요? 그리고 아까도 말했듯이 까악이가 돌아갈 마음을 먹어야 저도 돌아갈 수 있다니까요."

"······."

"늦게 돌아가면 잔뜩 혼날 것 같긴 하지만 지금은 그 걱정보다 이현우씨와 당신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저희 캠프를 도와주셨듯이 이번에는 제가 당신들을 돕는 거죠. 처음에는 좀 당황했는데 이제는 다행이예요.

당신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어서. 그리고 그냥 바로 돌아가는 것보다 망가진 탱크라도 한대 받아서 끌고 돌아가는 게 더 멋지지 않겠어요? 그럼 언니도 당황해서 뭐라 하지도 못할 것 같고요.

"

일행과 이미 이야기를 끝마쳤다는 그녀가 장난스러운 기색으로 작전을 도와서 성공 시키면 무슨 상이라도 받지 않겠느냐며 말했다. 그녀가 이내 멋쩍은 표정과 함께 말을 이었다.

"근데 뭐 말은 이렇게 큰 소리치기는 했지만, 아마 직접적으로 큰 도움은 못 줄 거예요. 워낙 갑자기 끌려온 거나 마찬가지라 가진 건 이 몸밖에 없거든요. 그나마 하나 있는 건 비상용 넝쿨 정도?"

지수의 옷으로 갈아입은 그녀는 상의를 살짝 들어 벨트처럼 복부를 휘감고 있는 넝쿨을 슬쩍 보여 주었다. 얼핏 짧아 보여도 신아현의 이능이 섞이면 급성장과 축소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넝쿨이었다.

뭉툭한 넝쿨 끝부분이 내게 인사를 하듯 허공에 이파리를 흔든다. 전에 봤을 때보다 훨씬 능숙하게 이능을 사용하는 모습이었다. 연습을 많이 한 모양이다.

"도와주신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그럼 까악이는···?"

"까악이는 어쩔 수 없이 계속 위에 두는 수밖에 없죠. 애초에 까악이가 여기 온 게 예린의 기도를 받았기 때문이기도하고, 무엇보다 여기 들어오면서 통로 보니까 까악이 체구를 감당하지 못하겠던데요. 일단 내일 일어나서 최소 이틀 동안은 여기에 있으라고 해야겠어요."

신아현은 간신히 달래준 것이 무색하게 다시 삐칠 것 같다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그녀였다.

뭔가 까악이가 신아현이 하는 말을 잠자코 듣다가 결국 마음이 상해 몸을 돌리는 모습이 벌써 보이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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