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18 - 418. 지원 (4)
"제가 돕고 싶다는 말은 진심이예요."
어색하게 눈을 굴리고 있는 엘리를 본 신아현이 한 말이었다. 그녀는 엘리에게 손을 뻗으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워낙 신기한 이야기가 많아서 정신없이 듣기만 했네요. 이 아이, 지구 사람이 아니라면서요? 살면서 외계인은 처음 봐요. 뭐, 외계인이라고 보기에는 우리랑 완전 똑같은 사람 같지만."
"으앗···!"
신아현의 손가락이 엘리의 긴 귀를 툭 건드리자 엘리는 흠칫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아, 미안. 너무 신기해서- 아니, 이런 말은 실례구나."
"괘, 괜찮아요···."
"그래? 그럼 조금만 더 만져 봐도 돼? 아주 조금만. 응?"
"······."
엘리는 나, 지수, 한세아, 최미소, 예린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조용한 고갯짓에 신아현은 얼굴을 환하게 만들고 엘리의 귀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뭔가 되게 부드럽다고 해야 하나···, 말랑말랑한 감촉이네. 만지게 해 줘서 고마워. 너도 내 넝쿨 만져 볼래?"
"그건 괜찮아요."
이번만큼은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단호하게 말하는 엘리. 그녀는 몸을 뒤로 물리기까지 했다.
엘리의 답에 신아현과 그녀의 복부에서 신나게 이파리를 흔들고 있던 넝쿨은 시무룩한 기색을 풍겼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녀가 테이블 위 주전 부리를 하나 집어먹으며 입을 열었다.
"저한테 물어보고 싶은 건 없어요? 제가 들은만큼은 아니더라도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꽤 있을 것 같은데."
당연히 있었다. 그것도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이 아주 궁금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까악이가 있다는 건 수리산의 아이들이 캠프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것이니 그들에 대한 근황이 궁금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게다가 우리가 떠난 이후의 캠프 상황도 궁금하기는 매한 가지였다.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는 아이들의 이름인 박채연, 박수린, 김대현, 최민수. 그리고 김청수. 그동안 그 아이들이 의왕시 생존자 캠프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믿고 있는 와중에 실제로 근황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으니까.
"많죠. 가장 궁금한 건 저희가 캠프로 보낸 아이들이예요. 다들 무사히 도착했나요?"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한세아였다. 그녀는 아이들의 이름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입에 담으며 물었다.
"그럼요! 어, 그러니까··· 채연이, 수린이, 대현이, 민수, 마지막으로 청수까지 캠프에 잘 도착했으니까 이 부분은 마음 놓으셔도 돼요. 아주 잘 먹고, 엄청 잘 자면서 씩씩하게 지내고 있거든요. 적응을 잘했어요."
"다행이다···."
날개를 다쳤었던 채연과 수린은 진작에 완치되어 캠프가 비행장으로 변했다는 신아현의 말에 나, 지수, 한세아, 예린은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보기 좋게 살도 붙기 시작했다는 말에 웃음이 지어지는 건 덤이었다.
"우선 감사하다는 말부터 해야겠네요. 갑자기 캠프에 낯선 인원이 등장한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나는 신아현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 당시에는 아이들을 의왕시 캠프로 보내는 것이 급선무고, 최선이라고 생각했기에 아이들을 그곳으로 보낸 것이지만, 캠프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든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에이, 뭘요. 솔직히 처음에는 뜬금없이 거대한 까마귀랑 아이들이 나타나서 사람들이 많이 당황하긴 했는데, 이현우 당신이 보냈다는 말을 듣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아이들이잖아요. 아이들을 보고 그냥 내쫓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기도하고요."
신아현은 당시 상황을 회상하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뼈로 보일 정도로 마른 체구를 가지고 있던 아이들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그리고 캠프까지 오는 과정에서 펑펑 울었는지 눈가가 퉁퉁 부어 있었던 탓에 고민도 하지 않고 우선 안으로 들여보냈다는 말을 덧붙였다.
"아, 그러고 보니까 아이들이 당신들을 보고 싶어 하는 때가 많아요. 코코아 먹을 때 특히 그러던데요?"
"······."
아무래도 우리가 아이들에게 핫초코를 나눠준 준 기억이 강하게 남은 모양이다. 우리가 아이들을 여전히 기억하는 것처럼 아이들 또한 우리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건 지수, 한세아, 예린도 마찬가지인 듯 입술을 달싹거리고만 있었다.
"근데 까악이는 뭘 먹고 저렇게 커진 거예요?"
손을 번쩍 들며 다음 물음을 잇는 예린. 아이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까악이가 뭘 먹었냐고?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그 녀석이 캠프에 처음 왔을 때, 우리가 먹으라고 준 식량들이 있었는데 그거 한번 보더니, 고개를 획 돌리더라? 그러더니 갑자기 날아가서 해가 지면 알아서 돌아오는데, 아무래도 뭔가 먹고 오는 모양이야."
이상한 음식을 준 것도 아니고, 당장 자신들이 제공할 수 있는 음식을 주었을 뿐인데, 그런 매몰찬 거부는 처음이었다며 투덜거리는 신아현. 그래도 알아서 먹고 오는 덕분에 식비에 대한 걱정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고, 솔직히 다행이었다는 말로 끝내는 그녀였다.
그녀가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하는지 알 수밖에 없었기에 우리는 그저 어색하게 웃을 따름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끝마치고, 캠프의 근황에 대해서 들으려던 바로 그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안에 계시죠? 볼일 있어서 찾아왔어요."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박지영이었다.
"제가 열게요!"
신아현의 마수에서 벗어난 엘리가 호다닥 뛰어가서 문을 열어 주었다.
"아, 다행히 다 여기 있었네요. 제가 여기 온 건 다름이 아니라 신아현씨 당신은 오늘 제 방에서 같이 자기로 결정됐기 때문이예요."
박지영이 우리 방에 찾아온 것은 신아현의 거처가 정해진 까닭이었다. 그녀는 그리 말한 뒤에 문틀에 등을 기댔다.
"어? 저 여기서 안 자나요?"
신아현은 휘둥그레 뜬눈으로 방 내부에 있는 인원들을 차례대로 바라보았다.
"굳이 여기서 자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보시다시피 이 방은 인원이 꽉 찼잖아요. 그래서 제가 온 거예요. 여유분 방을 놀릴 필요는 없으니까. 이번에 제 방은 새로 배정받은 방이라 자리가 아직 남았거든요. 원래 바로 오려고 했는데 방 청소 좀 하고 오느라 좀 늦었네요."
어쩐지 시간이 좀 지나서야 우리 방에 찾아오더라니. 방을 정리하고 오느라 그랬던 것이다.
"아무튼 아직 이야기 다 안 끝났나요? 할 이야기 더 있으시면 여기서 기다릴게요."
"음···, 캠프 이야기는 나중에 해도 되죠? 이거 다 하려면 밤을 새도 모자랄 것 같은데."
"그럼요.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데 얼른 쉬는 게 좋아 보여요."
"고마워요. 안 그래도 날아오는 내내 비명을 질렀더니 정신이 좀 피곤하네요."
여분의 세안 도구를 챙겨 준 한세아에게 신아현이 한 말이었다. 그녀는 나중을 기약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박지영씨라고 하셨죠? 이제 보니까 아까 위에서 만났던 분이시네. 당신이 저랑 같이 잔다고 하신 거 맞죠?"
신아현이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복부에 감겨 있던 넝쿨의 이파리가 부르르 떨린다.
"···네, 맞아요. 저랑 같은 방 쓰시는 게 불편하면 다른 방을 마련해 줄 수도 있어요. 대신 조금 더러운 건 참아주셔야 하지만요. 급하게 치우긴 했으니 생각만큼 지저분하진 않을 거예요."
"아하, 그렇구나. 저랑 같이 자신다고 하신 게 맞구나."
"······뭐예요? 무슨 문제 있어요?"
"아무런 문제없어요!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했고, 피곤하니까 어서 방으로 가요! 그럼 나중에 봐요, 다들."
이윽고, 신아현은 나, 지수, 한세아, 예린, 최미소, 엘리에게 손을 흔들면서 박지영과 함께 방을 나섰다. 그녀들이 뭐라 할 새도 없이 빠르게 사라지자 방은 침묵에 잠겼다.
"······말할 타이밍을 놓치긴 했는데 말이야. ······괜찮겠지?"
두서없이 내던져진 지수의 말에 나와 한세아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말하는 바는 명백했으니까.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부분이긴 해도 신아현이 특별한 사랑을 하고 있다는 건 지수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괜찮겠지. 설마 막 건드리고 다니겠어? 그리고 애초에 그런 낌새는 없···었나? 응, 없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나는 신아현씨 믿어."
"그렇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 사람이 임자 있는 사람까지 건들지는 않겠지?"
"응. 신아현씨가 그렇게 경우 없는 사람은 아니잖아. ···아마도."
나, 지수, 한세아는 한동안 신아현과 박지영이 사라진 문을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바라보았다. 우리가 무슨 이야기하고 있는지 모르는 최미소, 엘리는 의뭉스레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뒤늦게 우리가 하는 이야기가 무엇에 대한 대화인지 깨달은 예린은 우리가 보내는 시선에 힘을 실어 주었다.
"우리도 이제 잠이나 자자. 몸 상태 좋게 유지해야지."
지수의 말을 끝으로 우리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과정을 하기 위해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방 내부의 전등이 탁, 꺼지는 소리와 함께 내부가 어둠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