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24 - 424. 마지막 정비 (6)
저 멀리 하늘에서 검은 점이 생긴 것이 보인다. 까마귀 울음소리와 함께 점점 커지는 그 점은 이내 날개를 활짝 핀 검은 새로 바뀌었다.
허공에서 잠시 멈춰 선 거대한 새의 정체는 바로 까악이였다. 남말하기가 무섭게 정찰에서 돌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서 희미한 실루엣 하나가 뭐라 뭐라 말하는 중이었다. 거리가 꽤 남아 있어서 제대로 들리진 않았지만, 대충 자신이 위에 타고 있으니 최대한 천천히 내려가라는 말인 듯했다.
하늘에서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들었던 초소의 군인들과 공터의 물자를 옮기고 있던 사람들은 벌써 거대한 까마귀의 존재가 익숙해진 것인지 시선을 떼고 자신들의 할 일을 이어 나갈 따름이었다.
"까악이다! 여기! 여기에 내려요, 언니!"
예린이 방방 뛰며 손을 위로 흔든다. 아이는 비행체의 착륙을 유도하듯이 까마귀를 자신이 있는 곳으로 유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펄럭- 펄럭-
좌우로 활짝 핀 날개를 몇 차례 움직인 까마귀가 지상에 무사히 내려왔다. 크기가 커진 이후부터일까.
다시 만난 까악이는 날개를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고, 그 덕분에 사방으로 밀려나는 바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물론, 거대한 체구에 비해 많지 않다는 것이지, 사뿐하게 내려앉았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휘이이이-
몸을 뒤로 밀어 내려는 바람이 느껴졌으니 말이다.
"예린아, 엘리! 나 돌아왔어!"
[까아아악!]
무사 귀환을 알리며 까마귀 등에 설치된 임시 안장에 앉아 있는 신아현과 부리를 작게 벌리는 까악이였다.
"언니! 왜 무전 안 받았어요!"
"미안! 바람 소리가 너무 커서 못 들었어."
까악이는 신아현이 쉽게 내릴 수 있도록 몸을 최대한 낮췄다. 신아현 또한 내리는 과정에서 혹시나 까악이의 날개나 다른 예민한 부위를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내리기 시작했다.
"이현우씨도 있었네요."
"까악이 상태 좀 보려고 올라왔었습니다."
나는 나와 눈이 마주친 까악이가 신아현과 함께 총총걸음으로 다가오는 것을 반겨 주며 녀석의 등에 올려진 안장을 눈에 담았다. 신아현이 등에서 버틸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장비인 것 같으니 안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겠지.
살짝 굴곡이 진 안장의 손잡이 혹은 고리에는 신아현이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넝쿨이 연결되어 있었다. 자기 의지대로 다룰 수 있는 넝쿨이고, 어지간한 로프보다 질긴 내구도를 자랑하는 그것이기에 안전 로프 대용으로 사용한 모양이다.
"아, 그런데 막상 올라오니 저랑 까악이가 없었구나? 많이 기다렸어요?"
"아뇨. 많이 기다리지는 않았습니다. 어디 갔냐고 물어보자마자 돌아오셨거든요. 그나저나 곧바로 움직이실 줄은 몰랐네요. 그것도 까악이를 타고서요."
나가더라도 내일 이른 아침에 보러 갈 줄 알았다는 내 물음에 신아현은 까마귀가 편히 쉴 수 있게 안장을 벗겨 주며 답했다. 예린과 엘리가 그 작업을 도왔다.
"원래 이 녀석이 등에 누구를 태우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그동안 못 타고 있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먼저 등에 타라고 하더라고요. 안전 장비를 제대로 갖추고 타니까 완전 놀이 기구 타는 느낌. 생각보다 재밌어요. 이래서 사람들이 옛날부터 하늘을 날려고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니까요."
"······."
그 어떤 놀이 기구도 지상이 까마득하게 보일 정도로 하늘 높게 날지는 않지만, 본인이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하니 그렇구나, 할 뿐이었다.
"그리고 바로 움직이는 게 맞죠. 시간이 충분한 것도 아닌 걸요. 무엇보다 여기 대장님? 연대장님? 그 분이 부탁하시기도 했고요."
아침에 연대장을 찾아가자 자신을 반갑게 맞이해주었다는 신아현. 그녀는 연대장에게 자신이 찾아온 목적을 말하니 그가 크게 기뻐해 하는 한편, 미안해했다는 이야기해주었다. 연대장이 당장 고양이 손이라도 급한 상황이었다며 추가적인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했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그녀는 목표 지역 일대의 하늘에서 정찰을 하긴 했으나.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멀리서 빙빙 돌다가 왔다고만 했다. 지상에 위험한 것들이 천지라서 가까이 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고.
"···많이 위험했습니까?"
"엄청 위험하다고는 못하겠어요. 그냥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을 뿐이거든요. 그러니까, 음···."
예린과 엘리의 도움으로 안장 정리를 빠르게 끝마친 신아현은 두껍게 껴입은 겉옷을 적당한 수준까지 벗으며 자신이 보았던 지상의 광경을 말하기 시작했다.
"고층 빌딩이든 빌라이든 간에 상관없이 모조리 붕괴된 건 물론이고, 잔해 사이사이를 기어 다니는 나무 인간들과 변종들이 서로 싸워댄 흔적들이 잔뜩 새겨져 있었어요. 그, 뭐라고 했더라. 유인 장치? 아무튼 그 장치의 여파가 상당했는지 구역 군데군데에 사체들이 산처럼 쌓여 있기도 했고요. 멀리서 보기만 했는데도 역한 피 냄새가 맡아지는 느낌이었다니까요?"
설명이 이어질수록 신아현은 당시 광경을 떠올리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가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제가 위험하다는 느낌을 받은 건 그것 때문이 아니었어요. 빠르게 지나가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는데 지상에 이상한 구조물··· 이라고 해야 하나 꺼림칙한 게 있던데요?"
"구조물이요?"
"네, 저희가 가야 하는 일대에 일자로 뻗어진 형태의 가느다란 나뭇가지 같은 것들이 있었어요. 그냥 얼핏 보면 뿌리가 튀어나온 걸로 볼 수 있기는 하겠지만, 그것들에게서 저는 시선 같은걸 느꼈거든요. 저뿐만이 아니라 까악이도요."
자신보다 빠르게 이상한 시선을 감지한 까악이가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보자마자 말릴 새도 없이 위로 상승했고, 그것들 위를 벗어나고서야 자신들을 응시하던 시선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신아현. 그녀는 자신들을 주시하는 시선을 확실히 느꼈다고 했다.
나는 그제야 그녀가 말한 것이 무엇을 이르는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가느다란 나뭇가지의 존재는 앞서 정찰조들이 보고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보고에는 정찰조가 변종들의 영역이 어지럽게 변한 사이에 가까이 다가가서 직접 만져 본 결과 별다른 특이 사항은 발생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보고에 당시 회의실에 있던 나와 연대장은 단순한 지형 변화로 생긴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건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것일까.
'···바라본다?'
지근거리에서 목숨을 걸고 직접 확인한 정찰조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그 사물이 뭔가 다른 역할을 하는 사물로 바뀌었다던가, 그것의 반응을 불러내려면 다른 조건이 필요하다던가, 같은 요인들이 있었다는 거겠지.
어찌 되었든 간에 우리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었다는 건 분명했다.
지상에서 다른 변종들 몰래 접근할 때는 별다른 반응을 보여 주지 않았던 것이 위에서 아래로 볼 때는 응시하는 시선을 보냈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판단을 잘 내린 것 같습니다. 저도 신아현씨가 말하는 구조물이 뭔지 보고 받아서 짐작가는 게 있기는 한데, 보고 받은 내용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었거든요."
"그래요? 뭐, 혹시 몰라서 그냥 가까이 다가가려고조차 하지 않았어요. 멀리서만 계속 관찰하다가 시간이 너무 늦어서 뒤로 쭉 빼서 후퇴했죠. 애초에 까악이가 이동을 거부하면 그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요."
당시의 기억을 회상하는 것과 동시에 꺼림칙한 느낌을 재차 받은 듯 팔을 손으로 쓸어내리는 신아현과 소름이 돋아 삐죽 튀어나온 깃털을 정리하는 까마귀였다. 둘 다 아주 진저리를 치는 모습이었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예요, 언니!"
까마귀의 깃털을 같이 정리하던 예린이 한 말이었다.
"솔직히 나가 있던 시간에 비해서 얻은 게 거의 없어서 그런 말을 들으니까 부끄럽네."
"아니에요! 나갔다가 무사히 돌아온 것만 해도 큰 성과예요! 당장 내일이 중요한 작전을 하는 날이니까요!"
"고마워라. 언니랑 같이 살래? 까악이 매일 태워줄게."
"아, 그건 좀···."
신아현이 그리 말하는 것과 동시에 황급히 그녀와 멀어져 내 뒤에 숨는 예린. 아이는 그녀에게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그런 예린의 행동에 픽 웃음이 나온 나는 우선 신아현과 까악이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누가 보면 내가 나쁜 사람인 줄 알겠어. 농담 한번 건넸다가 손해 봤네. 아무튼 이현우씨, 그게 무엇이든 간에 폭탄 같은걸로 어느 정도 처리하고 나서 진입하는 게 나을 것 같았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멀리서 포를 쏘던 까악이가 폭탄을 떨어트리던 해서 최대한 위협을 줄이는 게 나으니까요. 그게 불확실한 위험이라면 더욱이요."
섣불리 건드리기 두렵다고 그대로 방치해서 더 큰 위험으로 돌아오는 건 이제 사절이다. 그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무슨 역할을 하든 간에 일대를 포탄으로 한 차례 쓸어 버리면 무력화시킬 수 있겠지.
"그럼 저는 조금 쉬어야겠어요. 사실 조금 무서워서 몸에 힘을 계속 주고 있었더니 온몸이 삐걱거리고 있어서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예린아, 엘리. 그리고 이현우씨. 까악이 밥 좀 대신 주실수 있나요?"
"네! 저희한테 맡겨요! 까악이 잘 돌보고 있을게요!"
"그래 줄래? 고마워! 아, 이 녀석 밥은 아침에 미리 옮겨 놨으니까 그냥 바로 까서 주면 돼!"
신아현은 그 말을 끝으로 호다닥 벙커로 내려가는 입구로 뛰어갔다. 자신이 보고 온 것을 연대장에게도 말해야겠다는 말과 함께.
이곳에 온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그녀는 벌써 자연스럽게 녹아 든 모습이었다.
[까아아악! 까아악!]
자칭 까마귀 라이더가 자신을 버리고 혼자 쏙 벙커로 내려가는 걸 비통한 눈으로 보고만 있어야 하는 까마귀만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