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31 - 431. 마지막 정비 (13)
부르르릉-
군인들을 태운 차량이 앞으로 나아간다. 반쯤 찢어진 호로와 나무판자 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바람에 옅은 비린내가 섞였다.
한강 옆을 따라 달리면서 맡아지는 물 내음이 아니었다. 그건 건너편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피 냄새였다. 유독 찐득거리고, 코에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그 피 냄새는 나무 인간과 변종들만이 가지는 혈향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진한 혈향은 이곳, 올림픽 대로에서 풍기고 있었다.
"섬 바깥으로 나오니까 간간이 보이긴 하네. 나무 인간들. 이미 죽었지만."
아무리 맡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피 냄새에 지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한 말이었다. 그녀의 눈은 도로 곳곳에 널브러진 나무 인간들 사체를 향해 있었다.
팔다리가 엉망으로 꺾여 있거나 뒤통수가 커다란 구멍이 생긴 그것들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끈적한 체액이 방울방울 맺혀 있었다. 가교를 설치하는 난쟁이들을 호위하는 병력과 오늘 이른 새벽부터 출발한 선발대가 도로를 지나가면서 남긴 흔적이었다.
끼리리릭-
···콰지직!
도로에 무엇이 깔려 있든, 무엇이 앞을 가로막고 있든 아랑곳하지 않고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전차와 군용 트럭. 인정사정 없이 돌아가는 무한 궤도와 두꺼운 타이어가 그렇지 않아도 이미 엉망인 나무 인간들의 사체들을 한층 더 곤죽으로 만든다.
부르르릉!
달달달달달달-
나, 지수, 예린, 한세아, 엘리, 박지영을 태운 군용 트럭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지금 눈에 보이는 풍경이 꽤 낯설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상. 한동안 벙커가 있는 여의도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던 탓이다.
정신없이 위로 향하기만 했다가 요 몇 주간은 활동 반경이 빌딩들의 숲 한복판에 자리 잡은 벙커 주변으로만 한정되었으니 탁 트인 주변 풍경이 낯설게 느껴질 만도 했다. 외부로 나간다는 생각에 긴장이 되는 것도 한몫하고 있었고.
"그래도 도로에 있는 것들이 많지는 않았나 보네. 역시 대부분은 저기 건너편에 자리잡은 거겠지."
나는 조금 전 지수가 한 말을 받아주었다. 그리고 지상 노선인 한강 철교가 이질적으로 뚝 끊겨 있는 광경을 눈에 담았다. 다리를 지지하기 위해 X자로 뻗어진 철골에는 바람에 날려온 비닐이나 넝쿨 따위들이 세탁물처럼 걸려 있었다.
간혹 나무 인간들이 팔과 다리를 아래로 축 늘어트린 채 걸려 있기도 했다. 마치 더 넘어오지 말라며 경고성을 발하는 듯한 풍경에 찜찜함을 느끼는 것과 후미의 군용 수송 트럭이 잔해의 틈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한 건 거의 동시였다.
총 4개의 지상 노선을 통과하니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어졌고, 노들섬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다리를 떠받치는 기둥만 겨우 제자리에 남은 한강 대교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과 기둥을 지지대 삼아 노들섬과 연결된 가교까지도.
가교 앞, 교통 정리 역할을 맡은 군인들이 팔을 휘적거려 잠시 정차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에 맞춰 서서히 속도를 줄인 최선두의 전차와 그 전차를 따라가고 있던 차량들도 같이 속도를 줄였고, 이내 기다란 차량의 줄은 멈춰 서게 되었다.
이어서 무전기로 들리는 목소리 하나.
- 치지직··· 두 대씩 가교를 건너도록 하겠습니다. 한 번에 건널 정도로 내구도가 높은 건 아니라서요. 이동할 때 다리가 조금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최대한 안전을 기하기 위해서 천천히 건너가시면 되겠습니다.
빠른 상황 정리를 위해 각 전차와 차량들에 설치된 무전기로 전달되는 내용에 길게 늘어진 차량들은 묵묵히 다음 지시 사항을 기다렸다. 충분한 시간 없이 가교가 급조되었다는 건 작전 참여자들이라면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게 차례대로 가교를 건너기 시작한 차량들과 전차들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가 탄 차량이 건널 차례가 되었을 때.
똑똑-
운전병이 수송칸에 탄 우리에게 신호를 주며 차량을 출발시켰다. 노들섬을 경유하는 한강 대교를 따라 설치된 가교. 그 폭은 대략 2.5m에 달했고, 전차나 군용 트럭들이 여유 있게 지나가도 될 정도였다.
한강 수면에 딱 붙게끔 설계된 가교.
그곳에 가기 위해 도로 아래로 내려가는 트럭.
부스스- 부스스-
살짝 앞으로 쏠리는 느낌과 함께 허리춤을 가뿐히 넘어설 정도로 길게 자라난 억센 수풀이 차량을 마구 더듬는다.
뜨드득!
트럭의 바퀴를 옭아매려는 듯 달라붙는 수풀은 지면이 아닌 수면 위 가교에 도달하자 더 억센 느낌을 주었다. 어찌나 질긴 지 중간 부분이 뚝 끊기는 것이 아니라 뿌리 채 뽑히는 것들이 상당수 있었다.
"물이 깨끗하네. 냄새도 심하지 않고."
나무판자 사이를 비집고 기어코 운송칸까지 침범한 수풀을 본 지수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끝이 뾰족한 수풀을 밀어냈다.
그녀 말대로 수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수질은 깨끗했다. 아직 가교 초입이라 이 밑의 수위가 낮아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었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았다. 그도 그럴게, 코로 맡아지는 강물 냄새 자체가 예전과 크게 달랐으니까.
"언니, 저기 봐! 물고기도 있어!"
조금 더 수위가 깊은 위치로 이동하니 물속을 바삐 돌아다니는 물고기들도 보였다. 피라미 같은 작은 물고기들이 아니라 팔뚝만 한 큰물고기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물고기들이 있는 걸 보니 까마귀나 아르마딜로, 카멜레온처럼 강의 물고기도 변한 모양이다. 강에 사는 물고기들이 저렇게 크게 변했는데 바다에 사는 생물들은 얼마나 커졌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영화에서나 나오는 크라켄이 된 문어나 수천만년 전에나 살았던 메갈로돈이 된 상어 같은 것들이 생겼을 수도 있겠지. 소형 군함 정도는 단숨에 두 동강 낼 수 있는 갑각류들이 생겼을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확신할 수는 없으나, 까악이의 체구를 생각해 보면 그리 낮은 가능성은 아니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바닷가로 갈 일이 생기면 주의를 기울여야 할 듯싶다.
'···그럴 기회가 있다면 말이지.'
나는 괜히 머릿속을 복합하게 만드는 잡념을 털어냈다. 지수, 예린, 한세아는 수면 아래 뽈뽈거리는 물고기들을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머리에 작은 뿔이 달린 물고기나, 지느러미가 비정상적으로 자란 물고기나, 다양한 색의 화려한 비늘을 뽐내는 물고기나. 구경 거리로 삼기에는 제격인 까닭이다.
"저거 살 엄청 많아 보여요. 나중에 한 마리 잡아가서 구워 먹으면 좋겠다···."
언제나처럼 생각의 끝이 먹는 것으로 연결되는 예린. 아이는 지수를 보며 시간 날 때 강에 스파크를 쏘아서 물고기들 기절시켜 달라고 했다.
"···살이 많아 보이기는 한데, 먹어도 되는 거 맞아? 뭔가 독 들어 있을 것처럼 생겼잖아."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지수. 그녀는 예린에게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긴 했으나, 영 찜찜한 기색이었다.
"먹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 구분하려면 어차피 한번은 겪어봐야 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익혀 보면서 먹는 방법을 알아가는 거지. 우리도 언제까지나 통조림만 먹을 수는 없잖아."
앞으로 계속 살아가려면 결국 자연에서 식량을 얻어야 한다는 한세아. 그녀는 벌써 손질을 어떻게 할지 정해 놓은 것처럼 보였다.
"······."
그리고 박지영은 아무렴 좋다는 듯이 멍한 얼굴로 수면만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가교의 진동에 의해 수면 위로 퍼지는 파문이었다. 반원의 형태로 퍼지는 파문은 바람에 의해 형성된 물결에 잡아 먹혀 모습을 감췄다.
일렁거리는 수면 위로 구름 한점 없는 푸른 하늘이 비춰진다. 물결이 칠 때마다 푸른 하늘이 일그러진다.
부르릉···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차량에 의해 수면 또한 좀 더 깊어진 깊이를 드러냈다. 조금 더 어두컴컴하게 변한 강물과 함께 물고기들도 그 수를 불렸다.
후두둑-
돌로 이루어진 가교에 있던 부스러기들이 전차 궤도에 밀려나 수면 위로 떨어진다. 퐁당퐁당 떨어지는 돌 부스러기에 반응을 한 건 머리에 뿔이 달린 물고기들이었다.
첨벙첨벙!
촤자작!
먹이라도 던져 준 것으로 아는 건지 첨벙거리는 움직임을 보여 준 것이다. 힘이 어찌나 강한 것인지 물이 위로 솟구칠 정도였다.
"히야악···!"
멍하게 있다가 얼굴에 물방울이 튀자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난 박지영.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꼬리 털이 마구마구 곤두서 있다.
"······."
"······."
그녀의 호들갑에 대화가 끊어졌고, 순간 정적이 흘렀다. 지수, 한세아, 예린이 당황한 눈으로 박지영을 바라보았다.
"···크흠!"
말없이 이어지는 시선에 박지영은 뭐라 말하는 대신 괜스레 헛기침을 하며 달아오른 얼굴을 손부채로 식힐 뿐이었다.
"이제 이야기는 그만하고, 내릴 준비 하자. 거의 다 건너왔어."
나는 그런 박지영을 도와주기 위해 일행의 시선을 이끌었다. 실제로 1차 가교를 거의 다 건너기도 했으니 적절하게 나섰다고 할 수 있었다.
끼이익-
이내 차량이 움직임을 멈춘다. 이어진 하차 신호에 나를 비롯한 일행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녹지로 완전히 뒤덮여 있는 섬. 우리는 중간 경유지인 노들섬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