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433화 (434/497)

Chapter 433 - 433. 마지막 정비 (15)

어느덧 난쟁이들이 있다고 추정되는 건물 앞에 다다라 있는 나, 지수, 예린.

나는 잡고 있던 지수의 꼬리를 놓아주고 대신 문고리를 잡았다. 곧장 문을 여니 철판을 두드리고 있는 난쟁이들이 보였다.

"응? 누군가 했더니 현우였구나. 왜 찾아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 오거라. 너희들도."

구겨진 철판을 피고 있던 난쟁이 탄을 비롯해서 빈 건물에 있던 난쟁이 칸, 르한, 조이가 우리를 반겼다.

그들은 곧 있을 작전에서 자신들이 사용할 장비를 손보고 있는 중이었다. 건물로 들어간 나, 지수, 예린이 순간 흠칫할 정도로 흉악해 보이는 장비였다.

기본적으로 땅울림이라는 이능을 쓸 수 있는 그들은 원거리 무기인 총기보다는 근접 무기를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칸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대형 망치나 흉악한 철퇴 같은 무기를 들고 있었던 모양이다. 깡깡 울리던 그 소리는 난쟁이 탄이 철판을 피면서 난 소리였고.

칸은 홀로 맨손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맨손은 아니었다. 그가 땅울림으로 만드는 모든 것이 곧 무기였으니까. 낡은 의자에 앉아 몸을 까딱거리던 그가 내게 물었다.

"그래서, 왜 왔느냐? 이제 곧 작전을 시작할 텐데 쉬어 두지 않고."

"그냥 긴장 좀 풀 겸 해서 왔어요. 가만히 대기하고 있기에는 몸이 자꾸 굳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요. 여기서 다들 뭐하고 계셨어요?"

"우리? 우리야 뭐, 보는 그대로 장비를 손질하고 있지. 오랜만에 무기를 들려니 어색해서 말이야."

난쟁이 조이가 보기만 해도 묵직한 느낌을 주는 대형 망치를 들어 보였다. 스치기만 해도 뼈도 못 추릴 것 같은 망치였다. 그런 망치를 가볍게 들었다 놨다 하는 조이는 별로 힘들어 보이지도 않았다.

이어서 르한이 두꺼운 가시가 달린 철퇴를 눈으로 가리켜 말없이 자신이 하고 있던 행동을 알려주었다.

"···와, 무기 진짜 무식하게 세 보이네. 이거 한번 들어봐도 돼요?"

대형 망치는 그나마 눈에 낯설지 않은 형태라 넘어갔으나, 흉악한 가시가 튀어나온 철퇴를 처음 본 지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내가 잡은 손자국이 살짝 남은 꼬리를 흔들면서.

"어려울 건 없지. 마음대로 하거라. 생각보다 무거우니 떨어트리지 않게 조심하고."

피곤한 안색이지만, 흔쾌히 허락한 르한의 모습에 감사를 표한 지수는 냅다 철퇴 자루를 잡았다. 붕붕 휘두르려던 그녀는 무기를 휘둘러 보기에는 협소하다는 걸 깨닫고는 근처 사람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철퇴를 이리저리 돌렸다.

"이야, 도끼보다 훨씬 무겁긴 한데 이거 한방이면 전부 골로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역시 김지수 네가 뭘 좀 아는구나. 네 말대로 철퇴 한방이면 끝장이지. 그리고 자루를 살짝 돌리면 고정된 사슬이 풀려서 도리깨처럼 쓸 수도 있어."

"이야···! 거의 뭐 변신이네요. 변신. 나중 가면 가시도 발사하는 거 아니에요?"

생각보다 죽이 잘 맞는 난쟁이 르한과 지수를 내버려두고 이번에는 탄을 바라보았다.

"그 철판은 어디에 쓰려고요?"

"원래는 그 까마귀에게 입혀주려고 했는데, 벌써 떠났다고 하지 뭐에요? 그래서 그냥 임시 바리케이드 만들 때 집어 넣을 지지판으로 써먹으려고요. 이것저것 섞어야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지거든요."

신아현과 까악이는 노들섬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까마귀 울음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다른 누군가가 말해주지 않아도 그들이 이미 후암동 일대로 날아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정찰을 위해서 본대보다 한 차례 빠르게 더 움직여야 했겠지.

내가 벽면에 눕혀진 여러 장의 철판을 보고 있을 때.

뚜벅- 뚜벅-

난쟁이 조이가 물결 비늘 망토를 뒤집어쓴 예린을 보았고, 천천히 다가와서 물었다.

"장비는 마음에 드니?"

"음···. 네! 덕분에 제가 따라올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너라면 따라온다고 할 것 같았지. 그리고 감사는 나보다는 장비를 만들어준 르한 저 친구에게 하려무나. 나는 단순히 너에게 전달한 것뿐이니."

"조이 할아버지가 장비를 손 봐준 건 사실이잖아요."

물결 비늘을 흐느적거리며 답하는 예린. 아이는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와 동시에 지수와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던 르한이 갑작스레 대화에 끼어들었다.

"뭐 하나 물어볼 게 있다. 보아 하니 정령들이 하룻밤 사이에 돌아온 것 같은데 장비에 무슨 변화는 없느냐?"

그가 신경을 쓰는 부분은 아직 미성년인 아이가 위험한 이곳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물결 비늘 장비였다. 정확히는 정령들의 힘이 덧씌워지면 성능에 유의미한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난쟁이 르한이 원본의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카멜레온 변종이 잡아먹었던 정령들의 힘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내세웠었다. 성체로 변한 정령들의 행패가 워낙 충격적이라 완전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예린이 장비를 활성화시킨 모습이 내가 확인한 성능과 똑같았기 때문인 것도 한몫하고 있었고.

"제가 처음 받았을 때부터 이 정도였어요! 바뀐 건 딱히 못 느꼈는데···. 아! 이것 때문에 바뀐 게 하나 있기는 해요!"

"오, 무엇이더냐. 빨리 말해 보거라."

"이걸 쓰면 애들이 화가 나요."

"······?"

무슨 소리인가.

애들이라는 건 정령들을 이르는 말일 테고, 화가 난다는 건 말 그대로 분위기가 험악해진다는 건데.

"정확히는 이 비늘이 뿜는 힘이 애들을 화나게 해요. 오빠는 이상한 거 못 느꼈어요? 제가 부른 애들이 나오자마자 화가 잔뜩 나가지고 막 으르릉 크르릉 거렸잖아요. 그게 이 망토 때문이에요."

예린은 작은 입으로 이를 크앙 드러내서 정령들이 화난 흉내를 냈다. 표정도 마구 찡그려서 화가 났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지만, 솔직히 말해서 무서움이라고는 한 줌도 없었다.

그래도 아이가 말하는 바를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처음에 정령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부터 이를 드러내던 게 예린이 감정 상태에 따른 건 줄로 알고 있었건만,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물론, 그 영향이 아예 없지는 않겠으나 물결 비늘에서 은연 중에 흘러나오는 기운이 더 큰 이유였던 것이다.

"······흠, 기대했던 답은 아니지만 이유는 얼추 알 것 같군. 그 비늘 자체가 정령들의 에너지를 뽑아내서 만든 탓이겠지. 변종이 원래 가지고 있던 비늘이 아니라."

"그게 큰 차이가 있어요?"

"큰 차이가 있지. 원래 가지고 있던 걸 특수한 힘으로 강화시키는 것과 원래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을 특수한 힘으로 처음부터 만들어낸 것. 이 둘의 차이는 크다. 후자는 창조의 영역과 다름없으니까."

아무래도 카멜레온 변종이 정령들을 포식해서 물결 비늘을 만들어낸 것 같다는 르한이었다. 단순히 이능의 에너지원으로서 사용되었던 것이 아닌 몸에 변화를 가져다주는 일종의 진화 재료인 모양이라고.

정령들이 돌아 왔어도 성능 자체에 변화는 없고, 되려 순한 정령들의 화를 돋운다는 예린의 이야기에 르한은 꽤나 실망스러운 기색을 풍겼다.

"나는 예린이 네가 화난 상태에서 불러서 그 정령인가 뭔지 하는 애들이 화난 줄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었어?"

"아니야! 아까 말했잖아. 이 비늘에서 새어 나오는 기운이 애들을 화나게 만드는 거라구. 그 기운이 막 자신들을 불쾌하게 자극한다고 했어."

"어쩐지 분위기가 너무 험악하더라니. 그런데 예린아, 너는 괜찮아?"

당시 상황의 분위기를 떠올린 지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는 돌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예린의 대답에 따라 비늘을 홀라당 벗길 기세였다.

"나?"

"응. 너도 위험한 거 아니야? 정령들을 화나게 하는 장비를 네가 아예 뒤집어 쓰고 있잖아. 애들이 화나서 널 공격하면 어떡해?"

나도 지수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비늘이 정령들을 지속적으로 화나게 만든다면 그 화가 착용자인 예린에게 향할 수 있는 노릇이 아니던가.

"나는 친구니까 괜찮아! 이걸 입고 있는 걸 탐탁치 않아 하기는 하는데 그 뿐이거든. 친구들이 융통성이 없는 건 아니라서. 이거라도 입어서 다치지나 말래! 그래도 화가 나는 건 나는 거니까 적이 있을 때만 부르라고 했어. 그럼 거기에 화풀이를 하겠다고."

"······."

그러니까 결국 본인은 정령들의 친구라 공격당할 일은 없고, 정령들은 화가 나는데 갈 곳을 잃은 그 화를 대신 주변으로 돌린다는 말이었다. 그 말은 만만한 우리한테 화풀이를 한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말이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린의 이야기에 내심 안심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불과 몇 주전만 해도 험비 배터리를 차지하고 있던 어린 정령과 입씨름을 하던 것이 엊그제 같건만, 이제는 성체급 정령들의 비호를 받을 정도로 능력이 성장했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이건 방증이었다.

예린이 그동안 놀기만 한 것이 아닌 때를 기다리면서 자신의 능력을 갈고 닦았다는 방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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