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35 - 435. 돌파 (2)
연대장의 신호에 곧장 되돌아오는 무전.
- 넵! 가져온 거 전부 떨어트릴게요! 최대한 도로랑 괴물들이 있는 쪽에!
바람이 세차게 지나가는 소리와 함께 들리는 신아현의 목소리가 잡음 속에 파묻힌다.
그와 동시에.
······펑!
콰앙-!
거대한 나무가 있는 방향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멀리서 전해지는 폭음은 희미한 괴성을 잡아먹었다.
"작전 개시! 서둘러라! 1번 전차가 먼저 이동하고 나서 인원 수송해!"
노들섬과 건너편 강변과 연결된 2차 가교 앞에 대기 중이던 전차들과 군용 차량들이 줄지어 이동하기 시작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앞으로 나아가는 차량에는 무장을 단단히 갖춘 군인들이 타 있었다.
한껏 긴장한 낯빛으로 총기를 꽉 붙잡은 그들은, 그들의 시선은 강변 너머 세계수를 향해 있었다.
"우리도 타자!"
"응!"
나, 지수, 예린, 한세아, 엘리도 서둘러 수송칸에 탑승했다. 박지영은 다른 차량에 탑승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급히 몸을 담은 두돈반은 기다란 줄에서 중앙에 자리를 잡았고, 후미의 꼬리가 너무 길게 늘어지지 않게 앞선 전차와 거리를 최대한 좁힌 상태였다.
2대에서 3대 정도로 나뉘어 이동했던 1차 가교와 달리 2차 가교는 빈틈 없이 이동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튼튼한 내구도를 가졌다. 아무래도 빨리 건너가야 하는 까닭이다. 작전 개시 이후, 이제는 시간 싸움이나 다름없는데, 고작 다리를 건너는 과정이 오래 끌리면 안 되지 않은가.
부르르르릉!
그렇게 수면과 맞닿아 있는 가교를 통해 전차와 두돈반, 보병장갑차들이 수많은 파문을 만들어 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300m 길이의 가교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수면의 파문은 물에 비치는 풍경을 마구잡이로 일그러뜨렸다.
···펑! 퍼엉!
조금 더 길어진 간격으로 울려 퍼지는 폭음이 들린다. 최종 목표 지역까지 남은 거리는 대략 4km. 아직 꽤 남은 거리이건만, 벌써 폭탄을 떨어트려 약하게나마 타격을 가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시선을 끌기 위해서.
병력이 가장 취약한 순간 중 하나는 강을 건너는 도중이니까.
무엇보다 인간에 비할 수 없는 괴력을 가진 변종들이 강변 기슭 수풀에 숨어 있다가 기습으로 공격해오기라도 한다면,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가교 위의 전차를 비롯한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당하는 것만큼 뼈아픈 손실도 없지 않은가. 정신을 차리고 전차들이 반격을 가한다고 해도 받은 피해는 이미 만만치 않을 정도일 터다.
물론, 지금 당장 맨눈으로 흔들리는 억센 수풀 사이에 숨어 있는 괴물들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건 혹시 모르는 일이다. 카멜레온 변종 같은 괴물들이 있다는 걸 감안했을 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고, 오히려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그렇게 이어진 상황이 지금이다. 군인들의 전력을 온존하게 보존하기 위해 신아현과 까악이가 폭탄으로 후암동 일대의 괴물들의 시선을 끄는 동안에 강을 건너는 것 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장애물을 만들기 위함인 것도 있었다.
폭탄이 터지면서 발생하는 열기로 포자가 모이고, 열기를 잡아먹기 위한 소화제 포자가 뭉쳐 거대한 포자 덩어리가 형성된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우리는 그 포자 덩어리가 만들어진 직후에는 포탄으로도 쉽게 뚫을 수 없다는 강도를 가지게 된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사태 초기에 여러 인프라들을 한 방에 박살 내버린 포자의 특성, 우리는 그 점을 역으로 노린 것이다.
신아현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형성되는 포자 덩어리들이 괴물들의 공격을 막아 줄 테니까. 포자 덩어리들이 괴물들에게 양분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당장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 싸움이다. 포자 덩어리가 양분의 역할을 하게 되었을 때는 이미 특유의 단단한 내구도를 잃은 순간이고, 그때까지 증폭기를 가동시키지 못한다면 작전은 실패다.
우리가 어둑한 밤에서 기습을 노리지 않는 이유도 간단했다. 이미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는 상황일 테니까
정확히는 후암동 일대의 변종들은, 오염된 세계수의 영역에 자리 잡은 괴물들은 특수 개체로서 일정 거리 이상 좁혀지면 침입자를 바로 인식한다고 보면 되었다.
시야로 보는 것이 아닌 주변 일대를 잠식한 검은 입자로 통해 감지하는 것이기에 밤이라는 상황을 이용한 기습은 무용지물이었다.
기습을 통해 싸움의 우위를 점거하지 못 하는 이상 답은 정면 돌파뿐. 주변 환경이 이렇다 보니 확실하게 위험 요소를 하나씩 착실하게 줄이면서 가는 것이 맞지 않겠나.
'착실과 신속은 시간 싸움에 있어서 서로 맞는 단어가 아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주목적은 돌파다. 그 점은 수송칸에 탑승한 나나, 행렬의 최선두에 위치한 전차 조종수도 인지하고 있었다.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나온다면 차량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길을 뚫겠지.
이윽고.
끼리리리릭-
부스스··· 부스스···
최선두 전차의 궤도가 강변 기슭에 닿자, 수풀들이 요란하게 몸을 흔들며 길을 비켜 준다. 그러한 수풀의 움직임에 근처에 있던 물고기들이 화들짝 놀라 수면 위로 튀어 올랐다.
그 전차를 시작으로 꼬리를 물고 있던 물자와 군인을 실은 차량들도 이내 무사히 가교를 건너 단단한 땅에서 바퀴를 굴릴 수 있게 되었다. 아직까지 괴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 치직··· 멈추지 말고, 바로 전진하라!
무전으로 전해지는 연대장의 지시에 전차는 시끄러운 엔진음을 내며 기슭을 지나 한강 대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3차선인 한강 대로를 따라 한 번에 위로 올라가면 좋겠으나, 도로에는 방치된 차량이 전차가 뚫기 힘들 정도로 많았기 때문에 그건 무리였다.
행렬이 향하는 방향은 한강대교 북단교차로를 조금 더 지나면 나오는 경의중앙선 철도가 있는 쪽이었다. 지상 노선인 1호선과 연결이 되는 경의중앙선을 통해 막히지 않고 전진할 수 있게.
해치를 열고 나와 사주 경계하는 군인과 총기를 꽉 쥐고 긴장을 늦추지 않는 군인들의 행렬은 이내 경의 중앙선 철도 위에 다다랐다.
끼리리리릭-
절그럭! 절그럭!
콰르르르!
곧장 아래로 움직여 철도 위 자갈을 사방으로 흩뿌린 전차와 군용 차량들. 격한 운전에 군인들은 튕겨 나가지 않게 보조 손잡이 역할을 하는 판자를 꽉 붙잡았다.
휘이이잉···
그리고 도미노처럼 무너진 건물들 사이를 지나친 바람이 우리마저 지나쳤을 때.
"······."
엘리가 흠칫 몸을 떨며 손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활을 쥐었다.
"엘리, 왜 그래?"
그녀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는 눈과 잔뜩 불안한 표정은 내가 무심코 입을 열어 상태를 물어볼 정도로 걱정하는 마음이 들게 하였다.
도리도리-
엘리는 아무 일 없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 지수가 답을 닦달했다. 한세아도 옆에서 거들었다.
"뭔데? 말해 봐. 불안한 게 있으면 풀고 가야지. 그게 자꾸 신경 쓰이면 싸울 때도 방해되잖아."
"그래, 엘리. 풀 수 있으면 조금이라도 빨리 푸는 게 좋을 것 같아. 긴장되면 손잡고 있을까?"
"······이상해요."
"······?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의미 모를 말을 중얼거린 엘리를 바라보았다. 이상하다, 라는 말. 그건 주변의 풍경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는 말일까.
그렇다면 충분히 이상하게 느낄만도 했다. 다들 말은 하지 않고 있으나, 한강을 넘은 뒤부터 한층 더 기괴한 형태의 식물들이 곳곳에 보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갈기갈기 찢긴 사체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바람이 이상해요. 현우, 이런 말을 해서 죄송하지만 느낌이 좋지 않아요."
"······."
나는 작전이 이제 막 시작된 참이라 어떻게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단계를 차근히 밟아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실제로 무사히 철도로 내려와 전진하고 있기도 했고, 당장 보이는 철도에도 별다른 장애물이 보이지 않아 빠른 속력으로 용산역 승강장도 통과하기도 하지 않았나.
당연히 겨우 이 정도로 일이 잘 풀리고 있다든가, 앞으로 어떤 상황이 들이닥칠 것이다든가, 하는 판단을 내릴 수는 없었다. 확실하게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까닭이다.
내가 눈짓으로 추가 설명을 요구하자, 엘리는 머뭇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자꾸만 안절부절 못하는 몸짓을 보니 그녀가 느끼는 불안감이 내게도 전염되는 느낌이었다.
"전에 말한 적이 있듯이 불어오는 바람에는 여러 가지가 담기거든요. 지금 오염된 세계수가 있는 곳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는 불길한 느낌이 너무 많이 담겨 있어요. 기분 탓이면 좋겠지만···."
분위기, 전조, 느낌, 환경의 상태, 사람들의 말소리, 괴물들의 포효 소리, 각종 장비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검은 입자의 잔향.
그런 것들이 최악의 형태로 바람에 묻어나오고 있다는 엘리.
"그거 그냥 바람 냄새가 나빠서 그런 거 아니야? 여기만 해도 사체가 한가득이잖아. 기분 나쁘게 느껴질 만도 하지. 죽은 지 오래된 것도 있는지 아까부터 썩은 냄새가 장난 아니니까."
그녀는 지수의 말에 무어라 답하려다가 입술을 달싹거렸고, 그 반응이 끝이었다. 방황하는 엘리의 눈동자는 그녀로 하여금 활을 더 강하게 잡게 만들 뿐이었다.
"바람이 저희를 부르고 있어요. ···아니, 어머니를 잡아먹은 재앙이, 오염된 세계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