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437화 (438/497)

Chapter 437 - 437. 돌파 (4)

끼리리리릭-

후방 지원 병력이 스퀘어 건물로 향하는 한편, 나, 지수, 예린, 엘리, 한세아를 포함한 본대는 핸들을 우로 꺾어 방향을 돌렸고, 바로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언제든지 포탄을 발사할 수 있도록 포신의 고정을 해제한 상태였다.

가슴속 깊은 곳을 잠식하려는 불안감을 애써 억누른 채 시선을 전방으로 향했다.

한때 멀쩡했던 도로, 한때 많은 사람이 살았을 아파트와 빌라 단지, 한때 좁은 길목을 이리저리 누볐을 차량들. 더 이상 과거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바뀐 풍경이 보인다.

기이하게 자라난 식물,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기준으로 생태계 자체가 달라져 버린 듯한 환경,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려 진 흙을 좀 먹은 검붉은 체액, 지반이 무너져 옆으로 몸을 뉘인 아파트 폐허를 잡아먹은 녹색의 혈관, 인간이 만든 장비를 전부 부식시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든 검은 입자 안개.

농부들이 씨앗을 심기 전 밭 갈기를 고르게 한 것처럼 일대가 전부 갈아 엎어진 후암동이었다.

여기에 신아현이 떨어트린 폭탄의 열기에 의해 형성된 포자 덩어리들이 군데군데 자리 잡은 것과 가느다란 나뭇가지 형상의 구조물이 반으로 꺾여 피를 토하듯 검은 입자를 울컥 쏟고 있는 광경까지 합하니 군인들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마경?"

저주로 가득한 풍경, 폭탄의 위력을 이겨 내지 못한 변종들과 유인 장치에 이끌려 서로 죽이고 또 죽인 변종들의 사체가 마구잡이로 놓여 있는 지형, 가시화된 검은 입자가 끈적한 안개처럼 바닥을 타고 흐르고 있는 환경, 태양 빛을 가리듯이 위로 뻗어진 거목들.

이러한 요소들은 이곳이, 오염된 세계수가 만들어 낸 이 저주받은 숲이 지구라는 공간을 뜯어먹고 있는 거대한 녹색의 입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 거대한 입은 점점 더 크게 아가리를 벌려 잠식의 영역을 늘려가고 있었다. 언젠가는 이 별을 전부 집어삼키고 말겠다는 듯이.

보이지 않는 악의가 내 발치에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기분이다.

"······."

신아현이 한 말인 지상이 갈아엎어졌다는 말. 나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바로 통감할 수 있었다.

"···이런 미친 괴물 새끼들."

나, 지수, 예린, 한세아, 엘리는 각자 무기를 꽉 쥔 채 전방을 노려보았다. 우리가 강을 건넌 순간부터 사람들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던 변종들이 몸을 꿈틀거리면서 대기하는 중이었다.

[끄르르르륵···]

그것들과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었고, 괴물들은 우리가 그 선을 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몸을 꿈틀거리는 걸 보면 기다리지 않고 바로 우리를 공격하고 싶어 하는 건 분명한데, 기이할 정도로 이상하게 그것들은 필사적으로 본능을 억누르고 있던 것이다.

"왜 안 덤비고 있는 거야?"

"저것들도 아는 거지. 굳이 먼저 달려들어서 공간을 내줄 필요가 없다는 걸. ···뭐, 애초에 본능이 아니라 명령을 듣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지수의 중얼거림에 답해주면서 심호흡을 했다. 수원 고등학교에서 조우했던 거미 변종, 죽음의 상징이었던 누더기 변종, 그 외 처음 보는 형태의 변종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은 상황. 대부분은 유인 장치의 여파로 인해 성치 않은 상태였지만, 그것들이 발하는 위압감만큼은 전혀 줄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깊은 살의를 불태우며 우리가 영역에 발을 들이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만한 수가 남았다는 건 전에는 훨씬 더 많은 물량이 이곳에 있었다는 말이겠지.

변종들의 수가 벙커를 물량으로 압도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놈들이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던 건 오직 연구소의 봉쇄를 풀지 못하게 막기 위함일까.

큰 전력 차로 벙커를 그대로 밀어 버리는 것보다는 어차피 여기서 대기해서 다가오는 병력을 잡아먹기만 해도 자신들이 이긴다는 생각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간에 우리가 저 사지를 돌파해야 한다는 건 변하지 않는 일이다.

눈에 보이는 일대를 멀리서 불태워 괴물들을 박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정확히는 마음만 굴뚝 같았다.

우리에게는 그럴 수 있을 만한 무기가 없는데, 어쩌겠나. 그저 한정된 물자로 앞을 뚫을 뿐이지.

이윽고.

- 치직··· 다들 이거 하나만 명심해라. 여기서 밀리면 전부 끝이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길을 열어라. 전차, 발진! 우리의 집을 되찾자!!

연대장의 신호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투-쾅!

끼리리리리릭!

장전한 포탄을 앞으로 쏘아내 앞을 가로막고 있던 변종들을 뭉개버린 전차들이 전속력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돌아가는 궤도에 의해 흙먼지가 뒤로 뿜어진다.

펑! 퍼펑!

두꺼운 나무 껍질을 온몸에 두른 나무 인간 변종들이 움직여 포탄을 막으려고 했으나, 철갑탄은 놈들을 그대로 관통할 뿐이었다. 몸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나무 인간 변종들은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팔을 뻗어 전차를 막아 세우려고 했다.

드드드드득!

그런 놈들의 움직임을 붙잡은 건 땅에서 솟구친 수많은 가시들. 난쟁이 칸이 손짓 한 번에 만든 돌가시들이 전방의 변종들을 모조리 꿰뚫었다.

파바박!

[끼아아아아아악!]

위협적으로 여러 손을 뻗던 누더기 변종마저 꼬챙이처럼 꿴 가시는 전차와 군용 트럭들이 지나갈 기회를 만들어 주고 나서야 부러졌다. 제 역할을 마쳤다는 듯이.

덜컹! 덜컹! 덜컹!

"크으윽···."

수송칸에 탄 우리와 군인들은 뒤로 튕겨 나가지 않게 필사적으로 차체를 잡아 버텼다. 아스팔트 도로는 이미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남은 건 험난한 숲길로 변한 길뿐이었기에 차량이 위아래로 마구 요동치고 있었다.

부아아앙!

안전을 생각하지 않고, 차가 망가지는 한이 있어도 속력을 최고로 내고 있는 것도 차량의 흔들림에 한몫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일제히 달려든 변종들이 기세에 비해 저항이 생각보다 약했고, 그 덕분에 아직까지는 밀어낼 만하다는 것일까.

최종 목표 지역인 연구소까지 남은 거리는 대략 1km. 아직 절반도 넘지 못한 시점에서 이런 판단을 내리기에는 이르지만 말이다.

투-쾅!

퉁퉁퉁퉁퉁-!

타타타탕!

전차의 포신에서 쏘아지는 포탄, 보병장갑차가 발사하는 40mm 기관포, 각 포탑에 딸린 기총의 사격 소리가 날 때마다 지나가는 길에는 황동색의 탄피들이 마구잡이로 튀었다. 탄피들이 촤르륵 소리와 함께 흙 위에 수놓아진다.

[끄아아아악!]

[끄르륵! 끄에에엑!]

난쟁이들의 보조와 각종 화력이 합쳐지니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변종들은 양팔을 들어 간신히 급소 부위를 막거나 화력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쿵 쓰러질 따름이었다. 내지르는 괴성에 비해 행동이 묘하게 굼뜬 걸 보니, 유인 장치가 만들어 낸 푸른 원기둥의 피해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한 모양이다.

···쿵!

[끼이이이···]

역관절의 다리가 모조리 부러진 거미 변종이, 수많은 팔을 휘둘러 공격을 하던 누더기 변종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쓰러진다. 사태 초기와 달리 현재는 전차에 작은 수정이 결합되어 있고, 포탄 발사 시에 푸른 입자가 미약하게나마 묻어 나오는 덕분인 것인지 괴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다.

콰드득! 우직!

앞서 기동하는 전차들은 발작을 일으키며 무력화된 그놈들을 무참히 짓밟으며 계속해서 전진했다. 인정사정 없이 돌아가는 궤도에 끈적한 살점이 묻어나와 뒤로 토해진다.

"조금만. 조금만 더···!"

우리는 오염된 세계수의 그림자가 점점 짙어지는 것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목적지가 보인다. 이제 곧 선두의 전차가 목표 지역에 도달할 것이고, 그때가 되면 우리가 나설 차례였다.

그그그극-

덩치가 커다란 변종들과 함께 포탄과 총알 세례에 갈려 나간 거목마저 뒤로 넘어가면서 후방에 있던 괴물들을 역으로 깔아뭉갰다. 사지를 허우적거리는 괴물들은 진형의 선두가 지나갈 수 있는 틈을 만들어 주었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수호목인 나무 거인에 준하는 크기의 변종, 나무 인간 수십이 뭉쳐진 형상의 괴물도 존재를 드러냈으나,

펑! 펑! 퍼퍼벙!

후방에서 날아온 지원 포탄에 직격으로 얻어맞았고, 그 탓인지 본래의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쿵쿵거리는 발걸음에 오히려 부러진 거목의 틈에 숨어 기회를 노리고 있던 변종들이 죽어 나갔다.

"···할 수 있어."

누가 먼저 한 말인지는 모른다. 허나, 그 중얼거림이 이내 동시다발적으로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는 건 알았다. 계속되는 전차의 압도적인 위용에 군인들을 잠식했던 불안감이 밀려나기 시작한 것이다.

후방에서 간간이 이어지는 저격에 의해 멈칫거리는 변종들을 무시하고 지나치니 어느새 남은 거리는 600m 정도. 눈 깜짝할 새에 전방의 괴물들을 힘으로 밀어내고 절반 가까이 움직인 상황이었다.

정말로 희망적으로 바라본다면, 이대로 괴물들로 이루어진 산을 뚫고 곧장 연구소에 도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이 수월하게 풀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키킥.」

내 귓가에 속삭임이 들렸다. 작디작은 그 웃음소리는 이제 곧 벌어질 일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못했다.

"······안━!"

본능적으로 느껴진 위기감에 경고성이 담긴 외침을 내지르려는 것과 동시에.

쿠드드드득!

힘없이 꺾여 망가진 줄 알았던 그 나뭇가지 형상의 구조물이, 땅에서 하늘을 향해 뻗어진 모양새인 그 나뭇가지가 다시금 형체를 되찾으며 일제히 솟구쳤다. 내 외침보다 한 박자 더 빠르게 솟구친 그것들은 앞서 나가던 전차의 앞도 가로막았다.

끼리리리리릭!

······콰앙!

전차가 속력을 줄이지 않은 채 그대로 나뭇가지에 차체를 들이박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차를 비롯한 군용 차량들은 나뭇가지로 이루어진 장벽을 뚫지 못했다. 뚫기는커녕 전차의 후미가 들릴 정도로 강제 급정거를 당하고 말았다.

검은 나뭇가지의 역할은 전차의 기동을 막는 것에서 끝이 아니었다. 지면을 흔들면서 주변의 검은 입자 안개를 빨아들인 그것은 이내 하늘로 검은 창을 쏜 것이다. 워낙 순식간에 이어진 일이라 전차가 미처 뒤로 물러날 틈도 없었다.

속삭임이 이어진다.

「어리석은 것들아. 고작 몇 개의 깡통과 병정 놀이를 하는 것들이 너희가 준비한 전부라면, 참으로 보잘 것없구나. 그래도 어디 한번 발버둥 쳐 보거라. 나를 위한 유흥 거리라도 될 수 있게.」

그리고 하늘 가득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쏘아진 검은 가시들 만큼이나 어두운, 절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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