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439화 (440/497)

Chapter 439 - 439. 돌파 (6)

[구오오오오오!]

쏴아아아아아-

나무 거인이 활성화 되고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차가운 비가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상황 속에서.

"전원 하차! 더 뒤로 밀리면 안 된다! 후방은 이미 막혔다! 어떻게든 앞을 뚫어라!"

연대장이 이를 악물며 내린 지시에 나, 지수, 예린, 한세아, 엘리는 차량에서 곧장 내렸다. 수송칸에 탑승한 채로 몰려드는 괴물들을 향해 사격하고 있던 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상황이 불리해졌다고 해도 여기까지 온 이상 뒤로 물러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현재 상황이 어떻든 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앞을 뚫어 길을 여는 것. 그것뿐이었다.

"에휴, 그래. 어쩐지 일이 잘 풀린다 싶었어. 결국은 이렇게 되는 거지."

차에서 내린 지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소방 도끼를 붕붕 휘두르다가 기척을 죽이고 접근하고 있던 변종에게 도끼를 휘둘렀다.

쐐애액!

콰직!

[끼이이이익!]

물방울을 튀기며 허공을 가른 도끼날이 처음 보는 형태의 변종에게 박힌다. 기습 특화 변종인 것인지 희끄무레한 몸체를 가진 그것은 소방 도끼에 의해 단숨에 양단되며 몸체만큼이나 뿌연 체액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그래도 예상보다는 많이 왔잖아. 거의 출발과 동시에 멈춰 서기는 했지만."

한세아가 빗물에 젖은 총기의 상태를 확인하며 지수의 중얼거림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는 옆으로 대충 조준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타아앙!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동시에 격발이 되는 강화탄에 맞은 변종의 몸체가 뚫린다. 물 반 고기 반 대신 변종이 반 넘게 공간을 메우고 있는 탓에 아무 데나 쏴도 맞은 것이다.

타타타탕!

퍼-엉!

총알보다 커다란 구멍이 생긴 변종은 이어진 군인들의 지원사격에 의해 몸을 비틀거렸다. 날카로운 손톱이 자라난 팔을 이리저리 휘둘러 어떻게든 균형을 잡아보려고 하는 듯했으나, 어딘가에서 날아온 수류탄에 맞고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끄르르르륵-]

···쿵!

지속적인 공격이 가해지자, 가래 끓는 소리가 가득 섞인 괴성을 내지르던 이름 모를 변종은 결국 그대로 뒤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빗물에 푹 젖은 흙이 끈적한 소리를 내며 흙탕물을 주변으로 흩뿌렸다.

쏴아아아아아-

"진형 재정비! 임시 진지를 구축해서 놈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

연대장과 군인들, 난쟁이들은 정신없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몰려오는 괴물들을 막고, 석벽을 세우기 시작했다.

사지 한복판에 고립된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검은 입자가 섞인 비에 의해 전차와 차량의 엔진에 이상이 생기고 말았으니까.

단순히 물자를 옮기는 군용 차량도 피해 갈 수 없는 문제. 다만, 한 가지 다행이라면 엔진에 문제가 생겼을 뿐, 총기를 쓰기에는 문제가 없다는 점이다.

'···수정이 작아서 한 번에 넒은 면적을 커버하지 못해.'

일대를 질식시키려는 것인지 주변을 가득 채운 검은 입자가 수정을 강제로 비활성화 상태로 만들고 있었다. 그나마 군인들이 화기를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화기 운용에 입자가 많이 소모되지 않는 까닭도 있으나, 수정의 힘이 적용되어야만 하는 범위가 작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 새끼들 못 넘어오게 막아!!"

"으아아아아! 죽어! 괴물 새끼들아!!"

군인들은 난쟁이들이 빠르게 구축한 임시 진지에 의지해서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변종들의 파도를 막아내는 중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매우 화창한 날씨였는데.

지금은 그 화창한 날씨가 처음부터 환상이었다는 것처럼 어둑어둑하게 변한 공간 속에서 여러 불빛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탕! 탕! 탕!

총구에서 뿜어지는 불꽃이 주변을 순간적으로 밝히면, 이내 그 빛을 어둠이 잡아먹는다.

펑-!

유탄이 터지면서 일어난 흙먼지는 그것보다 더 짙은 검은 안개에 잡혀 사라진다.

바로 그때.

"현우!! 제가 길을 열어볼게요! 대신 이 과정에서 저는 못 움직여요. 저를 한 번만, 믿어 주실수 있어요?"

검은 비를 흩뿌리는 먹구름을 노려보던 엘리가 내게 외쳤다.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시간을 달라고, 자신을 한번 믿어달라고 그리 말하고 있었다.

어차피 지금 전차와 차량없이 전진하는 건 무리다. 비가 오는 이상 엔진의 이상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엘리가 답을 찾을 수 있다면, 그건 충분히 기다릴 가치가 있었다. 그러니 나는 방법을 찾아낸다는 엘리를 믿고서 기다릴 뿐이고, 곧장 답할 뿐이었다.

"해! 하지만 오래는 못 버텨!"

준비가 모두 끝날 때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믿음직하게 말해주면 좋긴 하겠지. 허나, 안타깝게도 그런 허풍을 내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으아아악! 이거 놔!"

지금 이 순간에도 변종들의 손아귀에 붙잡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군인들이 널리고 널렸으니 말이다.

"······믿어 줘서 고마워요. 예린! 저 좀 도와줘요! 정령의 힘이 필요해요!"

지체 없이 나온 내 대답을 들은 엘리는 무언가를 결심한 표정으로 활에 바람 화살을 메기는 한편, 붙잡힌 군인을 구하고 있던 예린을 급히 불러들였다.

"네, 네! 제가 어떻게 하면 돼요?"

"비를 멈출 거예요. 그러니 지금은 힘만 계속 저한테 보내주세요. 그럼 제가 그 힘을 활로 보낼 테니까. 활이 부러지려고 해도 절대로 멈추지 마세요. 기회는 한번밖에 없어요."

"알았어요···!"

예린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동시에 엘리는 활에 메긴 화살의 끝을 위로 올렸다. 그녀가 표적으로 겨눈 곳은 먹구름이 모이는 중심지, 하늘이었다.

휘이이이잉!

엘리는 예린이 계속해서 건네는 힘을 흘리지 않고 모아 전부 바람 화살에 보냈다. 회오리치는 바람이 그녀가 메긴 화살에 빨려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본래라면 보이지 않아야 할 화살이 보이는 건 예린이 이를 악물고 보내는 정령의 힘이 바람과 동화되고 있는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바람의 형상은 점점 뚜렷하게 보이고 있었다.

"···비를 멈춘다고? 그럼 지금은 이거 말고 다른 총을 써야겠네."

엘리의 외침을 곱씹은 한세아가 원래 꺼내려던 대물 저격총 대신 소총인 K2C1을 꺼냈다. 탄창에 삽입된 강화탄을 눈으로 확인한 그녀가 소리쳤다.

"지수야! 너무 앞서 나가지 마! 길을 뚫는 건 엘리가 비를 그치게 하고 나서야!"

"비를? 일단···! 알았어요!"

선두에 자리 잡은 채 변종들을 도륙하던 지수가 의문을 표했다. 그녀는 이내 아무렴 좋다는 듯 스파크를 앞으로 쏘아 보냈다. 파지직거리며 허공에 퍼진 스파크가 변종들을 마비시킨다.

'정말로 비를 멈출 수 있는 걸까. 하지만 어떻게?'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치켜든 의문을 억지로 눌렀다. 의문을 푸는 것보다 지금 당장은 엘리를 믿고, 내게 곧장 달려드는 변종을 쓰러트리는 것에 신경을 써야 했으니까.

- 여기는 저격반! 현재 건물을 잠식한 거목의 기습으로 인해 지원 불가능! 최대한 빨리 정리한 후 지원을 재개할 예정!

- 치지지직- 머리 숙여!! ?콰아앙- 으아아악!- 치지지직!

간간이 이어지던 후방 지원 포격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비를 흠뻑 머금은 무전기가 토해내는 다급한 음성으로 그쪽에도 일이 발생했다는 걸 알 따름이었다.

우리는 중앙에서 힘을 모으고 있는 중인 엘리를 지키는 한편, 계속해서 변종들을 상대했다. 기동 불능에 빠진 전차가 간신히 쏘는 포탄과 장갑차의 기관포 사격에 의지해서.

투-쾅!

퉁퉁퉁퉁퉁!

황동색의 탄피들이 옆으로 튕겨 나간다. 속을 전부 비워낼 기세로 퍼붓는 탄환 세례는 변종들은 주춤거리게 만들었다.

쾅! 쾅! 쾅!

콰드드드득!

석벽이 허물어지는 것과 동시에 돌이 스스로 움직여 파괴된 부위를 복구한다. 난쟁이들의 이능인 땅 울림이 최대치로 가동되고 있는 석벽은 절대로 무너져서는 안 되는 방어선이었기에 필사적으로 재생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뒤로 물러나!"

등에 연료 카트리지를 멘 군인들이 석벽 위에 서서 화염을 방사한다.

화르르르륵!

[끼아아아아악!]

[키에에에엑!]

주변을 주홍빛으로 물들이는 화염 줄기가 전방을 메우자 한층 더 요란한 괴성이 고막을 때렸다. 그러나 화염 방사기는 세차게 내리는 비 탓에 본래의 위력을 반도 내지 못했다.

변종을 잿더미로 만들 기세로 뿜어지는 붉은 화염은 뒤로 갈수록 그 기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변종들의 껍질을 타고 흐르는 검은 빗물이 지속해서 피해를 주는 화염의 효과를 전부 무효화시키고 있는 탓이다.

···픽

불씨조차 남기지 못한 채 화염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야! 서둘러서 설치해! 빨리!"

군인들이 석벽에 크레모아를 설치하는 시간을 벌어 주기에는 충분한 위력이었다. 비록 변종들을 죽일 위력은커녕 고통스럽게 만들지도 못 하는 화염이었으나, 시각적으로 위협을 줘서 멈칫거리게 만들 수는 있었으니까.

"격발!!"

변종들의 파도가 본능적으로 화염을 피해 주춤거리는 틈을 타서 설치를 완료한 크레모아는, 곧바로 격발되어 파도를 향해 수백 개의 쇠구슬을 흩뿌렸다.

파바바바박!

수면에 돌을 던진 것처럼 크고 작은 물방울들이 비산한다. 전부 쇠구슬이 전방의 파도에 박히면서 생긴 현상이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일렁거리는 변종의 파도를 분쇄하기 위해, 후미와 이어진 허리를 완전히 끊기 위해 고속유탄기관총이 유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퉁퉁퉁! 퉁퉁퉁!

퍼버버벙!

끊어서 발사되는 유탄들은 곧장 괴물들에게 직격해서 터져 나갔다. 일대를 채우는 유탄의 폭발이 터지니 듬성듬성 빈자리가 생겼다. 물론, 발사되는 유탄보다 남은 변종들의 물량이 월등하게 많았기에 그 빈자리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크아아아아아악!]

고막이 터져라 괴성을 내지르는 변종들은 꾸역꾸역 밀고 올라와 석벽을 공격했고, 그 공격은 어쩌다 한 번씩 성공해 군인들의 목숨을 하나, 둘씩 앗아갔다. 난쟁이들이 석벽을 계속 재생시켜 변종들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다고는 해도 재생되는 시간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기에.

그 짧은 시간을 노리고 공격하는 변종들이 수십 수백이다. 그 틈을 뚫어 팔을 집어넣은 변종이 간혹 존재했고, 인형 뽑기를 하듯이 팔을 휘적거리는 공격은 미처 피하지 못한 군인이 죽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었다.

"컥?!"

날카로운 손톱에 복부가 꼬챙이처럼 꿰인 군인이 단말마를 내뱉은 것과 동시에 석벽 너머로 끌려가 사라진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짧은 외마디 비명을 끝으로 더 이상 군인의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형철아!! 이런 씨바아알! 제발, 뒤져!!"

변종의 손톱에 꽂혀 허무하게 끌려가 죽는 전우를 본 군인들은 악에 받친 채로 총구의 불을 쉴 새 없이 내뿜었다. 단지 그 사격의 효과가 그리 크지 않았을 따름이지.

타타타타탕!

티티티티팅!

포탄이 아닌 일반 소총탄으로는 강화된 변종의 껍질을 뚫지 못해 도탄이 되고 있었다. 그나마 간혹 피해를 주는 건 한세아가 만들어 낸 강화탄이었다.

타-아아앙!

허공을 가르는 푸른 빛줄기가 변종들을 관통하다가 힘을 잃고 사라지기는 했어도 그것이 유효한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상황이 계속해서 악화된다.

석벽의 재생이 변종들의 공격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무너지는 구역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고정식 포대로 변모한 전차들 내부에서 군인들이 수동으로 장전하고, 수동으로 포신을 돌려 격발한다.

투-쾅!

펑! 퍼펑!

그렇게 격발된 포탄은 나무 거인의 접근을 필사적으로 막아 내고 있었다. 거대한 나무 인간의 몸체에서 일어난 충격파가 빗물을 몰아낸다. 그럼에도, 나무 거인은 조금씩이나마 우직하게 걸음을 옮겨 다가오고 있었다.

"밀어!!"

"끄으윽···!"

급한대로 엔진이 멈춘 두돈반을 밀어 틈을 메운 난쟁이들은 대형 망치와 철퇴를 휘둘러 차체를 긁어내는 변종들의 머리를 터트렸다. 철퇴에 묻은 끈적한 살점을 털어낸 난쟁이 르한이 욕설을 내뱉었다.

"젠장! 빌어 처먹을!!"

그의 시선은 짧은 사이에 놈들의 손톱에 긁혀 찢긴 차체의 철판을 보고 있었다. 고막을 날카롭게 찢는 소리가 들리면 들릴수록 틈을 막은 차량은 죽어 가는 소리를 토해냈고, 실제로 다시는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전면부가 박살이 나고 있었다.

몸의 체온을 차갑게 식히는 빗물에 모두가 두려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공포에 주저앉는 사람들은 없었다. 이제 더 버티기 힘들다느니, 후퇴하자느니 하는 말들이 나오지도 않았다.

그저 애써 다잡은 표정으로, 굳건하게 제자리를 지키는 두 다리로, 적을 향한쪽 팔을 유지한 채 투쟁을 이어 나갈 뿐.

그래, 우리가 언제는 유리한 위치에서 싸워왔던가.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불리한 위치에서, 환경에서 싸워왔다.

연구소로 가는 길을 뚫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걸 우리 모두가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사실이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뚫렸던 초반에 의해 잠시 착각했을 뿐이지.

처절하게 저항을 하는 지금 상황이 어찌 보면 정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살의로 가득한 안광이 눈앞의 사람을 노려보는 것이,

그 안광을 한세아의 강화탄이 뚫는 것이,

빈자리를 다시 또 다른 안광이 채우는 것이,

그 살의를 난쟁이들의 가시가, 군인들의 사격이, 쉴 새 없이 불을 내뿜는 전차의 포신과 기총이, 그 모든 공격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도록 내가 피워내는 푸른 불이, 공간을 메우고 있는 상황, 도돌이표가 가득한 악보처럼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상황 말이다.

"죽어!"

지수가 스파크가 맺힌 도끼를 휘둘러 파도에 타격을 가했다. 빗물을 따라 허공에 퍼지던 스파크는 이내 증발한 듯 사라졌다. 괴물들을 마비시키는 스파크가 비에 담긴 검은 입자를 이기지 못하고 제압당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수는 낙담하지 않고 도끼질을 하기 위해 재차 팔을 들었다. 그건 이곳에 모인 모두가 하는 행동과 동일했다.

살기 위해 투쟁하는 것.

살아남기 위해 움직이는 것.

숨탄 모든 것들에게 부여진 숙명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것.

그런 염원이, 바람이 엘리에게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휘이이이이잉!

몸을 지나쳐 등 뒤로 항하던 바람의 기세가 눈에 띄게 강해진 것은.

"······!"

한순간 일대 생명체의 시선을 사로잡은 그 기세는 더욱 힘을 부풀리며 휘몰아쳤다. 화약 연기와 부상을 입은 군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흘린 피 냄새가 모조리 빨려 들어가며 자취를 감췄다.

그와 동시에 거짓말처럼 거센 바람이 뚝 멎었다. 마치 폭풍의 눈이 된 것처럼 잠잠해졌다. 그러나 나는 저 화살에 담긴 힘이 얼마나 큰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바람이여. 우리에게 승리를."

엘리의 목소리가 침묵이 내려앉은 공간 속에서 낭랑하게 울린다. 가라앉았던 바람이 재차 불기 시작하며 그녀가 가진 숲지기의 표식인 월계수 문양이 빛을 낸다. 스스로 불타 빛을 내는 유성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우리에게━!"

정신을 차린 변종들이 이전보다 더 격하게 공격을 가하며 살의를 드러낸다. 지금 당장 엘리를 막아야 한다는 걸 뒤늦게나마 깨달은 것이다.

[끼에에에에에엑!]

"막아!!"

우리 또한 더욱 필사적으로 수단을 가리지 않는 놈들의 공격이 엘리에게 닿지 않게 막았다. 인간과 괴물이 서로 뒤엉킨다.

"????━!"

잠시 그런 우리를 바라본 엘리는 이내 하늘을 노려보며 마지막으로 외치는 것과 동시에 시위를 놓았다.

- 현우가 소망을 담아 푸른 불을 피워내는 것처럼 저도 바람에 소망을 담아요. 지금 부는 한 줄기 바람이 피로에 지친 사람을 달래줄 수 있기를, 길을 잃어 버린 사람에게 이정표가 되어 줄 수 있기를. 이런 소망들이요.

예전에 엘리가 내게 해주었던 말이 머릿속을 메아리처럼 울리는 가운데.

후웅-!

모두의 염원이 담긴 바람이, 그 바람을 품은 화살이, 이번에야말로 보금자리를 지키고 말겠다는 잃어 버린 고향에서 시작된 기도가, 하늘로 쏘아진다.

그리고 먹구름이 뚫려 원래의 푸른 하늘이 드러났다.

짙은 절망을 몰아내는 바람에게,

한없이 밀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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