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40 - 440. 돌파 (7)
아무리 바람이 모였다고 해도 지구의 천장에 비하면 매우 작디작은 화살일 뿐이었는데, 모두가 하늘을 향해 쏘아지는 바람을 보며 이어질 광경이 이런 것일 거라고 예상치 못했는데,
모두의 염원이 담겨 있던 엘리의 바람은, 높은 고도에 다다른 그것은 한 번에 터지면서 검은 입자를 사방으로 밀어냈다. 먹구름이 밀려나는 것과 동시에 푸른 하늘 특유의 화창함이 다시금 지상을 뒤덮기 시작했다.
전부가 아닌 일부에 불과할 뿐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눈부시게 내리쬐는 빛이었다.
휘이이이잉!
검은 빗줄기가 모조리 날아간다. 보이지 않는 폭탄이 터진 것처럼 역으로 밀려나는 현상은 변종과 지상에 고인 빗물도 피할 수 없었다.
어둠을 몰아내는 태양 빛에 의해 사위가 밝아진다. 눈이 부실 정도로 뚜렷한 그 빛은 괴물들이 순간적으로 몸을 웅크리게 만들었다. 겨우 어둠에 익어가던 눈에 다채로운 색상의 육각형 타일이 겹쳐 보인다.
그리고 그 타일의 끝은 이제 우리가 다음으로 향해야 할 곳이라는 듯 제 2연구소 정문을 비추고 있었다. 변종들의 파도에 가려져 있던 묵빛의 문이 공간에 일어난 연이은 전투에 의해 드러난 것이다.
검은 입자를 밀어내기 위해 푸른 장막을 형성하고 있는 그 문이.
"오래는 못 막아요! 그러니까 어서, 움직여요···!"
엘리가 고통스러운 기색으로 외쳤다. 그녀는 한계까지 응축된 바람이 쏘아진 여파로 팔에 크게 다친 상태였다. 그 바람을 쏘아낸 활은 이미 처참히 부서져 있었다. 본래의 역할을 다 했다는 것처럼,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이제 제가 나설 차례네요. 아무래도 엘리 다음으로 나서는 게 효율적일 것 같았는데. 역시 비장의 수, 아끼기를 잘했어요."
"언니···. 죄송해요. 저는-."
"응, 엘리. 너는 충분히 잘해줬어. 이제 쉬어. 이 뒤는 내가 열게."
피가 뭉텅이로 쏟아지는 팔을 한 손으로 간신히 지혈한 채 무어라 말하려던 엘리의 입을 막은 한세아. 그녀는 길을 열겠다며 자세를 잡은 다음, 전방으로 총을 겨눴다. 대물 저격총의 총구가 괴물들을 향한다.
철컥!
침착한 장전 소리가 혼란스러운 전장에 울린다. 어느새 등 뒤로 펼쳐진 날개가 자세를 낮춘 그녀의 몸을 한층 더 단단히 고정시켰다.
끼, 리릭-
그녀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천천히 당긴다. 괴물을 향한 총구는 흔들리지 않았다.
투-콰아아앙!
그리고 이어진 격발은 주변을 순간 새하얗게 물들였다. 귀를 찢는 듯한 발포음이 주변 공간을 웅웅 울렸다는 걸 인지했을 때는 전방의 괴물들이 모조리 뜯겨 나간 후였다.
···쿵! 쿵! 쿵!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영문도 모르는 기색인 변종들은 절반 이상 사라진 자기 몸이 바닥에 몸을 뉘이고 나서야 상황 파악을 할 수 있었다.
허나, 뒤늦게나마 그걸 깨달았다고 해서 변하는 건 없었다. 그저 괴성도 내지르지 못한 채 명을 달리할 뿐이지.
티잉-!
하늘 높게 튀어 올랐던 탄피가 바닥의 돌부리에 튕기며 맑은 소리를 낸다. 사격 시 발생한 열을 잔뜩 머금은 탄피는 본래의 색을 잃어 버린 상태였다.
파직! 파지지직!
일직선으로 꿰뚫려 커다란 구멍이 난 길에서 스파크가 날카롭게 튄다.
단단한 콘크리트 건물이나 폐허가 된 그 건물을 품고 있던 거목이나 그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모든 것들을 전부 관통한 강화탄.
사물의 단면을 그대로 내보이게 만든 그 탄환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우리는 눈에 보이는 광경을 통해 똑똑히 알 수밖에 없었다.
휘오오오오!
그리고 갑작스레 밀려난 바람들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 되돌아와 강화탄이 지나간 길목을 휘감은 순간, 온갖 흙먼지와 타다 만 풀 쪼가리가 한 박자 늦게 몰아치며 후폭풍을 가져왔다.
[끼이이이익!]
끊어진 넝쿨 줄기가 날카로운 비명을 토해내며 꿈틀거렸다.
군인들이 사방에서 몰아치는 바람에 벙찐 얼굴을 양팔로 가렸다. 정신을 차리고 몰려들려던 변종들마저도 멈칫거릴 정도로 위력이 상상 이상이었다.
한세아가 손수 만든 특수 강화탄의 위력을 본 모두가, 강화탄에 직격으로 맞은 나무 거인도 섣불리 움직이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앗뜨!"
경이로운 광경을 만들어 낸 한세아는 정작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신경을 쓰지 않고, 열기로 달아오른 총열을 다급하게 식히고 있을 따름이었다. 날개로 몸을 고정시켜도 총의 반동이 워낙 심했던 탓일까.
철컥-
그녀의 몸에는 잔떨림이 남아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세아는 어떻게든 다음 공격을 이어가기 위해 묵묵히 총을 들었다.
그와 동시에 연대장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전진! 전진해라!! 지금 당장!!"
"······!"
그의 외침이 곳곳에 퍼지고 나서야 겨우 멍한 정신을 차린 군인들의 몸이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향한다.
"연구소 문이 바로 코앞이다! 저 문만 열면! 우리의 승리다!"
의지는 곧 힘이다.
연대장은 명령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본인도 소총을 든 채로 앞으로 내달렸다.
"아직 인간은 지지 않았어! 그러니까 전진해라! 멈추지 마!"
행동은 곧 힘이다.
한 명이 앞서나가기 시작하면 그건 다른 사람에게도 전염이 된다. 점점 퍼지는 그 행동은 이내 끝없이 이어지는 파도가 된다.
"미래를 위해 전진하라!"
전진은 곧 힘이다.
앞으로 나아감. 이건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어느 수준의 문명을 이룩했던 간에 이건 변하지 않는 진리와 같은 사실. 그 사실에 기대어 군인들은 달렸다.
탈진 상태에 빠진 엘리와 예린, 내 약속대로 최대한 후방에서 지원하기로 한 한세아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중간중간 변종들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군인들은 발버둥 치는 와중에서도 굳게 닫혀 있는 문을 노려보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 모습은 광기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허나, 아무리 발버둥 친다고 해도 여전히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기세 좋게 달려가던 자들이 먼저 죽는다.
기세에 떠밀려 따라가던 자들이 다음에 죽는다.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괴성과 전우의 비명에 순간 몸이 굳은 자들이 그 다음에 죽는다.
마지막이라는 건 없었다.
쉬지 않고 계속해서 다음 사람이, 그 사람이 죽으면 또 다음 사람이 죽어 나갔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아직 더 나아갈 수 있다는 듯 기동을 재개한 전차와 트럭을 이끌고 부딪혔다. 제자리에 멈춰 서지 않고 어떻게든 움직였다. 다리를 놀렸다. 팔을 휘둘렀다.
끼리리리릭!
엘리가 검은 비를 몰아낸 덕분에 수정이 힘을 되찾았고, 엔진에 겨우 시동을 건 전차들이 군인들을 지나쳐 앞으로 나선다.
투-쾅!
전속력으로 기동을 하는 한편, 전차는 전방을 향해 포탄을 발사했다. 그렇게 발사된 포탄은 앞을 가득 메운 변종들 중 하나에 박혀 몸체를 터트렸다.
[크아아아아아악!]
콰-아앙!
고통에 허우적대는 변종들을 마무리한 건 여태까지 그래 왔듯이 육중한 차체로 들이박는 군용 차량이었다. 충돌로 인해 차량의 부품과 변종의 체액이 사방으로 튄다.
참 신기한 광경이었다.
모두가 죽음을 두려워하는데, 모두가 죽음을 향해 가는걸 망설이지 않는다. 마치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모조리 불태워 움직이는 것처럼.
"꽉 잡으십쇼!! 떨어지면 저는 모릅니다!"
나와 지수가 탄 군용 트럭의 운전병이 소리쳤다. 그는 핸들을 이리저리 꺾어가며 사방에서 휘둘러지는 변종들의 팔을 피하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차량에 타지 않고 움직이려고 했다. 군용 차량이 튼튼하기는 하지만 특유의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우선적으로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아침부터 함께한 운전병이 자신만 믿고 타라고 말하는 바람에 그를 믿어 보기로 하고 차량에 탑승한 것이다.
다행히 그는 자신만만한 어조만큼이나 뛰어난 운전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그 덕분에 우리는 동선이 꼬이지 않고 연구소 정문을 향해 이동할 수 있었다. 다른 전차들, 장갑차들이 선두에서 시선을 끄는 동안에 말이다.
부아아아앙!
엔진에 무리가 가는걸 상관하지 않고 엑셀을 마구 밟아대고 있던 바로 그때.
[구오오오오오오오!]
세계수의 수호목, 나무 거인이 포효를 내지르며 손을 들었다. 연구소 정문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놈과의 거리 또한 줄어들고 있었기에 나무 거인이 접근하는 차량을 공격하려는 것이었다.
푸화악!
퍼어엉!
비호에서 발사된 유도 미사일이 놈에게 직격했으나, 나무 거인은 이번에도 손을 들어 간단히 막을 따름이었다.
급소를 보호해서 무력화만 당하지 않으면 받는 피해량이 급격히 경감하기에 그것을 믿고 한 움직임. 단순하지만 그 행동이 뿌리는 위압감은 확실했다. 미사일의 폭발을 손으로 밀어내서 막는 행위는 놈이 어떻게 수호목의 자리에 있는지 알게끔 만들었다.
"어어?! 저, 저거! 피해야 하는 거 아니야?!"
손이 새하얗게 변할 정도로 보조 손잡이를 꽉 붙잡고 있던 지수가 기겁하며 외쳤다. 지금 눈에 보이는 거대한 손이 자신이 탄 차량을 노린다고 생각하니, 오금이 저린 듯 몸을 살짝 떨기도 했다.
"때에 맞춰 급정거할 겁니다! 준비하고 있다가 그때가 되면 망설이지 말고 알아서 튀어 나가십쇼! 당신들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지 않습니까!"
"뭐라고요? 그럼 당신은요!"
"저는 제 할 일을 해야죠! 그러니까 더 꽉 잡으십쇼! 속도 더 올릴 거니까!"
타이밍에 맞춰 급정거를 한다는 운전병의 말과 달리 그는 엑셀을 더 강하게 밟아 속도를 올렸다. 그와 동시에 위로 치켜들었던 나무 거인의 손이 지상을 향해 떨어진다.
그리고 불현듯 어떤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지금 차량은 멈출 생각이 없고, 때에 맞춰 급정거를 한다는 것은━
"······건투를 빕니다."
머리를 스친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두려움에 떨면서도 애써 씨익 웃어 보이는 운전병의 모습을 눈에 담기도 전에, 나무 거인의 손이 차량을 강타했다.
콰아아앙!
꽈긱!
지면을 덮친 손에 의해 커다란 충격파가 일어나고 단단한 차체가 무색할만큼 차량의 전면부가 형편없이 구겨졌다. 깨진 유리 조각과 함께 운전석에서 퍼진 핏방울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트럭의 전면부가 완전히 눌리며 박살이 나자 속도를 유지하려던 관성에 의해 차량의 후미가 위로 들렸다. 타이어는 지면이 아닌 허공을 달렸다.
나와 지수는 복부를 간지럽히는 부유감을 느끼며 허공에 붕 뜨게 되었다.
후우우웅!
나무 거인이 만들어 낸 풍압이 몸을 스쳐 지나간다. 공중에 뜬 우리를 붙잡아 죽이기 위해 손을 뻗는 변종들의 공격이 아슬아슬하게 비껴 나간다.
"크으윽!"
풍압에 밀려난 우리는 우당탕거리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푸른 입자 덕분에 부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조금 전까지 차량을 운전하던 군인이 형체조차 찾을 수 없게 되고 말았으니까.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 보지도, 오늘에서야 이름만 겨우 알게 된 사이였는데. 이제 그와 다시는 이야기를 나눌 수조차 없게 된 것이다.
아주 찰나의 시간, 나는 젊은 군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몸을 일으켰다.
"길을 열어라!! 그가 연구소로 진입할 수 있도록!!"
곧바로 균형을 잡고 일어난 나는 또 하나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길을 밟았다. 피에 젖어 질척거리는 땅을 박찼다.
투-쾅!
···쾅!
내가 달려 나가는 길에 다른 전차들이 포격과 차체로 들이받아 틈을 만들어낸다. 찰나에 불과한 순간, 그러나 지금 그 순간은 다른 무엇보다 값진 순간이었다.
[끼-아아아아악!]
"이런 씨! 저리 꺼져!"
지수가 역관절 다리를 까딱이며 튀어나온 거미 변종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거미 변종의 다리가 바닥을 미끄러지는 듯 긁자 기다란 스크래치가 남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내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나를 대신해서 변종을 상대하겠다는 그녀가 내게 전한 말은 딱 하나였다.
'절대 멈추지 마.'
그 말을 끝으로, 지수는 내게 팔을 휘두르는 거미 변종의 이목을 끌었고, 괴물들의 파도 사이로 사라졌다. 그 파도 위를 거대한 세계수의 그림자가 뒤덮었다.
눈에 띄게 가까워진 정문이 보이기 시작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앞으로 죽어라고 내달리는 것밖에 없었다.
부우욱!
카가가강!
정신없이 달려 나가는 와중에 겉옷이 찢겨나가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옷 표면에 흐르는 장막을 간단히 부순 변종의 손톱이 이내 피부를 긁었으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 발자국 더 내디딜 뿐이었다.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하는 건 연구소 문을 돌파하는 것.
신목이라고?
어머니라고?
신이라고?
'···웃기지 마.'
너는 그 무엇도 아니야.
너는 그냥 커다란 나무에 불과해.
신목도, 만물의 어머니도, 신도 아니란 말이다.
너는 그런 거창한 존재가 될 수 없어.
여기는 내 지구야.
여기는 우리의 지구야.
여기는 아이들의 지구야.
그러니까 여기서 꺼져.
그러니까!
"제발, 열려라······!"
나는 코앞에 다다른 정문의 보안 장치를 향해 손을 내려찍었다.
그토록 도달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졸린사 제 2연구소의 문을 향해서.
여정의 종착지에 다다를 수 있게 해주는 열쇠를 얻기 위해서.
쾅!
급박한 상황 속에서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문을 보호하고 있던 푸른 장막의 저항감이 아닌 차가운 금속 패널의 촉감.
삐빅!
[접근 권한 확인 중.]
그리고 이어지는 전자음과 무기질적인 목소리.
[보안 등급 충족. 봉쇄 절차, 해제]
-연구소 복귀를,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