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41 - 441. 61 (1)
덜컹!
끼기기기긱-!
무기질적인 목소리와 함께 폐쇄되어 있던 문이 열린다. 연구소를 상당한 기간 동안 봉인했던 그 문이 열리자 여태까지 갇혀 있던 낡은 공기가 빠져나오고 신선한 공기가 유입되기 시작했다.
휘이이이··· 끼긱··· 끼기긱- 철판이 비틀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한편, 흙먼지가 문이 열리고 있는 틈으로 들어갔다가 빠져나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위아래로 열리고 있는 중인 묵빛의 문은 마치 지하에 몸을 숨긴 괴물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
그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아 열 수 없었던 문이 열리는 광경을 본 군인들이 눈을 크게 뜨고 뭐라 소리친다. 허나, 들리지 않았다. 정확히는 무어라 소리치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세계수 방화 작전 개시 2시간만에 연구소 문 돌파.
현재 남은 인원 수 60명 남짓.
그래, 이제서야 연구소 문을 돌파했을 뿐이다. 가만히 서서 군인들의 외침을 들을 때가 아니었다.
내가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문이 열리자, 나는 곧바로 검은 공간 너머로 몸을 던졌다. 기도를 자극하는 퀴퀴한 흙먼지를 기침으로 토해내면서.
생채기가 잔뜩 긁힌 팔이 고통을 호소했다. 그러나 그 고통을 인지하는 것보다 우선해야하는 건 어서 들어오라며 외치는 것이다.
"됐다···! 다들 어서 안으로━!"
마침내 연구소 내부로 들어온 내가 바깥에서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외치는 것과 동시에.
···틱!
그그그그그극!
열린 순간부터 불안정한 소리를 내며 열리던 문이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를 냈고, 그건 문이 단숨에 닫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나 이외에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듯 다시금 굳게 닫힌 모양새였다.
쿠웅-!
묵빛의 문이 닫히니 고막을 쉴 새 없이 자극하던 변종들의 소리가, 총화기의 격발음이, 끔찍한 소리를 동반하는 엔진과 궤도 소리가, 서로 죽고 죽이는 파열음이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쿵! 쿵! 쿵! 쿵!
외부 소음이 차단되어 오직 들리는 건 거칠게 박동하는 내 심장 소리뿐. 격하게 달아오른 체온이 머리를 향하고, 주변이 어둠으로 뒤덮이자 의식이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외부 소음이 완전 차단된 건 아니었다.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진 일을 머리가 받아들이지 못한 탓에 순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은 것이었다.
"······어?"
떨리는 손으로 손전등을 킨 나는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문을 다시 열 방법을 찾으려고 했지만, 강제 개방 장치로 보이는 설비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커다란 문을 붙잡고 있던 고정 장치가 꺾인 상태만 눈에 들어올 따름이었다.
입자를 육체에 둘러 힘을 강화시킨 후에 강제로 문을 열려고 시도를 해보았으나, 이 또한 통하지 않았다. 위아래로 다물린 문이 서로 붙잡고 있는 듯한 느낌만 받을 수 있었다.
'······안 열려.'
아직 바깥에 많은 인원이 남아 있는데 연구소로 진입한 건 나 혼자?
나 혼자서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고?
···나 혼자서는.
'아니.'
나는 이를 악물었다. 벌써부터 계획이 틀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문은 다시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에 마냥 외부의 도움을 바라기에는 너무나도 막연하지 않은가.
- 이현우! 어떻게 된 건가! 왜 기껏 열린 문이···! 치지직-- 치직- 현우씨! 현우씨가 문 닫은 거에요?! 혼자 들어가면 어떡해요!
내가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문이 닫히는 광경을 목격한 연대장과 한세아가 다급히 무전을 보내왔다. 심한 잡음이 섞였으나,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무전 상태를 보니 입구에서 멀어지면 통신을 하기는 힘들 듯했다.
"······고정 장치가 낙후된 탓인지 문이 강제로 닫혔습니다. 내부에서 다른 장치를 찾아서 다시 문을 열려고 했지만 그런 장치는 따로 없는 것 같습니다."
- 치지직- ······치직- 상황은 이해했네. 일단 자네 혼자만이라도 진입해서 증폭기를 찾게.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 볼 테니까.
많이 당황한 듯한 숨소리가 이어지다가 이내 빠른 판단을 내린 연대장이 입을 열었다. 그는 문이 닫히기는 했으나, 문 표면에 장막이 다시 생기지는 않았고 그 덕분에 문을 뚫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무전을 이었다.
- 그래. 치지직- 지금은 이렇게 하는 게 맞아. 머뭇거릴 틈이 없지 않나. 그러니 서둘러 움직이게! 우리가 바깥에서 괴물 놈들을 저지하는 동안에 증폭기를 가동시키든 터트리든 해! 자네만 믿고 있을 테니.
- 아저씨! 연대장 아저씨 말대로 해! 그리고 반드시 돌아와. 여기서 막으면서- 아니, 기다리고 있을게.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간신히 무전을 날린 지수. 격한 전투에 의해 숨이 찬 목소리였다. 그들이 말하는 바는 분명했다.
바로 증폭기를 가동시킬 때까지 어떻게든 버티겠다는 것.
"···알았어. 최대한 빨리 움직일 테니까-."
···죽으면 안돼. 라는 뒷말은 애써 삼켰다. 내 무전을 들은 것인지 듣지 못한 것인지 내 말에 답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 쏴라!!!
- 4번 전차 신호 두절!!
- 뒤따르기로 한 3소대와 연락이 안됩니다!
- 당황하지마라! 현재 3소대는 좌측에서 밀려드는 악성 변이자들을 처리하는 중이다! 곧 작전대로 활로가 열릴 테니 그 전까지는 버텨!!
- 2호 전차, 3호 전차는 계속 전진! 2소대는 앞서 나가는 1소대의 뒤를 따르라!
- 타타탕! 치지직-! 거인이! 놈이 움직입니다! 선두 전차 후퇴해! 지금 당하면 안돼!! 대피!!
더 이상 내게 신경 쓸 수 없을 정도로 외부의 상황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이어지는 무전기는 내가 몸을 돌려 문과 거리를 벌리기 시작하자 점점 잡음만 들리기 시작했다.
- 치직···치지직···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잡음의 기세도 약해지더니 소리가 뚝 끊기고 말았다. 전파가 완전히 끊긴 듯 버튼을 눌러도 응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여기서부터는 철저히 스스로의 판단으로만 움직여야만 했다.
내가 잠시 멈칫거리는 만큼 바깥에서 지수, 한세아, 엘리, 예린이, 연대장과 군인들이, 난쟁이들이 더 오래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그러니 멈칫거리거나 망설일 여유는 없었다. 단 하나도.
'처음 연구소 정문으로 들어가면 우측 복도를 따라 걸어라. 좌측 복도는 폐쇄된 구역이니 당장 볼 필요가 없어.'
타타탓!
난쟁이 칸의 말을 떠올린 나는 손전등의 작은 불빛을 앞으로 비추며 우측 복도를 내달렸다. 제 2연구소 내부는 그동안 완전 봉쇄가 되어 있었던 것에 비해 아주 엉망이었다.
···콰앙··· 쾅··· 펑, 퍼벙···
위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폭음과 진동의 여파일까. 아니면 세계수가 공격을 했던 탓일까. 복도는 여기저기 갈라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보이는 복도.
벽면에 디스플레이라도 설치되어 있었던 것인지 표면에 금이 잔뜩 간 유리가 부착되어 있었다. 어둠으로 가득 차 있던 복도에 설치된 센서가 내 움직임을 인식한 듯 벽면에 붙어 있는 보조등에 불이 들어왔다. 지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투에 의해 불빛이 잘게 떨린다.
딸깍-
그 밝기가 손전등을 더 이상 키고 있지 않아도 될 정도라 나는 곧바로 손전등을 집어넣었다. 유사시에 한 손은 여유를 두고 있는 편이 낫기에 한 행동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양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는 것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손이 있는 게 낫지 않은가.
지금은 도끼 한 자루만 들고 있으면 충분했다.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만에 하나 변종이 튀어나와 기습을 가한다고 해도 말이다.
불안하게 화면을 깜빡이는 벽면 스크린.
센서가 내 움직임을 인지한 순간부터 스크린 속 영상이 자동 재생되게 설정이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스피커는 물론이고 화면도 멀쩡한 상태가 아니기에 그저 죽죽 그어진 세로선이 빛을 낼 따름이었다.
'우측 복도를 따라 걸어가면 비상시에 내려오는 격벽이 하나 보일 거다. 연구소가 봉쇄되었으니 자동 보안 절차로 격벽이 내려와 복도를 막고 있겠지. 먼저 그걸 부숴야 한다. 만약 이미 부서져 있다면, 그냥 넘어가면 될 일이고.'
그렇게 칸이 말한 대로 우측 복도를 따라 이동하고 있을 때.
끼기긱-쿵 끼기긱-쿵
귀를 간지럽히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나는 이내 그가 말한 격벽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금 전부터 들리기 시작한 소리는 그 격벽이 내고 있는 소리였다.
기다란 직선 복도를 가로막는 격벽.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형태의 격벽은 여러 잔해에 막혀 오류가 난 것처럼 보였다.
바닥에 깔린 복도 벽의 파편에 막혀 계속 열렸다가 닫히기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잔해를 잘게 부술 듯이 여닫혔을 격벽은 전력이 부족해진 탓인지 힘없이 올려졌다가 내려가고 있을 뿐이었다.
허나, 오히려 그런 모습이 마른침을 삼키게 만들었다. 무언가를 잘근잘근, 꼭꼭 씹어먹고 있는 괴물의 이빨 같아서 섬뜩하게 보였으니까.
···끼기긱-쿵
문이 계속해서 잔해를 씹는다.
···끼기긱
-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