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446화 (447/497)

Chapter 446 - 446. 50 (6)

순간 느려진 시간 속에서, 파바바박!

돌로 이루어진 가시들이 나를 향해 솟구치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골렘을 공격하기 위해 뽑아냈던 가시와 유사한 이것들은 땅울림으로 만들어진 것. 원본은 아니지만 그걸 흉내 낸 것이었다.

내가 난쟁이들의 땅울림을 다루는 방식과 동일하게 말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놈과 다짜고짜 전투가 시작되어 정신이 없다든가, 저 반쪽짜리 몸을 가진 골렘이 내가 다룬 땅울림을 모방해서 나를 공격하는 모습에 모골이 송연해졌다든가, 가뜩이나 시간이 없는데 자꾸 발목을 붙잡아서 분통이 터진다든가.

이런 감정들은 일단 제쳐두고 우선 내가 해야 하는 건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는 것이 아니었다.

"흐읍···!"

재빨리 도끼를 휘둘러 나를 노리는 가시를 쳐내는 거였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파악이라도 하려면 우선 살아야 하지 않겠나.

서걱!

단단한 가시들이 도끼날을 감싼 입자에 의해 두 동강 난다. 매끄러운 절단면을 내보이며 뾰족한 첨단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두 다리가 바닥을 미끄러지는 것과 동시에 내 머릿속을 스치는 건 골렘에 관한 보고서였다. 혹시 몰라 주워서 확인했던 그 보고서 말이다.

- 해당 개체는 피아 식별 능력이 미숙하다.

- 해당 개체의 장갑은 물리적인 타격이 거의 통하지 않는다.

- 반복적으로 가해지는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기술을 터득 혹은 모방한다.

워낙 빠르게 훑어본 지라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분명 스스로 기술을 터득한다는 문장이 있었다. 그것이 '보다 더 나아짐'이라는 특성을 가진 코어의 힘이라고.

'너무 빠르잖아···!'

그러나 보고서에 쓰여 있던 것보다 습득 혹은 모방하는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반복적인 환경은커녕 고작 단 한번 맞댔을 뿐인데 그대로 흡수하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심지어 기술의 사용이 능숙하기까지 했다. 모방한 기술의 숙련도마저 따라하는 모양이다.

- 해당 개체는 어디까지나 프로토타입, 실험용 개체로서 우리의 완전한 제어 하에 놓기 위해 약점인 코어를━

내가 본 보고서의 마지막 문장. 비록 완전한 형태의 문장은 아니었으나, 골렘의 약점이 코어라는 것은 제대로 적혀 있었다. 동력원인 그것을 부순다면 작동을 중지하겠지.

그리고 이 짧은 순간에 몇 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다.

골렘이 모든 기술을 학습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놈이 사용하지 못하는 입자 기술을 몸에 운용하는 중인데 따라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골렘은 한번에 하나의 기술만 사용할 수 있었다. 내게서 모방한 땅울림과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내는 충격파를 동시에 쓸 수 없다는 소리였다. 프로토타입이라 여러모로 하자가 많은 듯했다. 지금 내게 있어서는 그러한 결함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게 천만다행이고.

'···아닌가? 차라리 이것저것 개선이 되었다면 저 깡통이 나를 적대할 일도 없었으려나?'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나는 눈을 바삐 움직여 골렘의 약점인 코어를 찾으려고 했다. 허나, 동력원처럼 보이는 물체는 보이지 않았다. 내 눈에 보이는 건 놈의 두꺼운 장갑뿐이었다.

"······."

설마 코어를 만들었을 뿐, 돌출된 형태로 만든 건 아니라는 말은 아니겠지.

푸쉬이익-

어찌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현재 골렘은 행동을 멈춘 상태. 놈의 등 뒤로 하얀 증기가 뿜어져 나온다. 혹시나 그 모습이 놈이 파놓은 함정일까 싶어 거리를 유지한 채 골렘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보이지 않는 코어의 위치를 가늠하기 위함이었다.

적색과 녹색의 빛이 서로 번갈아 점멸하는 안면, 중갑을 입은 기사처럼 몸에 두른 두꺼운 장갑, 오른팔이 존재하지 않아 바깥으로 빠져나온 전선, 걷기 위함인지 골렘 스스로 박아 넣은 철근 뭉치.

완전한 상태로 두지 않아야 한다는 보고서 내용대로 몸 이곳저곳이 미완성인 상태인 모양새였다. 사지가 완전하게 조립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단부에 억지로 끼운 철근 뭉치는 사실상 골렘이 걷기는커녕 간신히 균형만 잡을 수 있게 해줄 뿐이고, 오른팔 대신 축 늘어진 전선 혹은 인공 근육 다발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게 보인다.

그 모습이 내게 있어서 정말로 다행인 일이었다. 만약 저것의 상태가 완전했다면, 제압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말 테니까.

이윽고.

철컹-

골렘이 다시 활동을 개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점멸하는 놈의 안면부가 나를 향한 것이 보인다. 등쪽에서 뿜어지는 하얀 증기는 아직도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증기의 열이 상당한 듯 증기 주변의 공기가 일렁거린다. 바닥을 타고 퍼지는 증기는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문득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함정이 아니라 휴식기였다면?'

행동을 중지했던 이유가 내 접근을 노리고 위해 함정을 파놓은 것이 아니라 기술을 연속적으로 사용했을 시에 골렘의 내부에 열이 차올랐기 때문이라면?

지수가 그렇듯이 골렘도 내부의 그 열을 해소해야 다시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는 조건이 달려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아직도 놈이 내게 충격파를 쏘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으니 그럴 가능성은 충분했다. 확실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말이다.

···저벅

그리 생각한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그러자 놈의 시선이 나를 따라온다.

저벅-

철컹!

또 다시 앞으로 내딛는 한 걸음. 놈이 자세를 낮춘 건 거의 동시였다. 충분히 거리가 좁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놈이 택한 건 기술의 사용이 아닌 돌파를 막기 위한 몸짓. 지금이 휴식기라는 추측이 조금 더 확실해졌다.

타탓- 타타탓!

나는 곧장 앞으로 튕겨 나가듯 내달렸다.

[침입자 접근 확인]

놈이 자세를 더욱 낮춘다. 골렘의 장갑이 서로 비벼지며 둔탁한 철 소리를 낸다. 아직까지도 놈의 등 뒤에서는 하얀 증기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래도 그 양이 확연하게 줄어든 것을 보니 곧 휴식기가 끝날 것 같았다.

내가 도끼를 휘두르는 자세를 잡고 곧장 몸을 뒤튼 것과 동시에.

[저지]

골렘이 주먹을 내질렀다. 이번에는 끼리릭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들리는 건 오직 주먹이 공기를 찢는 소리뿐.

터-어어엉!

입자를 최대로 두른 도끼와 놈의 주먹이 맞닿는다. 힘의 충돌로 인해 주변 공기가 터져 나갔다. 순간 몸이 확 젖혀질 정도로 강한 충격이 근처의 흙과 돌을 마구 비산시켰다.

카가가강!

"크윽···!"

장갑을 베려는 도끼날에서 불똥이 튄다. 듣기 싫은 마찰음이 귀에 맴돌기도 했다.

끼기기긱-!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낸 몸이 비명을 내지른다. 놈의 공격은 내가 몸에 두른 역장을 뚫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힘, 적을 짓누르겠다는 힘만큼은 나를 압박했다.

[침입자 제압 시작]

골렘의 안면부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이대로 나를 압사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본래라면 정면 승부는 최대한 피해야 하지만, 놈의 상태를 알기 위해서는 한번은 겪고 넘어가야 했다.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겪는 것이 자세한 상태를 알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로써 확실해졌다. 방금 골렘의 공격은 분명 강하긴 했으나, 어떠한 이능도 적용되지 않았다. 골렘이 가진 순수 근력만 담겨 있었던 것이다.

역시 기술을 여러 번 사용하고 나면 무조건 휴식기를 거치는 것이 맞았다. 내부에 차오른 열은 놈이 연속적으로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열기가 등 뒤로 뿜어지는 하얀 증기에만 있는 것이 아닌 골렘의 장갑에 고루 퍼져 있기도 했다. 이 이상 장갑이 내부의 열에 달궈지면 파손될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과부하로 인한 일종의 리미트.

'몇 번 썼지?'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온 직후, 옆으로 굴렀을 때, 석벽을 터트릴 때, 내 땅울림을 모방했을 때. 이렇게 총 4번이 기술이 사용된 횟수였다.

이후에는 골렘이 연막탄이 터진 것처럼 하얀 증기를 마구 뿜어냈고. 그 타이밍이 골렘의 또 다른 약점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방금 전에 괜히 함정인 줄 알고 갈팡질팡한 것이 아쉬웠다. 그때 망설이지 않고 타격을 가했으면 어느 정도 피해를 입힐 수 있었을 텐데.

바로 지척까지 접근했음에도 불구하고, 코어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기시감이 느껴지는 부위가 있었다.

내 직감이 향하는 곳은 놈의 머리가 아닌 명치 부분. 상체 한가운데에 코어가 자리잡고 있을 것 같다는 그런 직감이 느껴지고 있었던 것이다.

괜한 힘 싸움을 이어갈 필요가 없다 판단한 나는 도끼를 회수해 놈에게 파고들었다. 이번에야말로 망설이지 않고, 지근거리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철컥!

놈의 두꺼운 상체 장갑과 총구가 맞닿았고, 그와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보고서에는 총기류가 먹히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탄에 대한 실험 결과. 강화탄에 대한 내성은 없으리라.

타아앙!

장전되어 있던 강화탄이 격발되자 푸른 빛무리를 이끌며 앞을 쏘아졌다. 곧장 장갑의 표면과 맞닿자 눈앞에서 빛이 폭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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