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447화 (448/497)

Chapter 447 - 447. 43 (7)

영거리에서 이루어진 사격.

골렘의 외골격과 맞닿은 곳에서 일어난 푸른빛의 폭발이 눈앞을 메웠다. 앞을 뚫지 못하는 일부 빛은 제자리에 맴돌아 폭사되고 있었다.

[······!]

내내 우직함을 연기하던 골렘이 몸을 뒤로 물린 것은 거의 동시였다. 장갑을 절그럭거리며 후퇴를 하는 듯한 묘한 행동을 한 것이다.

어디 한번 때려보라며 두꺼운 장갑과 골격을 믿고 있던 놈이 자세를 튼다. 마치 뭔가를 보호하기 위한 것처럼.

파캉!

강화탄이 놈의 외골격과 내부를 뚫고 뒤로 빠져나왔다. 총알 구경보다 훨씬 커다란 구멍이 생긴 그 위치는 안타깝게도 내가 노리고 쏜 부위인 명치 부근이 아닌 오른 어깨였다. 격발과 동시에 골렘이 자세를 뒤튼 탓에 총구가 미끄러지기 말았기 때문이다.

후두둑-

내부를 채우고 있던 온갖 부품들이 구멍을 빠져나와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그에 따라 골렘의 행동도 점차 굼뜨게 바뀌고 있었다.

[···기술 모방 불가. 해당 기술은 추가 동력원을 요구]

골렘은 떨어진 부품을 줍는 대신 아직 남아있는 팔로 구멍을 가렸다. 그러자 놈의 장갑이 수축하면서 구멍이 메워지기 시작했다. 내부에서 끼리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철컥!

나는 골렘이 뒤로 물러난 사이 다시 한번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마쳤다. 놈의 행동은 묘한 감각이 느껴지던 그곳이 코어가 있을 확률이 더 높여주었으니까.

주동력원이 명치 부근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에 준하는 약점이 존재한다는 행동이지 않은가. 아무래도 놈이 기피한 부위를 집중적으로 타격해 봐야 하는 모양이다.

놈에게 한방 먹인 지금 이대로 증폭기가 있는 곳으로 달리고 싶지만, 그렇게 했다가 내 등을 노리고 쏘아진 충격파가 무서웠다. 정확히는 내가 그 충격파에 다치는 것이 아닌, 골렘의 공격이 의도치않게 증폭기를 부수는 상황이 무서웠다.

다음 휴식기를 노려 증폭기를 활성화시키는 방법도 썩 내키지 않았다. 그건 놈이 기술을 쓰지 못하는 시간일 뿐이지, 행동을 완전히 정지하는 시간이 아니니 말이다.

타아앙!

강화탄이 영거리에서 재차 격발된 바로 그때.

[침입자 경계 레벨 격상. 주동력원 코어 활성화 최대치. 가동 한계시간까지 앞으로 10분]

인체의 뼈의 형태와 유사한 골렘의 프레임 자체가 푸른빛에 물들었다. 그와 동시에 두꺼운 장막이 둘러졌다. 거침없이 전진하던 강화탄이 도탄 되는 순간이었다.

티-잉!

맥 빠지는 소리와 함께 장막에 튕긴 탄은 애꿎은 천장을 가격했다. 천장에 붙어있던 흙 알갱이들이 세로선을 그리며 아래로 우수수 떨어진다.

"또 뭔데···!"

갑자기 장막을 둘러서 탄을 튕겨내는 법이 대체 어디 있는가. 갈수록 첩첩산중인 상황에 숨통이 턱 막히는 느낌이다. 그래도 상황 자체가 더 악화된 건 아닌 듯했다.

가동 한계 시간은 놈이 앞으로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을 말하는 것일 테고, 그 시간이 끝난다면━

[가동 시간 종료 후 자폭 시퀀스 돌입]

"이런 씨발."

최대한 희망적으로 사고를 굴리고 있는 내게 들린 건 나지막한 놈의 목소리였다.

'자폭을 한다고?'

폭발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놈이 내보인 힘을 생각해보면 그 범위는 매우 클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일대가 전부 뒤집어 엎어지겠지.

그럼 지상에 있는 지수, 한세아, 예린, 엘리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증폭기를 폭파시키는 것과 차원이 다른 이야기라는 말이다.

증폭기의 폭발은 검은 입자가 스며든 모든 것을 공격하는데 그치지만, 골렘의 자폭은 피아식별을 하지 않고 일대의 모든 걸 날려버릴 테니까.

가뜩이나 골렘을 상대하는 것만 해도 힘든데, 여기서 시간 제한까지 걸리니 미칠 노릇이었다. 그러나 그런 내 심정과 다르게 해야만 하는 일은 명백했다.

바로 10분 안에 놈의 코어를 깨서 제압을 하고, 자폭을 막는 것.

탕! 타앙!

나는 골렘과 거리를 좁히며 연달아 사격을 가했다. 쏘아진 푸른 빛줄기는 이번에도 장막을 뚫지 못하고 허무하게 스러지고 말았다. 원거리 공격이 먹히지 않는다면 남은 건 충격을 누적시켜서 장막을 깨뜨리면 그만일 일이다.

[해당 공격이 더 이상 본체에 통하지 않음을 확인. 공격 유형 변경]

연달아서 자극을 당한 골렘이 자세를 바꾼다. 놈의 구동축이 돌아가며 팔을 내게 뻗었다. 곧 충격파가 터질 것이라는 전조였다. 주동력원 활성화 최대치니 뭐니 하더니 장막을 유지한 채 충격파를 쏠 수 있게 된 모양이다.

키이잉-!

콰-아아앙!

정면 승부는 어리석은 행위다. 나는 곧장 바닥을 굴러 날아오는 충격파를 피했다. 앞으로 넘어지는 내 등 뒤로 얼얼함이 느껴진다.

터엉!

나를 맞추지 못한 충격파는 후방의 어딘가에 닿아 제 힘을 과시했다. 그곳에 있던 모든 것을 박살내는 것으로 말이다.

후두둑- 후두둑-

강대한 힘에 비산한 돌 조각들이 나와 바닥을 두들긴다. 비처럼 쏟아지는 파편은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듯 마구 튕겼다.

응원을 하듯 등을 떠미는 그 파편에 힘입어 나는 저릿함이 느껴지는 팔로 도끼를 휘둘렀다.

쐐애애액!

터엉!

휘두름과 동시에 튕겨 나오는 도끼날. 날이 시퍼렇게 물들 정도로 입자가 맺혀 있음에도 이 꼴이다. 아르마딜로 변종이 만든 장막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텐데, 내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

장갑과 장막이 얼마나 두꺼운 것인지 지금 도끼날의 절삭력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내가 가진 정화의 불 또한 마찬가지로 별달리 피해를 주지 못했다.

저건 검은 입자에 의해 뒤틀건 결과물이 아니라 단순히 해당 개체를 이루고 있는 소프트웨어에 오류가 생긴 것이기 때문에 불을 직격으로 맞아도 아무렇지도 않아 했던 것이다.

포기는 아직 이르다.

장막을 베지 못한다면 부수면 그만이다.

도끼날이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한다면, 큰 피해를 주지 못한다면, 나도 놈처럼 공격 유형을 바꾸면 되지 않은가.

콰드드득!

입자를 유지한 채 땅울림으로 도끼를 감쌌다. 그러자 바닥에서 뻗어진 돌이 도끼를 잡아먹었고, 이내 대형 망치의 형태가 갖춰지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인지 아닌지 인지하기 위함일까. 놈의 안면부가 쉴 새 없이 점멸했다. 그리고 놈은 내부의 끼리릭 소리와 함께 주먹을 내질렀다.

터-어어엉!

놈의 주먹이 약점을 노리는 망치 머리를 가로막았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충돌음은 이전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종이 울리는 듯 웅웅거리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퍼지기도 했다.

"크윽···!"

내가 감당해야 하는 여파도 상상 이상이었다. 폐부가 조여져 숨이 모조리 빠져나오고, 머리가 멍해졌다. 시야가 어긋난 듯 서로 다른 상을 비춘다. 바닥을 지탱하고 있는 두 다리는 금방이라도 꺾일 듯이 후들거린다.

[피해 흡수]

웅웅 울리던 소리가 잦아든다. 놈의 프레임에 퍼져있던 충격이 한 손으로 모이기 시작하면서 생긴 현상이었다.

[방출]

골렘이 망치 머리와 맞대고 있던 주먹을 풀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충격파가 전방을 휩쓸었다. 내가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 피한 충격파보다 훨씬 더 강력해진 위력이었다.

콰-아아아아앙!

영거리에 있던 탓에 미처 피하지 못한 충격파가 내 몸을 뒤로 날렸다. 제어를 잃은 사지가 허공에서 흐느적거렸다. 피부를 긁고 지나가는 힘에 의해 피가 튄다. 입자가 막을 수 있는 힘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다.

그럼에도, 손에 들고 있는 도끼만큼은 놓치지 않았다. 이것마저 놓치면 다음 기회를 노린다는 건 요원했으니까.

방금 내가 골렘에게 가한 타격이 통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타격 자체는 제대로 들어갔다. 놈의 외골격에 전에는 없던 금이 생긴 것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짓을 앞으로 몇 차례나 더 반복해야 할 뿐이었다. 금속 피로를 누적시켜 골렘의 상체 장갑을 부수고 나면 약점인 코어가 드러나겠지.

그렇게 코어가 드러난 순간이 찾아오면, 나는 강화탄으로 그것을 부수면 될 일이다. 계속 이어지던 내 사고는 몸이 바닥을 나뒹굴고 나서야 멈춰졌다.

우당탕!

뒤로 밀려나는 관성을 이기지 못한 몸이 돌부리가 널린 바닥 위를 굴렀다. 한 바퀴 구를 때마다 골이 흔들려 구토감이 치솟았다.

미끄러지는 속도가 내 의지로 멈출 수 있을 정도까지 줄어들었을 때.

"···허억!"

나는 잔떨림이 사라지지 않는 팔로 간신히 바닥을 짚어 일어났다.

세상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 내가 비틀거리고 있었다.

바닥이 위로 치솟았다.

아니, 순간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까마득했던 천장이 조금 가까워졌다.

아니, 도끼로 바닥을 짚어 간신히 일어났다.

절그럭- 절그럭-

[가동 한계 시간까지 앞으로 5분]

고장 난 골렘이 내게 접근하고 있었다.

아니, 내가 그 깡통에게 걸어가고 있었다.

후두둑- 충격파가 몸을 긁고 지나간 자리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조금씩 흘러나오는 피는 그렇지 않아도 엉망인 내 의식을 더 흐릿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저벅 물러서지 않았다. 후퇴하기는커녕 앞으로 걸어가며 전방을 노려보았다.

여기는 내 여정의 끝이 아니며, 마찬가지로 다른 이들이 죽을 장소도 아니다.

그러니 나는 여기서 물러나면 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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