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451화 (452/497)

Chapter 451 - 451. 메이벨 (3)

골렘의 오작동.

본래는 휴면 상태에 있던 골렘을 한 연구원이 강제로 깨우면서 발생한 일.

망가져가는 연구소가 아닌 외부에서 활로를 찾으려고 한 그 연구원은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바깥에서 스스로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폐기처분 직전의 상태인 골렘을 가동시키고 말았다고 했다. 사람들의 경고를 무시한 채.

그러한 행동은 그렇지 않아도 엉망인 연구소를 더 난장판으로 만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연구원이 자신을 지키라는 명령을 입력한 순간, 오작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마 검은 입자가 침투하기 시작한 연구소 내부 시설 전부를 적으로 인식한 모양인 것 같았다고.

당시 프로젝트 가디언의 연구동에 있던 소수의 연구원들은 골렘의 폭주를 막기 위해 코어에 심어진 긴급 정지 코드를 입력했으나, 실패. 결국 골렘의 폭주에 휘말려 죽고 말았다.

그렇게 죽은 사람들 중에는 우습게도 골렘을 강제로 깨운 연구원도 들어 있었다.

불완전한 몸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내부 시설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기에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골렘. 그것은 격벽을 부수면서 보관소로 전진했고, 나중에 가서는 격벽을 부수는 것이 아닌 여는 것을 학습하기까지 한 놈은 더욱 막힘없이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골렘을 저지하기 위해 움직인 연구원들이 가지고 있던 보안 키로 격벽을 연 것이었다. 황급히 해당 보안 키의 기능을 정지시켰지만, 때는 이미 늦어 이미 보관소에 도달하고 만 상황.

설상가상으로 오염된 세계수가 가하는 뿌리 공격이 시작된 상황.

그리고 그런 상황들 속에서.

"현우 네 말대로 나는 그때 수정에 들어있는 상태가 아니었어. 군인들이 문을 두드리는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보기까지 했지. 너도 알다시피 그 문은 열리지 않았고. 이유는 단순해."

누나는 자신이 그런 선택을 한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고해성사가 아닌 단순히 사실을 나열하는 것에 가까웠다. 최대한 담담하게. 제 3자의 시선으로.

"당시 군인들의 일부는 검은 입자에 오염되어 있었으니까. 그 모습을 본 나는 다른 시설은 몰라도 이곳 보관소만큼은 검은 입자가 침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그들을 이곳으로 들인다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생각해 봤어. 보안문 개폐 장치에 손을 올린 채로."

"······."

"나는 군인들에게 구조되어 목숨을 더 연장할 수 있었겠지. 틈만 나면 두드려대는 뿌리에 의해 지하 연구소의 천장이 언제 무너질까 매일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었을 거고, 더는 못하겠다며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 사이에 있지 않아도 되었을 거야. 어쩌면 외부로 나갔던 다른 연구원들과 만나 다시 한번 연구를 재개할 수도 있었을 거야."

긍정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을 거라는 가정을 나열한 메이벨은 한차례 숨을 고른 뒤, 가정이 아닌 현실을 내뱉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군인들은 오염되어 있었어. 검은 입자에 오염되기 시작한 사람들은 사실상 재앙의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상태고, 재앙의 장난감이 된 사람들이 이곳 보관소로 들어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불 보듯 뻔했지."

"······."

나는 누나가 말하지 않아도 결과를 알 것 같았다.

세계수를 잡아먹은 재앙을 막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열쇠, 증폭기. 당시에 미완성이다 못해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증폭기가 오염된 사람들의 눈에 들어온다면 증폭기는 완성되지 못하고 부서지고 말았을 거다.

그렇게 되었다면 내가 여기까지 와서 보게 되는 거라곤 잔해도 남기지 못한 증폭기였을 것이고, 어쩌면 이곳까지 도달할 기회조차 없었겠지.

"그래서 나는 버튼을 누르지 못했어. 못 누르겠더라. 문 앞에서 바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이 버튼 하나만 누르면 문이 열리고 그 사람들을 안으로 들여보낼 수 있었는데. 단순히 그 사람들 중 일부가 오염되어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사람들이 증폭기를 부술 거라는 예상 하나만으로."

그리 말한 누나는 입술을 짓씹었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은 지금은 부서진 개폐 장치의 잔해였다. 골렘의 난동에 의해 부서진 것이었다.

오류를 일으킨 골렘은 입력된 명령을 수정하는 것으로 겨우 잠재울 수 있었다고 했다. 나를 지킨다, 에서 여기를 지킨다, 로. 그 '여기'라는 단어에는 그녀 자신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에 메이벨은 수정에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나는 확연하게 가벼워진 몸 상태를 느끼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만약 당시의 누나가 인정에 휩쓸려 문을 열었다면, 그건 재앙의 노림수에 당한 거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군인들이 비정상적으로 문 개방에 집착한 이유가 그들이 오염되어 있기 때문은 아니겠지. 당시 작전에 참여한 군인들은 모두 필사적이었으니까.

사태를 해결할 방안이 연구소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그들은 어떻게든 문을 돌파하려고 했지만, 그들 중 일부가 오염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작전 실패로 이어진 것이었다. 그 탓에 정문의 푸른 장막도 거세게 저항한 것이고.

증폭기가 부서져 희망이 사라진다는 것. 그런 미래를 막기 위해 누나는 결국 문을 열지 못했다. 그걸 지킬 수 있는 힘이 없었으니 말이다.

골렘의 폭주와 검은 입자의 지속적인 침입에 통신 장비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아니, 당시에 한 선택은 귀를 틀어막고, 증폭기 연구를 지속하는 것뿐.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은 해. 내가, 반드시 짊어져야만 하는 죄고."

"···누나."

"내 생각이 그렇다는 이야기야. 이유가 어찌 되었든, 과정이 어떻게 이어졌던 간에 연구소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허무하게 죽었다는 건 변함이 없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한 건 바로 나야. 내가 아니면 누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그때 연구소에서 살아있던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는데."

"하지만 그건 결국 사람들을 살리는 길이었잖아."

"말했잖아. 의도와 목적이 어떻든 간에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그걸 외면하면 안돼, 현우야. 적어도 나만큼은, 그 사실을 똑똑히 기억하고 절대로 잊어서는 안돼.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겠지만."

그 선택을 한 건 결국 자신이고, 선택에 따른 결과를 온전히 떠안아야 하는 것 또한 자신이라는 누나. 그녀는 이 부분만큼은 단호하게 말했다. 어떠한 여지도 남겨두지 않겠다는 것처럼.

죽은 사람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건 누나가 온 책임을 뒤집어 써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전에도 말했을 터다. 이건 누구의 책임이라고 단정지을 수가 없다. 책임을 묻기 위해 위로 계속해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해도 그 끝을 찾을 수 없으니까. 이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

나는 황급히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이 이상 대화를 나누어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누나의 생각이 확고한 이상 결국 이야기는 평행선을 달리겠지. 적어도 나만큼은 누나에게 무거운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누나, 사람들이 변한 이유도 알아? 누나도 봐서 알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동물 귀랑 꼬리가 달리게 되었잖아."

"······아. 그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어. 내가- 아니, 우리가 사태 발생과 동시에 한 일은 푸른 입자를 최대한 뿌린 것뿐이거든."

메이벨은 재앙이 폭주했다는 것을 인지한 것과 동시에 순식간에 지구를 뒤덮는 검은 입자를 막기 위해서 푸른 입자를 뿌렸다고 했다. 검은 입자와 푸른 입자가 서로 만나면 상쇄되어 사라지는 특성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녀는 이내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를 추측했다. 사람들에게 짐승 귀와 꼬리가 달리거나, 날개가 달리거나, 털이 좀 수북해지거나, 식물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된 이유를 말이다.

"아마 사람들이 변한 건 본능적인 감각이 부족했기 때문일 거야. 정확히는 우리가 뿌린 푸른 입자가 그렇게 판단한 거지. 세상에 퍼진 검은 입자로부터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그게 지금 사람들 모습이라는 말이지?"

"그렇지···? 입자를 다루려면 감각적인 부분이 중요하니까. 흔히 말하는 청각, 후각 같은 오감은 물론이고, 동물적인 본능의 영역인 직감을 일깨우기 위해 주변의 다른 생명체와 융합되었다고 보는 게 지금으로서는 제일 가능성이 높아. 그리고 부작용을 떠넘길 매개체가 필요하기도 했겠지."

"부작용? 무슨 부작용?"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되물었다. 사람들에게 수인화가 진행된 이유는 누나의 설명을 듣기 전에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부작용이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나오니 나도 모르게 거부감이 일었던 것이다.

"검은 입자의 부작용 말이야. 사람이라는 본질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부작용. 지금 사람들이 변한 것 자체가 부작용의 여파야. 괴물로 만들어버리는 검은 입자를 푸른 입자가 겨우 막아서 지금 이 정도 수준에 그친 거라고 보면 될 것 같네."

-너와 나는 체내에 푸른 입자가 충분해서 변하지 않았지만.

동물 귀나 뿔, 혹은 나뭇 가지가 달릴 수도 있었을 위치의 머리를 매만지는 누나가 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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