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52 - 452. 메이벨 (4)
"수인화가 된 것 자체가 부작용이라고? 좀 더 나아진 결과가 아니라?"
"부작용을 어떤 기준으로 잡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인간의 형태가 바뀐다는 걸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렇지."
누나는 내 심장 부근을 툭툭 건드리며 말을 이었다.
"현우야,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검은 입자와 푸른 입자에 노출된 사람들이야. 그런데 우리 모습은 어때? 전보다 체력도 늘어나고 감각도 예민해졌는데 겉모습은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잖아. 단순히 우리가 이런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아까도 말했다시피 체내에 푸른 입자가 충분했기 때문이고."
나와 자신은 씨앗의 파편의 적합자를 찾는 프로젝트에 참가했기에 남들보다 먼저, 남들보다 더 많이 체내에 푸른 입자를 보유할 수 있었다는 누나. 그녀는 좀 더 나아진다, 라는 의미는 본래의 형태를 잃지 않는 선에서 나아진다는 걸 뜻하는 거라고 했다.
"혹시 말이야. 다른 사람들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어?"
변한 외형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건 필연. 혹시나 그런 그들을 위해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려줄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는지 물었다.
"지금으로서는 뭐라 말해줄 수가 없네. 지금 당장 해줄 수 있는 답은 불가능이야. 단순히 외형만 변한 게 아니니까."
"······."
"변화에는 필연적으로 부작용이 뒤따라. 변화가 무조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건 아니잖아? 근처의 동식물과 강제로 융합되면서 단순히 귀와 꼬리가 생긴 것이 아닌 본성에도 영향이 미쳐졌을 거고, 검은 입자가 충분히 상쇄되지 않았다면 역으로 짐승이 되어버린 사람들도 있겠지. 그것보다 더 심하게 변한 사람들도 존재할 테고."
누나의 말에 나는 지금까지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정확히는 그 기억이 담고 있는 변한 사람들에 대한 정보였다.
사람과 식물이 융합되어 식물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경우가 있었다. 의왕시에서 만난 신아현처럼.
사람과 동물이 융합되어 보다 더 뛰어난 감각을 가지게 된 경우가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변한 것처럼.
푸른 입자가 아닌 검은 입자를 몸에 받아들여 새로운 몸을 구성한 경우가 있었다. 서로 살기 위해 싸웠던 박현일과 김태진처럼.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사람과 사람이 서로 융합되어 다중인격을 가지게 되었다는 경우도 있다는 걸 듣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전부 외형이 변한 정도가 크거나 작은 수준으로 서로 달랐다.
기본적으로 귀와 꼬리만 생긴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털이 온몸을 뒤덮은 사람들, 심하게는 아예 짐승으로 변한 사람들이 있는 것이었다. 과거 순수한 인간 시절의 모습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채로.
'검은 입자가 재앙의 의지라고 친다면, 푸른 입자는 무엇의 의지일까.'
내가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에 누나의 말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체내로 들어온 입자를 감당하지 못해 죽은 사람들도 있을 거야. 분명 많이 죽고 말았겠지. 모두가 입자를 적응할 수 있는 건 아니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라운드 제로가 일어난 시점에서 변하지 않는 곧 죽음을 의미했으니, 다른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어."
"···세상에 퍼진 검은 입자가 계속 문제네."
검은 입자로 인해 괴물이 되어버린 존재들.
우리가 흔히 나무 인간이라 부르는 것들과 각종 변종들.
"그래. 봉인 시설을 뚫고 기어코 발현된 재앙이 흩뿌린 그 검은 입자 때문에 모든 게 어그러지고 말았지.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우리가 한 행동을 포장하고 싶지 않지만, 당시 검은 입자를 상쇄시킬 수 있는 건 푸른 입자밖에 없었어. 아니, 기적을 노린 노림수가 하나 있었다고 하는 게 맞겠네."
"노림수?"
"푸른 입자 적합도가 높은 사람을 찾는 것. 그 사람들이 입자를 활용해 스스로 생존성을 높이는 것. 그리고 그 사람들로 하여금 너의 생존성을 높이는 것."
누나는 푸른 입자 적합자들이 씨앗의 파편을 품은 내게 본능적으로 호의를 가진다는 점을 기대했다고 했다. 겨우 외부로 탈출시킨 나를 살리기 위해서.
"물론, 그 정도는 단순히 첫인상을 나쁘지 않게 만들어 주는 수준이긴 해도 바깥의 위험도를 생각해보면, 그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잖아. 우리가 뿌린 씨앗이 너를 조금이라도 살릴 수 있는 과실이 된다면, 연구소를 보호할 푸른 입자를 아낌없이 쏟아부을 가치가 충분했지."
연구소를 보호할 푸른 입자마저 세상에 전부 쏟아냈다는 이야기. 그건 지금 연구소 내부 상태가 이렇게 엉망인 이유를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내가 있어야 재앙을 억제할 수 있으니까?"
"아니. 그건 아니야. 네가 있어야 재앙을 억제할 수 있는 방도가 생기는 건 맞아. 하지만 당시에는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예상조차 못할 정도로 암담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때는 널 어떻게든 살려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었어.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너만큼은 꼭 살리고 싶었거든. 내가 여기에서 깔려죽는 한이 있더라도. ···미-"
"-고마워."
나는 누나의 말을 끊었다. 가만히 말을 들어보니 또 사과를 할 것 같은 낌새였던 것이다. 그녀가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는 단순한 이유는 아니었다.
자고 일어나니 뒤바뀐 자신들의 모습에 혼란스럽기는 했겠지만, 몸을 변화시킨 푸른 입자가 아니었다면 두 번째 기회조차 없이 죽고 말았을 테니 목숨 값 치고 싼 편이 아니던가.
그러니 이 부분은 누나가 사과할 부분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오히려 누나 입장에서는 자신의 안전을 포기하면서까지 푸른 입자를 전부 쏟아낸 거니 최선의 선택을 한 셈이다.
그리고 적어도 나만큼은 누나에게 부담이 되지 않았으면 했다.
"누나 덕분에 살았어. 나도, 다른 사람들도."
실제로 누나의 바람처럼 푸른 입자 적합도를 가진 지수와 예린을 만나서, 한세아를 만나서, 그동안 넘길 수 있었던 고비가 몇 개인가. 나 혼자 여기까지 도달하는 건 무리였다. 내가 누나를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건 결국 누나가 한 선택의 결과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
누나는 잠시 나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침묵이 내려앉았지만, 떨리는 녹안이 대신 말을 건넸다. 그녀는 입술을 꼭 짓씹다가 풀었다. 그녀는 이내 애써 웃어 보이며 화제를 전환했다.
"무거운 이야기는 잠깐 중지! 우리 오랜만에 손금이나 한번 볼까? 힘들게 만났는데 무거운 이야기만 나누면 좀 그렇잖아."
"······손금?"
"응, 손금. 우리 어렸을 때 내가 너 많이 봐줬잖아. ······혹시 이 기억은 안나?"
누나는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지금 되물은 것이 손금에 대한 기억이 없어서 그런 줄 안 모양이다.
내가 지금 손금이 뭔지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다. 의문을 풀어주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무슨 손금이라는 말인가. 어렸을 때 누나가 내 손금을 자주 봐준 건 분명 사실이긴 하다. 나는 단지 이 뜬금없는 맥락이 이해가 되지 않을 따름이었다.
"아니, 기억은 나지. 그러니까 표정 풀어. 누나랑 관련된 기억은 거의 되찾았으니까. 그냥 갑자기 손금이나 보자는 말이 이해가 안돼서 그런 거였어."
"뭐야? 싫어? 나한테는 중요한 작업이니까 얌전히 손이나 줘. 지금 안하면 또 언제 해보겠어?"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거나 말거나 누나는 이미 내 손을 붙잡고 펼치고 있었다. 불과 몇 개월만에 굳은 살이 잔뜩 박힌 손이, 그간의 고단했던 여정을 그대로 담고 있는 손이 그녀에게 잡혀서 관찰 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많이 힘들었지? 예전에는 보들보들했는데, 지금은 완전히 돌이 됐네. 오히려 남자다워져서 좋아. 듬직해졌어. 전보다 훨씬."
"나는 원래 남자였는데. 원래도 듬직했고."
무언가 속이 간질거리는 느낌에 괜스레 말을 툭 내뱉자,
"우리 현우는 여전하네.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
누나는 그리 말하며 피식 웃었다. 그녀는 씨앗의 파편을 조율하는 한편, 내 손을 계속해서 만지작거렸다. 지워지지 않는 흉을 봤을 때는 속상하다는 듯이 한동안 손가락으로 쓸어 내리기도 했다.
작은 한숨을 내쉰 메이벨은 이내 약간은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내뱉은 외침으로 잡생각을 날리려는 듯한 느낌이었다.
"손을 보아하니 너는 죄가 많은 남자구나! 툭하면 주변 사람들의 속을 썩이겠어!"
"아닌데? 나만큼 말 잘 듣는 사람도 없구만, 무슨 주변 사람들 속을 썩여."
"아니긴 무슨! 대체 여자가 몇 명이야? 이 바람둥이 자식. 누나는 너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거늘!"
"그 말투는 또 뭔데···. 그리고 그 부분은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아니, 아니다. 내 죄지. 누나 말이 맞네. 그래, 나는 나쁜 놈이다. 둘, 아니, 셋이니까. 예전 같았으면 몰매를 맞을 일이지."
"그래, 셋- ······셋이라고? 둘이 아니라? 내가 본 건 분명 둘이었는데?"
내 말을 받으려다가 순간 멈칫한 메이벨. 그녀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되물었다. 둘이라는 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더 나쁜 놈이 되기로 했다.
"누나까지, 셋."
여전히 의아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누나와 시선을 맞췄다. 서로를 향한 눈에 서로가 담긴 것이 보인다.
"······어?"
그리고 누나가 고장나는 모습이 이어서 보였다. 쉴 새 없이 돌아가던 사고가 한순간 멈춘 듯한 얼굴이었다.
뭔가 그 얼굴을 보니 묘하게 만족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