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56 - 456. 합류 (1)
"···누나, 뭐 해? 간다면서."
뒤따라오지 않는 누나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나.
"응? 너야말로 뭐 해? 여기 와서 서."
그런 나를 더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누나. 그녀는 내게 이곳으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
"거기는 왜? 나갈 길은 이쪽이잖아."
"에이, 왜 굳이 돌아가? 바로 올라갈 수 있는, 아주 빠르고 효율적인 길이 있는데."
누나는 그리 말하며 천장을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곳은 증폭기가 푸른 광선으로 뚫었던 천장. 정확히는 그 천장에 뚫린 구멍이었다.
"······거기로 올라간다고? 여기서 지상까지 깊이가 꽤 될 것 같은데···."
"괜찮아! 우리 현우는 누나만 믿어요! 내가 진짜 빠르게 위로 보내줄게."
"······."
이런 대화를 나누는 시간조차 아까운 상황이기에 나는 미심쩍어 하면서도 누나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메이벨이 당당한 자세를 취하는 걸 보니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누나 말대로 빙 돌아가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것보다 직선 거리로 한 번에 위로 올라가는 게 더 빠른 것이 맞기도 했고.
이윽고.
"준비 됐어?"
"응."
"그럼 시작할게!"
옆에 선 나를 본 누나는 허공을 부유하는 수정을 조종해서 반투명한 장막을 만들어냈다. 시전자를 중심으로 반구의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마치 발판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닥에 딱 붙어 면 형태로 형성된 장막이었다.
사각형의 장막의 각 꼭짓점에는 수정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수정에서 나오는 힘이 장막을 유지시키고 있었다.
"뭐야, 이건?"
"이건 기억이 안 나나 보네. 가속과 반발 패널이야. 흉내만 간신히 낸 수준이지만, 효과는 직빵이지. 자, 여기 위로 올라오면 돼."
예전에 이걸로 알까기도 했다며 말한 누나는 자신이 먼저 발판 위로 올라갔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신발은 단단하게 패널을 딛고 있었다. 매우 얇아 보이는 막이었으나, 보기와는 다르게 내구도가 상당한 듯했다.
나도 누나를 뒤따라 막 위에 섰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지하에서 일직선으로 쏘아지는 푸른 광선이 보였다. 그리고 그 광선의 끝에는 미약한 빛이 맴돌고 있는 중이었다. 지상에서 여기 지하까지의 깊이가 꽤 된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까마득한 높이에 말이다.
'이제 엘리베이터처럼 올라가려나?'
나는 그러한 추측을 하며 막을 신발로 툭툭 건드렸다. 퉁퉁, 살짝 탄력성 있는 느낌이 전해진다. 자석이 같은 극을 밀어내는 느낌 같기도 했다.
아마 지금 내가 받는 이 느낌이 반발 효과이겠지. 그렇다면 가속은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일까.
바로 그때.
위이이잉-!
누나는 내가 올라온 것을 보자마자 손짓으로 수정을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돌연 맹렬하게 회전하는 기세가 생각보다 무시무시했다. 자칫 잘못 손이라도 댔다가는 크게 다칠 것 같았던 것이다.
"어···. 누나,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우리 조심히 위로 올라가는 거. 맞지?"
심상치 않은 기색에 긴장한목소리로 그리 묻자 돌아오는 건 내가 원하는 방향의 답이 아니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아까부터 시간 없다고 했잖아. 그럼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지."
메이벨은 그녀답지 않게 히죽 웃었다. 악동과 같은 웃음이었다. 나는 그 웃음에 본능적으로 흠칫 몸을 떨었다. 누나가 그 웃음을 지을 때면 항상 내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이어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걸 이제라도 알아챘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었다.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린 것과 동시에 수정이 더욱 맹렬하게 회전하면서 패널을 빛나게 만들었으니까.
이어서 내 발이- 아니, 내 몸이 살짝 붕 뜨는 느낌이 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 순간,
후우웅━!
나와 누나는 이미 지상에 있었다. 정확히는 지상을 넘어 하늘 높게 떠 있었다.
눈을 부시게 만드는 밝은 빛이 그걸 증명했다.
***
"······."
나는 멍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금 상황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간 몸이 붕 뜨는 감각이 느껴지더니 눈 깜빡할 새에 하늘에 떠 있게 되다니. 말이 안 되지 않은가.
아무런 부하를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이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중력을 거스르면 응당 느껴져야 할 압박감 혹은 부유감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 주변을 가득 채운 건 푸른 하늘이었다. 먹구름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지평선이 자리 잡은 먼 곳에서는 먹구름이 드문드문 자리 잡고 있었지만, 증폭기가 가동된 덕분인지 적어도 반경 5km 내에는 먹구름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푸르른 하늘만이 보일 뿐.
"아, 힘 조절 잘못했다."
그런 내 멍한 정신을 일깨운 건 옆에서 들려온 누나의 목소리였다.
"······!"
"뭘 그리 놀라. 이 수정이 있는 한 떨어지지 않을 거고, 떨어져도 안 다치니까 걱정 말아. ······아니다. 여기서 밑에 보니까 좀 무섭긴 하네. 꺄아아악! 무서워!"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뒤늦게 가짜 비명을 내지르며 내 팔을 꽉 붙잡는 누나. 그녀 주위에는 여전히 수정들이 부유하고 있었다. 부유하는 그 수정들이 우리가 추락하지 않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지하에서 탈출했다는 생각이 기쁜지 누나는 시원하게 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은 오래 가지 않았으나, 그녀가 순간 느낀 감정이 기쁨에 가까웠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나한테 찰싹 달라붙은 그녀가 금발 머리를 휘날리며 말을 이었다.
"현우야, 이제 네가 나설 차례야. 아래 보여?"
나는 아직도 얼떨떨한 기분을 품은 채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지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전부 한눈에 들어왔다.
···쾅! 콰앙-!
[시아아아아악!]
칠흑의 뱀이 자기 주변을 빙빙 맴돌며 포탄을 쉴 새 없이 쏘아대는 전차들에 의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광경이 보인다. 뱀은 타이밍을 노려 몸을 구르거나 꼬리를 휘둘러 공격해보지만, 그럴 때마다 장막에 숨어 회피하는 전차였다.
결국 뱀의 공격은 번번이 빗나갔다. 기회를 노린 공격이 실패로 돌아갈 때마다 뱀은 짜증이 가득 섞인 괴성을 내질렀다. 허나, 그 괴성에는 짜증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대로 가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두려움이 살짝 섞여 있었던 것이다.
자신은 멀쩡하다는 듯 괴성을 자꾸 내지르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제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하늘 위로 치솟는 듯 튀어나온 우리를 인지한 군인들이 있었다. 탄약 보급을 하기 위함인지 여러 상자를 짊어진 채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그들이 우리를 발견한 것이었다.
전조도 없이 하늘에 떠 있는 나와 누나를 본 그들은 하나 같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다가, 바보같이 눈가를 비비다가, 이내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내 일행인 지수, 한세아, 예린을 급히 부르며 움직였다.
장막을 사이에 끼운 채, 장막 바깥의 변종들을 유린하고 있던 지수, 한세아, 예린이 고개를 들어 나를 찾았다. 뭐라 뭐라 외치는 것 같기는 한데, 아직 거리가 멀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녀들은 서로 무언가 대화를 나누는 듯한 자세를 취하더니, 한세아가 날개를 펼처 우리가 있는 곳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현우씨!"
그녀가 거리를 점점 좁힘에 따라 점점 더 선명하게 들리는 외침. 그런 상황 속에서 누나가 한층 더 내 팔을 꽉 끌어안으며 입을 열었다.
"현우야, 3번 중 1번의 기회. 저 뱀에게 써. 다시 지하로 들어가기 전에 저 오염체는 여기서 처리하고 가는 게 좋을 거야. 장막이 무적은 아니거든. 저건 지금 너 말고는 처리할 방법이 없기도 하고. 나는 수호목을 맡을게."
"뭐?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아깝잖아. 그렇지 않아도 몇 번 없는 기회인데."
"괜찮아. 남은 2번의 기회라도 제대로 쓰려면 한 번쯤은 네가 겪어 봐야 하니까. 지금 너는 네 생각보다 훨씬 강해. 그런 네 상태를 제대로 인지하기 위해서는 네가 낼 수 있는 힘이 어느 정도인가 감을 잡고 넘어가야 할 필요성이 있어."
"······."
"내가 보조할 테니 현우, 너는 걱정하지 말고 누나만 믿고 뛰어내려. 번지 점프한다고 생각해."
안전장치가 있지만, 있다는 것이 체감이 안 될 뿐인 번지 점프한다고 여기라는 누나는 내 등을 살짝 떠밀었다. 낙하하는 힘을 이용해 뱀을 묵사발로 만들라는 말과 함께.
지상이 까마득하게 보이니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말이 쉽지 어떻게 이 높이에서 떨어지라는 것인가. 없던 고소공포증도 생길 판이다.
바로 그때.
"현우씨! 아직 지하에 있는 거 아니었어요?! 대체 언제 위로···."
가쁜 숨을 내쉬며 나와 누나가 있는 고도까지 도달한 한세아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내가 입고 있는 옷이 완전히 걸레짝이 된 것을 보고 입술을 짓씹었다. 상처는 다 나아 보이지 않았지만, 넝마가 된 옷이 당시에 입은 부상이 얼마나 심했는지 대신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게 그런 시선을 보내는 한세아의 복장도 그다지 멀쩡하지 않았다. 이리저리 많이 굴렀는지 체액과 뒤섞인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고, 군데군데 흉하게 찢어진 부위가 있었으니까.
"설명은 나중에 하겠습니다. 세아씨, 우선 제 누나 좀 데리고 안전하게 지상으로 내려가주십쇼."
수정이 있는 한 떨어지거나 떨어져도 부상을 입지 않는다고 하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계속 하늘에 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리고 한세아의 상태를 보니 더 시간을 끌면 안 될 듯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뱀을 처리해야 지상의 사람들이 숨을 고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네? ······알았어요. 현우씨는요? 같이 안 내려가요?"
한세아는 뭐라 더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거렸으나, 이내 알았다며 수긍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녀는 메이벨과 어색하게 눈 인사를 나누었고, 누나를 챙겼다.
"저는 저 뱀을 처리해야죠. 그럼 부탁합니다."
누나를 믿은 나는 그 말을 끝으로 한 발자국 앞으로 걸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으로 발을 밀어 넣자 몸이 곧장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한세아가 깜짝 놀라며 나를 부르는 게 들렸다. 다행히 그 비명 섞인 부름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잦아들었다. 누나가 한세아를 안심시킨 모양이다.
휘이이이잉-!
세찬 바람이 몸을 스쳐 지나간다. 이 정도의 강한 바람이라면 눈도 제대로 뜨지 못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그 영향은 내게 미치지 못했다. 어느새 내게 따라붙은 부유 수정 하나가 장막을 펼쳐 나를 감싼 덕분이었다.
바람의 저항은 나를 밀어내거나 괴롭히지 못하고, 간신히 귀를 먹먹하게 만들 뿐이었다.
지상이 점점 가까워진다. 작은 블록으로 보였던 사물들이 크기를 부풀리고, 살짝 흐릿했던 윤곽선이 제 형태를 되찾아 선명해졌다.
한때 죽음의 상징이었던 칠흑의 뱀을 향해 전차들이 차륜전을 하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거리가 좁혀짐에 따라 내 존재를 눈치챈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단순히 거리가 좁혀졌기에 내 존재를 눈치챈 건 아니었다. 푸른 하늘을 그대로 옮겨 담은 듯한 푸른 불이 하늘에서 일어난 까닭이었다.
나는 숨을 들이켰다. 지금 내가 다룰 수 있는 입자를 깡그리 모아 들이켰다. 그리고 그 입자를 전부 불로 바꿨다.
화르르르륵!
바람에 밀려나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았던 불이 입자를 연료 삼아 거세게 타오른다. 요동치는 푸른 불이 내 몸을 휘감았다. 이제 불은 거센 바람에도 꺼지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뱀의 시선이 나를 향하게 만들었다. 놈의 검은 동공에 푸른 하늘이 비춰진다.
푸른빛과 검은빛.
마치 두 진영이 나누어진 것처럼 각자의 색으로 구역이 양단된다.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기 위한 파도가 곳곳에서 몰아쳤다.
가볍게 눈을 감았다 뜨니 나를 휘감은 불길은 더욱 거세져 있었다.
끼리리리릭!
투-쾅!
최대한 뱀의 체력을 빼놓던 전차들이 뒤로 물러난다. 포탄을 쏘는 건 멈추지 않은 채.
마찬가지로 위기감을 느낀 뱀도 불을 피하고자 물러서려고 했다. 그러나 아직은 장막이 건재한 덕분에 놈은 물러설 길이 없었다.
결국 놈이 할 수 있는 건 그 거대한 체구만큼이나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고 분노의 괴성을 내지르는 것뿐.
[끼아아아아아아━!]
그 괴성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
푸른 하늘이 지상에 내려와 순간 세상을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