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57 - 457. 합류 (2)
[사아아아악!]
칠흑의 뱀이 요동친다. 고통스러운 괴성을 내지르면서.
쾅! 쾅! 쾅!
거대한 뱀은 질긴 생명력을 가진 변종답게 몸이 불에 타면서도 기세가 죽지 않았다. 오히려 끈질기게 몸부림을 치면서 몸에 붙은 불을 떨쳐 내려 하고 있었다.
내가 지상에 낙하한 직후, 그 충격에 의해 머리의 삼분지 일이 날아갔음에도 불구하고, 격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마구잡이로 휘둘러지는 놈의 꼬리가 무분별하게 지상을 강타했다. 육중한 질량과 힘이 담긴 꼬리는 그곳에 뭐가 있든 상관없이 전부 망가트렸다. 아니, 단 하나 꼬리가 파괴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일대를 뒤덮고 있는 푸른 장막만큼은 칠흑의 뱀의 공격을 거뜬하게 막아내는 중이었다.
터-엉!
검은 비늘이 잔뜩 돋아 있는 꼬리의 끝이 장막을 두드린다. 그럴 때마다 생겨난 충격파에 의해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불씨도 함께 치솟아 허공에 수놓아지기도 했다.
칠흑의 비늘에는 전차가 발사한 포탄에 의한 생채기가 잔뜩 나 있었다. 허나, 깨진 부분은 없었다. 워낙 단단한지라 흠집만 겨우 낼 수 있었으니까.
그런 단단한 비늘로 감싸진 꼬리가, 이리저리 꼬이는 기다란 몸통이 주변을 초토화시킬 기세로 난동을 피운다.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나는 푸른 불을 두른 손으로 뱀의 비늘을 녹여서 뚫었고, 거기에 매달려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첫 낙하 공격에 그로기에 빠질 줄 알았건만, 되려 검은 뱀은 더욱 심한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큭···!"
힘의 출력 자체는 내가 더 크다고 해도 체구의 차이가 워낙 큰 탓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뱀이 반항하면 반항할수록 뱀에 달라붙어 있는 나 또한 위아래로 마구 요동쳤기 때문이다.
그래도 불이 한번 옮겨 이상 결국 뱀은 죽게 되리라.
실제로 시간이 지날수록 놈의 힘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에 반해 내가 피워내는 푸른 불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고.
초반에 내가 낸 것이 최대 출력인 줄 알았건만, 그게 아니라는 듯 화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모습에 누나의 말대로 내가 낼 수 있는 힘의 최대치가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고 가는 것이 맞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적어도 한번은 겪어 봐야 한계가 어디인지 알 수 있었을 테니까.
그렇게 알게 된 힘의 한계로 최선의 선택을 내려야만 하니까.
바로 그때.
"······!"
불현듯 위로 향한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이 하나 있었다. 나뭇가지의 형상을 한 지팡이가 뱀의 눈에 박혀 있었다.
내가 피워 낸 푸른 불에 타 버린 것인지, 뱀의 난동과 함께 부러진 것인지 예전에 보았던 잔가지는 하나도 없고, 반으로 뚝 부러진 상태인 그 나뭇가지. 그건 바로 칼카타가 쓰던 지팡이였다.
'칼카타···!'
우리가 무사히 도망칠 수 있도록 최후의 순간까지 뱀을 붙들었다는 걸 스스로 증명이라도 하듯 눈에 박혀 있는 그 지팡이를 보자 절로 이가 악물렸다. 뱀을 더 빨리 태워야겠다는 결심이 강해진 건 덤이었다.
화르륵!
치이익-!
나는 그것을 잡기 위해, 결심을 이루기 위해 조금씩 놈의 머리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비늘 하나하나 전부 녹여가면서.
내가 손을 뱀의 몸통에 박아 넣을 때마다 매캐한 냄새와 함께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단단한 비늘이 녹고, 그 밑에 깔린 생살이 녹은 비늘의 열에 불타는 고통을 느낀 뱀이 더욱 격한 난동을 부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쾅! 쾅! 쾅! 쾅! 쾅!
[끼아아아아아악!]
시야가 초점을 잡을 새도 없이 빠르게 뒤바뀐다. 주변 사물이 전부 잔상으로만 보일 정도로 시야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만큼 검은 뱀이 난리를 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콰-아앙!
몸이 불에 타오르는 고통을 느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뱀은 본능적으로 바닥에 몸을 비벼 나를 떨쳐 내려고 했으나, 나는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내게 붙어 있는 부유 수정이 장막을 만들어 주고 있는 덕분이었다.
이윽고.
타악-
나는 수정이 펼쳐 낸 장막에 힘입어 나뭇가지를 잡을 수 있었다. 주변이 온통 푸른 불바다인 탓일까. 나뭇가지는 묘하게 따뜻한 감촉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나뭇가지를 뽑아낸 것과 동시에.
화르르르륵!
푸른 불의 바다가 요동쳤다. 마치 태풍이라도 몰아치는 듯이. 그렇지 않아도 거센 파도가 치는 것처럼 넘실거리던 푸른 불은 순식간에 해일이 되었다.
더욱 기세를 부풀린 불의 파도가 점점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그 정화의 불은 거대 오염체인 뱀을 완전히 잡아먹었다.
그리고 그건 시끄럽게 괴성을 내지르던 뱀이 침묵에 빠진 순간이었다. 서서히 움직임을 멈추고, 재로 변하기 시작한 뱀은 더 이상 괴성을 내지르지 못하고, 일말의 움직임조차 보이지 못 하는 상태가 되었다.
······쿵!
괴성을 지르기 위해 하늘을 향해 있던 놈의 머리가 뒤로 넘어진다. 다시 한번 흙먼지를 일으킨 뱀의 머리는 그 움직임을 끝으로 다시는 움직이지 못했다.
타닥- 타닥-
아직 남은 불씨가 재 속에서 반짝거린다. 재 속에 남아 있는 검은 입자를 마저 태우고 있는 모양이다.
"후우···."
나는 거대한 뱀의 사체 한가운데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누나가 말했던 대로 힘이 강해진 건 사실이다. 단순히 내가 다룰 수 있는 입자의 양뿐만이 아니라 불의 화력 자체가 올라간 느낌이었다. 포탄도 뚫지 못한 비늘을 불로 쉽게 녹여 버렸으니까.
몸이 받은 부하도 그리 크지 않았다. 이 또한 누나가 말했던 것처럼 몸이 받을 수하를 부유 수정이 대신 받아 냈기 때문이었다. 그 증거로 내게 붙어 있는 부유 수정에는 자잘한 금이 새겨져 있었다.
물론, 전부 상쇄할 수는 없었기에 몸 이곳저곳 뻐근한 부분이 생기기는 했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좀 더 오래 싸울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이제 남은 기회는 둘.'
나는 그리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내 근처에 주저앉아 있는 군인과 눈이 마주쳤다.
탄통이 엎어져 탄약이 쏟아져 있는 모습을 보니 보급조에 속한 군인인 듯했다. 뱀이 하도 발버둥을 치다 보니 보급조가 있는 곳까지 밀려 왔나 보다.
"일어나십쇼, 일병.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아, 가,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하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일단 그에게 손을 내밀어서 일으켰다. 바깥으로 나와 짤그랑거리는 인식표에는 김지민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우연찮게도 그는 내가 오늘 아침에 보았던 군인이었다. 마지막에 보았던 군인이라 기억에 남았었는데 살아 있어서 다행이었다.
곳곳에 붕대를 감고 있는 걸 보니 부상을 많이 입은 것처럼 보였지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일이 아니던가.
"제가 너무 늦은 건 아니죠?"
"너무 늦은 건 아닙니다. 아니, 늦기 전에 와주셔서 다행입니다."
나와 군인이 손을 휘휘 저어 흙먼지를 몰아내는 사이에 흙먼지를 뚫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건 바로 지수였다.
"아저씨!"
꼬리 프로펠러로 2차 흙먼지를 만들어내면서 들어온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내게 곧장 뛰어들었다.
와락 안기는 지수와 이번에는 뒤로 넘어지지 않고 그녀를 받아 낸 나. 그 고무적인 사실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지수는 정신없이 코를 킁킁거릴 따름이었다.
다친 상처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일까.
"···다친 곳은 없네. 옷은 완전히 걸레가 됐는데."
"아까 무전으로 말했잖아. 완전 회복했다고."
"그렇긴 하지만 아저씨 하늘에서 떨어졌잖아. 뜬금없이 하늘에 떠 있길래 조심히 내려오라고 세아 언니 보냈던 건데, 그냥 뛰어내리면 어떡해? 우리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
할 말이 없었다. 누나가 붙여 준 수정이 펼친 장막 덕분에 다칠 일이 없었고, 체구 차이가 워낙 컸던 탓에 위에서 속도를 얻어 한 방 먹이고 시작하려고 했던 거지만, 그건 지수를 달래는 말로 적합하지 않았다. 오히려 옆구리가 꼬집힐 가능성이 컸다.
"에휴, 됐어. 할 말은 많은데, 진짜 많은데! 일단 가자. 가서 이야기하자. 거기 군인 아저씨도 따라와요. 지금 다들 한 곳에 모여서 어떻게 움직일지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내 품에서 힘들게 고개를 떼어낸 지수가 당장 말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한세아보다 흙먼지를 더 많이 뒤집어썼으면 썼지, 결코 덜 하지는 않았다.
혹시나 다친 곳이 있나 걱정되어 곁눈질로 살피니, 그 시선을 눈치 챈 지수는 나처럼 크게 다친 적은 없으니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답을 돌려주었다.
"그래."
"알겠습니다."
나와 군인은 지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장막이 펼쳐진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걸어가면서 지상을 둘러보았다.
곳곳에 널린 시체들과 망가진 전차들. 그건 인간과 괴물을 가리지 않았다. 다만, 그 시체들의 수가 변종들이 더 많을 뿐이었다. 대부분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짓이겨져 있거나 사지가 뜯겨 있었다.
괴물들의 생명력이 워낙 질기기에 죽이려면 강한 화력이 필수였고, 그 화력이 한곳에 집중되다 보니 나온 결과.
그 화력을 낸 전차들 상태 또한 결코 멀쩡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최대한 긁어 모은 전차, 장갑차, 군용 차량들 대부분이 반파가 되어 있었으니까.
유리가 모조리 깨져 나간 건 말할 것도 없고, 하나 같이 문짝이 뜯겨 나가거나 전면부가 터져 있거나 차체가 완전히 찌그러져 박살이 난 차량들이 거의 전부였다.
마지막까지 거세게 저항했다는 듯 휘어진 포구는 괴물을 겨누고 있었고, 궤도에는 끈적하게 녹아내린 살점이 뒤엉켜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꺾여 버린 기관총이 있는 자리에는 어김없이 사방으로 흩뿌려진 핏자국들이 있었다.
'지금부터는 아무도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옅은 바람에 자욱하게 일어났던 흙먼지가 밀려난다. 아직 허공에 남은 검은 입자를 태우며 불씨를 간직하는 푸른 불이 꺼지지 않은 채로 하늘을 뒤덮고 있는 거목에게로 향한다.
인간의 다음 목표.
오염된 세계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