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59 - 459. 합류 (4)
물결 비늘로 덧대어진 천막 내부.
"뭘 그리 놀라나. 함께 싸웠다는 훈장일 뿐인데."
안색이 하얗게 질린 연대장이 질끈 동여맨 붕대를 한층 더 세게 조이며 한 말이었다. 부상을 대가가 아니라 훈장이라 칭하는 점에서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죽지 않고 살았다는 안도감보다는 이 정도 부상은 큰 부상의 축에 끼지도 못한다 여기고 있는 거겠지.
"···어쩌다가 그런 부상을 입으신 겁니까."
"뭐, 흔한 경우일세. 석벽에 의지해서 간신히 버텨내고 있는 와중에 괴물 놈들은 병사들을 어떻게든 낚아채서 죽이고 있었고, 나는 그걸 막다가 이렇게 된 것이지. 비록 팔은 잃었지만, 병사는 살렸다네."
팔 하나를 다른 이의 목숨 하나로 맞바꿀 수 있다면, 남는 장사이지 않느냐고 말한 연대장. 그는 애써 고통스러운 기색을 숨기며 허허 웃었다.
"······."
나는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병사 하나를 살렸다는 말과 함께 나온 웃음에 강한 아쉬움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더 많은 병사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오는 아쉬움이었다.
"그보다 자네, 큰 부상을 입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괜찮은가? 치료가 더 필요하다면, 의무병에게 가보게. 아직 치료용 수정이 남아 있을 거야."
"······그건 제가 들을 말이 아니라 제가 연대장님에게 물어봐야 하는 말 같습니다. 여기 있을 게 아니라 후방으로 가셔서 제대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치료용 수정으로 응급처치를 한 연대장 본인은 지혈만 간신히 된 상태이지 상처가 제대로 아문 상태가 아니었다. 내 걱정을, 남 걱정을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는 말이다.
강제로 숨을 고르게 쉬어 아프지 않은 척을 하고 있다는 것이 나와 지수의 눈에 다 보이는데도, 연대장은 고개를 저을 따름이었다.
"여기에 아직 우리 애들이 남아 있는데 지휘관이 가기는 어딜 간다고 그러나. 그러니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여기일세. 안전한 후방이 아니라. 마지막이니만큼, 나는 더욱 여기 남아 병사들을 봐야 하지."
그는 자신은 최후의 순간까지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하는 지휘관이라는 말로 내 걱정을 일축했다. 연대장이 말을 이었다.
"아직 할 일이 산더미라네. 두 번째로 높은 고비는 자네 덕분에 넘을 수 있었지만, 아직 가장 큰 고비가 남아 있지 않은가."
연대장은 눈짓으로 세계수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킬 것도 없이 우리 바로 앞에는 세계수의 밑동이 자리잡고 있었기에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당장 우리가 다음 행동을 옮길 곳이기도 하고.
"···그래도 치료는 제대로 받아요. 마지막까지 있고 싶다면 더욱 그래야 해요. 그리고 옆에서 같이 싸우는 것만이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아니잖아요."
지수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녀는 연대장이 대충 묶어둔 붕대를 새 걸로 갈아주기 시작했다.
"상처가 좀 더 아물 테니 덜 고통스러우실 겁니다."
지수 옆에 선 내가 상처 치유력을 올려주는 정화의 불을 연대장에게 불어넣어주는 사이에 그의 입이 열렸다.
"정화의 불이라고 했던가? 불이 몸에 들어오니 뭔가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군. 자네는 참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어. 이 불도 그렇고, 기어코 증폭기를 가동시킨 것도 그렇고."
"조금만 더 빨리 가동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늦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닐세, 그런 말 하지 말게. 고맙네. 둘 다. 같이 싸워줘서. 포기하지 않고 움직여줘서."
그는 깔끔하게 묶인 붕대를 보며 나와 지수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그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말을 하기에 앞서 생각을 정리하는 표정을 지은 채로.
이윽고.
"아까 자네가 내게 그랬었지. 꼭 옆에서 같이 싸우는 것만이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이야. 자네 말이 맞아. 옆에서 함께 자리를 지키는 것만이, 함께 돌격하는 것만이 같이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
연대장이 지수를 바라보았다. 그는 천막 바깥으로 시선을 옮기며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후방으로 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은 후, 무전으로 지시를 내리는 것도 도울 수 있는 한 방법이고, 원활한 보급을 위해 이 한 몸을 이끌고 탄약을 옮겨주는 것도 한 방법이지. 그건 나도 알아."
"······."
"전쟁. ······그래, 전쟁. 지금 우리가 하는 건 전쟁일세. 그리고 나는 이 끔찍한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살아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눈에 담았어. 1차 작전 때, 나는 자네가 말한 것처럼 안전한 후방에서 지시만 내리는 지휘관이었다네. 그때 일을 통해 후방에서 전방의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만큼 한스러운 일은 없다는 걸 깨달았지."
연대장은 답을 바라는 병사들이 처절하게 내지르는 비명을, 전차가 허무하게 부서지는 소리를, 조금씩 줄어들어가는 아군의 소리를 후방에서 듣는 자신이, 조금만 더 버티라는 말밖에 해줄 수 없었던 자신이 그토록 무력하게 느껴졌던 적이 당시 말고는 없었다고 했다.
그는 그 경험을 통해 자신들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정말로 전쟁이 맞는지 회의감이 들었었다고 했다. 전쟁은 양측에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만 성립되는 것인데, 일방적인 학살은 전쟁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하물며 학살의 주체가 자연이라면 특히 그러했다. 애초에 인간은 자연을 이길 수가 없었으니까.
"마지막이라···. 그래, 이번이 마지막 전투가 되겠지. 그러니 나는 후방에 있고 싶지 않은 거라네. 후방에서 무력하게 있는 것보다 최전방에서 직접 몸을 움직이며 전우와 함께 돌격하는 것이 좀 더 나은 선택이라고 믿으니까. 이번이 마지막이라면 더욱이."
그가 생각을 고친 것은 비로소 오늘이 되어서였다. 오늘 누구보다 앞에 서서 변종들과 싸우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전방에서 움직이는 자들이 가지는 책임감을 알아. 그 어깨 위에 짊어진 것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도 알지. 단순해 보이는 선택을 하는 것에도 얼마나 막중한 책임이 드는지도 전부 알고."
함께 돌격하는 병사들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그들이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 옆에 있는 전우가 쓰러져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한 걸음 내딛는지.
어느 한 쪽에게만 유리하게 풀리지 않는 것이, 남들에게 상처를 입혔으면, 우리도 그 상처를 입을 각오를 해야하는 것이, 그저 자신에게 상황이 유리하게 전개되도록 시간을 끌 수만 있는 것이 바로 전쟁이다.
허나, 단순히 그런 사실보다 앞서 생각되어야 하는 것이 있었다. 저항할 의지가 있는가. 힘없이 고개를 수그리지 않고, 허망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거부하는가.
저항한다는 의지가 있다면, 전쟁은 성립한다. 아니, 적어도 투쟁이라는 조건은 성립한다. 설령 그것이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에 불과할지라도.
"앞으로 돌격한다는 것. 바로 코앞의 미래를 위해 움직이는 것에도 많은 것들이 어깨를 짓누르는데, 이것보다 더 복잡한 행동에는 얼마나 무거운 책임감이 뒤따르겠나. 얼마나 무거운 죄책감이 뒤따르겠나."
그리 말한 연대장의 시선은 여전히 천막 바깥을 향하고 있었다. 계속 이어지는 그의 말은 눈앞의 우리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나와 지수를 통로로 삼아 좀 더 멀리 있는 사람에게 전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연대장은 자신이 한 말의 목적지를 정했다.
"그렇지 않은가, 메이벨?"
그 물음과 동시에 바깥에서 한참을 망설이고 있던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저는."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흐린 메이벨. 그녀는 뭐라 말해야지 할지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가득 채운 건 죄책감이었다. 그 죄책감이 그녀의 입을 다물게 만들고 있었다.
"솔직한 말로 자네를 용서한다라는 말이나 대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소의 희생이니 뭐니 이런 말들은 할 수 없네. 아직도 눈을 감으면 당시 우리 병사들이 어떤 상황 속에서 죽어갔는지, 얼마나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는지 전부 생생하게 떠오르니까. 그래서 나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자네를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아."
"······."
"하지만 자네를 이해할 수는 있지. 아까도 말했다시피 지금 우리가 하는 건 전쟁이니까. 내가 그 날을 똑똑히 기억하는 것처럼 자네도 그럴 테니까."
연대장은 나와 누나의 대화를 무전으로 들었기에 당시 상황의 전말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연대장인 그가 알고 있다는 건 이곳에 있는 모든 군인들이 알고 있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분명 무전기가 꺼져 있었던 것 같은데, 누나가 어느 틈에 버튼을 눌러둔 것인지 모르겠다. 책임을 지겠다는 말을 지키기 위함이었을까.
"우리 모두 싸우고 있다네.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미래를 위해서 싸우고 있어. 모두가 숭고하지는 않지만, 미래를 위해 싸운다는 건 모두가 같아.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겠지."
"······."
"자네가 시간을 거슬러 당시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할 것인가? 지금 이런 상황이 오게 된 것이 후회가 되어 보안문을 여는 선택을 할 것인가?"
"······아뇨. 저는 여전히 똑같은 선택을 하겠죠. 그게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그래, 그렇겠지. 나는- 아니, 우리는 자네를 원망하는 한편, 그 선택을 이해하고 있기도 해. 그러니 메이벨, 부디 우리에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게. 지금만큼은 그것 하나만을 바라고 있다네. 앞서 죽어나간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 승리를."
그 말을 끝으로 연대장은 누나에게 손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