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463화 (464/497)

Chapter 463 - 463. 합류 (8)

드드드드드드드!

땅이 요동친다. 잔떨림으로 시작되었던 그 진동은 이내 점점 더 커져 지상을 뒤흔들고 있었다.

"메이벨 언니! 이거 언니가 한 거 아니죠?!"

균형을 잡기 위해 본능적으로 자세를 낮춘 한세아가 누나에게 외쳤다. 그녀는 다급히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 예린을 찾았고, 아이를 곧장 품에 넣었다.

성체급 정령들이 예린, 한세아, 지수를 빙 둘러싼다.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제가 한 거 아니에요! 이건━!"

"밑!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어요! 다들 조심해요!"

누나와 지수의 외침이 서로 겹쳤다. 비록 소리가 겹치긴 했으나, 그 외침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없었다. 임계점을 돌파해 푸르게 빛나고 있는 수정을 향해 있던 그들의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아래를 향했다. 지상이 조금씩 갈라지고 있었다.

쩌저저적-!

대지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나무뿌리가 바닥에서, 지하에서 튀어나왔다.

후두둑! 후두둑!

무시무시한 기세로 솟구친 나무뿌리. 그것의 움직임은 주변의 잔해와 흙 따위들을 사방으로 비산하게 만들었다. 흙으로 이루어진 비가 위에서 쏟아진다.

겨우 가라앉아 있던 흙먼지가 다시 거칠게 일어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누나!"

나는 땅을 뚫고 솟구친 나무뿌리를 노려보고 있는 누나를 잡아당겼다. 코앞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솟구쳤으니 지금은 뒤로 물러나야 할 때였다. 지상이 갈라지고 있기까지 했으니까.

바로 그때.

지이이잉!

수정 내부에서 한계까지 응축되어 있던 힘이 원래 목표로 했던 방향과 다른 곳으로 쏘아졌다. 발사 직전, 수정이 흔들려 경로가 뒤틀린 것이었다.

"안돼···!"

일직선으로 쏘아지는 푸른 광선은 사람들을 향해 발사될 뻔했으나, 누나가 황급히 방향을 조정해서 오염된 세계수를 향해 발사되도록 만들었다.

광선의 방향이 뒤틀린다. 누나가 손짓으로 수정을 돌리는 만큼 각도가 조정되어 사출 방향이 바꿔졌다.

콰가가가각!

푸른 입자로 이루어진 선은 날카로운 발톱이 휘둘러진 것처럼 허공의 흙먼지를, 지상을 갈랐고, 이내 세계수의 표면을 긁었다.

······퍼-엉!

처음에는 나무 껍질을 붉게 달아오르게 만드는 것에 그치는 건가 싶었으나, 그게 아니라는 듯이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검은 입자와 푸른 입자가 강하게 충돌한 여파였다. 그 여파는 주변 일대로 퍼져 지축을 뒤흔들었다.

"뒤로 물러나라! 진원지에서 최대한 멀어져! 바닥이 무너진다!"

연대장의 지시에 군인들이 몸을 더욱 뒤로 물리며 대피했다. 그와 동시에 대지가 흔들리는 소리 또한 더욱 커졌다. 짙은 흙먼지가 공간을 채웠고,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쩌적!

쿠웅-!

그 소리가 난 곳은 지상이 아닌 하늘. 정확히는 반구형의 형태로 형성되어 있던 장막이었다. 끝을 모르고 위로 솟구치던 나무뿌리가 장막의 천장을 강타한 것이다.

그 결과, 장막이 전부 부서진 건 아니지만 유리컵 모서리가 깨진 것처럼 장막에 틈이 생기게 되고 말았다. 장막 파편은 세로선을 그리며 추락했으며, 이내 입자로 화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쩌저저적-

끼기기긱······!

갈라진 지상의 틈에 전차와 차량들이 떨어진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지하로.

텅- 터텅-

어둠에 잡아먹힌 차량들의 흔적은 점점 멀어져 가는 소리뿐이었다. 방금 전까지 나와 누나가 있었던 천막도 지지대가 무너지면서 틈새 사이로 떨어졌다.

나는 누나를 데리고 거리를 더 벌렸다. 나와 누나는 어느새 수정의 힘으로 만들어진 장막에 감싸진 상태. 메이벨이 재빠르게 장막을 펼친 것이었다.

새롭게 만들어진 작은 장막은 우리만 감싸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수, 한세아, 예린을 비롯한 지상의 사람들 또한 보호하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그 덕분에 다행히도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 나오지 않을 수 있었다.

드드드······ 드드······

숨을 죽인 채 주변을 끊임없이 경계하고 있자니, 서서히 흙먼지가 걷히기 시작했다. 뿌리가 움직임을 멈춘 것인지 진동도 멎어 있었다. 지하를 뚫으려던 계획이 공중 분해가 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흙먼지가 시야를 확보할 수 있을 정도로 걷혔을 때.

"하,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누나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추가적인 공격이 올 것이라는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나무 뿌리는 더 이상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미동도 하지 않았다라는 말보다는 입구를 드러내고 있었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었다.

어둠으로 가득 찬 뿌리의 내부. 그건 일종의 통로처럼 보였다. 그것도 심층부로 바로 직행할 수 있는 통로 말이다.

참으로 노골적인 수작이었다.

"아저씨! 괜찮아?!"

"현우씨!"

"오빠!"

나와 누나가 뿌리를 보고 있는 사이에 지수, 한세아, 예린이 다급하게 뛰어왔다. 그런 그녀들도 나무 뿌리를 보고 잠시 멈춰 서는 수밖에 없었다.

"······이거, 그거 같은데? 그 예전에 의왕시 캠프랑 수리산에서 본 거 있잖아. 뿌리 통로."

지수도 본능적으로 그리 느낀 듯 입을 열었다. 시선은 뿌리에게서 떨어지지 않은 채였다. 혹시나 통로에서 괴물이 튀어나올까 경계심이 든 모양이다.

"현우야! 메이벨! 괜찮느냐!"

난쟁이 칸을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도 뿌리가 솟구친 장소로 모여들었다. 일부는 연대장의 지시에 흩어진 물자를 다시 모으기에 바빴다. 인원 점검을 다시 하면서.

"저희는 괜찮아요."

나와 누나는 지수, 한세아, 예린, 난쟁이 칸을 안심시키는 한편, 뿌리 통로가 개방된 곳으로 한 발자국 내딛었다.

"어어? 설마 너희 저기로 가는 건 아니겠지. 그러지 않는 편이 좋아 보인다만."

그러자 난쟁이 칸이 그답지 않게 당황하며 우리를 붙들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정체도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는데, 굳이 가까이 갈 필요가 없다고.

사람들은 저 통로를 함정으로 치부했지만, 나와 누나는 알았다. 저건 일종의 초대장이라는 것을. 우리가 지하로 가는 통로를 뚫기 직전에 나왔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럴 가능성이 컸다.

칸이 우려한 대로 뿌리가 영 꺼림칙하게 보이기는 했으나, 지금은 저 통로를 이용하는 것이 시간을 아끼는 방법이었다. 다시 작업을 재개해서 통로를 새롭게 뚫을 수 있는 것도 한 방법이기는 한데, 그건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일이지 않은가.

시간은 우리의 편이 아니다. 조급함이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그걸 감수할 만큼 남은 시간이 여유롭지 않을 뿐이었다. 방금 뿌리가 움직이면서 생긴 여파로 주변 일대가 엉망이 되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럼에도, 나는 섣불리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내 선택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저걸 통해 내려가려는 모양인데, 나는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구나. 너무 노골적이지 않은가."

지상의 틈을 땅울림으로 메꾸면서 오던 난쟁이 조이가 나지막하게 한 말이었다. 나와 누나의 생각을 알아차린 그는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며 말렸다.

"맞아요. 대놓고 들어오라는 느낌이 강하긴 하죠. 하지만 너무 대놓고 들어오라는 느낌이 강해서 오히려 믿을만한 걸요."

누나는 자신들을 방심시킬 요량이었다면, 처음부터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게 함정을 파면 팠지 이런 식으로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오염된 세계수의 뿌리는 여전히 입구를 개방한 상태에서 바뀐 것이 없었다. 불쾌한 괴성을 내지르는 변종들의 존재감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난쟁이 칸이 미심쩍은 기색으로 뿌리를 손으로 두드렸다.

"이거 이미 죽었군. 뿌리 자체가 죽었어.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었건만. 이러면 아까처럼 난동을 피우지는 못할 텐데. 내부에 다른 생명 반응이 느껴지지도 않고. 허, 정말로 단순히 지하로 초대한 거란 말인가···."

"어차피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건 변함이 없잖아요. 가다가 수작을 부려도 괜찮아요. 중간에 길을 막으면 뚫으면 되니까. 천장을 무너트려도 마찬가지에요."

"아저씨, 어떻게 할 거야? 나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저도 상관없어요, 현우씨."

무엇을 선택하든 내 선택을 믿는다는 지수와 한세아.

"······."

내가 답을 보류한 사이에 누나가 내려가자는 의견을 재차 제시했다.

"현우야, 저건 초대장이야. 너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잖아. 다른 수작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렇긴 한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그녀의 말에 동의하기는 했다. 언제나 느껴지던 악의가 지금은 잠잠해진 상태였던 것이다. 악의가 완전히 없다는 것이 아니다. 악의보다는 묘한 기대감이 더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만남을 기대하고 있어?'

선물을 받기 직전의 어린 아이가 흔히 느끼는 기대감이 심장 속 씨앗 파편에 전해진다. 곧 일어날 일에 발을 동동 구르는 느낌이 전해지기도 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겨우 정리가 되었던 보급 물자들이 엉망으로 날아간 광경이 보였다. 오염된 세계수와 수정에서 쏘아진 푸른 광선이 의도치 않게 서로 부딪혔을 때, 주변으로 퍼진 충격파 때문이었다.

그에 반해 세계수는 여전히 건재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광선이 지나간 자리에 폭발이 일어나기는 했으나, 나무에 담긴 검은 입자가 압도적으로 더 많아 끄떡도 하지 않은 듯했다.

비록 제대로 노리고 쏜 것이 아니긴 하나, 광선에 담겨있던 힘을 감안해보면 말이 안되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세계수의 오염이 장난 아니라는 거겠지.

우리가 재앙을 상대하는 방법은 코어 역할을 하는 심장을 직접 타격하는 것뿐. 이미 한 차례 힘을 낭비한 상황에서 굳이 새로운 통로를 뚫는다는 선택지를 고를 필요가 있을까.

내 선택에 의해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결정된다는 걸 알기에 선뜻 어떻게 하자고 말하기가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지수가, 한세아가, 예린이, 메이벨이 내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난쟁이 칸이, 조이가, 연대장이, 군인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내게 믿는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전부 내가 믿고, 나를 믿는 사람들이다. 내가 무슨 결정을 내리든 따르겠지.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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