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70 - 470. 그라운드 제로 (6)
"나는 만물의 어머니. 그런 내가 하지 못 하는 건 없어."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자신을 신이라 칭하는 것이, 누나의 몸을 마음대로 복제해 쓰고 있는 그것이 세상의 끝을 고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축복하지 않는 끝을.
후우웅-!
검은 구체를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입자가 공동을 휩쓴다. 입자에 닿는 모든 것들을 사멸시키는 검은빛이 공동을 휩쓸자 넘실거리고 있던 푸른 불이 단숨에 쓸려나갔다. 불씨조차 남기지 못하고.
그나마 푸른 불이 버티고 있는 곳은,
"큭···!"
어느새 구석으로 몰린 나, 지수, 예린, 한세아, 메이벨이 있는 곳이었다. 지금은 어떻게든 간신히 막아 내고 있지만, 당장 어둠에 잡아 먹혀도 이상하지 않았다.
메이벨이 수정으로 장막을 최대한 두껍게 펼쳐 뿌리와 입자의 침식을 막아낸다. 그러나 장막은 빠르게 얇아지고 있었고, 곧 한계에 봉착될 것으로 보였다. 장막을 형성하는 수정들이 과부하로 인해 기능을 하나, 둘씩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밀리면 온 세상이 어둠에 잠겨 그 무엇도 빛을 보지 못하게 될 거다. 그 사실을 몸소 깨닫고 있는 나는 급한 대로 땅울림을 발현해 석벽을 세우려고 했으나, 이 또한 쉽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공동을 꽉 채우고 있던 검은 입자들이 더욱 늘어난 탓에 푸른 입자가 파고들 틈이 없어졌고, 이능의 힘이 지면에 닿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파삭
결국 과부하를 버티지 못한 수정 하나가 깨진다. 그 수정이 가루도 남기지 못하고 소멸되는 것을 시작으로 장막에는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콱! 콱! 콱!
쿵! 쿵! 쿵!
장막을 쉴 새 없이 두드리던 뿌리가, 검은 입자의 응집체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비집고 들어온다. 뱀이 공격을 위해 머리를 치켜든 것처럼 한순간 위로 꺾인 뿌리가 곧장 쇄도한다.
쐐애애액!
재앙이 노리는 건 간신히 장막을 유지시키고 있는 메이벨.
"안 돼···!"
그녀가 쓰러지면 사방의 검은 입자에게 압사당한다는 걸 알기에 지수가 앞으로 나서며 도끼를 마주 휘둘렀다. 피할 공간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이 고른 선택지였다.
단지,
퍼-억!
선택지 자체는 옳았을지는 몰라도 그 선택을 감당할 수 없었을 따름이었다.
"아아악!"
응집체에게 복부를 가격당한 지수가 뒤로 날아가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해냈다. 그녀의 전신에는 푸른 스파크가 튀고 있었으나, 그 스파크는 전처럼 검은 입자들을 태우지 못했다. 그저 사라지지 않기 위해 간신히 버텨 내고 있을 뿐.
"콜록! 콜록! 우욱···."
어지간한 공격을 맞더라도 어지간해서는 주저앉지 않는 지수였지만, 물리적인 힘보다는 몸에 침투한 검은 입자가 문제였기에 벽에 부딪힌 그녀는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격한 기침과 함께 핏방울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콰콰쾅!
찰나의 순간을 비집고 들어온 공격은 지수를 무력화시킨 것을 넘어 장막 내부를 곧장 휘저었고,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탕! 탕!
한세아가 쏜 강화탄이 응집체을 뚫고 지나가면서 구멍을 만든다. 강한 힘에 관통당하자 몸체에 구멍이 생긴 응집체는 잠시나마 움직임을 멈췄다.
"언니!"
그 사이에 예린이 쓰러진 지수에게 정령을 보내 보호하려고 했다. 아이가 딛고 있는 바닥에는 여러 잔해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일부는 정령들이 강제 소멸되면서 만들어진 오멘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수많은 위험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소멸된 정령들의 흔적이었다.
콰드드득!
아이가 기껏 보낸 정령이 바닥에서 치솟은 가시에 잡혀 제압당한다. 그렇게 또 하나의 오멘이 늘었다.
파스슥···
장막을 유지시키던 수정이 또 하나 깨진다. 잔균열이 셀 수도 없이 많이 새겨지며 조용히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수정은 장막을 더 이상 유지시킬 수 없다는 결과를 가져 왔다.
그와 동시에.
콰가가가각!
사방에서 쇄도하는 응집체가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었다. 피할 수 있는 공간도, 막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응집체들이 우리를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우리가 미처 저항해볼 틈도 없었다. 파도에 밀려나는 모래처럼, 강물에 떠밀려가는 나뭇잎처럼 그저 휩쓸릴 수만 있다는 선택지만이 남아 있었으니까.
제일 먼저 한세아가 휩쓸렸다. 예린을 보호하기 위해 품에 넣은 그녀는 뿌리에 어깨를 관통 당했고, 벽에 부딪혔다. 그 충격에 들고 있던 총기가 바닥을 굴렀다. 검은 안개가 스멀스멀 기어와 그 총기를 부식시켰다.
한세아와 함께 벽에 부딪힌 예린은 그 과정에서 머리에 부상을 입었는지 피가 이마를 타고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그 피를 검은 입자가 게걸스럽게 삼킨다.
메이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은 수정을 갈무리하며 어떻게든 부서진 장막을 복수하려던 그녀 또한 파도에 휩쓸려 집어삼켜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심장 속 파편을 노리던 재앙에게 끌려가기 전에 내가 붙잡아 주지 못했다면, 그녀는 이미 산 사람이 아니었을 거다.
그녀는 온몸에 자상을 입은 상태였다. 악의로 가득 찬 검은 입자에 휩쓸린 탓이었다. 숨은 붙어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일까.
메이벨도, 예린도, 한세아도, 지수도 전부 재앙의 공격에 당해 쓰러졌다. 재앙은 여전히 거대한 의자에 앉아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검은 입자는 더욱 기승을 부리며 우리를 잡아먹을 듯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그런 상황들 사이에서 오직 나 혼자만이 제대로 서 있었다. 아니, 제대로 서 있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숨을 가쁘게 내쉬고 있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왜 아직도 포기하지 않아? 너희에게 희망이 없다는 걸 알면서. 아니면 혹시 멋진 기사님이라도 기다리는 걸까?"
압도적인 존재는 사람이 꺾이게 만든다. 내가 아무리 움직여도 그 존재에게 닿을 수가 없다는 걸 매순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어둠을 밝히기 위해 힘들게 피운 불이 어둠을 몰아내기는커녕 주변의 어둠을 더욱 뚜렷하게 인지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부터 불의 역할은 바뀐다.
어둠을 몰아내는 것에서, 어둠이 지나갈 때까지 버텨내는 것으로.
'하, 기사님이라. 그랬으면 좋겠네.'
나는 바닥을 질척하게 만들 정도로 피를 흘리고 있는 지수, 한세아, 예린, 메이벨을 바라보았다. 내가 약해서 이리된 것이다. 내가 재앙보다 강했다면 그녀들이 다칠 일도 없었겠지.
그녀들에게서 간신히 시선을 떼어낸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방으로 향한 내 시선에 잘게 떨리는 내 손과 미동도 하지 않는 재앙이 보인다.
"···희망을 쫓는 것에는 답이 없어. 아니, 애초에 답을 구할 필요가 없어. 우리 인간은, 언제나 불확실한 것을 위해서 움직여 왔으니까."
사선.
우리는 언제나 그 사선을 넘어 답을 쟁취해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
지금도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괜스레 주먹을 꽉 쥐어 떨림을 숨기며 그리 말했다.
"말로는 누가 못하겠니? 그래도 뭐, 어쩔 수 없네. 이제 진짜로 너를 죽이는 수밖에 없겠어. 내가 내민 기회를 계속 걷어찬 건 너야."
"···하, 참 생각해 줘서 눈물나네. 애초부터 살려 둘 생각은 없었던 주제에."
서서히 손을 들어 올리는 재앙의 모습이 눈에 담겼다. 나는 공격을 막아 내기 위해 떨리는 손으로 도끼를 들었다.
"현우야, 그런 말은 섭섭하네. 너는 우리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어."
재앙이 그리 말한 것과 동시에 손가락을 튕겼다. 그것이 항상 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위험이 닥쳤다는 걸 알고 있는 나는 자세를 낮춰 대비했으나, 내 예상과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이변을 눈치챈 건 무심코 한 걸음 뒤로 물러났을 때였다.
'······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니, 소리만이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 고막을 자극했던 심장 소리가, 불쾌하게 코를 찌르던 냄새가, 급하게 오르락내리락하던 상체에 의해 조여지던 폐부의 고통이 하나씩 사라져가고 있었다. 재앙이 손가락을 튕긴 순간부터.
「이제 이해가 좀 되니? 우리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내가 포기한 것만큼, 너도 포기해야지. 동화라는 건 그런 거야. 하나가 되자, 현우야.」
오직 느껴지는 건 귀가 아니라 뇌리에 속삭이는 재앙의 목소리뿐.
···지수야?
입을 열어 뭐라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정말로 내 말이 소리가 되어 세상에 나오고 있는지, 그저 공허한 부름인지 모르겠다. 내 바람과 달리 후자인 것일까. 지수는 아무런 반응을 보여 주지 않았다.
예린아?
떨어지는 종유석 파편에 맞아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는 예린이 보인다. 아이를 지키던 정령들은 형체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를 입어 모조리 소멸 당했기에 더 이상 예린을 지켜 줄 정령이 남아 있지 않았다.
세아씨?
겨우 정신을 차린 한세아가 간절한 표정으로 내게 손을 뻗고 있었고, 뭐라 말하는 것 같았지만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어깨를 관통했던 뿌리는 어찌 제거하긴 했으나, 침식에 의해 지혈이 되지 않아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지혈을 해야━
내가 그리 생각하며 손을 뻗으려는 순간, 내 세상이 어둠에 잠겼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완전한 어둠이었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것일까.
내가 지금 서 있는 건지, 앉아 있는 건지, 누워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건 누나도 마찬가지겠지. 재앙과 연결된 건 나 혼자만이 아니었으니까.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다. 어둠에 잠긴 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조차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으니 나는 이미 죽은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로?
지수는 어떻게 됐지? 예린이는? 세아씨는?
나와 같은 상태일 누나는?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이대로 어둠에 잡아 먹혀 모든 것이 끝?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으니 무력감이 몸을 잠식하고, 수많은 의문들이 고개를 들었다. 포기, 끝, 종말, 죽음. 부정적인 결말을 암시하는 단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여기서 결말이 나버린다면, 우리가 오염된 세계수를 막지 못한다면, 세상은 괴물들의 터전이 되고 말 것이다.
당연히 끝까지 저항하는 인간들이 있을 것이고, 그들 나름대로 발악을 이어가겠지만, 결국 죽음을 면하지는 못하겠지. 그러한 결말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면, 어쩌면 여기서 주저앉아버리는 게 좀 더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발버둥치면 칠수록 느껴지는 것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오직 고통뿐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나는 지금까지 뭘 위해서 여기까지 걸어왔지?
숱한 위험을 겪어도 내가 여정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
그건 사람들이 다시금 내일을 바라며 살아가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언제 괴물들이 들이닥칠지 몰라 잠조차 편하게 잘 수 없는 세상이 아니라,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놀 수 있는 세상을 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상한 음식을 먹으며, 오늘 하루를 겨우 버텨 내는 그런 세상이 아니라, 수확의 기쁨을 기다리며 미래를 그리는 세상이 다시 오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의 세상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는 세상을 사랑했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붙잡지는 못하겠지만, 언젠가 그 세상을 다시 볼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
그러니 나는 지금까지 계속 걸어왔다. 그 세상이 있는 미래까지 가는 길이 아무리 험난하고, 고되더라도.
나 혼자만이 걷는다고 해도, 그 발자국은 남겠지. 그럼 그 발자국을 따라오는 사람들이 있을 거다. 그렇게 발자국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면 언젠가는 길이 만들어질 거고.
그러니 나는 재앙의 바람대로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여기서 포기하면 어떻게 될지 뻔히 아는데,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었다.
뭐라도 해보기 위해 발버둥치려던 그때.
'아, 흐윽···. 현우야, 내 말 들려? 지금 너와 재앙의 연결을 약화시키는 중이야.'
나와 같은 상태에 빠진 누나의 목소리가 뇌리에 울렸다. 재앙이 그랬듯이 목소리를 전달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감각으로 보는 세상이 나타났다. 입자로 구성된 세상이었다. 누나가 무슨 조치를 취한 모양이다. 촉각도, 후각도, 청각도 다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어둠뿐인 세상을 보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방비가 부족해서 이렇게 됐지만, 침식 경로를 알아차린 이상 확실하게 막아 낼 수 있어. 그런데 침식을 완전히 밀어 내려면···.'
말을 흐리는 누나의 목소리. 허나, 나는 그녀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았다.
'시간이 필요하단 말이구나.'
'···응. 지금 재앙이 문에서 추출한 검은 입자로 우리를 죽일 준비를 마친 상황이야. 한번. 단 한 번만 막아 낸다면,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 있어. ······할 수 있겠어?'
재앙의 공격을 막아 내기만 한다면, 지수, 한세아, 예린의 부상은 물론이고 나와 자기 자신을 뒤덮은 침식을 몰아낼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누나.
'해 봐야지. 아니, 해내야지.'
내가 누나에게 할 말은 그것뿐이었다. 그 재앙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건 현재 나 혼자뿐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입자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세상을 그저 한 걸음 내디딜 따름이었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인간이 걷는데 필요한 감각들은 여전히 느껴지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걷겠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이미 앞으로 걸어 있었다.
인간의 시각과 전혀 다른 형태의 세상이 느껴진다. 입자로 이루어진 세상. 특히나 검은 입자가 가득 차 흑백으로 보이는 세상에서 무엇보다 더 어두운 힘이 보였다.
그건 재앙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휘몰아치는 검은 입자가 한 점으로 집속되며 곧 있을 공격을 알렸다.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섬뜩하게 다가오는 공격이었다.
━━━━!
일 점으로 모였던 검은 입자가 일직선을 그리며 순식간에 닥쳐 온다. 거대한 힘의 와류가 내가 서 있는 곳을, 우리가 버티고 있는 곳을 밀어 버리기 위해 쏟아진다.
아직 놓치지 않고 있던 나뭇가지를 더욱 꽉 쥐는 것과 동시에 칼카타가 말한 것들이 떠올랐다.
- 태산같이 대지를 지탱해라.
거대한 힘의 덩어리가 나를 덮쳤다. 고통이 느껴지진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내 다리가 꺾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속으로 외침을 내지르며 버텼다.
- 적에게서 눈을 떼지 마라.
검은 입자를 사방으로 발산하는 인영이 보인다. 내가 죽여야 할 적이었다. 그 적은 내게 강한 적대감을 드러내며 힘을 더 쏟아붓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압도적인 격차였던 그 힘이 주는 막막함이 더 강해졌다.
- 등 뒤에 누가 있는지 잊지 마라.
입자로 보는 세상에서 당장이라도 꺼질 것처럼 흔들리는 푸른빛 무리가, 꺼져가는 푸른빛이 내 뒤에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내가 그녀들의 앞에 서 있다는 뜻이리라.
- 그리고 한 걸음 내디뎌라.
나는 버틴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나를 믿고 따라와 준 사람들과 함께.
-그것이 투쟁.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방식이다. 그러니, 걸어라.
칼카타가 자신이 한 말을 지키며 나와 내 일행을 지켰던 것처럼, 이번에는 내가 그 말을 지킬 차례였다.
거세게 박동하는 심장을 더욱 쥐어 짜내며 푸른 불을 뽑아낸다. 그렇게 어둠에 잡아먹히지 않게 저항한다.
"으아아아아아아!"
결국, 나는 우리에게 쏟아지고 있는 검은 입자 응집체를 위로 밀어낼 수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살아나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