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81 - 481. And 完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눈을 뜨자마자 누나 옆에 앉았다. 이제는 하루 일과로 자리 잡은 일이었다.
내가 쓴 일기는 어느새 남은 페이지가 거의 없을 정도로 내용이 가득 차 있었다. 1권을 다 채울 만큼 일기를 썼음에도 누나는 아직도 깨어나지 않았다.
"하아···."
한숨을 쉬며 누나의 모습을 하염없이 눈에 담았다. 사람 속도 모르고 새근새근 자는 모습. 그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몸이 마르거나 이상이 생기는 일은 없었다. 되려 시간이 지날수록 건강을 되찾는 모습이었다. 푸른 입자 덕분일까.
메이벨의 손을 잡은 채 속으로 얼른 일어나기를 바라며 기도한다. 그러다가 문득 무언가가 뒤척거리는 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그리고.
"······."
"······."
눈을 부스스하게 뜬 누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누나는 잠이 덜 깨서, 나는 내가 헛것을 보나 싶어서, 서로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누나? 메이벨! 진짜 일어난 거야?!"
멍하니 누나를 부른 나는 이내 벌떡 일어났다. 어찌나 세게 일어났는지 의자가 뒤로 넘어갈 정도였다.
"현우야···?"
잠을 그렇게나 잤으면서 아직도 졸린 것인지 비몽사몽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누나. 그녀는 우당탕거리며 넘어진 의자 소리에 서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의지가 넘어지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건 누나만이 아니었다. 방에서 일어난 소란에 지수, 세아, 예린이 급하게 뛰어온 것이었다. 그녀들이 문을 벌컥 열면서 외쳤다.
"무슨 소리야! 오빠, 무슨 일-!"
아침을 준비 중이었는지 앞치마를 두르고 있던 지수는 메이벨이 일어난 모습을 보고 입을 꾹 다물었다. 뒤따라온 세아, 예린도 뭐라 말하려던 자세 그대로 굳었다.
잠시 침묵이 내려앉은 사이에 지수가 나를 툭툭 친 다음에 입을 열었다.
"···오빠, 일단 우리는 나가 있을게."
"그게 낫겠다. 예린아, 나가 있자."
"네. 오빠,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 불러요!"
지수의 말에 동의한 세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예린을 데리고 방 밖으로 조용히 나갔다. 지수도 내게 눈짓을 보낸 뒤 그녀들을 따라 나갔다.
지수, 세아, 예린이 나가자 방 안에는 나와 누나뿐이었다. 누나가 몸을 일으키려는 것 같길래 나는 그녀를 부축해서 침대 머리에 등을 기댈 수 있게 도와주었다.
"나 얼마나 잔 거야···?"
누나는 세아가 안고 있는 유정란이나 지수의 살짝 부푼 배를 보고 무언가를 직감했는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내 눈치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거의 8개월 정도."
입을 열자 나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나왔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아는데, 놀람, 안도, 화남 같은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서 제어가 안 되는 느낌이었다.
"8, 8개월? 그렇게나 많이···?"
"그래, 그렇게나 많이. 금방 일어난다고 했으면서."
"미안해."
누나는 우물쭈물하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잠을 아주 푹 잤는지 생기가 가득해 보였다.
그 모습에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화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강한 안도감만이 남았다. 품에 넣고 꽉 안고 싶었지만, 누나의 몸 상태가 정확히 어떤지를 모르니 최대한 참았다.
"몸은 좀 어때? 배는 안 고파? 몇 개월 동안 아무것도 안 먹은 상태라 일단 물부터 좀 마시자. 입술만 축이는 정도로. 속이 놀랄 수 있으니까."
내가 물이라도 가져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문이 살짝 열렸다가 닫혔다. 시선이 향한 곳에는 미지근하게 데워진 물이 담긴 컵이 놓여져 있었다. 밖에서 대기하는 그녀들이 가져다준 모양이다.
나는 물이 담긴 컵을 누나에게 건넸다. 그리고 컵에 담긴 물을 호록 마신 누나는 망설이다가 고맙다는 말 뒤에 뒷말을 덧붙였다.
"···많이 걱정했겠네."
"그럼 했지."
당연한 걸 묻냐는 내 말에 메이벨은 배시시 웃었다.
"왜 웃어?"
"그냥. 미안하긴 한데, 네가 걱정했다니까 왠지 기분이 좋아- 아니, 걱정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내 표정을 보지 않고 말하다가 내 표정을 보고 나서야 황급히 말을 바꾸는 누나였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몸은 이제 멀쩡하니까 더 걱정 안 해도 돼. 이거 봐. 나 완전 팔팔-"
누나의 말은 더 이어질 수 없었다. 내가 그녀를 품에 안았기 때문이었다.
"···진짜 걱정 많이 했어. 금방 깨어난다던 사람이 몇 개월이 지나도 일어날 생각을 안 해서."
"응, 미안. 이제 괜찮아."
그녀는 아이를 달래듯이 내 등을 토닥거렸다. 귓가에 들리는 그녀의 숨소리, 몸에 닿은 곳에서 전해지는 체온과 손길이 나를 빠르게 안정시켰다. 특히 누나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되니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 기쁨이었다.
"나 자고 있다고 집에만 있었던 건 아니지? 그럼 누나 슬플 것 같은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면 놀랄 걸."
서로가 살아 있음을 느낀 포옹이 끝난 후, 나는 누나에게 들고 있던 일기장을 건넸고, 그동안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녀는 이야기를 듣는 내내 자신이 잠든 동안 일어난 변화를 많이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그 모습에 나는 한 가지 제안을 건넸다.
"누나, 밖에 한번 나가볼래? 아직 걷는 게 힘들 테니까 내가 업어 줄게."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더 확실하다고 하지 않던가. 마침 날도 매우 포근한 날씨인데다가 하늘도 매우 화창했으니 오늘만큼 제격인 날이 없기도 했다.
허나, 내 말에 돌아온 반응은 내 예상과 조금 달랐다.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던 누나가 밖에 나가자는 말에 망설이는 몸짓을 보였던 것이다.
"당장 나가자는 건 아니야. 누나가 원할 때 그러자는 이야기야."
나도 황급히 말을 바꾸었다. 누나가 다 나았다고 직접 말하기는 했지만, 그건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야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이제 괜찮다, 라는 말은 언제나 누나가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했던 말이었으니까.
"어, 그···. 나가보고 싶긴 한데, 밖으로 나가는 게 뭔가 좀 무섭기도 하네···. 막 심장도 쿵쾅거리고···."
불안함이 몸을 잠식한 듯 심호흡을 하는 누나를 본 나는 당연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누나의 시간은 오염된 세계수, 재앙을 세상에서 내쫓은 날. 그때 그 시간에 아직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붙잡혀 있는 것이다. 몇 개월 전 세계수가 정화된 그날에 말이다.
"그럼 오늘은 일단 마저 쉰 다음에-"
"후우···. 아니. 현우야, 나가보고 싶어."
내 손을 잡으며 말한 누나. 숨을 천천히 내뱉은 그녀는 단호히 말했다. 불안에 떨면서도.
그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대답. 예전부터 들려주고 싶었던 대답.
"···그래, 알았어. 나가자. 보여주고 싶은 게 많아."
***
나와 누나는 나란히 걸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그녀는 처음에 균형을 쉽게 잡지 못해 휘청거렸지만, 지금은 얼추 잘 걷고 있는 중이었다.
중간중간 넘어질 것처럼 다리가 풀리는 건 내가 잡아주는 걸로 해결했다. 혹시나 햇빛이 강해 피부가 상할까 봐 모자도 하나 씌워 주었다.
메이벨은 몸을 더 단단히 고정시키기 위해 내게 팔짱을 꼈다. 서로 얽힌 판에 서로의 체온이 전해진다.
지수, 세아, 예린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우리를 따라오고 있는 중이었다. 혹여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 대기하는 구조대인 셈이다.
부스스-
봄이 지나 여름에 가까워지고 있는 시기. 짙은 녹음이 드리운 풍경이 누나의 눈에 그대로 새겨졌다. 사람들이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풍경과 아침부터 기운차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까지도.
간혹 나를 알아본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 오다가 누나를 보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럴 때마다 누나는 몸을 움찔거렸다.
"······."
누나는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하기 위해 입술을 달싹거리긴 했으나, 그뿐이었다. 입안에 맴돌던 단어는 끝내 조립이 되지 못해 허무하게 흩어졌다. 그렇게 세상을 처음 보는 아이처럼 복구되고 있는 세상을 눈으로 하나하나 담았다.
"······."
나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지금은 말없이 꽉 쥔 손이 너무 기뻐서, 그 손의 온기를 느끼는 것만 해도 너무 벅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그저 메이벨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은 곳을 향해 천천히 걸어갈 따름이었다.
이윽고.
"여기야."
나와 누나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몇 개월 전 오염된 세계수가 있었던 장소, 현재는 화원이 자리 잡은 장소에 말이다. 푸른 하늘과 함께 화창한 햇빛이 화원을 비추고 있었다.
"···꽃?"
누나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유는 몰라도 누나와 내가 문을 타고 넘어왔을 때, 은방울꽃이 피어났었어. 아무래도 겨울이 오다 보니까 그날 피었던 꽃들은 금방 시들고 말았지만, 씨앗을 얻어서 다시 키운 거야. 누나가 눈을 떴을 때 보여주고 싶어서."
그날의 흉터를 조금이나마 덜 보았으면 싶어서 화원을 만들었다. 여기를 전부 꽃으로 뒤덮으면 그날의 기억이 조금은 좋게 변할까 싶어서. 그러길 바라서.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그래서 씨앗을 뿌렸다. 자랄 수 있게 물을 주었다. 빛을 볼 수 있게 도와주었다. 누나가 내게 해주었던 것처럼.
누나는 한참 동안 화원을 바라보았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그녀의 하얀 원피스가 살랑거린다.
메이벨이 입을 연 건 시간이 상당히 지난 후였다.
"···있잖아, 현우야. 이런 말 하면 안 된다는 거 아는데. 또 혼날 거라는 거 아는데. 하나만 물어볼게. 나···, 살아도 될까?"
쌓이고 쌓인 죄책감에 살아도 되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녀가 내게 묻는 건 정말로 그걸 묻는 것이 아니었다.
묻는 것이 아니라 바라는 것.
그녀는 내게 살아도 된다며 말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누나를 조심스레 앞으로 이끌었다. 은방울꽃이 피어 있는 곳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누나, 오랜만에 손금이나 좀 볼까. 이번에는 내 손금이 아니라 누나 손금을 보는 거야."
나는 그녀가 죄책감에 매몰되지 않게 만들 거다.
"누나는 죄가 많은 남자에게 걸려서 마음 고생을 할 예정이야."
누나의 손을 보지도 않고, 그저 꽉 잡은 채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가정에 불화는 없겠어. 누나 성격이 모나지 않기도 하고, 주변에 좋은 사람들만 모이는 운명이거든. 자기 영역 안에 들어온 사람은 확실히 지키려는 편이기도 하고."
"몸도, 마음도 건강해서 아픈 걸로 고생할 일도 없겠다."
"누나 생명선은 유독 길어서 아주 오래오래 살 운명이야. 매우 행복하게 살 운명이고. 그래, 무엇을 하든, 누나는 반드시 행복해질 거야."
내가 본 누나의 손금은 누나가 봐주었던 내 손금과 같은 결말에 도달했다. 내 말이 이어질수록 누나는 고개를 숙였다.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똑같잖아···. 내가 봐준 거랑···."
"똑같은 건 당연하지.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나 믿지?"
"···진짜 바보같이···."
메이벨은 내 손을 놓고서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리고 뒤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너를 안 믿으면 누구를 믿겠어."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 사점을 넘어선 사람에게만 불어오는 두 번째 바람이 그녀의 모자를 날려 보냈다. 세상을 보는 눈을 가리고 있던 모자가 날아가자 그녀의 눈은 세상을 오롯이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울면서 보는 세상.
폐허 위에 생긴 화원.
흉터 위에 돋은 새살.
"누나, 살아줘. 나랑 같이. 다신 나한테서 떨어지지 마. 밀어내지도 말고."
이번에는 내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언제나 먼저 다가와 주었던 누나가 그랬던 것처럼.
"완전 울보네. 울보."
"사랑한다고 말해 줘."
"사랑해."
"또."
"사랑해."
"한 번만 더."
"사랑해."
"···응, 나도 사랑해."
그 말을 끝으로 내게 안긴 누나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눈물이 떨어진 곳에서부터 새로운 은방울꽃이 피어났다. 그렇게 은방울꽃이 온 세상을 뒤덮었다.
인간이 남긴 흔적은 더 이상 지상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허나, 그래도 상관없었다. 다시 주춧돌부터 쌓아가면 되니까. 이제 다시 그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까.
처음부터 시작하는 건 당연히 어렵겠지. 그러나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사점을 버텨내는 건 당연히 힘들겠지. 그러나 충분히 견뎌낼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살아갈 것이다. 앞으로 새로이 만들어 나갈 세상에서. 두 번째 바람이 불어오는 이 세상에서.
"언니! 울지마요! 이거 줄게요! 선물이에요!"
풀숲에서 예린이 튀어나왔다. 상황이 얼추 끝났다 싶어 튀어나온 모양이다. 아이의 손에는 우리가 메이벨을 기다리면서 만든 인형들이 들려 있었다.
"언니 달래라고 둘만 보냈더니 오빠는 왜 언니를 울리고 그래? 이러다가 언니 몸 상하면 어쩌려고."
나를 장난스레 타박한 지수는 내게 고생했다며 엉덩이를 툭툭 손으로 쳤다.
"언니, 물 좀 마셔요. 여기 손수건도."
"흑···. 다들 고마워요···."
예린이 준 인형들을 끌어안고, 세아가 건넨 물을 꿀꺽꿀꺽 마신 누나. 그녀는 지수, 세아, 예린을 차례대로 보면서 감사를 표했다.
울어서 코가 새빨개진 채로 웃는데, 그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우리가 만든 인형을 마음에 들어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이어서 한 자리에 모인 우리는 세아가 가져온 아침을 나눠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누나는 몇 개월 만에 일어난 것치고는 그녀들과 쉽게 어우러졌다. 지수, 세아, 예린이 살갑게 구는 것도 한몫하고 있었다.
내가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나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까지 나누는 걸 보니 말 다한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틈에 결혼 이야기까지 나왔다. 얼마 전에 결혼식을 올린 박지영과 최명철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말이다.
"현우 너, 아직도 결혼식 안 올렸다고? 지금 애들 다 임신했는데, 대체 언제 하려고?"
"······."
안 그래도 신경 쓰고 있던 부분이건만, 콕 집어서 말하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우물쭈물하다가 못했다는 답을 돌려주니 누나가 나를 타박했다.
"정확히 말해. 못한 거야, 안한 거야?"
굳이 따지자면 안한 거에 가깝다. 정신이 없는 시기는 지났으나, 마음을 영 다잡을 수가 없었으니까. 지수와 세아도 메이벨이 눈을 뜨면 하자고도 했고.
결국 원인 제공은 누나라고 할 수 있었지만, 지금 그런 말을 했다가는 뒤에 이어질 상황이 불 보듯 뻔했기에 꾹 참았다.
"아니, 이제 해야지···."
"으이구, 그러면 안 돼. 애들이 말은 안 했어도 많이 앓았겠네. 안 그래도 여럿이서 할 텐데."
"······."
그러면 조금 빨리 일어나던가, 라는 말이 나올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항변도 제대로 못한 나는 쭈그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요, 언니! 그때 부케 던진 거 제가 받았거든요."
"지수야, 너 그거 허공에 떠 있는 걸 낚아챈 거잖아."
"오빠, 지금 그게 중요해? 어쨌든 내가 잡았다는 게 중요한 거지!"
이럴 때 누구 하나는 내 편이 되어 나를 도와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건만.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나를 놀려대고 있었다.
그래도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잃어 버렸던 일상이 이제서야 돌아온 느낌이라 좋은 기분이었다.
나는 누나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눈가에 물기가 남아있는 메이벨은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는 듯 해맑게 웃고 있었다.
은방울꽃의 향기는 흉내 낼 수 없다. 아무리 비슷하게 따라 해도 결국 그건 원본이 아니었다. 재앙이 누나의 몸을 복제했지만, 결국 누나가 될 수 없었던 것처럼.
내게 있어서 누나의 존재가 은방울꽃과 같았다.
그런 은방울꽃의 꽃말은,
틀림없이━
행복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