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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483화 (외전) (484/497)

Chapter 483 - 483. 외전 - 설 (1)

새해가 밝았다.

나, 지수, 예린, 세아, 메이벨은 새해를 맞아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예린아, 이거 하나씩 테이블로 옮겨줘."

"알았어!"

예린의 활기찬 목소리와 함께 달그락 소리가 들렸다. 특별한 날이라 오늘 준비된 식사도 특별했기에 예린의 목소리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예린이 다다다 움직일 때마다 원목 테이블 위는 김이 폴폴 올라오는 음식이 담긴 그릇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여럿인만큼 다양한 종류의 먹을 것들이 채워졌다.

오븐에 직접 구운 식빵.

영역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어느 한 창고를 발견했고, 그곳에서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은 이스트를 얻은 덕분에 만들 수 있었던 빵이었다. 예린은 전투 식량에 들어있는 빵이 아닌 세아가 직접 만든 빵을 먹을 생각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산딸기로 만든 잼.

검은 입자가 사라짐에 따라 맺힌 열매에도 검은 입자가 더 이상 검출되지 않았고, 식용으로 사용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산딸기로 잼을 만들었었다.

비록 작년에 잠깐 수확했던 것이기에 남은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오늘 하루 식사를 빛내기에는 충분했다. 메이벨의 취향대로 설탕이 가득 들어간 잼은 지수가 특히 좋아했다.

고기가 듬뿍 들어간 뭇국.

하우스가 쉴 새 없이 가동되면서 여러 작물들을 얻을 수 있게 되었는데, 무도 그 한 종류였다. 무가 포슬포슬하게 익을 때까지 고기와 같이 끓이니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여기에 파까지 들어가니 맛이 그냥 끝장났다. 지수가 간 좀 봐 달라고 해서 한번 맛 본 것이 아직도 입 안에 맴돌았다.

흰 쌀밥과 바삭하게 구워진 생선 구이.

물고기. 그것도 아주 커다란 물고기. 살과 지방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있는 흰살 생선. 한창 제철인 가자미가 식탁에 올랐다.

지수가 한창 입덧으로 고생할 때 게가 먹고 싶다고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거대 게를 잡으면서 미리 봐둔 포인트에서 낚아온 것이었다.

정확히는 가자미 비슷한 생선이지만, 뭐 식용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게 어디인가. 맛도 좋고, 크기도 거의 사람만한데다가 살도 아주 통통하게 올라서 먹을 것이 많았다.

아침 식사라고 하기에는 호화로운 식단. 호화롭다, 라는 건 단순히 가짓수가 많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통조림 캔이 하나도 없다는 의미였다.

거리를 배회하는 나무 인간과 변종들이 사라지자 그 반대 급부로 야생 동물의 수가 매우 늘어나게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들 어디에 숨어 있었던 것인지 몰라도 겨울이 끝나가자 높은 활동성을 보여주기 시작한 야생 동물들.

그 덕분에 우리는 신선한 고기를 얻을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통조림만 먹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 점이 오늘 가장 특별한 점이었다.

"준비 끝났어요!"

"그래, 어서 먹자."

예린의 외침을 끝으로 우리는 의자에 앉았다.

나와 지수가 국자로 뭇국을 그릇에 나눠 담고, 밥을 그릇에 담는 동안 예린과 메이벨은 식빵에 손을 올렸다. 그녀들은 식빵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산딸기잼을 듬뿍 올려 발랐다.

산딸기를 아끼지 않고 넣었던 터라 새콤달콤한 향이 확 퍼진다. 그 냄새를 맡은 지수의 코가 킁킁거린다. 지수의 시선이 순간 딸기잼 샌드위치로 향했으나, 그녀는 이내 생선 구이로 눈길을 돌렸다.

"맛있다···!"

군침을 꿀꺽 삼킨 예린이 빵을 크게 베어 물면서 한 말이었다. 입 안 가득 채워진 음식물에 발음이 엉망이었지만, 행복해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꼬리를 마구 살랑거리는 예린을 본 메이벨도 킥킥 웃으면서 빵을 한입 물고 우물거렸다.

다들 맛있게 먹고 있는 와중에 나도 뭇국의 국물을 들이켰다. 입맛을 돋우는 감칠맛이 식도를 타고 넘어간다.

그런데 오늘따라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얼핏 보면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들이지만, 나는 무언가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다 같이 살면서 단련된 내 유부남 센스가 그렇게 느꼈으니 확실했다.

'···무슨 일을 또 꾸미고 있나?'

나는 눈치를 보며 지수, 세아, 메이벨 순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들의 손가락에는 하나같이 신비한 빛을 내는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작년 늦은 봄, 5월에 결혼식을 올리면서 내가 직접 끼워준 것들이었다.

각 생일에 맞춘 탄생석으로 맞춘 반지. 5월의 탄생석인 에메랄드는 메이벨에게, 9월의 탄생석인 사파이어는 지수에게, 2월의 탄생석인 자수정은 세아에게, 12월의 탄생석인 터키석은 내게.

━가 원래 계획이었지만, 멀쩡하고 마음에 들 정도의 크기인 보석, 그것도 딱 맞는 탄생석을 단시간에 찾을 수가 없어서 푸른 수정으로 대체해야만 했다.

그래도 세공을 난쟁이 칸과 르한이 직접 해주었으니 푸른 수정은 어지간한 보석 못지 않게 아름다운 빛을 냈다.

링 형태의 수정 내부에는 내가 불어넣은 푸른 불이 일렁거리고 있었는데, 세계에서 단 3개, 아니, 내 것까지 단 4개밖에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한 형태의 수정이었다.

- 죽음이 두 사람- 아니, 네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서로를 평생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는다고요?

- ······.

사회를 맡은 난쟁이 칸이 잠시 당황하는 작은 해프닝이 있긴 했으나, 결혼식은 매우 성공적으로 끝났다. 벽에 걸린 커다란 액자에 담긴 결혼 사진이 그 증거였다.

사진에는 아름답게 꾸민 3명의 신부들이 내 주위에 붙어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뭘 꾸미고 있는 게 아니면 뭐가 문제지? 애기가 밤에 깨서 잠을 잘 못 잤나?'

생각해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세아가 낳은 유정란에서 태어난 첫째, 이루리는 지금 침대에서 지수가 낳은 아기인 이지아와 함께 잘 자고 있었으니까.

칭얼거려도 내가 안아서 달래면 빠르게 그치는 편이었고, 마지막에 내가 직접 재웠으니 아기들 문제는 확실하게 아니었다.

아기들은 우리가 밥을 먹기 전에 세아가 미리 수유를 해주었기에 세상 모르게 자고 있었다. 새근거리며 자는 모습들은 아주 천사가 따로 없었다.

젖살이 통통한 손이 무의식적으로 죔죔을 할 때마다 심장에 해로웠다. 나와 그녀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라 생각하니, 행동 하나하나가 매우 크게 와닿는 느낌이었다.

루리와 지아는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는데, 시기상으로는 루리가 껍질을 깨고 태어난 다음 지아가 바로 출산 되었다고 보면 되었다.

루리가 예정일을 넘겨서 태어나긴 했으나, 원체 우량아로 나와서 걱정할 일은 생기지 않았었다. 지아는 말할 것도 없이 매우 건강했다.

'깜빡하고 루리 줄을 풀어놨나?'

루리에게 날개는 없었지만 간혹 뜬금없이 허공에 붕 뜨는 경우가 있었다. 루리가 위험한 곳으로 날아가지 않게 붙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줄을 곁눈질로 확인해보니 이것도 문제가 아니었다. 하네스 형태의 줄이 아기와 침대 난간에 잘 묶여 있었던 것이다.

'그럼 대체 뭐가 문제지? 빨리 알아채야 하는데···.'

이런 느낌이 들 때마다 내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다는 걸 몸소 깨달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나는 밥을 먹으면서 주변을 곁눈질로 살폈다. 허나,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일단 주변 상황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걸 인지하던 와중에 밥을 우물거리던 지수가 메이벨을 보며 입을 열었다.

"메이벨 언니."

"응?"

빵을 입에 물고 고개를 갸웃하는 누나. 잠에서 깨어난지 시간이 7개월 정도 지난 현재, 그녀는 매우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따 밤에 저한테 잠깐 와요. 준비해야죠."

"준비? 아, 나 도와줄 거야?"

"그럼요. 특별한 날이니만큼 제가 아주 장난 아니게 만들어 줄 테니까 그냥 몸만 와요. 나머지는 제가 준비할 게요."

"고마워···!"

메이벨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답했다. 어찌나 기쁜 것인지 지수를 살짝 안았다가 풀어줄 정도였다.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지수와 메이벨이 나눈 대화의 흐름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게, 뜬금없이 나온 대화이지 않은가.

"오빠는 몰라도 돼. 서프라이즈니까."

"보통 서프라이즈를 앞에서 대놓고 말하나···?"

"와, 이거 맛있네! 오빠 덕분에 오늘 컨디션 최고야. 이거 남은 건 냉장고에 넣어 놨다고 했지? 내일도 구워 먹어야겠다."

지수는 내 말에 답하지 않고, 화제를 획 돌려버렸다. 비슷한 화제도 아니고 관련성이 하나도 없는 화제로 틀어버린 것이다.

지아를 낳고 빠르게 몸을 회복한 지수는 아주 살짝 남아 있던 앳된 티가 사라졌다는 것 빼고는 아기를 낳기 전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조금 성숙해지나 싶었지만, 그건 또 아니었다. 지수는 지수였다.

누나는 젓가락을 입에 살짝 물고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말할까 말까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물론, 내가 그냥 넘어갔으면 하는 기색이 더 강했다.

나는 그런 지수와 누나의 반응에 어쩔 수 없이 픽 웃으면서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뭘 꾸미고 있는지는 몰라도 내게 해가 되는 일은 아닐 테니까.

지금까지 지수가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든 적은 많았어도 전부 나를 위한 이벤트였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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