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493화 (494/497)

Chapter 493 - 493. 외전 - 설 (11)

나는 방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이불 뭉치에 걸음을 멈췄다. 침대 옆 서랍장 위에 올려진 수정 파편 등. 그 등이 수면 조명처럼 은은하게 방 내부를 밝히고 있었는데, 그 덕분에 방 내부는 어둡지 않았다.

그 빛을 받고 있는 이불 뭉치- 아니, 누나가 입을 열었다.

"아, 안녕."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얼굴만 빼꼼 내민 채 어색하게 건넨 말. 나는 내심 당황한 기색을 숨기며 물었다.

"누나, 왜 그러고 있어? 추워?"

"됐고. 이리 와, 빨리."

메이벨은 내 물음에 대한 답을 주는 대신 옆에 와서 누우라는 손짓을 보냈다. 거북이도 아니고 이불 뭉치에서 손만 살짝 빼서 침대를 툭툭 치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이불이 얇은 탓에 은은한 빛이 이불을 통과했고, 그녀의 몸의 굴곡이 어느 정도 드러나게 되어서 그 정도 감상에 그친 것이지, 아니었다면 해괴한 무언가를 보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

나는 일단 누나가 시키는대로 옆에 누웠다. 침대의 흔들림이 채 멈추기도 전에, 누나는 내 팔을 펴서 베개로 삼았다.

잠시 몸을 뒤척거린 그녀는 편한 자세를 찾은 듯 이내 만족스러운 비음을 흘렸다. 여전히 이불 뭉치 상태였다.

나와 누나는 나란히 누워서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지수와 세아가 시간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는 걸 보니, 나와 메이벨 둘이서 시간을 보내라고 자리를 만들어준 모양이다.

무슨 말이라도 꺼내야 할까,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편하게 누워서 체온을 나눴다.

그러던 와중 메이벨은 이불이 밀려나는 게 무섭다는 듯 옷깃을 여미는 것처럼 이불을 모았다. 샤워를 마치고 난 후여서일까. 그녀는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현우야."

"응."

"이러고 있으니까 좋다···."

누나는 그리 말하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녹색 눈망울이 깜빡거리며 나를 눈에 담았다. 내 눈의 깜빡거림 하나마저도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전부 담았다.

"···현우야."

잠시 심호흡을 한 후,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재차 부르는 메이벨. 그녀는 상기된 낯빛으로 묘하게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얼굴과 마주보고 있는 나도 절로 긴장이 되는 기분이었다.

"···응."

"오늘 세아 도와서 루리 씻기는데, 아기 엄청 이쁘더라. 말도 엄청 잘 듣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툭 꺼내진 말이었으나, 나는 그 안에 담긴 누나의 감정이 깊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누나의 말에 의해 그건 확신으로 바뀌었다. 어째서 지수와 세아가 들어오지 않았던 건지 그 이유마저도.

"세아의 아이를 보는 것만 해도 그렇게 느껴지는데, 내 아기였으면 대체 얼마나 이쁘게 보일까."

"······."

나는 말없이 팔베개로 사용되고 있는 팔을 접어서 누나의 상체를 끌어안았다. 옆에 나란히 누워있는 상태라 그녀는 자연스럽게 내 상체에 손을 올리며 내게 밀착되었다.

그동안 누나와 스킨십은 많이 했지만, 어느 선 이상은 넘지 않았다.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고는 하나, 아이를 가지려면 더 건강한 상태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누나가 원해도 내가 안된다며 말렸던 건데, 오늘 누나는 단단히 마음 먹고 온 듯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내가 어디 가지 못하게 다리로 나를 옭아맸다.

"아, 혹시 몰라서 오해할까 봐 말하는 건데, 루리랑 지아가 보기 싫다는 건 절대 아니다? 그냥 그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말이었어."

"그런 건 당연히 알지. 내가 누나를 모를까."

누나는 내 말에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내게 고정시켰다. 원하는 말을 듣기 전까지 돌리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현우 네가 내 몸을 걱정해서 그동안 안된다고 했던 건 알아. 하지만 나 이제 완전 건강해."

"······."

"나는 아기 취급을 받고 싶은 게 아니야. 내 아기, 아니, 우리 아기를 가지고 싶은 거지. 너와 나를 닮은 아기 말이야."

어느새 몸을 일으킨 메이벨은 그리 말한 것과 동시에 푹 뒤집어 쓰고 있던 이불을 벗어서 바닥에 떨어트렸다. 꽃이 만개하는 듯 드러난 누나의 모습과 함께 그동안 감추고 있던 내음이 확 퍼졌다. 은은하게 퍼지는 꽃 향기였다.

그녀가 입고 있는 시스루 재질의 옷은 하늘하늘하지만, 내부가 비춰지고 있었기에 굴곡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네가 직접 껴준 반지를 매일같이 보면서 생각해. 이제껏 꿈으로만 여겼던 것이 현실이 됐구나, 나는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들. 내게는 너와 결혼한 날 이후 매일이 쭉 꿈 같은 나날들이었거든."

방 내부에는 누나의 목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내가 누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수정이 발하는 옅은 빛에 둘러싸인 그녀는 매우 신비로운 분위기를 뿜고 있었다.

메이벨은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만지작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거 있지? 원래는 너랑 이렇게 같이 살면서 더 욕심부리지 말아야겠다, 이렇게만 살아도 더할 나위 없겠다, 싶었는데, 막상 행복하게 지내다 보니까 욕심이 생기더라. 나도 아이를 갖고 싶다. 이런 욕심이 계속 고개를 들었어."

누나는 앉은 상태로 아랫배에 손을 올렸다. 매우 얆은 옷의 재질이 손길에 따라 아랫배의 굴곡을 그대로 드러냈다. 마치 그곳이 비어서 허전하다는 듯한 노골적인 손길에 숨 쉬는 것을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는 네가 나를 많이 걱정하는 것 같아서, 아니, 많이 걱정하고 있어서 꾹 참았어. 루리와 지아를 보면서 갈증을 달래보려고 했지만, 그게 안되더라. 오히려 그 아이들을 볼 때마다, 보면 볼수록 그 욕심은 점점 더 커져만 갔어. 이제는 억누르기 힘들 정도로."

꼭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아이들을 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아이들이 웃는 소리를 들을수록 자신의 아이를 더욱 원하게 되었다는 누나. 그녀가 내게 물었다.

"너는··· 안 그래?"

"···나도 그래."

나는 나를 눈에 담고 있는 녹안을 바라보며 고개를 무겁게 끄덕거렸다. 그녀가 바라는 건 나도 바라는 거였다. 사실 참고 있었던 건 누나만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사랑하니 뭐니 했는데,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일정 이상의 진도를 나가지 못한다니. 물론, 몸을 섞는 것만이 사랑의 전부는 아니다. 그게 주가 되어서도 안 되고.

그저 사랑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를 얻고 싶었을 뿐이었다. 누나가 나를 애달픈 시선으로 바라볼 때 특히 그러했다. 내 피를 이은 아이가 우리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지 루리와 지아를 통해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럴수록 더욱 아직은 안된다며 누나를 달랬다.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누나의 몸 상태가 걱정이 된 까닭이었다.

8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자고 일어난 메이벨. 그녀는 내게 있어서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신기루와 같았다. 당연히 그게 아니라는 건 알고는 있었다.

단지 실수 한번에, 그 잠깐을 인내하지 못했을 때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 무서웠던 것뿐이었다. 참 바보같이 말이다.

지금은 누나가 물거품처럼 사라질 신기루도, 툭 하면 쓰러질 정도로 병약하지 않다는 걸 안다.

그럼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아도, 인내하지 않아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닐까.

내가 메이벨을 끌어안으려 하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다가왔다.

"···그럼 안아줘. 내가 정말로 살아있다는 걸 느낄 수 있게.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게. 꽃이 열매를 맺을 수 있게."

그녀는 나를 올려다보며 시선을 맞췄다. 이내 무언가를 기다리듯이 눈을 감았다.

여기까지는 자신이 왔으니, 이 다음부터는 내가 다가와야 한다는 듯 그렇게 눈을 감고 얌전히 기다렸다. 내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내 소매 끝을 잡고 있는 채였다.

팔에 전해지는 그녀의 미약한 힘은 내 몸을 숙이게 만들었다.

긴장에 의해 살짝 떨리고 있는 메이벨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나도 같이 눈을 감았다. 고개를 살짝 비틀어 숙였다.

그러자 입술에 말랑한 감촉이 닿았다.

"하웁···."

메이벨은 입술이 부딪히는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것처럼 소매 대신 내 손을 잡았다. 피부가 맞닿는 면적을 최대한 키우기 위해 빈틈없이 깎지를 껴왔다.

굳은 살이 가득한 내 손과 부드러움이 가득한 그녀의 손이 서로 얽혀 단단하게 굳는다.

손바닥과 손바닥이 서로 마찰하면서 서로에게 온기가 전해진다. 하얗던 피부가 점점 달아올랐다. 긴장을 많이 했는지 손에 땀이 배이기도 했다.

피부 사이의 수분기는 우리를 떨어트리기는커녕 더 꽉잡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맞잡은 손을 놓지 않기로 결심했었으니까.

내가 그녀의 손을 놓지 않고 오히려 힘을 살짝 더 주니, 그제서야 누나는 떨리는 숨소리가 아닌 조금 진정된 숨을 길게 내쉬었다.

"흐응···."

긴장이 서서히 풀리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숨소리가 나왔지만 메이벨은 여전히 입술을 내게 부딪히고, 혀를 섞었다.

숨을 쉴 틈도 주지 않고서,

자신을 완전히 각인시키겠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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