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영주 성에서의 경매
내가 인력소에 출근할 당시엔 Satisfy를 플레이한 시간이 하루 평균 5시간에서 6시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캡슐방에 출근 도장을 찍게 된 후부터는 달라지게 되었다.
플레이 시간이 약 10시간가량 더 늘어나서, 현재는 하루 평균 15시간 이상씩 Satisfy에 접속해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내가 하루에 제작할 수 있는 아이템의 숫자는 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숨결이 제작 아이템의 효과를 증폭시킵니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숨결>
Lv.2
아이템 제작에 심혈을 기울일 경우, 제작 아이템에 파그마의 후예의 의지가 깃듭니다.
제작 아이템의 모든 능력치가 7퍼센트 상승합니다.
제작 아이템에 희박한 확률로 특별한 기능을 부여합니다.
“제발 이번엔 레전드리 등급으로 떠라…….”
현재 나는 칸에게 새롭게 전수받은 제작법을 토대로 레벨 제한 120의 플레이트 아머를 제작하는 중이다.
사용된 재료값만 해도 무려 483골드! 이는 내 전 재산의 5분의 1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여태까지 내가 만들어 온 모든 아이템을 통틀어서 가장 비싼 아이템인 것이다.
기껏 거금을 투자했는데 노멀 등급으로 만들어질까 염려하여 제작 시간을 장장 20시간이나 투자했다.
“…그래, 솔직히 레전드리급까진 안 바란다. 하지만 최소한 유니크급으로는 완성돼주라. 제발 부탁이다…….”
명색이 전설의 대장장이이건만 이렇게 비굴하게 소망해야 하다니!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마지막 철판을 결합시켰다.
그리고 갑옷이 완성되었다.
<매우 섬세한 플레이트 아머>
등급:에픽
내구력:272/272 방어력:303 이동속도:-6%
*희박한 확률로 찌르기 공격을 완전하게 방어.
대단한 실력과 잠재력을 지녔지만 경험과 명성은 턱없이 부족한 이름 모를 장인이 신중을 가해서 제작한 갑옷입니다.
얇게 정련한 철판을 두 겹씩 덧대어 붙임으로써 방어력과 활동성을 모두 살려 냈습니다.
사용 조건:레벨 120 이상. 근력 380 이상.
체력 400 이상. 중급 헤비 아머 마스터리.
[에픽 아이템을 제작하여 모든 능력치가 +4 영구적으로 상승, 대륙 전역에 명성이 +80 상승합니다.]
“이런 제기랄!”
에픽템이 떠 버렸다.
노멀이나 레어템이 아닌 점만은 천만다행이지만, 내가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조금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원재료값이랑 캡슐방 사용료를 제외하면 그다지 이윤도 없을 것 같다.
칸은 내 속마음도 모르고 감탄하며 칭찬하기 바빴다.
“이게 정녕 내가 전수해 준 제작법으로 만든 갑옷이라고? 똑같은 제작법을 사용했는데도 어찌 이렇게 다른 게지? 역시 자네는 대단하군!”
“후… 이건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요?”
난 별로 기대하지 않고 물었다.
한데 칸이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흠… 솔직히 내 안목으로는 정확한 가격을 측정하기 어렵군.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정도의 물건이라면 대장간에 진열해 놓고 판매하는 것보다 기사님들에게 경매로 내놓는 편이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거지.”
“잉?”
기사들에게 경매로 내놓는다니?
NPC인 기사들이 경매로 아이템을 구매한다는 사실 자체도 놀랍고, 최소 180레벨인 기사들에게 고작 120레벨짜리 갑옷을 팔아먹을 생각을 하는 칸도 놀랍다.
칸이 설명했다.
“한 달 전에 새로 부임하신 영주님의 행렬식에서, 나는 영주님의 기사님들이 무장한 갑옷을 목격하고 감탄한 적이 있다네. 아무래도 프론티어에는 대단한 대장장이가 있는가 보다 싶었어. 하지만 지금 자네의 작품을 보니, 프론티어의 대장장이가 만든 작품보다 자네의 작품이 한층 더 뛰어나군. 하하, 자네는 파그마의 후예이니만큼 당연한 일일 테지만.”
오… 지금 내가 만든 갑옷이 180레벨 이상의 기사들에게 권유해도 좋을 만큼 성능이 뛰어나다는 건가?
하긴, 생각해 보면 내겐 ‘전설적 대장장이의 기술’과 ‘전설적 대장장이의 숨결’ 스킬이 있다.
각 스킬이 내가 제작한 아이템의 능력치를 각 12퍼센트와 7퍼센트씩 상승시켜 준다. 거기에 에픽 등급으로 만들어지기까지 했으니, 이 매우 섬세한 플레이트 아머의 성능은 사용 제한이 180레벨대인 노멀 혹은 레어 등급의 갑옷과 비등할 수도 있겠다.
‘숨결 스킬 덕분에 옵션도 부과됐고.’
나는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 질문했다.
“경매에 낙찰되면 수수료로 낙찰가의 몇 프로를 내야 하죠?”
“기사님들의 경매는 영주님의 성에서 진행되네. 주최자가 영주님 명의로 되어 있지. 본디 긍지 높은 귀족은 사사로운 득을 취하려고 하지 않는 법. 수수료는 일절 없다네.”
나는 즉각 결정했다.
“좋아요. 경매에 내놓도록 하죠.”
“잘 결정했네. 마침 이틀 뒤가 정기 경매일이니 내가 다녀오도록 하겠네.”
“아뇨. 제가 직접 갈게요.”
“음? 괜찮겠나?”
“네. 한 달 넘게 틀어박혀 있었으니 오래간만에 바깥 구경도 하고 싶고요.”
“음, 그래. 그러면 이걸 가지고 가게나. 이걸 가져가면 신분이 증명되기 때문에 별도의 절차 없이 경매에 물건을 내놓을 수 있을 걸세.”
[‘칸의 후계자’의 징표를 획득하였습니다.]
이 갑옷을 팔아서 과연 얼마를 벌 수 있게 될까? 칸이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제법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될 듯한데……?
‘아니, 너무 기대하지 말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니까.’
난 더럽게 운 없는 놈이다. 기대했다가 실망한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을 비웠다.
칸이 제안했다.
“앞으로 이틀 동안 이 갑옷만큼 뛰어난 무구들을 더 제작하는 걸 목표로 삼고 노력해 보는 게 어떻겠는가? 경매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이상 기왕이면 여러 개의 작품을 출품하는 게 더 좋지 않겠는가?”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어요.”
그 후 이틀 동안 나는 하루 20시간씩을 투자해서 2개의 아이템을 만들었다.
결과물은 불행하게도 노멀템 하나와 에픽템 하나였다.
“아니, 20시간 동안 만들어 댔는데 어떻게 노멀템이 뜰 수 있는 거야? 레어템 떠도 욕 나올 판국에 장난 까나.”
이게 진짜 말이 되냐?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S.A그룹의 농간이다.
놈들은 레전드리 전직자인 내가 너무 승승장구하게 되면 혹 게임 밸런스를 파괴할까 염려해서 내 아이템 제작 확률을 최악으로 조작해 놓은 게 확실하다.
그게 아니라면 나라는 놈은 자신이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운 없는 놈이었던 걸 수도 있고…….
***
영주가 기사들을 위한 정기 경매를 주최하는 이유는 2가지라고 한다.
우선 첫 번째 이유는 기사들이 항상 최고의 물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뛰어난 기술자들을 발굴할 기회로 삼기 위해서다.
왜 뛰어난 기술자들을 발굴하려 하는 거냐고?
그야 거래 대상으로 삼기 위해서다.
이번 경매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을 출품하게 되는 각 분야의 기술자들은, 앞으로 영주의 성에 물건을 납품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인생 한 방에 펼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웅성웅성.
윈스톤 성 별관 로비.
이번 경매에 아이템을 출품하고자 찾아온 수십 명의 사람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모여 있었다.
개중에는 NPC도 있었고 유저도 있었다. 또 대장장이도 여러 명이었다.
나는 그 대장장이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저 중에 실력이 뛰어난 대장장이가 있다면 우리 대장간으로 영입하는 것도 좋겠군.’
신입 대장장이를 뽑아서 평소에는 온갖 잡심부름을 시키고, 녀석이 만든 아이템을 판매할 때마다 수수료를 조금씩 뜯어먹으면 꽤나 편리할 것 같다.
‘칸이 물러나고 내가 사장이 되면 신입 대장장이들을 대거 영입해서 혹사시키는 방향으로 대장간을 운영해야겠어.’
일종의 노예 프로젝트를 진중하게 구상해 보고 있을 때 경매 관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앞으로 20분 뒤에 경매가 시작될 겁니다. 경매 진행 시간은 총 3시간으로 예정되어 있으며, 여러분께서는 경매가 진행되는 동안 대기실에서 기다리면 됩니다.”
알림창이 떠올랐다.
[당신은 영주가 주최한 경매에 아이템을 출품하게 되었습니다. 출품할 아이템과 그 아이템의 최소 입찰가를 설정해 주십시오.]
나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경매에 출품할 예정이었던 아이템들의 상세 정보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해 보았다.
<매우 섬세한 플레이트 아머>
등급:에픽
내구력:272/272 방어력:303 이동속도:-6%
*희박한 확률로 찌르기 공격을 완전하게 방어.
대단한 실력과 잠재력을 지녔지만 경험과 명성은 턱없이 부족한 이름 모를 장인이 신중을 가해서 제작한 갑옷입니다.
얇게 정련한 철판을 두 겹씩 덧대어 붙임으로써 방어력과 활동성을 모두 살려 냈습니다.
사용 조건:레벨 120 이상. 근력 380 이상. 체력 400 이상. 중급 헤비 아머 마스터리.
<일견 평범해 보이는 건틀릿>
등급:에픽
내구력:83/83 방어력:29
공격 속도:+4% 명중률:+8%
대단한 실력과 잠재력을 지녔지만 경험과 명성은 턱없이 부족한 이름 모를 장인이 제작한 건틀릿입니다.
외관은 특별할 게 없어 보이나, 직접 착용해 보면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게 기능합니다.
사용 조건:레벨 120 이상. 민첩성 100 이상.
“예정대로 이 두 개를…….”
결정한 나는 2개의 아이템을 경매 물품으로 등록했다.
[매우 섬세한 플레이트 아머의 최소 입찰 가격을 설정해 주십시오.]
[일견 평범해 보이는 건틀릿의 최소 입찰 가격을 설정해 주십시오.]
‘흐음… 얼마로 설정할까?’
60레벨대 장비 시세에는 빠삭했지만, 120레벨대 장비는 처음 만들어 봤고 처음 거래해 보기 때문에 시세가 도통 감이 잡히질 않았다.
‘재료값이랑 인건비까지 포함해서 최대한 비싸게 올리고 싶지만… 너무 비싸게 올리면 아예 입찰 자체를 안 할 수도…….’
고민하고 있는 내게 백발 소년이 다가와 물었다.
“님~ 뭐 문제 있으세요?”
“너는……?”
“안녕하세요. 전 스텡이라고 해요. 직업은 대장장이죠. 지켜보고 있자니 님도 대장장이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영주의 경매장에는 처음 와 보신 분 같아서 제가 뭐 도와드릴 거 없나 불러 본 거예요.”
방글방글 웃으며 말하는 소년의 이름.
뭔가 상당히 익숙하다.
‘스텡이 누구더라……?’
분명히 아는 이름인데, 내가 저 이름을 어째서 알고 있는 건지 도통 기억이 안 난다.
내 머리가 나빠서 기억 못하는 게 아니라,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으니까 기억이 안 나는 것뿐이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면서 스텡에게 설명했다.
“경매에 출품할 아이템의 입찰 가격을 설정 못하겠어서 고민 중이었다.”
스텡이 두 눈을 껌뻑였다.
“님의 스승님이 입찰 가격 정해 주지 않았어요?”
“스승님?”
“님한테 퀘스트 준 스승님요. 님도 스승님의 아이템을 경매에 출품하라는 퀘스트를 수행하는 중이잖아요?”
얘가 지금 뭔 소리야.
의아해하고 있자니, 스텡이 화려한 칼집이 돋보이는 한 손 검을 꺼내 보였다.
“이건 우리 스승님이 이번 경매에 출품하기 위해서 특별 제작하신 무기예요. 대단하죠? 사용 제한이 무려 190인 레어템이에요.”
고작 레어템 따위가 대단하게 보이진 않다만, 괜한 트집 잡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난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헤헤 웃으며 검을 돌려 넣은 스텡이 한숨을 쉬었다.
“하~ 우리 유저들은 대체 언제쯤 자신이 만든 아이템을 영주의 경매에 출품할 수 있게 될까요?”
처음부터 느끼는 건데, 뭔가 대화가 제대로 통하질 않는다.
나는 어긋난 대화 내용을 바로잡기 위해서 스텡에게 확인을 요했다.
“그러니까… 네가 지금 여기에 있는 이유는, 네가 만든 아이템을 경매에 내놓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의 스승이 만든 아이템을 경매에 내놓는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해서인 거야?”
스텡이 웃는 낯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야 당연하죠. 대장장이 랭킹 1위인 판미르조차도 영주의 경매에 출품할 수 있는 수준의 아이템을 만들지 못하는데, 저라고 다르겠어요?”
“…퀘스트 정보 좀 공유해 줄래?”
“응? 왜요?”
“아니, 뭣 좀 확인하고 싶어서.”
“네. 딱히 비밀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보여 드릴게요.”
[플레이어 ‘스텡’이 퀘스트 정보를 공유해 주고자 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내가 수락하자 퀘스트 정보가 떠올랐다.
<스승님의 심부름>
난이도:C
윈스톤에 새롭게 부임한 영주가 부임 이후 최초로 경매를 개최한다는 소식이다.
대장장이 라즈반은 이번 경매를 기회로 삼아 윈스톤 영주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윈스톤 진출의 발판으로 삼고자 한다.
그래서 제자인 당신에게 심부름을 시킨다.
퀘스트 클리어 조건:윈스톤 영주의 경매에 라즈반의 작품을 출품.
퀘스트 클리어 보상:20골드.
*라즈반의 작품이 경매에 낙찰될 경우, 기분이 좋아진 라즈반이 당신에게 새로운 제작법을 전수해 줄 수도…….
잊고 있던 사실인데, 일반 대장장이 유저들은 NPC 대장장이를 스승으로 두는 경우가 많다.
스승이 주는 퀘스트를 꾸준히 수행함으로써 대장장이 기술의 레벨도 올리고 새로운 제작법을 전수받기도 한다.
칸으로부터 아무 조건 없이 제작법을 전수받고 있는 나는 상당히 운이 좋은 케이스인 것이다.
‘이 퀘스트 정보를 보니까 확실히 알겠군.’
이곳을 찾은 유저들은 자신이 만든 작품을 경매에 출품하기 위해서 찾아온 게 아니다. 그들 역시 스텡처럼 스승의 심부름을 온 심부름꾼에 불과하다.
스텡의 말대로, 생산 계열 직업군 유저들의 현재 수준으로는 영주와 기사들을 만족시킬 정도로 빼어난 아이템을 제작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확실히 알겠다. 나와 일반 유저의 능력 차이는 아마도 엄청나게 크다.
나는 에픽 등급의 아이템을 만들어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반면, 일반 유저들은 레어 등급 아이템만 만들어도 기쁘다고 얼씨구나 춤을 출 수준이다.
레전드리 직업의 위대함을 절실히 실감한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님의 스승님이 만든 아이템 좀 구경시켜 주실 수 없을까요?”
스텡이 학구열 가득한 눈빛으로 부탁했다.
그에 나는 거절했다. 왠지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데.”
스텡이 아쉬워했다.
“그런가요. 그러면 어쩔 수 없죠. 근데 신기하네요. 스승님이 아이템 입찰 가격을 정해 주지 않았다니…….”
“그러게나 말이다. 혹시 레벨 제한 120대의 갑옷하고 건틀릿의 평균 시세를 알고 있어?”
“레벨대가 같은 아이템이라고 해도 옵션은 천차만별이잖아요. 뭐, 일반적으로 노멀템일 경우는 갑옷이 300골드, 건틀릿은 100골드 정도에 거래돼요.”
“에픽템은?”
“와! 설마 님의 스승님은 에픽템을 만들어 낸 건가요? 제작 에픽템은 정말로 흔치 않은데!”
감탄한 스텡이 친절하게 대답해 줬다.
“에픽템의 가격도 옵션에 따라서 다르지만, 아무리 옵션이 후지다고 해도 갑옷은 최소 1,800골드, 건틀릿은 최소 600골드 정도 받지 않을까요?”
“…뭐?”
100골드를 현금으로 환산하면 12만 원이다.
즉, 매우 섬세한 플레이트 아머와 일견 평범해 보이는 건틀릿이 각각 1,800골드와 600골드에 판매될 경우, 난 현금 288만 원을 버는 셈이 된다.
캡슐방으로 출근 도장을 찍은 지 고작 7일 만에 엄청난 거액을 손에 쥐게 되는 것이다.
‘아니, 아니지. 재료값이랑 캡슐방 이용료를 제하면 순이익은 200만 원 정도밖에 안 되겠네.’
어쨌든 굉장히 만족스럽다.
그래, 너무 유니크템이나 레전드리템에만 집착하지 말자.
에픽템일지라도 이렇게 일주일에 2개씩 떠 주면 한 달에 800만 원의 수익을 올릴 수도 있는 거니까!
‘빚도 금방 갚겠군!’
내게는 총 1천만 원의 빚이 있다.
Satisfy에서 유일한 레전드리 직업을 얻게 된 지금 시점에서 보자면 1천만 원이라는 빚이 참 별것 아니게 보이지만, 몇 달 전의 내겐 엄청난 부담거리였다.
매달 Satisfy 계정비 지불하면서 대출 이자까지 갚느라고 정작 대출 원금은 갚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정도다.
그나마 나중에 인력소에 출근하게 되고 나서부터는 그럭저럭 숨통이 트였었지만…….
어쨌든!
드디어 빚쟁이 생활을 청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엄마 마음 행복 금융의 임직원 일동을 두려워할 필요도 사라진다.
“크크크크큭…….”
빚쟁이가 아닌 삶!
즉, 당당한 삶을 살아가는 상상을 해 보자 무척 기뻤던 나머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스텡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웃는 모습을 목격한 스텡의 안색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예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내 웃는 모습은 정말 최악인가 보다.
내가 웃으면 아이들이 울었다. 내가 웃으면 초딩들이 욕했다. 내가 웃으면 중딩들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주었다. 내가 웃으면 고딩들이 담배를 사 가지고 왔다. 내가 웃으면 여자들이 불쾌해했다.
‘빚 갚고 나면 성형부터 할까…….’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스텡이 말해 준 시세를 토대로 최소 입찰가를 설정했다.
[매우 섬세한 플레이트 아머의 최소 입찰 가격을 1,800골드로 설정합니다. 맞습니까?]
“어.”
[일견 평범해 보이는 건틀릿의 최소 입찰 가격을 600골드로 설정합니다. 맞습니까?]
“그래.”
[아이템이 경매에 정상적으로 등록되었습니다.]
나를 끝으로 모든 사람들이 아이템 등록을 완료했다.
그를 확인한 경매 관리인이 우리들을 대기실로 안내했다.
바닥에는 커다란 호랑이 가죽이 깔려 있고 진열대에는 금은으로 만들어진 장식품들이 한가득이다. 화려한 샹들리에도 일품이다.
우리 같은 평민들에게 빌려주는 방치고 엄청나게 호화로웠다.
‘영주가 머무는 방은 대체 얼마나 호사스러울까?’
귀족의 재력에 압도당한 채 넋 놓고 있는 내게 스텡이 슬그머니 다가와 말했다.
“저기 있는 장식품들 슬쩍하시면 안 돼요. 저는 스승님 심부름으로 여러 지방의 영주 경매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데, 그때마다 성에서 물건 훔치다 걸리는 사람들이 꼭 있었어요. 그 사람들은 반드시 발각돼서 처벌당했었으니까… 그리드 님도 조심하세요.”
“응, 알았어… 가 아니라. 야, 인마, 넌 내가 그런 좀도둑질 할 놈으로 보이냐? 듣다 보니까 기분 나쁘네?”
“죄, 죄송합니다.”
잽싸게 사과한 스텡이 나로부터 거리를 두고 물러섰다. 그러고는 계속 힐끔힐끔 훔쳐본다.
녀석은 내가 충분히 도둑질할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의심하며 걱정하는 듯하다. 웃는 모습 한 번 보여 줬다가 범죄형 인물로 낙인찍힌 것이다.
‘어휴, 빌어먹을 자식. 어린노무 새끼가 안목은 있네.’
아무래도 도둑질은 포기해야겠다. 저기 은촛대 하나만 훔쳐가고 싶었는데, 녀석이 저렇게 감시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
나는 앞으로 3시간 동안 진행되는 경매의 결과를 기대하며 소파에 앉아 낮잠을 청했다.
***
윈스톤의 새로운 영주, 아이린은 스테임 백작의 외동딸이다. 현재 작위는 남작에 불과하지만 훗날 대를 이어 백작이 될 존재다.
즉, 스테임 백작령의 차세대 주인이며 북부의 정점이 될 예정인 인물이란 뜻이다.
그래서 그녀의 기사들은 남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부담감과 책임감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아이린 님께 부족하지 않은 최고의 기사가 되어야만 한다.’
아이린의 기사들은 심신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육체와 재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그들은 부족한 부분을 장비로 보충하고자 했고, 항상 최강의 장비를 탐냈다.
한데 금일, 윈스톤에서 개최된 경매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영 쓸 만한 물건이 없군.”
윈스톤은 비약적인 발전을 통해서 북부의 대세 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수도인 프론티어에 비하면 아직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았다.
그것은 기술자들의 역량 또한 마찬가지였다.
경매에 출품된 장신구, 옷가지, 무구들이 하나같이 수준 이하였다.
그나마 타지에서 온 기술자들이 출품한 물건들이 나은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탐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경매가 시작되고 어느덧 2시간이 지났건만, 여태까지 출품된 물건 중 어느 것 하나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경매 관리인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번 작품에는 필히 주목하셔야 할 겁니다.”
“오……!”
한 쌍의 갑옷과 건틀릿이 모습을 드러내자 여태껏 무료한 표정을 짓고 있던 기사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대단한 명품이군!”
“프론티어에서도 찾기 어려울 수준의 방어구들이다.”
갑옷과 건틀릿을 자세히 살펴보고 감탄한 기사들이 경매 관리인에게 물었다.
“이 물건을 만든 대장장이가 누구지? 혹시 소문의 칸인가?”
칸은 프론티어에까지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유명 대장장이다. 하여 기사들은 갑옷과 건틀릿의 제작자를 칸이라고 추측했다.
한데 경매 관리인이 흥미로운 대답을 했다.
“정확히는 칸이 아니라 칸의 후계자가 만든 작품입니다. 그는 윈스톤 주민들에게 추앙받는 세 명의 영웅 중 한 명이기도 하지요.”
“호오라……. 소문의 정의로운 대장장이 말인가?”
“예.”
기사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곳 윈스톤에도 뛰어난 인재가 있었군. 모범적인 인품과 뛰어난 실력을 겸비한 인물이라니……. 언젠가 아이린 님께서 중히 쓰시게 될 인재다.”
“값을 좀 많이 쳐줘야겠어. 내가 이 갑옷을 2천 골드로 입찰하겠네.”
“많이 쳐준다고 쳐준 게 2천 골드라고? 자네의 안목은 형편없군! 난 2천5백 골드로 입찰함세!”
“난 2천8백!”
“이보시게들, 내가 먼저 찜한 물건에 왜 탐을 내시는가? 난 3천 골드에 입찰할 테니까 다들 이만 포기하시게!!”
스테임 백작 가문은 에트날 왕국에서도 손꼽히는 재력을 갖추고 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가문의 기사들 또한 막대한 월급과 품위 유지비를 받게 된다.
하여 기사들은 돈이 넘쳐 났고, 그리드가 제작한 갑옷과 건틀릿의 입찰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
“그리드 님. 그리드 님.”
으으… 뭐야? 인력소에 출근할 시간인가?
세상모르고 자고 있던 나는 누가 옆에서 자꾸만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
“그리드 님, 경매가 끝났다고 어서 모이래요.”
“아…….”
맞다. 여긴 집이 아니었지?
‘이런 염병……. 인력소를 그만둔 지가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인력소에 출근할 걱정으로 잠에서 깨다니…….’
인력소 트라우마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소파에서 일어난 나는 스텡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갔다. 그리고 경매 관리인이 기다리고 있는 로비로 향했다.
인원수를 확인한 경매 관리인이 말했다.
“이번 경매에 낙찰된 물품은 총 6개였습니다.”
사람들이 동요했다.
“고작 6개라고? 나 혼자서 출품한 물건만 해도 7갠데…….”
“아까 슬쩍 보니까 출품작 100개도 넘던데? 그중에 6개만 낙찰된 거야?”
불길하다.
‘내 것도 낙찰 안 됐으면 어쩌지? 제길, 최소 입찰가를 너무 비싸게 설정했나?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싸게 설정할걸.’
조마조마하고 있을 때 경매 관리인이 낙찰된 아이템 목록을 불러 주었다.
“클라리스 님이 출품한 작품, ‘제작자의 감각이 다소 떨어지는 다이아몬드 목걸이’의 낙찰가는 453골드. 그레스 님이 출품한 작품, ‘방한용 갑옷 내피’의 낙찰가는 189골드. 피글렛 님이 출품한 작품, ‘쓴맛이 매우 강해서 먹기 힘들지만 효과가 뛰어난 근력 물약’의 낙찰가는 개당 15골드. 스텡 님이 출품한 작품, ‘마력과 쉽게 융화되는 장검’의 낙찰가는 1천9백 골드입니다.”
아이템이 낙찰된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스텡도 매우 기뻐했다.
“스승님의 작품이 낙찰됐어요! 스승님이 매우 기뻐하실 거예요!”
스탱은 이번 퀘스트 클리어 보상으로 새로운 제작법을 전수받게 될 것이다.
내게 친절한 의도로 접근했던 녀석이니만큼 잘됐다며 축하 인사 한마디쯤 건네줘도 되겠지만, 배가 아파서 도무지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이런 빌어먹을. 내 아이템은 결국 낙찰되지 않은 건가……. 썩을, 좀 더 싸게 올릴걸.’
후회에 휩싸여서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떠는 그때였다.
“그리드 님이 출품한 작품, ‘매우 섬세한 플레이트 아머’의 낙찰가는 3천5백 골드. ‘일견 평범해 보이는 건틀릿’의 낙찰가는 2천 골드입니다.”
“…엉?”
나는 귀를 의심했다.
지금 3천5백 골드라고 했냐? 2천 골드라고 했어?
사람들은 기겁했다.
“말도 안 돼……. 제작템이 저렇게 비싸게 팔렸다고?”
“설마 에픽 제작템인가! 그것도 레벨 제한 100 이상급의…….”
스텡이 내게 선망의 시선을 보냈다.
“굉장해요! 님의 스승님은 정말 아주아주 엄청나게 대단한 대장장이인가 보군요! 혹시 고급 대장장이 기술을 익힌 대장장인가요? 네?”
“…….”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머릿속에서는 그저 ‘돈 벌었다’, ‘대박 터졌다’, ‘집에서 큰소리칠 수 있게 됐다’ 이런 생각만 메아리쳤다.
5천5백 골드를 현금으로 환산하면…
‘660만 원…….’
노가다를 73일 이상 뛰어야 벌 수 있는 엄청난 거액을 단 일주일 만에 벌었다.
그것도 고작 에픽템 2개만으로!
“어버… 어버버버…….”
기뻐서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데 입이 잘 떨어지질 않는다.
완전히 넋을 잃고 있는 내게 경매 관리인이 말했다.
“그리드 님, 행정관님께서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저를 따라오시죠.”
스텡이 축하해 주었다.
“우와! 이제 님네 대장간은 성에 물건을 납품할 권리를 받게 될 거예요! 그러면 대장간이 꽤 바빠질 거고, 님이 스승님한테 받게 될 퀘스트의 종류와 난이도도 엄청나게 다양해질 거예요! 축하해요!”
남이 잘되는 꼴을 보면 배 아파하는 나와 달리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 주는 스텡!
아직 10대 중후반의 나이로밖에 안 되어 보이는 녀석이 참 착하기도 하다.
마음에 든다. 나중에 내가 대장간 사장이 되면 꼭 영입해야 할 재목이다.
착해 빠져 가지고는, 어떤 불합리한 노역을 시켜도 불평 않고 순순히 수행할 바보 녀석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축하해 줘서 고맙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
언젠가의 재회를 고대하며, 나는 스텡에게 최대한 친절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에 표정이 파랗게 질린 스텡이 몇 걸음 뒤로 물러나며 대답했다.
“아, 안녕히 가세요.”
스텡과 작별한 나는 행정관의 집무실로 찾아갔다.
행정관은 중년의 신사였다.
멋진 콧수염이 인상적인 그가 나를 반겼다.
“오오, 자네가 그리드로군! 내 자네의 작품을 보고 매우 감탄하였다네. 그 젊은 나이에 어찌 대장간의 후계자가 된 건지 의문을 품고 있었는데, 실력을 보고 나니 충분히 납득이 가더군! 자, 이리 앉게.”
행정관과 나는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시녀가 차와 주전부리를 내왔다.
‘헐… 같은 엘파 찬데도 향기가 급이 다르네.’
칸이 끓여 주는 엘파 차는 엘파의 달달한 향이 아주 미약하게 나는 정도였다. 찻잔에 코를 처박고 킁킁거려야 간신히 향기가 느껴지는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곳의 엘파 차는 엘파의 달달한 향이 매우 강렬하게 났다. 굳이 찻잔에 코를 처박지 않아도 충분히 향을 음미할 수 있었다.
‘엄청 비싼 찻잎을 사용하나 보군.’
이처럼 비싼 차를 공짜로 얻어먹을 수 있는 기회가 또 언제 찾아올까?
나는 뜨거운 차를 한입에 털어 넣고 시녀에게 빈 찻잔을 건네주었다.
“한 잔 더 주세요.”
“네.”
벌컥벌컥.
“한 잔 더.”
“네.”
“키야~~! 한 잔 더!”
“…네.”
차를 4잔째 비우고 난 후, 입가심으로 쿠키를 씹어 먹고 있노라니 행정관이 허허 웃었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영웅의 풍모를 가진 사내라 하더니 과연…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 앞에서도 긴장하는 법이 없군.”
뭔가 실수한 걸까?
내가 뒤늦게 눈치를 보자 행정관이 고개를 저었다.
“그대로 편하게 있게. 보기 좋군.”
“…아, 네.”
굳이 격식을 차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 인물인 듯하다.
그가 본론을 꺼냈다.
“나는 영주님의 기사들과 병사들에게 자네가 제작한 장비들을 보급해 주고 싶네만,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우리와 거래할 생각이 있는가?”
좋아, 올 것이 왔다.
나는 당장 흔쾌히 거래를 수락하고 싶었지만,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이 있었다.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우리 대장간은 몰려드는 손님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장사가 엄청나게 잘됩니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기사님들의 장비뿐만 아니라 병사들의 장비까지 제작할 시간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군요.”
웬만하면 병사들의 장비는 제작하고 싶지 않다.
병사들의 평균 레벨을 감안하면, 고작 50레벨대 아이템을 제작해야 하는 건데 그래서야 돈벌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경매를 통해서 확실히 알았어. 레벨 제한이 높은 아이템일수록 이윤이 크게 남는다. 50레벨짜리 아이템 몇십 개 만들 시간에 120레벨짜리 템 하나 만드는 게 훨씬 이득이야.’
행정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생각해 보니 자네의 작품에는 엄청난 장인 정신이 깃들어 있었어. 아마 자네는 작품을 하나 만들 때마다 꽤 많은 시간과 정성을 투자할 테지. 그런 자네에게 수백, 수천 명이나 되는 병사들의 보급품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나도 참 멍청하군. 그렇다면 조건을 바꾸겠네. 기사들이 사용할 장비만 제작해 주시게.”
“네, 알겠습니다.”
좋아, 이야기가 잘 풀려 나간다.
방심하고 있는 내게 행정관이 기습을 가했다.
“다만 조건이 있다네. 기사들에게 보급할 장비의 완성도는 오늘 경매에 출품했던 작품 이상이어야만 하네.”
“네?”
오늘 경매에 출품한 2개의 아이템은 모두 에픽 등급이다.
즉, 행정관은 내게 무조건 에픽 등급 이상의 아이템만 납품하라고 말하고 있는 거다.
‘이런 미친 인간이 있나. 아이템 하나 만들 때마다 20시간 이상을 투자해도 노멀템이 뜰 수도 있는 마당에 무조건 에픽템을 만들라고?’
난감해하는 내게 행정관이 솔깃한 말을 했다.
“물론, 그런 대단한 작품을 제작하는 게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나 또한 알고 있네. 그러니까 노고를 치하해서 높은 가격에 구매하겠네.”
“높은 가격이라 함은……?”
“오늘 경매의 낙찰가보다 값을 10퍼센트씩 더 쳐주지. 물론, 오늘 경매에 출품했던 작품보다 더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 온다면 훨씬 더 높은 값을 지불할 의향도 있다네.”
더 이상 들을 것도 없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좋습니다! 당장 대장간으로 가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한시라도 빨리 아이템을 만들어서 돈을 벌고 싶단 의욕에 넘쳐서 돌아가려는 나를 행정관이 불러 세웠다.
“우선 3자루의 검을 제작해 주시게. 기사들 몇 명의 무기가 얼마 전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훼손되어 난처한 상황이거든.”
그리고 퀘스트 정보가 떠올랐다.
<행정관과의 거래(1)>
난이도:A
윈스톤의 행정관 블라디는 당신에게 기사들의 장비 제작을 부탁했다.
그는 당신의 높은 실력을 감안하고 좋은 조건의 거래를 제안한 것이므로, 당신이 만약 그를 실망시킨다면 거래가 바로 파기될 것이다.
퀘스트 클리어 조건:최소 120에서 최대 180레벨 제한의 에픽 등급 한 손 검 3자루를 제작해서 일주일 내로 납품.
퀘스트 클리어 보상:납품하는 아이템의 수준에 따라 다름.
퀘스트 실패 시:행정관과의 거래가 파기되면서 연계
퀘스트 소멸.
‘이 정도면 꽤 할 만할 듯한데……?’
나는 지난 며칠 동안 3개의 아이템을 각 20시간가량씩 투자해서 제작했다.
그 결과, 2개는 에픽 등급으로 완성되었고 1개는 노멀 등급으로 완성되었다.
3분의 2 확률로 에픽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일주일 동안 3개의 에픽템을 만드는 일은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갑자기 재수가 더럽게 없어져서 에픽템마저 안 뜨게 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클리어할 수 있는 퀘스트다!’
강한 자신감을 품게 된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성을 나왔다.
그리고 대장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길을 걷고 있노라니 주민들이 슬금슬금 다가와 속삭였다.
“그리드 님, 어떤 놈들이 당신을 미행하고 있습니다.”
“맞아요. 나쁜 놈들일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세요.”
호감도가 최대치에 이르러서 내게 엄청난 호의를 베풀어 주는 윈스톤의 주민들!
그들은 내게 위험을 알려 주고자 접근한 것이었다.
“미행?”
누구지?
나는 주민들이 슬그머니 가리키는 방향들로 시선을 돌려 보았다.
골목길 어귀, 나무 그늘 아래, 노점상의 뒤쪽 등등에 수상쩍은 놈들이 최대한 몸을 감추고 날 주시하고 있었다.
“헐… 저렇게 많은 놈들이 날 미행하고 있었다고?”
소름이 돋는다.
나는 혹시 여느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수수께끼의 암살 조직에게 표적이 된 상태인가 건가?
…아니, 자세히 보니까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현재 나를 미행하고 있는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그들의 정체는 영주의 경매에 아이템을 출품했던 사람들이었다.
아무래도 그들은 내가 어떤 대장장이 스승을 모시고 있는 건지 알아보기 위해서 미행하는 것 같았다.
나는 주민들에게 부탁했다.
“저놈들이 나를 따라오지 못하게 막아 줘요. 위험한 놈들은 아니니까 걱정 말고요.”
주민들이 결의에 찬 눈으로 힘차게 대답했다.
“좋아요! 당신을 도울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게요!”
“맡겨만 달라고!”
팔을 걷어붙이는 주민들!
그들 수십 명이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그러고는 나를 미행하던 놈들을 향해서 힘껏 내달렸다.
“뭐, 뭐야? 저것들 우리 붙잡으려고 뛰어오는 거야?”
“히익! NPC들이 갑자기 왜 저러지?!”
“튀어!!”
그렇게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나는 나를 위해서 흔쾌히 나서 준 주민들에게 간단히 인사한 뒤 대장간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칸에게 사정을 설명한 뒤 로그아웃했다.
“후… 후후훗훗!”
캡슐방.
로그아웃하고 캡슐에서 몸을 일으킨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푸하하하하핫!! 이제 나는 부자다아아앗!!”
있는 힘껏 소리치자, 조금 전 벌어졌던 모든 일들이 거짓이 아닌 현실이었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단 일주일 만에 660만 원을 벌었다!
그리고 영주의 성에 아이템을 납품할 권리까지 얻었다!
1천만 원의 빚 따윈 조만간 후딱 갚아 버리고 빚쟁이 신분에서 탈출할 수 있다!
외제차를 끌고 다닐 날도 머지않았다!
‘조수석에는 아영이를 태우는 거야!’
흐흐흐흐… 정말 기뻐서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심지어 눈물이 찔끔거릴 정도로 기뻤다.
그런 내게 알바가 다가왔다.
“저기요, 회원님, 다른 손님들께 폐가 되니까 좀 조용히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대로 이용료를 지불한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
신영우가 떠난 후의 캡슐방.
알바생들이 쯧쯧, 혀를 찼다.
“백수 주제에 부자는 개뿔……. 자기가 부자 됐다면서 웃을 때 보니까 이제 완전히 미친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더라.”
“백수는 둘째 치고 노숙자 같던데? 일주일째 맨날 똑같은 작업복만 입고 오잖아? 그치?”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캡슐방비 꼬박꼬박 내는 게 용하다.”
지금 알바생들은 신영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서 이른 아침부터 캡슐방을 찾아오는 신영우가 한심하게 보였다.
“회원 정보 보니까 이제 겨우 26살이던데 노숙자라니. 쯧쯧, 얼마나 한심한 인생을 살아온 거야? 난 대학 졸업하고 나면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노숙자 얘긴 그만하고 Satisfy 얘기나 하자. 나 어제 40레벨 찍었다?”
“와, 정말? 대박! 난 아직도 39레벨인데! 야, 경험치 더럽게 안 오르던데 어디서 그렇게 빨리 레벨을 올린 거야?”
“죽어라 사냥만 했지. 이번에 운 좋게 레어템을 먹어서 사냥이 좀 더 수월해졌거든. 난 전사라서 그런지 템빨을 심하게 받는 것 같아.”
“마법사라고 템빨 안 받는 줄 아냐? 아~~~ 나도 레어템 먹고 싶다. 야, 그러고 보니까 노숙자는 몇 렙일까?”
“풋, 그 사람 꼬라지를 봐라. 게임 제대로 하게 생겼냐? Satisfy는 현실보다 냉혹한 약육강식의 세계야. 현실의 패배자는 Satisfy에서도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보지 않아도 뻔해. 엄청난 허접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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