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파그마의 후예는 모든 아이템 장착 가능, 상태이상 면역, 불사 등의 독보적 패시브 스킬과 함께 파그마의 검무라는 최상급 전투 스킬까지 보유하고 있다. 아이템 제작을 기반으로 한 압도적인 스탯 성장능력을 고려해본다면, 전투 직업군에 속해도 손색이 없을 클래스다.
하지만 파그마의 후예의 근본은 대장장이이다.
아이템의 감정, 수리부터 시작해서 강화와 제작, 창조에 이르기까지…
파그마의 후예가 가장 빛날 수 있는 건 바로 대장장이일 때이다.
용광로와 모루를 비롯한 각종 제작도구가 있는 이곳, 대장간이야말로 나의 주무대인 것이다.
“후우. 후우.”
나는 용광로 상단에 미스릴 원석과 코크스, 그리고 석회석을 비율을 맞춰 쌓아 놓고 풀무질을 시작했다.
[주변 온도가 급격하게 변화하여 감각이 개방됩니다. 30도. 31도. 31. 5도. 33도. 36도 39….]
-파그마의 후예는 온도의 변화에 민감합니다. 주변에 용광로가 있을 경우, 용광로 내부의 온도를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습니다.
내 풀무질은 이미 달인급… 아니, 달인 따위와 비교가 불허한 전설급이다.
용광로의 온도가 내 의도대로 급격하게 올라갔다.
[1,000도. 1,100도. 1,350…….]
‘미스릴이라…’
아이템 제작에 가장 흔하게 쓰이는 광물은 단연코 철이다.
그리고 철광석은 대략 1,150도에서 1,250도의 온도에서 제련하는 게 적합하다.
하지만 미스릴의 제련에는 그보다 훨씬 더 높은 온도가 필요했고, 온도를 섬세하게 유지하는 기술도 동반되어야만 했다.
‘정확히 1,820~40도를 유지한다.’
미스릴 제련이 고급 대장장이 3레벨 이상부터만 가능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지간한 대장장이의 풀무질로는 용광로의 온도를 1,800도 이상까지 올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고급 대장장이 2레벨쯤 되면 온도를 올리는 것까진 가능할 수도 있지만, 1800도 이상의 불을 의지대로 컨트롤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파그마의 후예인 내게는 쉬운 일이다.
특히 난 이미 신성의 방패를 제작하면서 미스릴을 충분히 다뤄본 바. 미스릴 따위 눈 감고도 제련할 수 있다. 하지만 일말의 여유조차 부리지 않고 오로지 집중 했다.
스으으으으.
용광로의 온도를 1,840도에 고정시키고 시간이 지나자 미스릴 원석이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용광로 내부에 1,800도가 넘는 열풍이 가해짐으로써 융용 된 미스릴 원석이 코크스로부터 생성된 일산화탄소에 의해 환원, 탄소를 함유하여 선철화 된 미스릴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때 분리 된 불순물은 석회석에 의해 슬래그로 만들어져 따로 배출된다.
이 일련의 과정은 현대 철공소에서 사용하는 제련법을 재현한 것으로, 말인 즉 Satisfy에서의 제련은 현대의 제련법을 표방하고 있다는 뜻이다.
…라고, 대장장이 직업 공략 게시판에 써있던 내용이다.
‘어디 가서 자격증 딸 것도 아니고 굳이 원리까지 이해할 필요가 있어? 어쨌든 제대로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어느새 틀에 쇳물이 가득 찼다.
눈이 아플만큼 찬란한 주황색 미스릴 쇳물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혼을 빼앗길 지경이었다.
‘예쁘다… 여자보다 네가 더 예뻐…’
헉?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이러다가 자칫 광물 오타쿠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경각심이 생긴다.
나중에 나이 한 50먹어서
‘전 일이랑 결혼했어요’
라고 자기소개 할 계획이 아니라면 정신 차리자.
‘아니… 하지만 난 실제로 여자한테 인기도 없고… 죽기 전에 장가는커녕 연애는 할 수 있으려나… 후우…’
본의 아니게 일과 결혼하게 되는 게 아닐까, 진심으로 걱정이다.
“썩을…”
아영이에게 농락당한 뒤로 이성관계에 대한 자신감이 바닥을 기고 있다. 이 후유증을 언제쯤 완전하게 극복할 수 있을까?
나는 내 앞날을 심히 걱정하면서 미리 만들어놓았던 주형에 쇳물을 주입했다.
이제 주형 안에서 쇳물이 적당히 굳는 것을 기다리면 된다.
‘기다리는 동안 놀고 있을 순 없지.’
시간은 곧 돈이다. 안 그래도 아영이 만난답시고 미용실이며 옷가게며 돌아다니다가 날려먹은 시간을 충당하기 위해서라도 쉴 틈이 없다.
나는 한쪽에 세워두었던 티판 나무를 가져와 다듬기 시작했다.
티판 나무는 대나무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나무보다 수십 배 더 단단하고 탄력이 강해서 창대의 재료로 사용하기에 적합하다.
나무 주제에 사파이어 같이 투명한 청색인지라 관상용으로도 인기라지만, 값이 너무 비싸서 관상용으로 이용하기에는 너무 사치인 듯하다. 관상용 티판 나무는 부자의 상징 중 하나라고 표현해야할 정도랄까?
“음.”
나는 질풍창의 제작법에 명시되어 있는 대로 티판 나무를 일직선으로 곧게 다듬고 딱 178센티미터 길이로 잘랐다.
붕~! 붕!
몇 번 휘둘러보니 그립감이며 무게며 딱 좋다.
‘이런 탄력을 보유했으면서도 강도는 강철과 비견될 정도이니… 비쌀만하군.’
이것이 질풍창의 창대가 될 것이다.
은색 창날과 청색 창대의 조화는 아름답고 고급스러울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은 창날이다.’
창대를 완성한 나는 주형 안에서 적절히 굳은 반고체 상태의 미스릴을 꺼냈다.
그리고 내 전용 제작 아이템을 무장했다.
<이름 모를 장인의 대장장이 망치>
등급:에픽
내구력:350/350 공격력:70~80
레어 등급 아이템 제작 확률:+17%
에픽 등급 아이템 제작 확률:+7%
대단한 실력과 잠재력을 지녔지만, 경험과 명성은 비교적 부족한 이름 모를 장인이 제작한 대장장이 망치입니다.
장인 본인이 사용하기 위해서 제작한 망치이기 때문에 다른 대장장이들이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사용 조건:파그마의 후예
무게:80
‘확실히, 이 망치를 만들어서 사용하고부터는 레어와 에픽 등급 아이템의 제작 확률이 상승했어.’
유니크 등급과 레전드리 등급의 제작 확률을 올려주지 않는 점은 매우 안타깝다.
하지만 그건 이 망치 자체가 에픽 등급이기 때문에 발생한 한계다.
유니크 등급 제작 망치는 유니크 등급 아이템의 제작 확률을 올려주고, 레전드리 뜽급 제작 망치는 레전드리 등급 아이템의 제작 확률을 올려줄 것이라고 추측된다.
‘조만간 날 잡아서 레전드리 등급의 제작용 망치를 만들어봐야지.’
따앙! 따앙!
나는 미스릴을 불에 달구고, 망치로 단조하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선철화 된 미스릴에 차있던 탄소를 적정량까지 배출시켰다. 제강작업이다.
이렇게 단련하여 강(鋼)화 된 미스릴은 이제 몇 번이고 더 단련한 뒤 모양을 잡고 날을 세워 창날로 만들 것이다.
“후우…”
어느새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창밖에는 새벽의 짙은 안개가 자욱히 깔려있다.
따앙~! 따아앙~!
사냥에서 돌아온 모험가들의 발소리만이 가끔씩 들려올 뿐, 모두 다 잠들고 고요한 윈스톤 거리에 나의 망치질 소리가 청명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약 4시간 뒤.
만족할만큼 미스릴을 단련하여 창날을 완성시킨 나는 그리핀의 심줄을 이용해서 창대에 창날을 부착시켰다.
그렇게 폰이 의뢰한 3개의 질풍창 중 첫 번째가 완성되었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숨결이 제작 아이템의 효과를 증폭시킵니다.]
‘좋아!!’
운 좋게 숨결 효과가 발동했다!
이제 관건은 아이템의 등급…!
기대감과 긴장감에 휩싸여 있는 내 눈 앞으로 완성 된 아이템의 정보창이 떠올랐다.
<질풍창>
등급:유니크
내구력:432/432 공격력:476
치명타확률:+5% 공격속도:+10%
*공격을 연계할 때마다 공격속도 1%씩 상승.
*스킬 ‘환영난참’ 생성.
*스킬 ‘제작자의 기원’ 생성.
대단한 실력과 잠재력을 지녔지만, 경험과 명성은 비교적 부족한 이름 모를 장인이 미스릴로 제작한 창입니다.
매우 가볍기 때문에 사용자가 능숙할수록 위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습니다. 단, 가벼움이 단점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디 뛰어난 창으로 거듭나기를 바란 장인의 기원이 담겨있습니다.
사용 조건:레벨 240 이상. 근력 750 이상. 민첩 400 이상. 고급 스피어 마스터리 2레벨.
무게:200
[유니크 아이템을 제작하여 모든 능력치가 +12 영구적으로 상승, 대륙 전역에 명성이 +300 상승합니다.]
“어? 어엇? 오~! 우오오오!! 아싸아아앗!!!”
나는 여태까지 무아지경의 검과 신성의 방패 총 2개의 레전드리 아이템을 제작했다. 그런데 유니크 아이템은 이상적인 단검 단 1개밖에 제작하지 못했다.
실제로는 레전드리 아이템이 유니크 아이템보다 제작될 확률이 훨씬 더 낮겠지만 체감하기로는 별로 차이가 없을 지경. 즉, 유니크 아이템도 레전드리 아이템만큼이나 제작될 확률이 극악이란 뜻이다.
한데 한 번에 유니크 아이템이 뜨다니!
“푸하하하핫!!”
너무 기뻐서 날아갈 것만 같은 심정이다.
‘숨결효과까지 적용돼서 더 대박이야!’
제작법에 명시되어 있는 유니크 등급의 질풍창은 총 내구력이 363, 공격력이 400이다.
하지만 내가 제작한 유니크 등급의 질풍창은 내구력과 공격력이 제작법에 명시된 것보다 19퍼센트 더 높다.
내가 제작하는 아이템의 능력치를 ‘무조건’ 12퍼센트 상승시켜주는 전설적 대장장이의 기술(Lv. 2)과, 발동시 아이템의 능력치를 7퍼센트 상승시켜주는 전설적 대장장이의 숨결(Lv. 2)에 영향을 받은 탓이다.
“제작자의 기원이라는 스킬은 뭘까?”
나는 추가된 스킬의 정보를 확인해보았다.
<제작자의 기원>
2분 동안 무기의 공격력을 30퍼센트 상승시킵니다. 같은 종류의 버프 효과와 중첩됩니다.
무기 내구력 소모:100
“허…”
2분 동안 무기 공격력 30퍼센트 상승.
이는 일반적인 인챈트 계열 스킬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지극히 평범한 성능이다. 아니, 일반 인챈트 스킬들의 지속 시간이 평균 10분인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성능이 구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주목해야할 부분이 있다. 바로 ‘같은 종류의 버프 효과와 중첩 가능’이라는 대목이다. ‘웨폰 인챈트’ 스킬로 창의 공격력을 30퍼센트 상승 시킨 상태로 ‘제작자의 기원’을 사용할 경우, 그 효과가 중첩 되서 결과적으로 질풍창이 공격력은 +60퍼센트가 된다는 뜻이다. 같은 효과의 버프 스킬이 중첩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이는 매우 진귀한 스킬이다.
스킬을 사용하기에 필요한 것이 마나가 아니라 무기 내구력. 그것두 무려 100의 내구력이라는 점이 큰 패널티로 작용하긴 하겠지만, 비장의 수단으로 사용하기에 매우 적합한 스킬이다.
“크… 죽인다. 당장 이 아이템 정보를 길드창에 공유해서 모두를 놀라게 해줄까?”
지슈카와 길드원들이 감탄하며 내게 찬사를 보내올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의기양양해진다.
특히 폰의 반응이 기대됐다.
그는 내게 질풍창 3개를 제작할 재료를 넘겨주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에픽 등급의 아이템을 제작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숱한 대장장이들을 만나오면서 깨달은 바 있다. 고작 3개 분량의 재료만 구해와 놓고 염치없이 기대하진 않겠다. 설령 당장 에픽 등급의 창이 뜨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않을 테니까, 부담 없이 제작해주었으면 한다. 솔직히 이 정도 사용조건의 창이라면 레어 등급만 되도 서브용으로 사용하기에 나쁘지 않아.”
생각해보니까 기분 나쁘다.
"이 몸을 뭐로 보고 에픽, 에픽 거리고 있어? 심지어 레어 등급이 뜰 수도 있다는 가정을 세우다니? 핫~! 전설의 대장장이인 이 몸께서 고작 레어 등급의 결과물을 내놓을까봐?!"
…실제로 내가 아이템을 10번 제작하면 거의 다 레어 아이템이 뜨는 실정이긴 하다만.
‘이번만큼은 잘난척해도 되잖아? 무려 한 방에 유니크 아이템을 만들었는데!’
이 창을 제작한 대가로 나는 대체 얼마나 큰 보수를 받게 될까?
너무 기대 되서 심장이 쿵쾅쿵쾅 폭발할 것같다.
“참 뭐랄까… 말락서스 레이드 이후로 3일 연속 큰돈을 벌게 생겼네. 너무 막 버니까 현실감이 없달까. 기분이 이상하군… 이번 의뢰를 끝내고 나면 가계부를 써봐야겠어.”
어느덧 점심시간이 지났다.
전날 저녁부터 아이템 제작을 시작한 건데 완성까지 꼬박 반나절 이상 걸린 것이다.
“아우, 피곤해. 어서 자고 싶다.”
커다란 성취감을 느끼고 긴장이 한 번에 풀리자 졸음이 쏟아졌다.
‘질풍창의 정보는 일단 공유하지 말자… 어차피 창 3개 제작한다는 가정 하에 3일의 제작 기간을 달라고 했으니까… 이틀 뒤에 보여주면 되고….’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남은 재료들로 레전드리 등급의 질풍창을 띄우는 것을 목표로 해보자 싶다.
***
“드디어 오늘인가…”
그리드에게 질풍창의 제작의뢰를 맡긴 후, 폰은 3일 내내 사냥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3일 동안 현재 사용 중인 무기에 대해 더욱 큰 불만을 품게 되었다.
이번에 더 높은 경험치를 주는 몬스터들이 서식하는 곳으로 사냥터를 옮겼는데, 몬스터들의 레벨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190레벨 제한인 폰의 창은 초라해졌다.
190레벨부터 243레벨인 지금까지 무려 53레벨을 올리는 동안 함꼐 해온 창이지만…
폰의 감수성은 아이템과 정을 나눌 정도로 뛰어나지 못했다.
‘이 지긋지긋한 창을 어서 빨리 팔아 치우고 싶군.’
폰이 휴식을 끝냈다. 그리고 재차 사냥에 임하려는데, 그토록 고대한 그리드의 채팅이 길드 채팅창에 떠올랐다.
{폰, 질풍창 3개 완성됐으니까 시간 될 때 칸의 대장간으로 와라. }
{오오~! 드디어 폰의 창이 완성 됐구만! 무슨 등급으로 떴어?}
{궁금해요~^^ 창 정보 공유해주세요, 그리드님. }
길드원들이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폰은 이대로 채팅창에 질풍창의 정보가 공개되는 것인가, 설레임과 불안감을 반반씩 품고서 채팅창을 주목했다.
근데 그리드가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망했어… 굳이 떠벌리고 싶지 않으니까 궁금한 사람만 와서 확인하도록 해. }
반트너가 좋다고 웃어댔다.
{ㅋㅋㅋㅋㅋㅋㅋㅋ레어템만 떴나보구만~! 아싸! 쌤통이다, 폰!}
“…….”
폰은 솔직히 실망이었다. 질풍창의 제작법을 쉽게 습득하고 반트너의 도끼를 강화시켜준 그리드라면, 에픽 등급의 질풍창을 하나쯤은 만들어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오했던 일이다.”
질풍창의 기본 성능이 워낙에 뛰어나서 레어 등급일지라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폰은 당장 사냥을 접고 윈스톤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새로운 사냥터에서 윈스톤까지 거리는 멀지 않았다.
그리고 3시간 후.
칸의 대장간에 도착하자 이미 지슈카와 반트너를 비롯한 몇 명의 길드원들이 자리에 모여 있었다.
낄낄 거리고 있는 반트너를 보고 폰이 눈살을 찌푸렸다.
“네놈이 여긴 왜 있냐?”
“네가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왔다! 뭐? 불만 있냐? 캬캬!”
“…빌어먹을 문어새끼가.”
“불만 있냐고! 불만 있으면 붙어 보던가! 내 업그레이드 된 도끼의 위력을 감당할 자신까지 있다면 말이야!! 캬캬캭!!”
“…….”
반트너는 그리드 덕분에 무기가 강화된 뒤로 상당히 까불어대고 있었다. 사냥터도 훨씬 더 센 곳으로 옮기고 채팅도 잦아졌으며 무엇보다 폰을 볼 때마다 놀려댔다.
‘들떠있을 만도 하지. 솔직히 부러워 미칠 지경이다.’
라이벌 혼자 잘 되는 꼴이 분했던 폰이 부들부들 떨리는 걸음을 옮겨 그리드에게 다가갔다.
“그리드, 고생이 많았다.”
폰은 그리드에게 의뢰를 맡길 당시, 너무 큰 기대는 안 하니 부담 갖지 말고 제작해달라고 했었다. 그건 가식이 아닌 진심이었지만, 정작 작금의 상황이 되고보니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안색이 영 별로인 그에게, 그리드는 졸린 눈을 부비며 창 3자루를 건네주었다.
“망했어. 처음부터 유니크가 뜨길래 레전드리도 노려볼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머진 죄다 에픽으로 떠버렸어.”
“…?”
지금 그리드가 뭐라는 거지?
폰을 비롯한 자리의 모두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유니크? 레전드리?
특히 레전드리 등급의 아이템은 제작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바, 지금 그리드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폰의 안색은 하얗다못해 파랗게 질려가고 있었다.
[질풍창(에픽)을 획득하였습니다.]
[질풍창(에픽)을 획득하였습니다.]
[질풍창(유니크)을 획득하였습니다.]
“…뭣이?”
폰이 Satisfy를 접하고 전율한 경험은 딱 2번이다.
처음에는 Satisfy라는 게임 그 자체에 경탄하고 전율했다. 가상현실 게임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또 하나의 현실이었다.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 Satisfy의 제작자인 임철호를 폰은 신처럼 경외하게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통합랭킹 1위 크라우젤과의 만남 때였다.
그를 우연히 목도하였을 때, 폰은 지슈카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이상의 충격을 받고 전율했다. 그리고 지슈카에게는 미안하지만 크라우젤이야말로 게임의 천재이며 Satisfy의 유일한 지존임을 절감했다. 살면서 플레이한 모든 게임에서 지존의 자리를 꿰찼던 폰이 그 앞에서는 일개 유저로 전락하는 초라함을 느꼈을 정도다.
그리고 지금.
“그리드… 너는…! 너는!!”
유니크 등급 질풍창의 상세정보를 확인한 폰은 세 번째 전율을 맛보았다.
그리고 잃고 있던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리드와 함께라면, 체다카 길드의 힘만으로는 절대 넘을 수 없는 벽 같아 보였던 크라우젤을 넘어설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폰이 허리까지 숙여가며 예를 갖췄다.
“그리드 너는 내가 본 그 어떠한 대장장이보다도 뛰어나다. 너처럼 위대한 장인과 동료가 된 것을 진정 영광으로 생각한다.”
폰은 이때까지 수많은 대장장이들을 찾아가 아이템 제작 의뢰를 맡겼었다.
동방 최고의 대장장이를 만나기 위해 지옥사막을 횡단하기도 했고, 전설의 드워프 장인을 만나기 위해서 염룡 트라우카의 영역을 침범한 경험도 있다. 각지의 유명한 대장장이는 모조리 만나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노고가 부질없게도, 폰은 끝내 유니크 등급의 제작템을 손에 넣지 못했었다.
아무리 이름 난 대장장이일지라도 유니크 아이템을 제작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이 어려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드는 어떠한가?
단 3개의 아이템을 제작하여 그중 1개를 유니크 등급으로 완성시켰다.
더군다나 그리드가 제작한 질풍창의 성능은 제작법에 명시되어 있던 성능을 훨씬 상회하고 있었다.
‘거기에 레전드리 등급의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는 암시까지 했다.’
그리드는 상식을 초월할 만큼 놀라운 인물이다. 애타게 찾아온 보람이 있는, 대장장이계의 숨겨진 거장임을 절감한다. 존경심이 피어오를 지경이다.
“대단해. 너는 정말 대단하다.”
길드원 전원이 그리드가 제작한 무기와 방어구로 무장하게 되는 날.
체다카 길드는 진정으로 지존에 가까워질 터이다.
확신하며 전율한 폰이 오래토록 사용해온 낡은 창을 거두고 질풍창을 꺼내어 장착했다.
“와우…”
“저게 질풍창…!”
길드원들이 질풍창의 자태에 감탄했다.
푸른 창신과 은색의 창날이 장대한 조화를 이룬다. 마치 한 마리 청룡이 은빛 은하수를 타고 내려오는 모습을 형상화한 듯하다.
영혼까지 홀릴 만큼 아름답다고 이름난, 사하란 제국의 국보 ‘페르소나’와 비견해도 손색이 없을 외관이다.
‘성능이 기가 막히거니와 겉모습은 기품이 있다. 또한.’
부웅! 부웅!
창을 살피다가 몇 번 가볍게 휘둘러본 폰의 입가로 짙은 미소가 번졌다.
수백 종류의 창을 사용해 봤지만 질풍창의 착용감이 단연 발군이었다. 창대의 길이와 창날의 폭도 창술을 펼치기에 이상적이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제작 된 맞춤형 창 같았다.
‘몇 배는 더 강해진 기분이다.’
폰은 당장에라도 사냥터로 달려가 창의 위력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근질거려하고 있는 그에게 길드원들이 다가와 재촉했다.
“폰, 그 창 등급이 뭐야? 딱 봐도 보통이 아닌데?”
“어서 우리한테도 보여줘. 궁금해서 현기증 난단 말이야!”
폰이 질풍창의 정보를 공유해주었다.
그를 확인한 길드원들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유니크?!”
“제작템인데 유니크 등급이라고?”
길드원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뛰어난 아이템을 무장하고 싶은 열망이 비단 폰에게만 있었겠는가? 그들 또한 폰처럼 수많은 대장장이들을 만났고, 수백 번의 제작 의뢰를 맡겼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유니크 제작 아이템은 보지 못했다.
고급 대장장이가 유니크 아이템을 제작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일일 뿐, 유니크 아이템을 갖기 위해서는 제작이 아니라 레이드를 통해 획득하는 것이 현실적이었다.
한데 그리드는 길드에 가입하고 단 3일 만에 유니크 아이템을 만들어 보였다.
나 이외의 대장장이는 모두 하찮다.
라고 말하는 듯한 기세다.
“멋져…”
감격한 지슈카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리드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뺨에 입 맞추며 소리쳤다.
“정말로 멋져, 그리드! 너는 최고야! 그야말로 환상적인 남자라구!”
“…에?”
지슈카의 포옹과 키스에는 이성적인 감정이 아예 배제되어 있었다. 그저 순수하게 기쁨과 감사함을 표현하는, 남미 여인의 다소(?) 격렬한 인사법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리드에게는 자극이 너무 강했다.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으로 손꼽히는 미인의 격렬한 포옹과 키스는 너무나도 황홀하고 달콤하여 그리드가 제정신으로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이, 입술이 너무 부드러워…’
뺨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
‘가슴은 더 부드럽고…’
부드러울 뿐이 아니라 탄력까지 넘친다.
‘향기도 엄청 좋다.’
그 어떤 진귀한 향수일지라도 지슈카의 체취 앞에서는 하찮을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이거 꿈인가? 당연히 꿈이겠지? 젠장! 꿈이라도 괜찮아! 죽어도 여한이 없다!’
그렇게, 그리드가 해롱해롱 거리고 있는 와중에 반트너는 대머리를 감싸고 앉아 좌절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이 창은 내가 봤던 그 어떤 무기보다 좋잖아? 내 진(眞) 혈극의 쌍도끼조차 이 창 앞에서는 초라할 지경이라니… 이런 지존 무기를 폰이 갖게 됐다고? 안 돼… 이래서야 폰이 또 나를 훨씬 앞질러가고 말 거야…!”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중얼거리는 반트너!
“그리드, 너를 길드로 초빙한 건 내가 살면서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 중 하나일 정도야! 사랑해!”
기쁨을 주체 못하여 그리드를 꽉 껴안고 있는 지슈카!
“헤헤… 가슴… 히히.”
지슈카의 커다란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비비적거리는 그리드!
세 사람의 상태는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저대로 방치해서 좋을 게 없어보였다.
하지만 길드원 중 그 누구도 세 사람을 제지하지 않았다. 다들 질풍창을 구경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으아~ 폰 형 진짜 부럽네. 내 아이템도 형처럼 유니크로 뜨면 여한이 없겠다.”
“우리가 클리어 가능한 구간의 레이드에서 획득할 수 있는 유니크 아이템들보다 성능이 뛰어나. 터무니없군.”
“그리드 님은 폰 다음에 누구 아이템을 만들어주기로 했었죠? 아직 결정 안 났던가요? 내 갑옷부터 좀 만들어줬으면…”
폰은 유니크 등급의 질풍창을 길드원들의 구경거리로 남겨두었다. 그리고 2자루 에픽 등급 질풍창을 꺼내 양 손에 쥐고 몇 번 휘둘러보더니 페이커에게 말했다.
“이참에 쌍창술을 익혀볼까싶어.”
그림자 밑에 팔짱끼고 서있던 페이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군. 난이도 높은 기술은 습득하기가 어렵지만, 제대로 써먹을 수만 있게 된다면 뛰어난 위력을 발휘하는 법이니까.”
“내 연습 상대가 되어주지 않겠어?”
“마다할 이유가 없지.”
대답한 페이커가 단도를 뽑아드는가 싶더니 불헌 듯 폰의 후위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대로 폰의 심장에 단도를 쑤셔 넣었다.
수많은 실력자들을 일거에 암살해온 페이커의 한 수였으나 폰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까앙!
왼손의 창을 세워 방어한 폰이 단도와 창이 맞부딪치며 발생한 반발력을 이용, 그대로 몸을 회전시켜 오른손의 창을 횡으로 날렸다.
쐐액!
티판 나무의 탄력을 이용한 폰의 창술은 기가 막혔다. 질풍창은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휘어서 날아가 페이커의 후두부에 명중했다.
퍼어엉!
대장간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파공성이 발생했다.
그렇다. 질풍창은 그저 공기를 터뜨렸을 뿐이다.
이미 페이커는 그 자리에 없었다.
반대 방향에서 등장한 페이커가 표창을 투척하고 말했다.
“두 자루 창을 사용하는 것에 이미 익숙해 보이는군. 꾸준히 연습해왔던 건가?”
어깨에 박힌 표창을 뽑아낸 폰이 답했다.
“연습한 적 없어. 다만 기본 실력이 뛰어난 만큼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는 것도 빠를 뿐이지.”
“과연.”
째쟁! 쨍! 차차차창!
페이커는 어쌔신 랭킹 1위다. 통합랭킹이 폰보다는 낮을지언정 민첩성만큼은 폰을 아늑히 초월했다.
그래서 초반에는 페이커가 속도로서 우위를 점했다. 폰이 아무리 현란하게 창을 다뤄봤자 페이커는 어렵지 않게 피해내며 물 흐르듯이 반격했다. 폰만 상처투성이였다. PK에 특화 된 어쌔신의 위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일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역전되었다.
폰의 공격 속도가 페이커의 동체시력과 민첩성을 초월하기 시작한 것이다.
“큭!”
드물게 공격을 허용한 페이커가 피를 흩뿌리며 물러났다. 폰은 쉴 틈을 주지 않고 쫓아서 두 자루 창을 이용, 찌르고 베었다.
푹! 퍽!
질풍창은 가히 놀라운 무기였다. 고유 옵션 때문에 전투가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공격속도가 빨라졌다. 그 차이가 초반에는 체감하기 어려우나 시간이 지나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거 사긴데…?”
속도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신 있던 페이커가 속도로서 제압당하자 헛웃음을 흘렸다. 피투성이가 된 그에게 생명력 회복 물약을 건넨 폰은 크라우젤을 떠올렸다.
‘지금의 나라면 그의 옷깃 정도는 스칠 수도 있겠군.’
한편.
“…여기 대장간 아닌가요?”
칸의 대장간을 방문한 손님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대장간 중앙에는 10명 정도 되는 사람이 모여서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고, 한쪽에선 남녀 한 쌍이 잔뜩 흥분한 채 부둥켜안고 있다. 그리고 구석에는 커다란 중년 남자가 덩치에 안 맞게 쭈그려 앉아 연신 중얼거리고 있었으며…
채챙! 챙!
심지어 미친놈 두 명은 칼부림 중이다.
“…….”
여기가 정녕 대장간이란 말인가? 시장 한복판이라도 여기보단 정돈 된 느낌일 것이다.
“아무래도 잘못 찾아왔나보다.”
그렇게, 아이템을 구매하기 위해서 칸의 대장간을 찾아왔던 손님들이 허탕치고 돌아가기를 몇 번이나 반복한 후.
“남의 대장간에서 뭣들 하는 짓거리요!!”
장을 보고 돌아온 칸이 쩌렁쩌렁 호통을 치고 나서야 소란이 잦아들었다.
“헉!”
칸의 목소리를 듣고 이성을 되찾은 그리드가 지슈카의 품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전 세계의 남자들을 홀려온 지슈카의 환상적인 몸매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치를 떨었다.
‘저 요망한 것… 대금 지불 안 하려고 나한테 미인계를 썼구나.’
그리드는 천사같이 착한 줄로만 알았던 아영이에게 농락당한 경험을 통해 깨달은 사실이 있다.
여자는 요물이다. 그들에게는 결코 틈을 주어선 안 된다. 작은 마음이라도 허용했다간 잔인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나쁜 기억을 떠올린 그리드가 지슈카를 돌처럼 보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폰을 불렀다.
“어이, 미인계로 수작부리지 말고 어서 대금 내놔. 얼마 줄 거야?”
“미인계?”
어리둥절해하면서 그리드에게 다가온 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솔직히 나로서는 질풍창의 가치를 정확하게 매기기가 어렵다. 하지만 다른 아이템들과 비교해서 감안해 봤을 때 80만 골드를 지불한다면 결코 부족하지 않을 액수라고 생각한다.”
“80만?”
그리드가 귀를 의심했다.
“80만 골드라고?”
놀랄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리드는 레전드리 등급의 아이템 ‘무아지경의 검’을 22만 골드에 판매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니크 등급의 질풍창을 그 4배도 넘는 가격으로 구매하겠다니?
그리드는 믿기지 않았다.
‘80만 골드면 현금으로…’
100골드가 현금으로 12만 원에 거래된다.
‘10만 골드면 1억 2천만 원… 80만 골드면… 음. 어? 헉! 9억 6천?’
아버지가 진 빚을 전부 다 갚고도 3억이 넘게 남을만한 거액이 아닌가?
그리드는 잠시 사고회로가 정지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폰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냈다.
‘멍청한 자식… 레전드리 제작템이 22만 골드에 거래되는 실정인데 유니크 제작템을 80만 골드에 산다고? 무식하면 고생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만.’
그리드는 잘못 생각하고 있다. 무식한 건 폰이 아니라 그리드였다.
사실 그리드가 제작했던 무아지경의 검은 경매장에 등록할 경우 수백만 골드. 족히 현금 수십억 원에 낙찰 되었을 물건이다.
하지만 그리드는 그 사실을 모르고 NPC에게 판매해서 고작 22만 골드밖에 챙기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폰이 제시한 80만 골드야말로 이치에 맡는 금액이었다.
‘레가스는 호구 1호. 오늘부터 폰은 호구 2호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 되는 법…
그리드는 진실을 모른 채 폰을 호구로 여기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기분이다! 에픽 창 두 자루는 서비스로 주마! 80만 골드 오케이!”
에픽 등급 질풍창 두 자루는 별도로 15만 골드가량 지불해서 구매할 생각이었건만 서비스로 주겠다니?
폰은 그리드의 대범함이 놀라웠다.
‘평소의 행실은 찌질해 보이지만 사실은 남자 중의 남자였군. 평소의 찌질함은 진정한 모습을 감추기 위한 용도에 불과했던 것인가.’
폰과 체다카 길드원들은 그리드에게 점점 더 큰 호감을 갖게 되었다.
같은 시각.
한 무리가 칸의 대장간을 염탐하고 있었다.
“체다카 놈들이 저 대장간을 아지트처럼 애용하기에 설마, 설마 했더니… 어쩌면 저자가 이름 모를 장인이 아닐까? 이 사실을 어서 크리스 님께 알리고 랭커 분들께 소집령을 전달해라!”
Satisfy에서 가장 강한 길드는 어디인가?
현재 시점에서 지나가는 유저 10명을 붙잡고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10명 중 9명은 자이언트 길드를 꼽을 것이다.
명실상부 최고의 규모를 자랑하는 자이언트 길드!
이름 모를 장인을 초빙하기 위해 이곳 윈스톤까지 찾아온 그들의 마수가 체다카 길드와 그리드를 덮쳐오고 있었다.
에트날 왕국 남부의 소도시 페드로.
이 지역에는 특별한 매장 자원이 없다. 그렇다고 지리적 요충지도 아니다. 그나마 특산품이 하나 있는데, 그 특산품이라는 것이 딸기맛 바나나다.
그리고 딸기맛 바나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바나나가 어째서 바나나 맛이 아니고 딸기맛이냐’, ‘딸기맛 바나나 먹느니 차라리 딸기를 먹겠다’, ‘바나나가 핑크색이라 혐오스럽다’ 등등.
유일한 특산품이건만 더럽게 안 팔려서 돈벌이가 아예 안 된다.
하지만 자이언트 길드에게 있어서 페드로는 축복받은 땅이었다.
페드로 성의 지하 던전에 11일마다 리스폰되는 보스 몬스터, 뱀파이어 남작의 존재 때문이었다.
뱀파이어 남작은 뱀파이어의 악세사리 세트와 각종 영약을 드랍한다.
크리스가 다른 국가들의 더 좋은 제안을 마다하고 이 소도시의 영주가 되기로 결정한 이유는 오로지 뱀파이어 남작에게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인간 놈…! 반드시 다시 부활하여 이 치욕을 갚아주겠다!!”
3자루 검에 심장을 관통당한 뱀파이어 남작이 원통해하며 소리쳤다.
크리스가 방긋 웃어주었다.
“응, 잊지 말고 꼭 다시 부활해야 된다?”
“크아아아악!!”
뱀파이어 남작이 먼지로 화해 사라졌다. 그리고 그가 서있던 자리엔 온갖 재물이 쏟아져 내렸다.
재물 중에는 근력의 영약과 민첩성의 영약. 그리고 뱀파이어의 목걸이가 포함되어 있었다.
크리스는 다른 길드원들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영약들을 복용했다.
[근력이 영구적으로 +3 상승하였습니다.]
[민첩성이 영구적으로 +3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을 하나 올릴 때 획득하는 스탯 포인트는 총 10개다.
뱀파이어 남작이 드랍하는 영약을 3개 먹으면 레벨을 1개 올리는 것과 비슷한 셈이다.
현재 290레벨인 크리스가 레벨을 하나 올리기 위해선 꼬박 보름 동안 사냥만 해야 했기 때문에, 크리스에게 있어서 영약의 가치란 천문학적으로 컸다.
영약을 복용하고 이어서 뱀파이어 목걸이를 착용한 크리스가 흡족해했다.
“좋아. 이걸로 뱀파이어의 악세사리 세트 완성이다.”
“축하드립니다, 크리스 님.”
“이로서 한층 더 강해지셨군요!”
크리스와 함께 레이드에 참가했던 길드원들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크리스가 그들을 독려했다.
“이 정도 드랍률이라면 간부들도 머잖아 뱀파이어의 악세사리 세트를 갖게 될 수 있을 거야. 다들 힘내자고.”
“예!”
총원이 530명이나 되는 길드가 제대로 통제되려면 엄격한 상하관계가 필요했다.
일반 소규모 길드들이 가족 같은 분위기를 표방하는 반면 자이언트 길드는 군대에 가까웠다. 직속상관에게 절대복종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매우 효율적이어서 길드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다.
뱀파이어 남작 레이드가 끝난 후.
연회가 준비되어 있는 회장에 모인 간부들이 부하들로부터 귓속말을 받았다.
귓속말들의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윈스톤에서 이름 모를 장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크리스가 와인 잔을 기울이는 사이, 간부들은 부길마에게 귓속말의 내용을 전달했다. 그러자 부길마는 그 내용들을 정리하여 크리스에게 보고했다.
“윈스톤에서 이름 모를 장인을 발견한 듯합니다. 한데… 이름 모를 장인은 이미 체다카 길드에 가입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체다카 길드?”
크리스의 금색 눈동자가 잠시 경련했다.
동요하는 것이다.
체다카 길드는 아직 Satisfy가 출시되기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MMORPG L. T. S의 지존으로 군림하던 길드다.
그들은 소수정예로 숱한 전설을 만들어냈으며, 자이언트 길드도 그들의 전설의 희생양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한때 L. T. S의 TOP 5 세력으로 꼽혔던 자이언트 길드가, Satisfy가 출시되자마자 도망치듯 L. T. S를 떠났던 원인은 체다카 길드라고 해도 무방했다.
결과적으로 Satisfy가 L. T. S를 초월하는 인기 게임이 된 덕분에 자이언트 길드의 발 빠른 결단은 옳은 것이 되었지만, 사실 자이언트 길드의 자존심은 체다카 길드에게 무참히 짓뭉개진지 오래였다.
“그 빌어먹을 놈들… 남들보다 Satisfy를 늦게 시작한 주제에 벌써 많이 커가지고 자주 이름을 듣게 되는군.”
크리스가 치를 떨었다. L. T. S 시절 체다카 길드에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엿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름 모를 장인을 빼앗기게 생겼다니, 잠자코 당하고 있을 순 없었다.
“아셀라스와 미하라, 지르칸을 보내라. 체다카 길드가 이름 모를 장인을 포기하겠다고 약조할 때까지 철저하게 짓밟으라고 명해라.”
“그 세 사람을 한 번에…”
“너무 과한 게 아닌가요?”
간부들이 술렁였다.
크리스가 호명한 세 사람은 자이언트 길드의 5대장에 속하는 인물들로서 각 100명의 길드원을 통솔하고 있다.
그들이 윈스톤으로 보내진다는 것은 즉 300의 대병력을 파견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체다카 길드는 고작 20명도 안 되지 않던가?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실 필요까지는…”
자이언트 길드의 간부는 5대장을 포함해서 총 11명이다. 그리고 그들 중 6명은 L. T. S 시절부터 함께해왔다. 하지만 5명은 Satisfy에서부터 함께였다.
Satisfy에서부터 함께한 그 5명이 문제였다.
그들은 체다카 길드의 명성을 소문으로만 접했을 뿐, 그 강함을 직접 체험해본 바가 없었기에 체다카 길드를 무시하고 있었다.
그에 크리스가 실소하였다.
“닭? 소? 체다카 길드를 한낱 가축들과 비교하는 거냐? 큭큭! 너희는 아직 모르는군. 놈들은 용이다. 지금은 잠시 웅크리고 있을 뿐이지, 놈들은 언제라도 승천할 수 있어.”
크리스는 체다카 길드와 100번도 더 넘게 충돌했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그들을 잘 알았다.
그들의 저력은 헤아릴 수조차 없음을.
비록 L. T. S 시절과 지금은 입장이 많이 다르다고 해도, 결코 방심할 생각이 없었다.
“잔말 말고 그 세 사람을 보내라. 그리고 용이 문 여의주를 빼앗아라.”
밟아놓을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 밟아놓을 각오다.
***
그리드가 체다카 길드에 가입한지 오늘로서 4일 째가 되었다.
그 짧은 기간 동안 그리드는 길드원들의 아이템을 감정해주고 폰의 유니크 창을 제작하는 등 큰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금일, 체다카 길드는 그리드에게 아이템 제작 의뢰를 맡길 2번째 인물을 결정했다.
그는 이벨린이라는 소년이었다.
아직 16세에 불과하지만 검사 클래스에서 랭킹 3위를 찍은 전도유망한 소년이다. 레가스는 이벨린이 조금만 더 커서 자신의 라이벌이 되어주길 고대하고 있을 정도로 잠재력이 컸다.
그리고 그 소년은 그리드에게 검의 제작 의뢰를 맡겼다.
한데 보통 검이 아니라 프람베르그였다.
프람베르그란 칼날의 모양이 파도처럼 물결치는 검을 뜻한다. 모양의 특성상 적을 한 번 베면 살을 무참하게 찢어발기는 잔인한 무기이다.
한데 칼날을 물결치는 모양으로 단조하면서 단련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우선 단조가 무엇인지부터 짚고 넘어가자.
단조란, 고체의 금속 재료를 망치로 두드려 일정한 모양을 만드는 작업이다. 이때 망치질을 얼마나 잘하고 많이 하느냐에 따라서 금속이 견고하게 단련된다.
그리고 금속은 단련될수록 강화 되서 모양을 잡기가 어려워진다.
프람베르그처럼 모양이 복잡한 무기를 단조하기 위해서는 단련을 극대화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는 뜻이다.
단조를 일단 끝낸 후 단련하면 되는 게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단련하면 필연적으로 모양이 변하게 된다. 그래서 단조와 단련은 동시에 진행하는 게 맞다.
위와 같은 이유로, 일반적인 대장장이들은 프람베르그를 제작할 때 단련을 반쯤 포기한다.
어차피 프람베르그의 특성은 그 모양에 있는 바, 단련보다는 모양을 잡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작업했다.
그리고 이는 에픽 등급 이상의 프람베르그를 보기 드문 이유가 되기도 했다.
제대로 단련되지 못한 칼날은 내구력이 취약해서 위력적이지 못한 법.
실제로 시중에 유통되는 프람베르그는 대부분 노말이나 레어 등급이었다. 에픽 등급 이상의 프람베르그는 몬스터가 드랍하는 경우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그리드는 노말, 레어 등급 따위의 결과물을 원치 않았다. 최소 에픽 등급은 되어야 제대로 돈벌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상태창.”
이름:그리드
레벨:97 (140,090/5,531,200)
직업:파그마의 후예
*아이템 제작 시 추가 옵션을 더하는 확률이 상승합니다.
*아이템 강화 확률이 상승합니다.
*모든 장비 아이템을 조건 없이 착용할 수 있습니다. 단, 아이템 등급에 따른 페널티가 발생합니다.
칭호:전설이 된 자
*상태 이상에 잘 걸리지 않습니다.
*생명력이 최소치일 때 잘 죽지 않습니다.
*쉽게 인정받습니다.
칭호:최초의 유니크 아이템 제작자
*손재주 +200
칭호:유일한 레전드리 아이템 제작자
*손재주 +350
칭호:나이트 슬레이어
*체력 +100
*근력 +30
칭호:정의의 사도
*모든 능력치 +10
*정의의 사도는 용맹무쌍합니다.
생명력:9,016/9,016 마나:819/819
근력:824 체력:572 민첩:257 지력:279
손재주:904 끈기:273
평정:204 불굴:230 위엄:204 통찰력:204
용기:148
능력치 포인트:0
무게:15,508/21,940
‘칭호의 효과까지 합하면, 내 손재주는 이제 1500에 육박한다.’
칸의 고급 대장장이 기술은 2레벨이다.
그리드가 칸과 몇 달 째 함께 생활하며 추측해보기로, 고급 대장장이 2레벨의 손재주는 약 500에서 600 정도 선이었다.
칸이 북부 최고의 대장장이라는 명성을 쌓고 있던 점을 고려해볼 때, 그리드는 현존하는 최고의 대장장이들보다 약 3배 가까이 높은 손재주를 보유한 셈이다.
그렇기에 그리드는 다른 대장장이들이 포기한 프람베르그의 단련을 충실히 수행해낼 자신이 있었다.
“내 손으로 만들어주마. 그 누구도 만들지 못했던 강력한 프람베르그를.”
안드로메다까지 치솟아 있는 그리드의 자신감은 지구로 되돌아올 생각을 않고 있었다.
***
“히야압!”
퍼엉!
“히요옷~!”
콰작!
레가스는 그리드의 방패를 강탈해간 도둑놈의 단서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 중이었다.
그러면서 앞길을 가로 막는 짐승과 몬스터들을 모조리 다 때려잡았으니, 그가 지나가는 길은 피바람이 뒤따랐다.
권성 레가스!
L. T. S 시절에는 최강이라 불렸었고, 현재는 체다카 길드를 대표하고 있는 그의 강함은 랭킹의 개념을 초월하고 있다.
길드 내에서 통합랭킹이 가장 높은 지슈카조차도 레가스에게는 한 수 접어둘 정도이다.
레가스의 전투 센스는 가늠할 수 없이 뛰어나다. 싸우면 싸울수록 강해지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의 명성을 모르는 이가 이미 없는 바.
감히 그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한데 지금.
“어이~ 레가스, 너 이 새끼 진짜 오랜만이다?”
자이언트 길드의 5대장 중 한 명이자 L. T. S 시절 레가스의 라이벌임을 자처했던 미하라가 나타나 레가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다시 너랑 싸울 수 있게 되다니, 너무 기뻐서 머리가 핑핑 돌 지경이야. 큭큭큭!”
미하라는 통합랭킹 19위의 마검사였다.
검과 마법을 완벽하게 마스터해서 검사는 검만으로 제압하고 마법사는 마법만으로 제압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상대가 레가스이니만큼 검술과 마법을 처음부터 동시에 사용했다.
퍼엉! 서걱!
불의 기둥을 3개 동시에 소환하여 레가스의 경로를 최소화시키고, 섬광 같은 검격을 날린다.
레가스의 가슴에서 핏물이 튀어오르는 모습을 확인한 미하라가 흥분에 휩싸여 광소했다.
“크하하하핫!! 레가스! L. T. S 시절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나약하구나! 한때는 최강이라고 불렸던 사내가 이렇게 허접해서야!!”
“…….”
불기둥으로부터 간신히 벗어난 레가스가 가슴의 피를 조용히 닦아냈다. 그리고 다시금 마법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는 미하라에게 질문했다.
“누구세요?”
“……!”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하여 마법의 주문을 끝까지 외우지 못한 미하라!
그가 격노하여 소리쳤다.
“이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이 빌어먹을 새끼가… 아닛?!”
동요한 게 잘못이다.
찰나의 틈을 보인 것을 레가스가 놓치지 않고 측면으로 파고 들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무게를 실은 주먹을 날려 미하라의 시야가 하늘을 담도록 만들었다.
퍼어어억!!
“…컥!”
어퍼컷을 제대로 얻어맞고 뒤로 나자빠진 미하라에게 레가스가 꾸벅 고개 숙여 인사했다.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대전 상대가 되어주겠다니 감사합니다. 당신과 싸우고 나면 한층 더 강해질 수 있을 것 같군요. 자, 일어나세요. 그리고 집중해주십쇼.”
“이놈…!”
레가스와 미하라가 막 조우하였을 무렵.
지슈카와 토반은 길드원 8명을 이끌고 이동 중이었다.
날개 없는 드래곤이라고 불리는 사막의 제왕 바실리스크를 레이드하기 위함이다.
바실리스크는 석화 마법의 정점에 선 존재!
레이드에 참여한 인원들은 현재 전원 석화 저항력을 60퍼센트 이상씩 맞춘 상태였다.
한데 하늘에서부터 등장한 마법사가 사용한 석화 마법에 전원 발이 굳어버리고 말았으니 경악할 노릇이다.
‘유저가 이 정도 마법력을 발휘하다니…?’
혼란스러워하는 일행들에게 마법사, 아셀라스가 골치 아프단 표정을 지었다.
“발이 굳는 것으로 끝인가? 이런… 내 특기는 석화 마법이건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군. 그렇다면 이곳은 내가 굳이 나서지 않는 게 좋겠어.”
아셀라스가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족히 200명은 되어 보이는 유저들이 사막 언덕 저편에서부터 우르르 나타났다.
“너희들은 뭐냐!”
소리치는 토반에게 아셀라스가 무표정하게 설명했다.
“자이언트 길드다. 이름 모를 장인을 내놔라. 그를 길드에서 추방시키기 전까지 너희는 계속 죽고 또 죽어서 정상적인 게임 플레이가 불가능할 거야.”
그리고 윈스톤 외곽의 한 던전.
질풍창을 휘두르며 던전 내의 몬스터들을 소탕하고 다니던 폰의 뒤로 검이 날아와 꽂혔다.
까앙!
“큭!”
창으로 검을 막아내는 순간, 폰은 압도적인 무게감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신음을 토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등장하는 검의 주인을 확인하고 경악했다.
“지르칸…!”
폰은 그를 잘 알고 있었다.
L. T. S 시절 수백 번도 더 넘게 겨뤄본 상대였기 때문이다.
“오래간만일세, 폰.”
L. T. S 시절 지르칸의 통합랭킹은 4위였다. 레가스와 지슈카, 그리고 폰 다음가는 실력자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Satisfy에서 지르칸의 통합랭킹은 11위다. 폰과 레가스는 물론이고 지슈카보다 높았다.
그 지르칸이 폰에게 검을 겨누었다.
“자네는 한동안 여기서 나와 놀아줘야겠어.”
‘내 앞에 이자가 나타났다는 것은 지금쯤 다른 길드원들도…’
이를 악 문 폰이 지르칸을 도발했다.
“여전히 크리스 그 무능한 놈의 밑에서 세월 낭비하고 있는 겁니까?”
지르칸이 웃어넘겼다.
“마스터는 내 기대대로 훌륭히 성장하셨다네. 모르는가? 지금의 그분은 과거와 달리 나는 물론 자네들까지 초월하였어. 참으로 섬기는 보람이 있는 분이지.”
“칫, 늙은이가 행복해보이네… 좋아, 우선은 당신을 쓰러뜨려주지. 과거에 그랬듯이 말이야.”
같은 시각, 칸의 대장간.
‘저게 그리드 님의 본 모습인건가…’
그리드가 검을 제작하는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서 찾아왔던 이벨린은 용광로 앞에 서있는 그리드에게서 평소에는 엿볼 수 없던 포스를 느끼고 압도당했다. 그리고 방해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대장간 밖으로 나갔다.
한데 황금 철퇴가 음각 된 길드마크를 달고 있는 열댓 명의 유저가 대장간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자이언트 길드?”
그리고 그 순간, 길드 채팅창에 긴급 공지 사항이 떠올랐다.
{자이언트 길드가 우리 길드원들을 계획적으로 습격하는 중이다. 아직 무사한 인원은 그리드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해라. }
“헤에…”
눈을 동그랗게 뜬 이벨린이 프람베르그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대장간 정문에 버티고 서며 씨익 웃었다
“꽤나 재미있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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