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60화 (55/1,794)

템빨 13권 - 7화

야크 길드의 마스터 부바트.

과감한 결단력과 강력한 CC기, 그리고 탱킹력까지 겸비한 그는 Satisfy 최강의 이니시에이터로 손꼽혔다.

그가 선두에서 전투를 개시할 때면 항상 아군에게 유리한 전황이 설계됐다. 오죽하면 별명이 ‘약속된 승리의 야크’이겠는가.

하지만 국가대항전 당시 부바트는 무력했었다. 명성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여 자국민들을 실망시켰다.

유달리 컨디션이 안 좋았기 때문에?

아니다.

유라와 그리드를 연달아 만난 탓이다.

유라의 경우 뛰어난 피지컬로 CC기를 무력화시켰고, 그리드의 경우 CC기 자체를 저항하였기에 상성이 너무 나빴다.

부바트는 항거할 수 없는 좌절감을 맛봐야만 했다.

그 후 지금까지 수개월.

부바트는 노력했다.

사냥에 열중하여 레벨을 올리고, 새로운 스킬들을 습득하는 한편 컨트롤 실력을 극대화 시켰다. 유라와 그리드에게 대항할 능력을 갖췄다.

언젠가 또 그들과 맞붙게 된다면, 그때는 기필코 그들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질 자신이 있었다.

한데.

“분하다…!”

유라와 그리드를 만나기도 전에 또 다시 무력감과 좌절감을 맛보게 되다니!

부바트에게 있어서 작금의 현실은 무척이나 끔찍한 것이었다.

아슈르 백작은 조소하고 있었다.

“형편없는 실력이다.”

“크윽!”

조롱하는 아슈르 백작에게 부바트는 반박하지 못했다.

아슈르 백작은 정말로 뛰어났다.

어떤 스킬을 사용하던지 적합한 마법으로 대응하는 그의 순발력과 판단력은 상식의 범주를 벗어나고 있었다.

대지를 무너뜨리는 격전 속에서 부바트는 이미 상처투성이인 반면, 아슈르 백작은 새하얀 로브에 먼지 하나 묻히지 않았다.

대륙 10대 마법사.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전쟁의 억제력이 되는 괴물.

현대 사회의 핵탄두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그들의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였을 줄이야.

‘유라보다 월등히 강하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만약 아슈르 백작과 유라의 레벨, 스탯이 동일하다고 가정할지라도 유라보다 아슈르 백작이 여러모로 뛰어났다.

네임드 NPC 보정 효과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슈르 백작처럼 게임의 세계관이나 스토리에 깊은 영향을 행사하는 네임드 NPC는 모든 능력치(공격력, 방어력, 마력, 생명력, 마나,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 등)이 유저보다 높게 설정되어 있다.

이는 스탯과 상관없이 적용되는 고정 효과로서 일종의 보호 시스템이다.

같은 네임드 NPC라고 해도 급이라는 것이 나뉘기 때문에 피아로에게는 패배했던 아슈르 백작이지만.

“너희 같은 잔챙이들이 감히 넘볼 수 있을 정도의 퇴물은 아니지.”

쿠르르르르릉!

한 손에는 뇌전을,

스으윽-

한 손에는 물의 안개를 동시에 발현시키는 아슈르 백작.

여러 종류의 속성 마법을 마스터하고 있는 이자의 파괴력은 다수를 상대할 때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내 도시에 뼈를 묻어라. 그대들의 시신을 비료로 삼아 장미꽃을 피우겠다.”

콰르르르릉!

물안개가 펼쳐짐과 동시에 전격이 연계되자 뇌운이 형성됐다.

영향 범위 내의 야크 길드원들과 제라프 길드원 전원 감전되어버렸다.

입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경련하는 그들의 머리 위로 병사들의 화살세례가 비처럼 쏟아졌고, 기사들의 돌격이 이어졌다.

“우오오오!”

부바트를 비롯한 상위 랭커들이 분전했다. 감전을 최대한 빨리 극복한 후 기사들을 박살냈다.

특히 부바트의 활약이 눈부셨다. 어깨치기 한 방으로 기사 2명을 날려버리는 그의 모습은 성난 야크 그 자체였다.

입에 푸른 장미꽃을 물고 있는 기사, 디오 정도의 수준은 되어야 그와 몇 합 간신히 겨룰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봤자 아슈르 백작의 눈에는 하찮았다.

“고작 그 따위 실력으로 레이단을 침공하겠다고 계획하다니, 안타까울 정도로 주제파악을 못하는군. 그대들은 정녕 모르는가? 레이단에는 괴수가 있음을.”따악! 화르륵! 화륵! 화륵!

아슈르 백작이 손가락을 한 번 퉁기자 불화살이 연속적으로 생성되기 시작한다.

C급 마법일지라도 가일층되면 A급 마법 못지않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슈르 백작은 압도적인 마력과 마법 캐스팅 속도로 증명하고 있었다.

퍼퍼퍼퍼퍼퍼펑!

“크아아악!”

사람이 짚단처럼 불타올랐다.

대지가 요동치고 폭풍이 휘몰아친다.

Satisfy를 대표하는 7대 길드 중 2개 길드가 처참하게 무너지는 그 비현실적인 광경, 버니버니를 통해서 고화질로 생생히 녹화되는 중이었다.

“대박…! 대박이다! 푸하하하하!!”

대륙 10대 마법사가 그리드를 비호하다니!

버니버니는 지금의 녹화 방송을 중계하게 되는 순간 최대 시청자수를 갱신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상세한 내막을 원하는 각종 언론매체로부터의 인터뷰 또한 쇄도할 터.

세계 최고의 게임 BJ로 복귀할 날이 머지않았다.

***

“끄… 끄윽!”

아이스 플라워 길드의 마지막 생존자, 레이스.

고군분투하던 그마저도 결국 신속의 살검 앞에 쓰러졌다.

7대 길드 중 하나가 페이커 일인에게 전멸당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한 이유?

시기가 페이커에게 좋게 작용했다.

2차 클래스와는 차원이 다른 위력을 발휘하는 3차 클래스가 막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

아이스 플라워 길드원 30명 중 3차 전직 유저는 봉드레 하나뿐이었다.

즉, 페이커와 맞상대가 가능한 인물이 봉드레 하나에 불과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봉드레조차도 마법사.

어쌔신인 페이커에게 제대로 카운터를 맞고 말았다.

클래스 차이. 거기에 상성 차이까지 더해져서 아이스 플라워 길드는 페이커 일인에게 허무하리마치 쉽사리 무너졌음이다.

만약 지금 이 순간이 3개월 전이었다면. 혹은 시간이 더 지난 후였다면.

제아무리 페이커가 대단하다고는 하나 단신으로 아이스 플라워 길드를 박살내지 못했으리라.

[스태미나가 고갈되었습니다.]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 없게 됩니다.]

털썩!

페이커가 끈 풀린 인형마냥 주저앉았다.

신속의 주인의 치명적인 단점.

빠르게 움직이는 만큼 스태미나 소모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것만큼은 템빨로도 극복하기 어려운 난제였다. 그리드가 어떻게든 해결해보겠다고 노력하고는 있으나 결과는 미지수.

부들부들.

페이커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스태미나는 0에 고정 된 상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걸음을 옮기고자 애썼다.

레이단을 지켜야한다는 일념에서였다.

‘나뿐이다.’

아이스 플라워 길드원들의 대화 내용을 유추해봤을 때, 현재 레이단을 침공한 세력은 7대 길드 전부일 공산이 컸다.

템빨단원 전원 광산 개발 등의 임무 때문에 레이단을 비우고 있는 지금, 레이단을 수호할 수 있는 인물이 자신 외에 없음을 페이커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털썩!

페이커는 단 한 걸음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연신 제자리에 풀썩풀썩 쓰러졌다.

스태미나의 고갈은 정신력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드…”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닌 너였다면 좋았을 것을.

페이커는 안타까웠다.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표정하던 그의 얼굴이 절망감과 좌절감으로 일그러졌다.

급기야 시체마냥 늘어지는 그의 곁으로 숨어있던 울족들이 걱정하며 달려왔다.

최초에는 페이커를 두려워했던 그들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신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날.

페이커는 전설이 되었다.

단신으로 7대 길드의 일각을 몰살시킨 그를 훗날 사람들은 살신이라 추앙하였다.

그 살신을 부하로 거느린 그리드의 명성이 높아진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고.

***

페이커가 아이스 플라워 길드를 습격하기 직전.

라우엘은 페이커로부터 충격적인 귓속말을 받았다.

-7대 길드가 레이단으로 진격 중이다. 아이스 플라워 길드의 현재 위치는 가시덩굴 숲. 그 외 6개 길드의 위치는 파악할 수 없다.

‘뭐라고?’

하필이면 레이단이 텅텅 비었을 때 적의 대규모 공습이라니?

적들이 레이단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너무 안일했다.’

보다 철저하게 방비하여 첩자들을 차단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이는 전부 내 탓이다. 영주 대리인 내가 무능하여 발생한 일이다.

꽈드득!

스스로에게 화가 치밀어 오른다.

실로 수많은 사람들이 레이단을 견제하고 있음을 뻔히 예상했으면서도 지금과 같은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하다니.

나를 믿고 모든 것을 맡긴 그리드님을 뵐 면목이 없다.

“제길…! 제기랄!”

“라우엘? 뭐야, 무슨 일이야?”

알자르 산맥.

광산 인근의 몬스터를 토벌하고 레이단까지 길을 잇기 위해 작업 중이던 템빨단원들이 하나둘씩 몰려왔다.

그들은 라우엘이 드물게 흥분하며 머리를 쥐어뜯자 불안을 느꼈다.

심호흡하고 진정한 라우엘이 상황을 전파했다.

“7대 길드가 레이단으로 진격해오는 중이랍니다.”

“뭐라고!”

템빨단원들이 공분했다. 그중 특히 반트너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 날강도 같은 새끼들이 빈집 털이를…! 젠장! 이를 어째? 여기서 레이단까지 가려면 최소 반나절 이상 걸리잖아!”

라우엘이 후로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후로이님, 당신의 비룡에 최대 탑승 인원은 몇이나 됩니까?”

“셋이다.”

비룡의 이동 속도라면 3시간 내로 레이단에 도착할 수 있을 터.

라우엘은 템빨단원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후로이와 함께 먼저 레이단에 도착하여 활약할 수 있을 2명을 선별하기 위함이었다.

“…”

역시 아쉬운 감은 있었다.

템빨단 최강의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폰과 레가스는 던전 탐사 임무를 수행하느라 동떨어져 있었고(심지어 연락 두절), 페이커 또한 개인 활동 중이다. 지슈카는 아예 저 먼 바이란에 있었고.

그들 다음가는 전력이라고 하면…

“반트너님, 그리고 툰님. 후로이님과 함께 먼저 레이단으로 이동해주세요. 레이단에 도착하였을 때 아직 적들이 침공하지 않은 상태라면 쥬드의 치안대와 협력하여 방비를 단단히 해주시고, 만약 이미 전투 중이라면…”

말을 멈춘 라우엘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힘겹게 말을 이었다.

“레이단을 버리세요. 칸님과 라빗님, 그리고 피아로님과 쥬드의 구원에 초점을 맞춰주세요.”

현실적인 판단이었다.

소수의 인원만으로 7대 길드에게 항거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내정 시설의 초토화는 각오해야만 한다. 현재로서는 잃지 말아야할 인재들의 목숨을 구원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알았다…”

솔직히 말해서 반트너는 따지고 싶었다. 어째서 레이단을 포기하려는 거냐? 나 혼자서라도 레이단을 지켜보이겠노라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라우엘은 그리드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의 명령에 차마 토를 달지 못하고 복종하는 길을 택했다.

이제 반트너는 그리드를 대장으로 인정하고 있었기에.

“가자!”

비룡에 탑승한 후로이와 반트너, 그리고 툰 세 사람이 먼저 레이단으로 출발했다.

남겨진 인원은 라우엘을 주축으로 움직였다.

“달립시다. 스태미나와 마나를 안배하지 마세요. 어떻게든 빨리 레이단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우리가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레이단이 잿더미가 됐을지라도.

“우리는 침략자들을 반드시 죽입니다.”

그리드는 유저 최초의 왕이 될 존재다. 범접할 수 없는 존재여야만 했다.

감히 그에게 칼끝을 겨눈 적들?

용서할 생각 따위, 추호도 없다.

***

레이단.

광활한 밀밭을 쭉 둘러본 지발이 조소했다.

“이런 대도시를 고작 농업도시로 발전시키다니, 그리드 그 자식은 내정에도 재능이 전무하군.”

역시 그리드는 무능하다. 놈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레전드리 클래스 하나뿐이다.

유저 최초의 왕이 될 자격?

놈에게는 없다.

“우선 이 밀밭부터 잿더미로 만들어 볼까?”

어째선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길드들이 많았으나 지발은 개의치 않았다.

마법사들에게 화염 마법으로 모든 것을 불태우라 명하고 있노라니.

“그대들은 누구지?”

“…?”

웬 농부 4명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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