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97화 (92/1,794)

템빨 15권 - 2화

템빨단과 은기사 길드의 합병 소식은 여러 국가의 신문 1면을 장식해도 부족함이 없는 이슈였다.

하지만 합병식은 성대하지 않고 조촐하게 진행됐다. 기자 하나 초대하지 않았다.

템빨단의 성장을 굳이 공표함으로서 타세력들에게 견제당할 이유가 없었던 까닭이다.

아직은 웅크려야할 시기다.

“푸하하하핫!”

“깔깔깔~!”

합병식이 끝난 후 연회가 열렸다.

기존의 템빨단원들과 은기사 길드원들의 화합을 도모하자는 의도에서였다.

분위기가 시끌벅적했다.

“반트너님! 당신과 동료가 돼서 영광입니다! 저는 예전부터 당신을 동경했거든요! 당신을 따라서 올 근력 수호 기사를 시작했을 정도로요!”

“저런, 완전히 망했구나. 아직 180레벨 전이라면 캐릭터 삭제하고 새롭게 키우는 것을 추천한다. 아니면 평생을 망캐, 혹은 똥캐라는 오명을 쓰고 살아가야할 테니깐.”

“…”

“페이커님, 7대 길드 중 하나인 아이스 플라워 길드를 혼자서 박살냈다는 님의 무용담을 듣고서 저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님처럼 대단한 어쌔신이 되려면 스탯과 스킬을 어떤 방향으로 육성하는 것이 좋을까요?”

“…”

“님? 페이커님? 왜 말이 없으시죠? 님?”

“…”

“레가스! 네가 태권도랑 한국을 그렇게 좋아한다며? 한국인으로서 네가 너무 사랑스럽고 고맙다! 근데 너 김치는 먹어봤냐? 응? 두 유 노우 김치?”

“…”

양측 길드 모두 평범치 않은 성향의 사람이 많았다. 가까워지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리드는 길드원들의 면면을 관찰하느라 바빴다.

‘두 유 노우 김치라니… 저 사람은 극검과 동류군. 대한 애국 협회 소속인가? 허, 저 녀석은 상당히 어려 보이는데도 꽤나 과묵한 걸? 마침 대장장이라니까 유심히 지켜봐야겠어.’

새로 생긴 225명의 동료는 앞으로 친구이자 가족처럼 여겨야할 존재들이었다.

그리드는 그들의 아이디와 얼굴, 그리고 특징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면밀한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둔한 머리로 225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외우는 일이 어디 쉽겠는가?

‘아오, 머리 아파.’

결국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리드의 뇌에 과부화가 발생했다.

과거였다면 5분 만에 뇌가 마비됐을 터이니 실로 놀랍고 대단한 발전이라고 볼 수 있었다.

끙끙 앓는 그리드 곁에 나란히 앉은 지슈카, 라우엘, 극검은 토론 중이었다.

“은기사 길드의 전투원들 평균 레벨이 220이라고 했지? 그 정도 수준으로는 사막의 몬스터들을 상대로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으니까 레벨을 올리는 일이 급선무 같은데? 템빨단원들이 번갈아 가면서 쩔을 해주기로 하자.”

“아니요. 옐로우 미스릴 광산의 작업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저레벨 길드원들은 바이란과 코크로 섬에 파견해서 알아서 성장하게끔 만들고, 고레벨 길드원들은 광산 근처의 몬스터들을 토벌하는데 전력을 쏟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저레벨 길드원들이 너무 뒤쳐지지 않을까?”

“아니죠. 저레벨 길드원들이 사냥하기에는 바이란과 코크로 섬의 환경이 레이단보다 훨씬 더 좋잖습니까? 애초에 저는 쩔에 대해서 부정적이에요. 남의 힘을 빌려서 레벨을 올려봤자 뭐합니까? 레벨에 적합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게 뻔한데.”

“음, 맞는 말이네. 내 생각이 짧았어.”

“바이란과 코크로 섬의 영주를 누구로 임명하느냐가 관건입니다. 훌륭한 영주라면 두 영지를 발전시키는 한편 저레벨 길드원들을 잘 이끌어줄 테니까요. 코크로 섬의 영주직은 극검님께서 유지해주시면 좋겠다는 것이 저의 개인적인 바람인데, 어떠십니까? 극검님.”

“난 안 돼. 그리드가 나보고 광산에서 채광하라고 했어.”

“네?”

발검술의 달인 극검.

통합 랭킹 15위인 그의 전투능력은 폰, 레가스와 동급이라는 것이 템빨단의 평가였다.

최상위 랭커들 사이에서도 수위권을 다투는 실력자라는 뜻이 된다.

한데 그만한 인물을 광부로 활용하겠다고?

‘그리드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내가 모르는 사연이라도 있나?’

라우엘의 혼란이 가중되는 그때, 한 소년이 허겁지겁 연회장 안으로 달려들어 왔다.

광물 탐지기 마이너였다.

한달음에 상석까지 달려온 그가 골머리를 썩고 있는 그리드에게 말했다.

“헉헉… 이봐요, 공작나리. 파브라늄 챙기려면 빨리 움직여야겠는데요?”

“왜 그렇게 급해?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뱀파이어의 도시들에 봉인되어 있는 파브라늄들이 이상한 기운에 침식당하기 시작했어요.”

마이너는 싸가지가 없을뿐더러 그리드에게 충성심이 없었다.

하지만 의외로 책임감이 강해서 맡은 바 임무에는 충실했다.

오늘도 스스로 자처해서 파브라늄의 상태를 살피고 오는 길이다.

“이상한 기운?”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란 말인가?

눈살을 찌푸리는 그리드의 시야로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새로운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뱀파이어의 도시로!>

난이도:?

모종의 사건으로 혼란의 시대를 보내고 있던 뱀파이어들에게 구심점이 될 만한 존재가 등장하였습니다.

그 존재의 막강한 마력이 15개 뱀파이어 도시 전역으로 퍼져나가 뱀파이어들에게 축복을 내리는 한편 파브라늄에는 악영향을 끼치는 중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파브라늄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사기에 침식당한 파브라늄은 변질되어 고유의 기능을 상실하고 그저 그런 광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지금 당장 뱀파이어의 도시로 향하여 파브라늄을 확보하십시오.

*뱀파이어의 도시마다 1개의 파브라늄이 봉인되어 있습니다.

*90일 동안 최대한 많은 파브라늄을 확보하십시오.

*90일 내에 확보하지 못한 파브라늄은 사기에 침식당해 영구히 소멸합니다.

*진행 도중 숨겨진 퀘스트가 연계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난이도가 물음표라고?’

물음표!

Satisfy에서 이 문장부호는 대개 ‘측정 불가능’한 사안을 가리킬 때 쓰인다.

즉, 이번 퀘스트의 난이도는 SS급을 초월하는 최고 난이도 등급의 퀘스트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엿 됐다.’

그리드의 모골이 송연해졌다.

뱀파이어의 도시가 어떤 곳인지, 그 또한 라우엘에게 보고 받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 한곳을 클리어하려면 3차 전직자가 최소 10명 이상 필요하다 했던가?

‘클리어 예상 시간은 무려 열흘이라고 했다.’

일반적인 던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거대하며 출몰하는 몬스터들의 수준 또한 높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결론은,

‘나 혼자서는 지랄발광을 해봤자 클리어하지 못하는 퀘스트잖아?’

아니, 뭐 이런 더러운 경우가 다 있단 말인가!

<파그마의 후예>의 고유 무기라고도 볼 수 있는 파브라늄의 수량은 정확히 28개로 한정되어 있다.

그중 하나라도 잃었다가는 피눈물이 흐를 터인데 15개를 잃게 생겼으니 욕만 나왔다.

“아우… 이런 씨부럴, 진짜. 어쩐지 요즘 일들이 잘 풀린다 싶었어.”

세상에 공짜는 없음을 새삼 다시 깨닫는다.

이마를 감싸 쥔 채 한숨 쉬는 그리드를 지슈카와 라우엘이 걱정했다.

“뭐야, 그리드. 무슨 퀘스트를 받았기에 그래?”

“퀘스트 내용을 공유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잠시 후.

그리드의 퀘스트 내용을 확인한 지슈카와 라우엘의 얼굴이 확 찌푸려졌다.

“이건 클리어 하라고 만든 퀘스트가 아닌 것 같은데?”

폰과 레가스 듀오조차도 뱀파이어의 도시 하나를 클리어하지 못했다. 무려 한 달의 시간을 투자했음에도 말이다.

한데 그리드 혼자서 90일 이내에 15개의 도시를 클리어하라니?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꼭 클리어 해야 하는 퀘스트로군요. 파브라늄을 잃느다는 것은 즉 그리드님이 약해진다는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있어선 안 될 일입니다.”

“길드 차원에서 도우면 어때?”

“그게 좋겠죠. 하지만 우리 길드가 관리하는 영지만 이제 3개나 됩니다. 그리드님께 지원할 수 있는 인원은 많아봤자 10명 내외일거예요.”

별도의 임무를 수행 중인지라 이번 합병식에 참가하지 못한 유페미나. 그리고 아직 120레벨조차 달성하지 못한 루비와 섹시여고생은 아예 논외로 친다.

“10명이라… 그 정도 인원이라면 15개 파브라늄을 전부 확보하진 못하더라도 최소 9개는 확보할 수 있겠네.”

“네, 가능하다고 봅니다.”

저들끼리 논의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는 그리드의 표정이 영 탐탁찮았다.

“아서라. 내 개인적인 퀘스트 때문에 길드원들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으니까.”

옳은 마음가짐이다.

길드 마스터 개인의 퀘스트를 위해서 길드원들을 이용한다는 것은 일종의 월권행위이므로 지양해야만 했다.

딱 잘라 말하는 그를 보고 미소 지은 라우엘이 설명했다.

“뱀파이어의 도시에서는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으며 낮은 확률로 엘릭서를 획득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퀘스트를 도움으로서 길드원들이 발전할 수 있는 셈이니 겸사겸사 좋게 생각하죠.”

“하지만…”

망설이는 그리드의 곁으로 어느새 템빨단원들이 몰려와 있었다.

“오래간만에 사냥이구만.”

“우리도 렙업 좀 하자.”

템빨단원들은 최강의 랭커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었다. 그들은 최고의 사냥터에서 레벨을 올릴 기회를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다.

특히 반트너가 적극적이었다.

“망캐에서 벗어나려면 체력 엘릭서가 필요하다. 제발 나도 좀 데려가줘.”

“…”

표면적인 이유야 어찌됐든 이들은 나를 도우려하고 있다.

과거, 친구 하나 없어 아무에게도 의지할 수 없던 시절과 비교하면 행복에 겨워 눈물이 날 지경이다.

감동한 그리드의 입가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고맙다. 너희들 나중에 한국에 놀러오면 내가 간짜장 쏠게.”

라인하르트 골렘 침공전 당시.

그리드는 간짜장을 먹으러 가야한다는 이유로 국왕이 베푼 연회를 거절했던 적이 있다.

이번 발언을 통해서 템빨단원들은 확신했다.

‘간짜장이라… 엄청나게 귀한 음식인가보다.’

‘한국 왕족들이 먹던 음식인가?’

도대체 얼마나 비싼 음식인걸까?

템빨단원들이 헛된 망상을 하는 사이,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극검이 거수했다.

“나는 짬뽕.”

이제는 동료가 된 극검 또한 그리드를 도울 생각이었던 것이다.

***

원정대가 편성됐다.

그리드와 지슈카, 폰과 레가스, 극검과 페이커를 딜러로 삼고 반트너 한명을 탱커로 세운 소수 극딜 조합이었다. 후로이는 버퍼로서, 제드노스는 서포터로서 함께한다.

90일이라는 제한 된 기간 동안 15개 던전 전부를 클리어하려면 속전속결이 중요한 바.

이 극딜 조합은 잡몹들을 순식간에 도륙하면서 보스까지 빠르게 도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영주 대리로서 자리를 비울 수 없었던 라우엘은 이번 원정에서 빠졌다.

원정대가 출정하기 전, 라우엘이 다시 한 번 더 주의를 주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공대의 밸런스가 엉망입니다. 방어력이 너무 낮아 기습을 허용했다가는 그대로 무너질 가능성이 크므로 항상 주변을 살피세요.”

“알았다, 알았어. 네가 우리 엄마냐? 같은 말을 도대체 몇 번이나 반복해야 직성이 풀리는 거야?”

반트너가 투덜거렸지만 라우엘은 개의치 않고 계속 말해나갔다.

“도시에 입장하면 출입구가 봉쇄되고 외부와의 연락이 차단되는 점 등을 고려해봤을 때 기사소환 스킬이 발동하지 않을 확률이 99퍼센트입니다. 부디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피아로나 아스모펠이 원정대에 포함되었다면 이렇게까지 불안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유저와 달리 NPC의 목숨은 하나뿐이다.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을 수는 없었다.

걱정어린 시선을 보내오는 라우엘에게 그리드가 웃어주었다.

“다녀오마.”

그리드는 이번 원정을 통해서 리파엘의 창 모작을 완성시키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15개의 파브라늄을 전부 회수할 수만 있다면, 순수하게 파브라늄으로만 구성 된 리파엘의 창을 만들 수 있어.’

실패작을 가뿐히 상회하는 무기가 될 터.

지존 무기가 저 홀로 날아다니며 나를 보좌한다고 상상해보자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오른다.

“출발하자.”

그리드를 필두로 한 Satisfy 역사상 최강의 파티가 원정에 나섰다.

그들의 뒤를 따르는 수수께기의 인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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