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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07화 (102/1,794)

템빨 15권 - 12화

[300레벨 달성 기념으로 모든 자원이 최대치로 회복됩니다.]

100레벨, 200레벨 달성 당시에도 이랬다.

생명력과 마나, 심지어 스태미나까지도 완전히 회복되어 레벨 업 당사자의 사기를 북돋아준다.

“아주 좋아.”

연신 휘청거리고 있던 그리드가 똑바로 섰다.

물로 떼를 벗겨내듯, 레벨 업을 상징하는 섬광 아래서 상처를 씻어낸 그가 뱀파이어들에게 선포했다.

“너흰 다 뒤졌다.”

기형적으로 높은 각종 스탯들이 각성한 여파?

상상초월이다.

그리드 본인조차 놀랄 정도였다.

쩌정! 쩌저정!!

“……!”

뱀파이어들이 경악했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 죽어가던 인간이 갑자기 신속을 발휘, 돌진해오더니 방어가 무의미한 공격력을 발휘한 까닭이다.

“이게 무슨… 캬악!!”

그리드를 포위하고 있던 뱀파이어 20여 마리의 진형이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청색 검광과 옥색 검광이 교차할 때마다 사방으로 난무하는 혈액과 살점은 모두 뱀파이어들의 것이었다.

일도양단!

발산개세!

일기당천!

지금의 그리드를 표현할 수 있는 말들은 그토록 과장된 것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신위를 펼치고 있었기에!

“어머, 까부는 꼴 좀 봐.”

한낱 인간 따위가 주제 파악을 못하고 설치는 꼴이라니, 가소로우며 불쾌할 따름이다.

반트너의 대머리에 송곳니를 꽂아놓고 있던 진혈족 뱀파이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이름은 렉시.

진혈족 중에서도 특출한 마력을 보유하였으며 혈마법의 대가이다.

“한줌의 피가 되렴. 블러드 체인.”

푸화하하학!!

렉시가 분출한 혈류가 수십 갈래로 뻗어나가 그리드를 덮쳤다.

전방의 대상 여럿을 공격하고 속박, 흡혈하는 광역기로서 피하기 어려운 마법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리드를 위협할 수준은 아니었다.

기능이 향상 된 민첩성과 통찰력을 기반으로 보다 정교한 움직임을 구사할 수 있게 된 그리드!

가장 먼저 날아온 혈류 두 줄기를 회피한 그가 회(回)를 전개하자 사달이 발생했다.

본래는 그리드를 휘감았어야할 혈류의 줄기들이 역방향으로 튀어나가더니 렉시를 덮친 것이다.

“꺄악!”

설마 내 공격에 내가 당할 줄이야?

예상치 못하게 피해자가 된 렉시가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속박에 걸린 그녀의 지척까지 도달한 그리드가 실패작으로 사선을 그렸다.

여자라고 봐주고 그런 거 없다.

서걱!

“……!”

렉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인간이 발휘하는 공격력, 진혈족으로서 강철보다 단단한 육체를 지닌 자신조차도 감당하기가 어려운 수준이 아닌가?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그녀가 발악적으로 마법을 펼쳤다.

“블러드 실드!”

가슴으로부터 분출 된 피를 역으로 이용, 허공에 여러 겹의 실드를 펼친 렉시가 그리드와의 거리를 벌리고자 시도했다.

하지만 부질없었다.

쩌저저저저정!!

선홍빛 실드가 옥빛 대검의 일격에 꿰뚫리더니 직면해왔다.

파그마의 검무, 살(殺)의 묘리가 담긴 검격으로서 그 위력은 렉시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수준이었다.

“뭐 이런…!”

렉시가 연기화를 시도했다.

자신의 예쁜 얼굴을 정확히 노리고 꽂혀오는 무시무시한 대검을 흘려보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푸욱-!

그리드의 주변을 맴돌며 뱀파이어들의 공격을 방어하던 리파엘의 창날이 날아와 렉시의 가슴에 꽂혔다.

그러자 연기화가 무산되었고 렉시의 본체가 다시금 명확하게 드러났다.

“이익!”

사색이 된 렉시가 양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겉모습은 가련하나, 그녀의 두 팔은 어지간한 강철방패보다 뛰어난 방어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킬 피해량을 상승시키는 도플갱어의 대검으로 시전한 살(殺) 앞에서는 한낱 종이쪼가리에 불과했다.

퍼억!

수박 깨지는 소리가 난다.

풀썩!

제아무리 진혈족이 영생을 지녔다할지라도 대가리를 잃으면 죽는 수밖에 없다.

렉시가 끈 풀린 인형마냥 쓰러지더니 잿빛으로 산화했다.

[진혈족 뱀파이어 ‘렉시’를 해치웠습니다.]

[경험치 56,901,500을 획득하였습니다.]

[???의 6번째 조각을 획득하였습니다.]

[중급 흡혈 반지를 획득하였습니다.]

<???의 조각>은 무엇인지 아직 정확히 모른다. 단지 이야루그트와 같은 재질의 광물로 제작 된 무엇인가의 파편이라는 것만 유추할 수 있었다.

하여 득템한 기분이 들지 않았으나 중급 흡혈 반지의 경우는 이야기가 달랐다.

<중급 흡혈의 반지>

등급:유니크

*일반 공격 시, 대상에게 입힌 피해의 10퍼센트를 자신의 생명력으로 회복합니다.

*이 효과는 12초에 한 번만 발동합니다.

귀족 미만 진혈족 뱀파이어의 고유 마력이 깃든 반지입니다.

착용자의 생존력을 크게 상승시킵니다.

사용 조건:레벨 320 이상.

무게:1

최하급 흡혈 반지보다 무려 5퍼센트의 생명력을 더 흡수할 수 있었고 쿨타임도 3초 짧았다.

그리드가 망설임 없이 그 반지를 착용했다. 아쉽게도 최하급 흡혈 반지와 기능이 중첩되지는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지.”

흡혈 아이템이 무척 귀한 지금, 중급 흡혈 반지라면 수백 만 골드를 호가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저벅저벅.

렉시의 잔재를 헤치고 나아간 그리드가 구석에 몰려있는 일행들을 보호하듯 섰다.

“고생 많았다. 이제 너희들은 그만 쉬도록 해.”

“…”

템빨단원들의 얼굴이 벙 쪘다.

그리드의 강함이 상상 이상이었으니 할 말을 잃은 것이다.

300레벨 달성을 기점으로 이렇게까지 강해질 줄이야?

그리드의 스탯 총합이 얼마나 높은지 가늠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노오오오옴!!”

렉시를 잃고 격분한 뱀파이어들의 어그로가 일제히 그리드에게 쏠렸다. 그중에는 진혈족 뱀파이어 2마리도 섞여있었다.

템빨단원들이 걱정하였으나 그리드는 도리어 즐거워하고 있었다.

사냥감들이 알아서 몰려와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엘핀스톤이 인간 사냥을 오락거리로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드 또한 뱀파이어 사냥을 오락거리로 여길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파그마의 검무, 파(派).”

쿠르르르르릉!

굽이굽이 물결치는 검기의 파도!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검기에 휩쓸려 끔찍한 고통을 맛보게 된 뱀파이어들은 이날 절실히 깨달았다.

인간은 우리의 하위종이 아니다.

그 잠재력은 도리어 우리보다 컸다.

무시하며 가축처럼 취급해도 좋을 종족이 아니었다.

***

흑마법사는 공격마법보다 디버프마법에 특화된 클래스로서 솔로 플레이가 어렵다.

흑마법사 단독으로 사냥하면서 레벨을 올리는 행위는 더 없는 고행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여 대부분의 흑마법사들은 파티 플레이를 지향했다.

하지만 특수한 상황을 제외할 경우, 대부분의 파티들은 디버퍼보다 버퍼를 더 선호하는 법이다.

흑마법사들은 파티를 구하기가 썩 쉽지 않았고 이는 랭킹계에서 흑마법사를 찾아보기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단, 유라만큼은 제외였다.

그녀는 흑마법사임에도 불구하고 통합랭킹 5위를 고수했던 신화적 인물이다.

그녀는 각별하다. 천재 중의 천재다.

그것이 세간의 평가였고 수많은 유저들이 그녀를 동경했다.

그 귀중한 인재가 스스로 레이단을 방문한 것이다.

라우엘을 비롯한 템빨단원들은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 같이 귀한 분께서 이 누추한 도시엔 어쩐 일로 방문하셨습니까?”

냉큼 차를 내온 라우엘의 질문이었다.

라우엘 또한 유라를 동경하고 있었다.

세계 정상급 미인이면서 영리하고 게임까지 잘하였으니, 그녀에게 호감을 품지 않을 남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오는 라우엘과 템빨단원들에게 유라가 화사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아아, 아름답고 찬란하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세계 평화에 일조하고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템빨단에 가입하고 싶어서요. 영우씨… 아니, 그리드씨에게는 이미 허락 받은 사안이니까 확인해주세요.”

“……!”

유라의 미소에 현혹되어 넋을 잃고 있던 라우엘과 템빨단원들.

그들이 놀라 붕어처럼 주둥이만 뻐끔거렸다.

크라우젤, 아그너스와 함께 솔로 플레이의 대가로 손꼽히던 유라가 템빨단에 가입을 요청하다니!

충격적이면서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쁜 일이었다.

“겁나게 환영합니다!!”

라우엘이 쌍수 들고 외쳤다.

유라는 그의 언행이 그리드와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라우엘이 알게 되면 충격 받고 식음을 전폐할만한 생각이었지만 어쩌겠는가? 현실인걸.

그리드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리드를 가장 많이 닮아가고 있는 사람이 바로 라우엘이었다.

라우엘이 티를 내진 않았지만, 사실 그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그리드를 좋아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역시 닮는 건 싫다.

***

기나긴 전투가 끝났다.

“훌륭했다.”

“멋졌어, 그리드.”

“캬! 역시 갓리드라니깐! 두 유 노우 갓리드?”

“영어라고는 아는 게 두 유 노우 뿐인가…”

절체절명의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템빨단원들이 그리드를 극찬했다.

하지만 들뜬 분위기는 그리 오래 유지되지 않았다.

그리드가 예상보다 강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엘핀스톤을 쓰러뜨릴 수 있는 수준일까?

근심하는 일행에게 그리드가 핀잔을 주었다.

“괜한 심력 낭비하지 말고 쉬기나 해. 이제 한 시간 내로 엘핀스톤이 찾아올 거다. 승산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면 그때까지 스태미나를 충분히 회복해놔야지.”

그렇게 말하는 그리드의 상태도 최악이었다.

템빨단원들이 지속적으로 서포터해주었다고는 하나, 거의 혼자서 100여 마리의 뱀파이어들과 맞서 싸웠으니 멀쩡하면 이상했다.

온 몸이 상처투성이였고 아이템 내구력도 엉망이었다.

엘핀스톤이 등장하기 전까지 스태미나를 완전히 회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그리드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아이템 합체>

이해도가 100퍼센트인 아이템 두 종을 하나로 합침으로서 성능을 승화시킵니다.

*합체한 아이템의 성능은 당신의 기술과 아이템간의 궁합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합체 유지 시간은 2분으로 제한됩니다. 유지 시간이 끝나면 아이템들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이때 아이템의 현재 내구력이 50. 고정적으로 소모됩니다.

*합체까지 걸리는 시간은 아이템의 구조에 따라서 다릅니다.

스킬 마나 소모:1,000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6시간.

리파엘의 창날과 실패작을 합칠 수 있다면?

‘장점들이 극대화 될 경우 필시 뛰어난 무기가 될 것이다.’

엘핀스톤에게 상극으로 작용하는 지상최강의 무기로 거듭나리라고 그리드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유지시간이 고작 2분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또한 합체 방법과 합체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정확히 명시되어 있지 않는 점이 불안요소였다.

‘한 번 실험 해봤으면 좋겠는데.’

새로이 습득하는 스킬은 언제나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법이다.

그리드의 심정 같아서야 진즉부터 아이템 합체를 사용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재사용 대기 시간이 문제였다.

함부로 사용하였다가는 정작 엘핀스톤을 상대할 때 사용할 수 없었으니 자제해야만 했다.

‘뭐, 잘 되겠지. 난 실전에 강한 스타일이니까.’

제멋대로 스스로를 고평가한 그리드가 마음을 편히 먹었다. 그리고 망가진 아이템들을 수리한 뒤 일행과 마찬가지로 휴식에 전념했다.

엘핀스톤의 등장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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