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16권 - 2화
“그리드…?”
단 1발의 매직 미사일로 탈로스의 비명을 끄집어낸 사내.
그의 머리 위에는 <그리드>라는 아이디가 당당히도 솟아 있었다.
바이올렛 공대와 각국 방송사의 취재진들이 혼란을 겪었다.
“저게 그리드라고?”
최초의 레전드리 클래스 전직자로서 무수한 활약을 펼쳐온 그리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될까?
6세 이하의 유아, 80세 이상의 노인들을 제외하면 아마 대부분이 그리드의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바이올렛 공대와 취재진들 또한 그리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레전드리 클래스로 전직하기 전까지 그가 얼마나 힘겨운 삶을 살았는지, 또한 체다카 길드를 어떤 경위로 흡수하였는지 등등.
정보력 강한 랭커와 기자들이니만큼 그리드에 대해서 모르는 일이 적었다.
그렇기에 충격이 더 컸다.
‘그리드가 어떻게 마법을?’
종종 플라이를 사용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건 특정 부츠를 착용할 때만 선보인 마법으로서 아티팩트빨, 즉 템빨이라는 분석이 이미 끝난 바 있다.
한데 지금은 어떤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리드는 아이템을 단 하나도 무장하지 않은 상태였다. 누구에게나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천 옷 하나 달랑 걸치고 있을 따름이었다.
즉, 조금 전 그가 사용한 매직 미사일은 아이템에 귀속 된 마법이 아니라 그가 직접 구사한 마법이라는 뜻이 된다.
‘무슨 수로 대장장이가 마법을… 헉, 설마?’
‘설마! 세컨드 클래스를 획득한 건가!’
정체불명의 몽골인이 최초의 세컨드 클래스를 획득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약 1년 반이라는 세월 동안 세컨드 클래스 획득자가 족히 100명 이상은 등장했다.
그리드가 그들 중 하나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레전드리 클래스 전직자가 세컨드 클래스까지…!’
‘이건 헤드라인감이다!’
흥분한 취재진의 카메라가 오로지 그리드에게만 집중되었다.
바이올렛 공대는 이제 그들의 관심 밖이었다.
‘이것들이…!’
바이올렛은 여러모로 기분이 나빴다.
수백만 골드를 투자한 레이드를 실패하게 생긴 마당에 제멋대로 난입한 기자들과 그리드가 소란을 피우니 속이 남아가겠는가?
죄다 밉고 짜증이 났다.
기자들에게는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으름장 놓은 그녀가 이어 그리드에게 소리쳤다.
“그리드! 당신은 기본적인 예절도 모릅니까! 남이 먼저 진행 중인 레이드에 허락도 없이 개입하다니, 이는 비상식적이며 비난 받아 마땅한 행동이 아니오!”
바이올렛은 여성이지만 남성 같은 말투를 구사했다.
외향부터가 남자나 다름이 없었다. 머리는 짧고 헤비 아머를 중무장하였으며 치장조차하지 않았다.
커다란 골격에 대한 콤플렉스가 그녀를 중성화시킨 원인이었다.
“예절?”
무너진 천장으로부터 서서히 하강하는 그리드.
광오한 시선으로 바이올렛을 내려 보는 그의 입가로 조소가 피어올랐다.
“상것이 상전에게 예절을 강요하는가?”
“뭐, 뭣이…!”
바이올렛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초면인 상대에게 상것이라니? 그리고 본인은 상전이라니?
세상에 뭐 저딴 또라이가 다 있단 말인가!
“당신처럼 오만방자한 사람은 내 처음 보는군!!”
그리드는 레전드리 전직자이기 이전에 일국의 공작이며 템빨단의 마스터였다.
만인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발언과 행동이 보다 신중해야함이 당연했다.
한데 이처럼 싸가지 없게 행동하다니, 그 생각 없는 태도에 바이올렛은 심히 실망스럽고 당혹스러웠다.
그리드 본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브라함 이 자식…!’
현재 그리드의 육체에 대한 지배권은 브라함에게 있었다.
방금 전 발언도 브라함이 제멋대로 지껄인 것이었다.
“내가 한 말이 아니다!”
그리드가 외쳐봤자 그 음성, 브라함의 뇌리에만 울릴 따름이었다.
콧방귀 뀐 브라함이 바이올렛의 앞으로 다가가 섰다.
순간 바이올렛의 두 뺨에 홍조가 물들었다.
‘자, 잘생겼어?’
본래 그리드의 외모는 평범한 수준이었다. 눈매가 시원하고 콧대가 높아 썩 나쁘지는 않았으나 미남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한데 지금은 달랐다.
눈처럼 흰 백발과 조화를 이루는 매끈한 피부, 예리한 턱선, 길게 뻗은 입매와 홍옥 같은 눈동자까지.
이때까지와는 미묘하게 틀린 이목구비와 특징들이 절묘하게 어울려 그리드를 상당 수준의 미남으로 승화시켜주고 있었다.
여성으로서의 자신감이 결여되어 이성에게 본능적인 벽을 치는 바이올렛조차도 심장이 두근거렸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
기자들 또한 그리드의 생김새가 기존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지? 단지 염색이 잘 어울려서 잘 생겨 보이는 수준이 아닌데?’
‘저건 분명…’
의아해하던 기자들이 일제히 떠올렸다.
‘성형 수술!’
예부터 한국은 성형 대국으로 유명했던 바, 그리드는 성형 수술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고 기자들은 확신했다.
하지만 그건 엄연한 오해였다.
그리드는 성형을 하지 않았다. 스스로의 얼굴에 크게 불만이 없었을 뿐더러 얼굴에 칼 대는 공포스러운 행위를 감내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용감무쌍하지 못했다.
성형이 아니라면, 그리드는 도대체 무슨 수로 잘생겨진 걸까?
브라함의 영혼을 받아들인 여파였다.
현재 그리드의 생김새는 생전 브라함의 모습과 일부 동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여성들에게는 화장빨, 연예인들에게는 조명빨이 있듯이 현재의 그리드는 영혼빨이었다.
“오만방자하게 구는 것은 내가 아니라 네년이지. 감히 내게 큰소리를 치고도 살아남음에 감사한 줄 알아라.”
‘와, 진짜 싸가지 없다.’
바이올렛 공대원들과 기자들 모두 그리드의 거만함에 혀를 내둘렀다.
바이올렛은 분해서 이를 갈 따름이었다.
그녀의 마음 같아서야 당장 그리드에게 PK 신청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상대는 템빨단의 수장이다.
그와 척을 지었다가는 내 길드원들이 무슨 심한 꼴을 당할지 모를 일이었다.
더 이상 떠들지 못하고 입을 다무는 바이올렛의 태도가 그리드. 아니, 브라함은 마음에 들었다.
“그래, 그렇게 꼬리를 내리면 된다. 그것이 너희들의 본분이다.”
‘엿 됐다!’
그리드는 울고 싶었다.
내 모습으로 연신 개소리를 지껄이는 브라함 탓에 안티팬이 대규모로 확산되리라 생각하자 심히 두려웠다.
‘앞으로 인터넷에 내 기사가 뜰 때마다 악플로 도배가 될 거야!’
팬카페 회원수가 줄어드는 것은 기본이며 인신공격이 쇄도할 것이다.
심할 경우, 후로이 같은 놈들이 내 부모님의 만수무강을 빌 수도 있었다.
그리드가 근심하는 와중에도 그리드의 몸은 제멋대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바이올렛과 그녀의 공대원들을 헤치고 나아간 그가 탈로스와 대면했다.
“아모락트의 영혼은 어디에 있지?”
그리드가 바이올렛에게 시간을 빼앗기는 동안 상처를 회복시킨 탈로스가 태연히 되물었다.
“아모락트의 영혼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내게 묻는 거냐?”
“매직 미사일.”
푸욱!
“컥!”
탈로스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백발 놈이 전개한 매직 미사일이 또 한 번 내 가슴을 꿰뚫은 탓이었다.
‘어찌 이럴 수가?’
탈로스는 4차 전직한 흑마법사로서 대륙 10대 마법사의 반열에 오른 존재였다.
고강한 마력이 항시 그의 몸 주변으로 전개되어 있으니 어지간한 창칼, 그리고 마법은 그에게 생채기조차 낼 수 없었다.
한데 고작 매직 미사일 따위에 연달아 가슴을 꿰뚫린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었다.
“당최… 당최 네놈의 정체가 무엇이냐?”
질문하며 상처를 수복시키고자 시도하는 그에게 그리드가 다시 한 번 더 매직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에 허벅지를 꿰뚫린 탈로스가 급기야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런 미친!!’
탈로스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모락트의 대리인으로 선택받을 만큼 위대한 내가 한낱 매직 미사일 따위에 연달아 치명상을 입다니?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동요하는 탈로스에게 그리드가 또 한 발의 매직 미사일을 날렸다.
“크아악!!”
이번엔 심장을 꿰뚫린 탈로스가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대량의 피를 쏟고 펄떡대는 그에게 그리드가 무심히 뱉었다.
“네놈은 그저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면 된다. 아모락트의 영혼은 어디에 있느냐?”
“크윽…!”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탈로스는 야탄의 첫 번째 종이 아니다.
진정한 야탄의 첫 번째 종은 분쟁의 대악마 아모락트였고, 이 진실을 아는 자는 야탄의 종들밖에 없었다.
탈로스는 의문이었다.
‘이놈의 정체가 뭐지? 도대체 어찌 이리 강한 것이며 무슨 수로 아모락트님을 알고 있는 것인가?’
대답하지 않고 신음만 토하는 그에게 그리드가 또 매직 미사일을 쏘았다.
“크아아아악!!”
등을 꿰뚫린 탈로스가 몸부림쳤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수치심이 더 컸다.
대륙의 10대 마법사인 내가!
표면적으로나마 야탄의 첫 번째 종인 이 내가!
교내의 신도들은 물론이고 도미니언의 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작 매직 미사일 따위에 이딴 수모를 당하다니!!
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잖은가!!!
격분한 탈로스가 발악하기 시작했다.
“용서하지 않겠다…! 데쓰 피어!!”
캬아아아아아!!
탈로스의 등 뒤로 수백 마리 악귀의 환영이 떠오르는가 싶더니 강력한 충격파가 발생했다.
야탄의 신도들, 바이올렛 공대원들, 각국 방송사의 취재진들.
그들 모두가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 마법의 영향을 받아 끔찍한 고통과 공포를 느꼈다. 맥없이 쓰러지더니 전신의 혈관을 검게 부풀리고 몸부림쳤다.
하지만 정작 그리드는 멀쩡했다.
탈로스는 크게 당황하였으나 실수하지 않고 다음 마법을 연계했다.
“다크 레이지!!”
콰쾅!
그리드의 정수리를 칠흑의 마력이 강타했다.
바실리스크의 두꺼운 가죽조차 일격에 꿰뚫는 위력의 마법을 정통으로 맞았으니 무사할 리 없었다.
탈로스는 회심의 미소를 그리면서도 방심하지 않았다. 쉬지 않고 마법을 연계하여 그리드가 선 지면을 황폐화시키고 이어 지옥으로부터 소환한 유황불길을 불태웠다.
그야말로 전력을 다한 것이다.
그리드는 잿더미가 되어야만 정상이었다.
하지만 멀쩡하니 문제였다.
“고, 고작 실드 따위로…!”
최하급 방어 마법, 실드.
마나를 전개함으로서 일정량의 데미지를 흡수하는. 그 지극히 단순하고도 미개한 기초마법이 최강의 흑마법 4개를 무력화 시키고 있었다.
간신히?
아니, 간단히!
“이게 말이 되냐!!”
무려 20년.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는 세월 동안 아모락트의 대리인 역할을 철저히 수행해왔던 탈로스.
항시 근엄함을 유지해왔던 그가 더 이상은 못해먹겠다면서 빼액 거렸다.
“이 괴물 같은 놈아!! 내 너와 더 이상 상종할 생각이 없으니 차라리 빨리 죽여라!!!”
그를 대하는 그리드의 태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매직 미사일.”
“크아아아악! 제길! 제기랄!! 메테오 같은 거로 한 방에 죽이란 말이다!!!”
“매직 미사일.”
“크헉! 이 잔인한 놈!!”
야탄의 첫 번째 종, 매직 미사일에 맞아 죽다!
이와 같이 황당한 소문이 퍼지기라도 하였다가는 야탄교의 이미지가 심각하게 훼손 될 우려가 있었다.
탈로스는 미친 백발 놈이 보다 고위의 마법으로 나를 죽여주길 바랐다.
하지만 백발 놈은 계속해서 매직 미사일만 사용하고 있었으니 탈로스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최강의 흑마법사로서 쌓아올렸던 고강한 정신력이 망신창이가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 제발… 제발 매직 미사일은 그만…”
애원하기 시작하는 탈로스였다.
그에게 또 한 번 매직 미사일을 날린 그리드가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아모락트의 영혼은 어디에 있지?”
“루, 루드하탄의 동굴…”
매직 미사일 고문법은 그 어떤 정신 장악 마법보다도 효과가 탁월했다. 상대의 자존심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잘 먹혔다.
아모락트에게 깊은 충성심을 지녔던 탈로스의 입을 열게 만들 정도였다.
“좋다. 대답에 대한 대가로 이제 그 하찮은 목숨을 취해주마.”
탈로스가 애원했다.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제, 제발 고위 마법으로 죽여다오.”
매직 미사일에 맞아 죽었다가는 너무나도 부끄럽고 원통하여 구천을 떠도는 원귀가 될 것만 같았다. 탈로스는 그와 같은 사태를 원하지 않았다.
간절하게도 부탁하는 탈로스에게 고개를 끄덕인 그리드가 고위 마법을 사용했다.
“파이어 볼.”
“이런 개ㅅ…!”
탈로스의 욕설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지옥의 유황불만큼이나 난폭하고 뜨거운 불길에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었던 까닭이다.
[아모락트의 대리인, 탈로스를 해치웠습니다!]
[경험치 2,620,090,770을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암흑의 룬을 획득하였습니다.]
‘헐…’
상태창에서 확인되는 브라함의 레벨은 여전히 545였다.
알림창이 가리키는 레벨업 대상은 브라함이 아닌 그리드였던 것이다.
‘개, 개이득…’
템빨만큼이나 위대한 영혼빨이었다.
브라함의 영혼을 받아들인 대가로 공짜로 레벨을 올리고 정체불명의 룬까지 획득한 그리드!
예상치 못한 이득으로 전율에 휩싸인 그에게 기자들이 달려와 인터뷰를 요청했다.
“세컨드 클래스로 마법사를 획득하신 겁니까?”
“당신의 매직 미사일은 왜 그렇게 강력한 거죠? 그게 정녕 매직 미사일이 맞습니까?”
“실드의 방어력이 상상을 초월하였습니다! 도대체 마력 수치가 얼마나 높으신 겁니까!”
“파이어 볼이 마치 헬 파이어 같았는데요! 그 굉장한 솜씨의 비결이 뭔가요!”
선망의 시선을 보내오는 기자들이었다.
그리드의 오만한 태도에 대한 반감은 눈 녹듯 사라져있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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