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16권 - 3화
“바이올렛 공대의 레이드 실력은 탁월하기로 유명하죠. 한 달 전 그들은 썩은 뿔 라온을 레이드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조차도 어쩌지 못한 탈로스를 고작 매직 미사일과 파이어 볼만으로 해치운 당신의 강함은 솔직히 납득하기 어렵군요. 이에 대한 해명을 부탁드립니다.”
흥분한 기자들의 질문공세가 끊이질 않았다.
개중에는 칼처럼 날카로운 질문도 있었기에 그리드는 난처했다.
‘이대로는 S.A그룹에 뒷돈 먹이고 있다거나 버그 유저라는 둥 별에 별 루머가 양산될 수도 있겠어.’
획득한 경험치를 토대로 유추해 보건데 탈로스는 파스칼보다 훨씬 더 강력한 존재였다.
그를 유저가 혼자서, 그것도 기초 마법만으로 해치우는 것은 본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의심하는 기자들에게 어찌 해명해야할까 그리드가 고민하는 그때였다.
“범인 따위가 나를 이해할 수 있을 리 만무하지.”
그리드의 입을 빌린 브라함이 제멋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
“나는 전설이다. 무상한 존재로서 전지전능하다. 하찮은 너희들은 결코 나를 이해할 수 없고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게 정상이다.”
“헐.”
기자들이 혀를 내둘렀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의 눈에 비치는 그리드는 오만함을 넘어…
‘중2병!’
스스로를 무상한 존재라느니 전지전능하다느니, 뭐 저리도 뻔뻔하고 오글거리는 멘트를 진지한 얼굴로 지껄인단 말인가? 그것도 수십 대의 카메라가 지켜보는 앞에서!
오그라진 손을 펴기 위해 노력하는 기자들을 확인한 그리드가 수치심에 휩싸였다.
‘쪽팔린다.’
그리드도 한때는 중2병을 앓았었다. 하지만 27살이 되던 해에 진성 중2병 라우엘을 만나고 그를 반면교사로 삼아 병을 극복할 수 있었다.
내일모레 28세가 되는 그리드에게 있어서 중2병이라는 오명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브라함, 제발 작작 좀 해라!’
레벨을 올려준 것은 고맙지만 정도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브라함이 싸질러놓은 똥을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리드가 골치 아파하는 사이, 기자들을 뒤로한 브라함은 텔레포트를 전개하고 있었다.
***
“현실 시간으로 13분 전, 템빨단의 마스터 그리드가 야탄의 첫 번째 종을 매직 미사일과 파이어 볼만으로 해치우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야탄의 첫 번째 종 탈로스는 4차 전직한 흑마법사로서 바이올렛 공대조차도 레이드에 실패한 존재입니다. 그를 기초 마법들만으로 해치운 그리드의 강함은 상식을 초월하는 수준이며…”
“세계 각지의 유저들이 그리드는 버그 플레이어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에 S.A그룹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습니다만 유저들의 의심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으며, S.A그룹과 그리드 간에 모종의 거래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생성되는 상황입니다.”
세계 각국의 언론들이 그리드 사건을 속보로 다뤘다.
물론 여론은 좋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드의 압도적인 강함을 납득하지 못하고 의심하는 실정이었다. SNS에 별에 별 추측이 난무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섬으로서 여론을 안정시켰다.
“현재 그리드는 스토리 전개형 퀘스트를 진행 중일 공산이 큽니다.”
“스토리 전개형 퀘스트? 아, <늑대 엄마에게 초콜릿 가져다주기>형식의 퀘스트 말씀이십니까?”
“정확하게 짚으셨습니다. 일반적인 퀘스트는 유저가 특정 조건을 충족시켜야 완수되는 반면 스토리 전개형 퀘스트는 목적 자체가 ‘체험’인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유저 분들이 초보 시절 경험해봤을 <늑대 엄마에게 초콜릿 가져다주기>를 대표 적인 예로 들 수 있죠.”
늑대 엄마에게 초콜릿 가져다주기.
8레벨을 달성하게 될 경우 획득하는 퀘스트다.
퀘스트를 수락한 유저의 몸은 새끼 늑대로 변하고 엄마 늑대에게 초콜릿을 가져다주는 과정까지 유저는 스스로의 몸을 컨트롤 할 수 없다. 관찰자의 시점으로 새끼 늑대의 이야기를 감상하는 것이 유저의 역할이었다.
“그리드의 생김새와 말투가 평소와 다르다는 점, 초월적인 능력을 기반으로 네임드급 보스를 손쉽게 해치웠다는 점 등을 고려해봤을 때 현재 그리드는 온전한 상태라고 보기 힘듭니다. 어떤 특별한 존재를 체험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죠.”
“일리 있는 말씀이군요. 한데 그 특별한 존재라는 것은 누구일까요?”
한국, 미국, 프랑스, 캐나다, 러시아, 중국, 일본 등등.
각국의 전문가들이 공통 된 사견을 내놓았다.
“브라함 에슈발트.”
“전설의 대마법사죠.”
이후, 각국의 포털 사이트는 그리드에 관한 기사들로 도배가 되었다.
<전설의 대장장이 그리드! 전설의 대마법사를 체험하는 중!>
<그리드가 획득할 세컨드 클래스는 전설의 대마법사?>
<능력 있고 잘생긴 남자의 오만은 매력으로 작용한다? 백발의 그리드, 세계 각국의 여성들로부터 호평!>
<타인을 업신여기고 스스로를 추켜세우는 그리드의 오만한 화법이 SNS를 통해 유행 중… 사회적 문제로 대두 될 가능성 높아.>
<중2병의 발원지인 일본에서 그리드의 인기가 대폭발! 제5의 한류 열풍 도래?!>
<그리드 팬카페 회원수 3시간 만에 2배로 늘어… 광고계 비상.>
***
‘지금쯤이면 난리가 났겠지.’
그리드가 연신 한숨을 쉬었다.
브라함이 제멋대로 지껄인 후폭풍을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기자들의 표정이 가관이었어. 혐오스럽다는 반응이었다고.’
그들이 내 기사를 어떤 식으로 썼을지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그리드 중2병, 그리드 싸가지, 그리드 버그, 그리드 미침 등등.
온갖 악성 기사가 인터넷에 도배되었을 테고 이는 천만 안티 팬 발족의 계기가 되리라.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도 죄다 내 욕이 장악하고 있겠지…’
로그아웃하기가 두려울 지경이다.
현실에서 거리를 쏘다니다가 괜히 재수 없다고 얻어터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었다.
‘보디가드라도 고용해야하나?’
내 고난은 언제까지 계속되는 걸까?
현실 상황을 전혀 모르는 그리드가 좌절하는 사이, 루드하탄의 동굴 내부를 탐색한 브라함은 조소를 띄우고 있었다.
‘아모락트, 어머님의 말씀대로 조심성이 많은 놈이로군.’
동굴에 배치 된 결계의 수준이 상당하다.
‘나를 현혹할 수준은 아니다만.’
거침없이 동굴 깊은 곳까지 이동하는 브라함에게 그리드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아모락트가 대체 누구야?”
정체가 뭐기에 굳이 대리인까지 내세우고 본인은 숨어있는가?
브라함의 대답은 간단했다.
“분쟁의 대악마다.”
“대악마…! 야탄의 첫 번째 종이라는 놈이 무려 대악마라고?”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에 그리드가 당혹을 금치 못하였다.
“설마 당신, 지금 대악마와 싸우려는 건 아니지?”
“이곳에 있는 것은 온전한 아모락트가 아니다. 아모락트의 영혼 일부일 뿐이니 겁먹을 필요 없어. 내 영혼 조각들이 무력했듯 놈의 영혼 또한 무력하다.”
대악마 따위 내 상대가 아니다. 라고 단언하지 않는 것을 보면 역시 대악마란 만만한 상대가 아닌 듯하다.
***
어둡고 깊은 동굴의 가장 안쪽.
거대한 공동 중앙에 마련 된 제단 위로 백색의 작은 영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왔는가.]
영혼이 브라함을 반겨주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리드의 입을 빌린 브라함이 말했다.
“아모락트, 역시 너는 내가 널 찾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군.”
[물론이다. 네가 필멸자의 신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선 여러 신의 축복이 필요할 터이니.]
“내 예상이 맞다면, 너는 내 요구를 순순히 들어줄 테지?”
[그렇다.]
“큭큭큭, 야탄 또한 마리로즈는 꽤나 거슬리나보군.”
‘마리로즈?’
그리드에게도 익숙한 이름이었다.
우월한 수준을 넘어 절대적인 위엄을 뽐냈던 뱀파이어 공작.
잊고 있던 그녀를 떠올리게 된 그리드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뱀파이어의 도시 어딘가에 그녀가 있다면…’
파브라늄의 완전한 회수는 불가능했을 터.
브라함의 영혼 빙의 퀘스트를 수락하기를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야탄 신께서는 마리로즈와 관계없이 너를 총애하신다. 그 점을 항시 상기해라.]
“별 같잖은 놈을 신이라고.”
[…입은 조심히 놀려라.]
상냥하던 아모락트의 음성이 살기를 품었다. 순간 발생한 위압감이 그리드의 가슴을 철렁이게 만드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브라함은 조금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나를 협박하려면 최소한 지상에 강림한 후여야지 않겠나?”
[협박이 아니라 예의를 논하는 것이다.]
“야탄 따위에게 갖출 예의는 없다. 나는 더 이상 그를 섬기지 않으니까.”
‘더 이상?’
브라함이 한때는 야탄을 섬겼었다는 뜻인가?
그리드가 의문을 품었지만 현재로서는 해소할 수 없는 의문이었다.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그리드에게 브라함이 지시했다.
“파브라늄을 꺼내라.”
[일시적으로 육체의 지배권을 획득하였습니다.]
알림창이 떠오르면서 그리드가 운신의 자유를 되찾았다.
‘이제 좀 살 맛 나는군.’
내 몸을 남에게 맡기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그리드가 리파엘의 창날을 소환하자 브라함이 아모락트에게 요구했다.
“이제 어서 야탄의 축복을 내려라.”
[마음에 들지는 않다만… 좋다. 그것이 야탄 신의 뜻이니까.]
불길처럼 일렁이던 아모락트의 백색 영혼이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러자 잠시 후 공동이 격동하면서 천장으로부터 시커먼 빛줄기가 벼락처럼 떨어졌다.
쩌엉!
칠흑의 빛에 강타당한 리파엘의 창날이 부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이어 알림창이 갱신되기 시작했다.
[파브라늄에 야탄 신의 축복이 깃들었습니다.]
[파브라늄이 마력 상승 능력을 획득하였습니다.]
레베카 여신의 축복은 파브라늄에 생명력 회복 속도 상승 버프를, 도미니언 신의 축복은 파브라늄에 공격력 상승 버프를, 쥬다르 신의 축복은 파브라늄에 방어력 상승 버프를 줬었다.
이는 모두 파브라늄의 주인인 그리드에게 항시 적용되는 효과로서 그리드의 힘의 원천 중 하나였다.
하여 그리드는 이번 야탄 신의 축복 또한 무엇일지 크게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력 상승 버프는 실망적이었다.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그리드의 입장에서 마력이란 크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던 까닭이다.
‘아니, 아니지.’
브라함에게 마법을 하나 배우게 된다는 점을 감안해 봤을 때 마력 상승 버프도 썩 나쁘지 않다.
그리드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이 브라함은 전율하고 있었다. 그가 현재 얼마나 큰 기쁨에 도취되어 있는지, 그의 영혼과 동화 된 그리드는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이때가 왔다!!”
수백 년 동안 염원해온 부활이다.
감격한 브라함이 소리쳤다.
“자, 파그마의 후예여!! 어서 혼의 그릇을 만들어라!!!”
“좋아.”
브라함의 수상쩍인 요소들은 지금의 그리드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드는 브라함이 약조한 막대한 보상만을 원하고 있었다.
따앙! 따앙!!
리파엘의 창날로부터 소량의 파브라늄을 떼어낸 그리드가 작은 그릇을 제작했다.
다소 투박해 보이나 균형에 어그러짐이 없는, 제작자의 솜씨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그릇이었다.
“큭큭큭! 크하하하하하!!”
대소를 터뜨린 브라함의 영혼이 그리드의 육체로부터 빠져나와 혼의 그릇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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