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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25화 (120/1,794)

템빨 16권 - 8화

여태까지 그리드는 아이템 창조, 제작시마다 성능적인 부분만을 고려했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아이템이란 유저의 편의와 능력 상승을 위해서 존재하는 물건인 바.

아이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단연코 성능이며, 그리드의 성능 추구 원칙은 쭉 변치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조금 특수했다.

동료가 아닌, 어쩌면 적이 될 수도 있는 인물에게 아이템을 제작해줘야 했으니까.

‘미래의 적이 내가 만든 최강의 아이템으로 무장해서야 골치가 아프지.’

거래를 거부할 수도 없는 상황.

그렇다면 나를 적으로 돌릴 수 없게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한참을 고심한 끝에 내린 결론은,

‘아이템 구매자가 아이템 제작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끔 유도한다.’

하지만 이건 또 어떻게?

이에 대해서 그리드가 떠올린 방안은 간단하면서도 획기적이었다.

‘오로지 제작자만이 수리할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드는 거야.’

아이템 제작자의 절대 갑화!

<그리드의 대검>은 제작자와 구매자의 관계를 갑과 을로 확립시킬 것이며 일종의 노예계약서로서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제작자만이 수리가 가능하게끔 설계하려면 그만큼 구조가 복잡해야할 테지만.’

설계야 문제될 것 없다.

‘나는 전설의 대장장이니까.’

대마법사 브라함은 말했었다.

전설은 초월적인 존재라고. 스스로 벽을 만들지 말고 보다 도도해지라고.

“범인은 흉내조차 낼 수 없을 구조의 아이템을 설계해보이마.”

브라함의 말투를 따라함으로서 사기를 진작시킨 그리드.

장고 끝에 가닥을 잡은 그가 드디어 <아이템 창조>를 발동, 그리드의 대검의 도안을 제작해나갔다.

겉멋을 배제한 실용적 디자인.

성능과 사용 조건의 밸런스를 고려.

최강 무구들의 장점을 종합.

특수성을 부여.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최고의 성능을 끌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띠링~

설계도를 펼쳐놓고 반나절 간의 사투 끝에,

[아이템 제작법 목록에 <그리드의 대검>이 추가됩니다!]

그리드는 만족할만한 도안을 손에 넣었다.

<그리드의 대검>

등급:유니크~레전드리

유니크 등급 정보.

내구력:575/575

공격력:953~1,191

공격속도:-5%

*낮은 확률로 적의 공격을 차단.

*일정 확률로 ‘3연격’ 스킬 발동.

*베기 공격력 20퍼센트 상승.

*스킬 피해량 10퍼센트 상승.

*어두운 장소에서 공격력 20퍼센트 상승.

*같은 대상에게 공격을 6회 적중시킬 경우, 6회째 공격은 무조건 크리티컬이 발동합니다.

레전드리 등급 정보.

내구력:840/840

공격력:1,274~1,440

공격속도:-3%

*일정 확률로 적의 공격을 차단.

*일정 확률로 ‘3연격’ 스킬 발동.

*베기 공격력 30퍼센트 상승.

*스킬 피해량 20퍼센트 상승.

*어두운 장소에서 공격력 20퍼센트 상승.

*같은 대상에게 공격을 5회 적중시킬 경우, 5회째 공격은 무조건 크리티컬이 발동합니다.

*3연격 발동 후 0.5초 내에 스킬 연계를 성공시키면 대상에게 추가 피해를 입힙니다.

전설이 된 대장장이 그리드가 설계한 무기입니다.

용도불명의 홈이 파인 검신 중앙에는 흑철의 함량을 높여 무게감을 실었고, 양측 검날에는 푸른 오리하르콘의 함량을 높여서 절삭력을 극대화시켰습니다.

사용자의 편의성을 고려한 디자인과 완벽한 무게 중심이 균형을 이뤄 사용자가 최상의 검술을 펼칠 수 있게끔 돕습니다.

사용 조건:레벨 300 이상. 근력 2,800 이상. 고급 소드 마스터리 5레벨 이상.

*이 아이템은 오로지 제작자만이 수리할 수 있습니다.

무게:1,540

“좋았어!”

그리드의 대검은 실패작보다 등급이 높다고 볼 수는 없었다.

공격 속도와 최대 공격력, 그리고 내구력은 그리드의 대검보다 실패작이 도리어 더 뛰어났기에.

애초에 레벨 제한부터가 300으로 동일하다.

하지만 그리드는 실패작보다 그리드의 대검을 훨씬 더 높이 평가했다.

이유야 많다.

우선, 실패작보다 그리드의 대검의 디자인이 월등히 효율적이었다.

과도한 크기 탓에 지형지물의 제약을 심하게 받았고 사용함에 불편함이 있었던 실패작과 달리 그리드의 대검은 크기가 매우 적절했다.

또한 최소 공격력이 실패작보다 그리드의 대검이 월등히 뛰어났다.

대상을 공격할 시, 최대 공격력은 확률적으로 적용되는 수치인 반면 최소 공격력은 무조건적으로 보장받는 수치다.

최대 공격력보다 최소 공격력이 높은 무기가 데미지 기댓값이 높을 수밖에 없다.

거기에 베기 공격력 상승과 스킬 피해량 상승 옵션까지 붙었으니 말 다했다.

그리드의 대검이 실패작보다 아쉬운 부분은 오직 하나.

5연격이 아닌 3연격이 귀속되었다는 점이다.

그리드는 실패작의 장점을 그리드의 대검에 고스란히 물려주고자 최선을 다했으나 완벽한 성공에는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리드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차라리 잘 됐다. 5연격까지 귀속됐다가는 사용 조건이 또 터무니없이 올라갔을 수도 있어.’

그리고 그리드의 대검에는 한 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다.

검신 중앙을 가로지르는 깊은 홈.

그것은 오로지 그리드 자신을 위해서 고안 된 부분으로서 활용하기에 따라서 엄청난 효과를 발휘할 터였다.

“자, 그럼 이제 제작을 시작하자.”

흡족한 미소를 머금은 그리드가 용광로 앞에 섰다. 그리고 현재 보유중인 광물의 개수를 확인했다.

푸른 오리하르콘 39개.

흑철 99개.

철광석 1,290개.

미스릴 32개.

푸른 오리하르콘은 3개월에 단 1번밖에 출현하지 않는 <각성 된 숲의 수호자>만이 드롭하는 광물이다.

구할 수 있는 수량에는 한계가 있었고, 본래 한 사람이 이만큼이나 독식하는 일은 실질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리드에게는 지슈카가 있었다.

그녀는 바이란의 영주로 지내는 동안 꾸준히 숲의 수호자를 레이드함으로서 푸른 오리하르콘을 모아 전부를 그리드에게 바쳤다.

그녀의 도움은 감히 가치로 환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고 이 순간 그리드에게 광명이 되어주고 있었다.

‘고맙다, 지슈카.’

새삼 감사를 느낀 그리드가 용광로에 광물들을 녹이기 시작했다.

광물에 대한 완벽한 이해도를 기반으로 불의 온도를 조절하는 그의 모습은 젊은 대장장이들의 귀감이 되었다.

***

‘드디어…’

지난 이틀 동안 그리드는 아이템 제작에만 열중했다.

그 결과 현재 그의 눈앞에는 2자루 대검이 놓여있었다.

깊은 홈이 파여 있는 검신 중앙은 묵색으로 번들거리고, 날카로운 양날은 은은한 청광을 뿌리는 대검이었다.

색상의 조화가 묵직하고 고급스러운 멋이 있어 사용자의 품격을 절로 높여줄 것만 같았다.

단, 둘 다 아직 손잡이가 결합되지 않은 미완성 상태였다.

“후우.”

양손으로 거머쥘 수 있는 길이의 손잡이. 그것을 대검에 결합시키기에 앞서서 그리드는 심호흡했다.

젊은 대장장이들은 의문을 느꼈다.

‘이제 손잡이만 결합하면 끝인데 왜 저리 뜸을 뜰이시는 거지?’

‘뭔가 잘못 됐나?’

젊은 대장장이들은 그리드가 어떤 깊은 뜻이 있어서 검의 완성을 미루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오해였다.

지금의 그리드는 단순히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상태였다.

‘둘 다 유니크 등급으로 완성되면 어쩌냐…’

그리드의 대검 1개를 제작하기 위해서 필요한 재료는 푸른 오리하르콘 19개와 흑철 44개였다.

흑철이야 돈만 있으면 구할 수 있는, 비교적 흔한 광물이라고 볼 수 있었으나 푸른 오리하르콘은 사정이 달랐다.

오로지 3개월마다 한정 된 수량밖에 구하지 못하는 진귀한 광물이었다.

그것을 무려 19개나 사용해서 제작한 대검이 유니크로 뜬다면?

한동안 치가 떨려서 잠들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10번째 레전드리 아이템을 제작하는 대가로 발생할 ‘특수한 일’.

그것이 전처럼 내게 페널티로 작용할지라도 그리드는 무조건 레전드리 등급의 대검이 뜨기를 바랐다.

언제까지고 레전드리 아이템을 기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제발…!’

망치를 거머쥔 그리드의 손에 힘이 실렸다.

‘하느님, 부처님, 레베카 여신님, 야탄 신님! 부디 제게 행운을!!’

심지어 악신 야탄에게까지 기도를 올린 그리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기도를 마친 그가 2자루 대검에 손잡이를 부착시켰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리드의 대검(레전드리)>의 제작에 성공하였습니다!]

[레전드리 아이템을 제작하여 모든 능력치가 +10 영구적으로 상승, 대륙 전역에 명성이 +500 상승합니다.]

[<그리드의 대검(레전드리)>의 제작에 성공하였습니다!]

[레전드리 아이템을 제작하여 모든 능력치가 +10 영구적으로 상승, 대륙 전역에 명성이 +500 상승합니다.]

“오오…! 오오오!!”

완성 된 대검의 자태를 목도한 대장장이들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심지어 칸은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었다.

그리드가 멋진 결과물을 탄생시켰으니 자신의 일처럼 기뻤던 까닭이다.

한편 그리드는 변화하고 있었다.

[레전드리 아이템을 10회 제작함으로서 당신의 잠재력을 입증해보였습니다.]

[이제 당신은 파그마와 비견되는 대장장이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사용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아이템 착용 시 발생하는 페널티가 사라집니다.]

“페널티 삭제!”

그리드의 두 눈이 부릅 뜨였다.

파그마의 후예로 전직한 이후 자신의 발목을 붙잡았던 최대 단점이 이 순간 사라진 것이다.

그리드는 격앙되었고 전율에 휩싸였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잠재력이 개화된 반동으로 성장력이 저하됩니다.]

[앞으로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을 제작 시 추가 스탯을 획득하지 않습니다.]

“이런 썩을!!”

이미 한 번 경험했던 페널티이니만큼 어느 정도 각오는 다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이 순간이 찾아오자 억장이 무너졌다.

‘앞으로 스탯을 성장시키려면 레전드리 아이템을 제작하는 수밖에 없는 건가…!’

레전드리 아이템의 제작 학률은 최악이다.

파그마의 후예로 전직하고 1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제 고작 11개밖에 제작하지 못했을 정도이다.

그리드는 절망하고 좌절했다.

과거였다면 운영자를 저주하고 신을 원망하며 몇날며칠이고 신세 한탄만 했을 터였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그리드는 성장한 정신력을 기반으로 좌절감을 빠르게 극복해보였다.

‘…나쁘지 않아.’

장기적으로 봤을 때 스탯 상승의 저하는 치명적이었으나 그 대신 아이템 페널티가 사라졌다.

이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가?

‘앞으로 나는 진정한 템빨러가 된다.’

물약도, 스킬도 필요 없는 템빨 전설의 서막이 오르려하고 있었다.

***

“거래…하겠소…”

무려 레전드리 등급의 그리드의 대검.

그것의 상세 정보를 확인한 크리스가 결국 거래를 수락하고 말았다.

노예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앞으로 크리스는 아이템의 수리를 무조건 그리드에게 맡겨야만 하는 입장이 된 바, 결코 그리드에게 밉보일 수가 없었다.

만약 그리드가 수틀려서 아이템 수리를 안 해준다고 했다간 끝장이었기에.

“좋아, 앞으로 잘 지내보자고.”

악수를 건네는 그리드였다.

“…”

흰 이를 드러내며 웃는 그를 보면서 크리스는 지금 자신의 선택이 정녕 옳은 것인가 다시금 고민해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리드의 대검이 너무 탐났다.

크리스가 314레벨을 달성하는 동안 목격했던 무수한 아이템 중 단연 으뜸이었다.

“잘… 부탁하오…”

힘없이 고개를 떨군 채 악수에 응하는 크리스. 그를 바라보는 그리드의 눈빛에는 여유가 넘쳤다.

완전한 템빨러로 거듭난 지금의 그는 보다 초연해졌고, 이는 브라함이 말했던 전설의 태도에 근접해져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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