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16권 - 12화
푸른 대검과 호미가 충돌하는 순간, 피아로가 두 눈을 부릅떴다.
‘무겁다!’
그리드의 검술은 투박했다. 딱히 탁월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한 근력과 높은 민첩성을 기반으로 구사하였기에 위력만큼은 상당했다.
‘어느새 이렇게까지 단련하신 거지?’
피아로는 그리드를 가르쳐본 경험이 있다. 하여 그리드가 둔재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절실히 알고 있었다.
전설의 기술을 계승한 바, 잠재력은 뛰어날지라도 빠른 성장은 불가능하리라고 확신했었다.
한데 이제 보니 오판이었다.
그리드의 성장속도는 피아로가 인정한 천재들, 레가스와 이벨린에 필적하고 있었다.
‘지금!’
도살귀의 안대와 높은 통찰력의 시너지가 폭발했다.
번뜩이는 적광으로 피아로가 당황하는 기색을 포착한 그리드가 실패작에 맞물린 호미를 떨쳐냈다. 이때 동시에 그리드의 대검을 횡으로 베었다.
쩌엉-!
“읏…!”
피아로가 신음을 토했다.
쇠스랑을 세워 방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충격이 전달돼온 여파였다.
대장장이의 분노와 파브라늄의 버프를 등에 업은 그리드의 공격력은 크리스의 공격력을 거뜬히 상회하고 있었다.
특히 높은 민첩성이 그리드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쩌엉! 쩡! 쩌정-!!
크리스라면 2번 공격해왔을 시간에 그리드는 3번 공격해왔다.
피아로는 매우 놀랐다.
크리스보다 한참 아래의 경지일 것이라 예측했던 그리드가 도리어 크리스보다 더 강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놀라움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드에게는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검술에 대한 이해도다.
크리스는 공격 속도가 느린 대신 적의 움직임을 강제시키는 궤적을 그렸던 반면 그리드는 단지 빠르기만할 뿐이었다.
우선 방어하며 기회를 엿보던 피아로가 우측으로 회전, 그리드의 왼쪽 어깨를 노리고 호미를 찔렀다.
약점을 정확히 파고든 공격이었으나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황금의 칼날이 날아와 그리드를 지킨 것이다.
공격을 가로막힌 피아로가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과연!’
전설의 대장장이답다. 그리드는 부족한 검술실력을 도구라는 수단으로 메우고 있었다.
하지만 단 일격에 맞섰단 이유로 경련하더니 경직되는 황금 칼날 따위에게 언제까지고 의지할 수 있겠는가?
피아로는 파브라늄의 변수를 대단치 않게 여겼다.
이는 당연한 판단이었다. 방심이라고 표현하기에는 과장 된 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리드가 누군가?
재차 말하지만 전설의 대장장이다.
그가 발휘하는 템빨은 예측을 초월하는 개념이었다.
퍼엉-!
“헉?”
검호의 경지에 올랐던 시점부터 늘 최강이었던 피아로.
동시대에는 적수가 없다고 평가 받았던 그가 드물게 경악성을 질렀다.
그리드의 어깨를 보호한 후 경직되어 있던 황금 칼날.
그것으로부터 매직 미사일이 발사되었기에!
“크윽!”
전혀 예상치 못한 형태의 공격이었다.
설마 칼날로부터 마법이 발현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던 피아로가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틈을 노리고 도약한 그리드가 실패작을 종으로 휘두른 후,
쩌엉!
공격이 막히자 반동을 활용, 선회하더니 그리드의 대검으로 호선을 그렸다. 만월을 연상하게 만드는 호쾌한 검격이었다.
푸웃!
“……!”
피아로의 가슴으로부터 선혈이 솟구쳤다.
하지만 피해가 썩 크지는 않은 듯, 자세에 흔들림이 없었다.
그가 얼마나 튼튼한 존재인지 상기한 그리드가 망설임 없이 공격을 연계시켰다.
하강하며 종 베기,
착지하고 횡 베기,
이어지는 반격은 실패작으로 방어한 후 그리드의 대검으로 카운터를 날렸다.
총 5회의 공격을 그리드의 대검으로 적중시키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자 그리드의 대검의 옵션이 발동, 5회째 공격은 크리티컬이 터졌다.
[크리티컬!]
[대상에게 22,9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말도 안 되게 단단하네.’
상처투성이가 된 사람은 피아로였으나 정작 놀란 사람은 그리드였다.
달랑 천 옷 한 장 걸치고 있는 피아로의 방어력이 엘핀스톤의 방어력을 상회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심지어 생명력조차 최소 30만은 넘어 보였다.
전설의 농부로 전직한 피아로는 검호 시절보다 스탯이 대폭 상향 된 상태였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끊임없는 수련을 통해서 레벨까지 올랐다.
현재 피아로의 레벨은 405였고 이는 과거, 그리드가 대영주의 검으로 그를 관찰했던 시점보다 무려 38이나 높은 수치였다.
301레벨에 불과한 그리드의 공격이 제대로 들어갈 리 만무했다. 이는 시스템이 기본적으로 보장하는 레벨 우선 판정이었다.
피아로가 경의를 표했다.
“주군이 자랑스럽습니다.”
파그마의 도플갱어와 사투를 벌였던 그날 이후부터 당신은 쉬지 않고 노력해왔던 겁니까?
“부족한 재능에 발목을 붙잡히면서도 이토록 성장하신 주군께 경의를 표해, 저 또한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피아로의 충성심이 극한까지 치솟습니다.]
[주군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피아로의 의욕을 증진시키고 잠재력을 개화시킵니다. 피아로의 모든 능력치가 10퍼센트 영구적으로 상승합니다.]
“헉.”
평소라면 기뻐해 마지않을 알림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예외다.
“자, 잠깐!”
일단 나와의 승부가 끝난 후에 강해지면 안 되는 거냐!
그 생각을 입에 담을 시간조차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