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1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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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 17권 - 1화
숙녀고배 Satisfy 무투 대회.
일개 학교 축제의 일환이라고는 하나 세간의 관심이 뜨거웠다.
16명 참가자 전원이 각 분야의 유명인이었을 뿐더러 성녀 루비를 볼 수 있는 기회였으니 당연했다.
실제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경기를 시청하고 있었다.
-어? 고지명 아이디 왜 빨개짐?
-저거 대련 모드 아니네.
-와, 고지명 저 새끼 세희 죽이려고 드는 것 봐. 미친 거 아니야?
-레이나랑 사귀기 시작한 후부터 사고만 치더니 결국 맛탱이 간 듯.
-이래서 사람은 사람을 잘 만나야 돼… ㅉㅉ근데 주최측은 뭐하냐? 안 말리냐?
-이 XX놈들아 우리 성녀님 죽는다고!!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관객과 시청자들은 고지명이 세희를 의도적으로 해치려함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하지만 정작 숙녀고측에서는 대회를 중단하지 않고 속행시켰다.
이에 공분한 관객과 시청자들이 숙녀고와 고지명을 비난하였으나 그들의 외침은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 누구도 세희를 도울 수 없었고, 결국 세희는 상처투성이가 되어 죽어가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매직 미사일.”
그리드.
Satisfy 최강자 중 하나인 그가 예고도 없이 나타나 고지명을 징벌했다.
대회의 규칙을 어기고 도중 난입하는 형태였지만, 이에 대한 비난?
없었다.
관객들과 시청자들 모두가 도리어 환호했다.
“역시 갓리드!”
극검은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매직 미사일. 그것도 가운데손가락으로 발사한 매직 미사일로 상대방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짓뭉개다니!
적에게 한없이 잔혹한 그리드의 무자비한 태도가 극검은 너무나도 통쾌했다. 동료로서 듬직하기도 했다.
신나서 발을 구르고 있는 그에게 다섯 명의 사내들이 다가왔다. 죄다 검은 정장을 빼입은 건장한 체구의 사내들이었다.
그들이 위협적으로 포위해오자 극검이 경계했다.
“뭐요?”
“당신을 성추행과 공연음란 행위 등의 혐의로 체포하겠습니다.”
“뭐? 성추행? 공연음란죄? 내가?”
결백한 극검은 어이가 없었다.
이들이 어째서 개소리를 지껄이는지 도통 이해가 안 됐다.
“애초에 댁들이 뭔데 체포를 하겠다는 거지? 경찰이라도 돼?”
“경찰은 아니지만, 본교 내부의 치안에 해악을 끼친 범죄자를 붙잡고 경찰에 양도할 정도의 권한은 갖고 있습니다.”
“아니, 당최 무슨 헛소린지 모르겠네! 내가 왜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하는 건데!!”
아, 설마?
납득하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치던 극검의 뇌리로 어떤 광경이 스쳐지나갔다.
그리드가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을 상대로 모세의 기적을 일으켰던 일이었다.
“허, 참.”
정황상 그리드의 잘못을 내가 뒤집어 쓴 것 같다.
‘억울하군.’
극검은 솔직히 말하고 싶었다. 성추행범은 내가 아닌 그리드라고 말이다.
하지만 친구를 팔아먹는 행위, 의리에 죽고 사는 극검이 벌일 수 있는 짓이 아니었다.
차마 솔직히 말할 수 없었던 그가 그대로 줄행랑쳤다.
“잡아!!”
숙녀고에서 고용한 경비 업체의 직원들은 분야의 엘리트다.
하나 같이 뛰어난 체력과 운동 신경을 자랑했다.
그들에게 쫓기며 아슬아슬한 추격전을 벌이게 된 극검은 울고 싶었다.
‘내가 왜 이런 꼴을!’
***
‘이, 이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고지명은 현재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드가 갑자기 나타난 것은 둘째 치고, 이 내가 고작 매직 미사일 2방을 얻어맞았답시고 빈사 상태에 빠지다니?
주저앉은 채 혼란스러워하는 고지명의 앞으로 다가간 그리드가 또 한 번 중지를 세웠다.
“감히 내 동생을 때려? 네깟 놈이?”
날카롭게 번뜩이는 그리드의 두 눈에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살의가 깃들어 있었다.
그의 중지에 집약되는 백색 마력을 목도한 고지명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살해당하고 경험치와 아이템을 떨어뜨릴까봐서?
아니다.
경험치와 아이템, 필시 아깝기는 하나 시간과 돈만 투자하면 다시 복구할 수 있다.
다만 고지명이 두려워하는 것은 여자 친구 레이나의 분노였다.
부탁 하나 제대로 들어주지 못한 내게 실망한 그녀가 헤어지자고 한다면?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소름끼치게 싫다.
‘어쩌지?’
죽음을 앞에 둔 채 머리를 굴려보던 고지명이 다급히 소리쳤다.
“멈춰! 나를 건드렸다간 네놈도 무사할 수 없을 거다! 내 지인 중에는 조폭이 있거든!!”
“조폭?”
그리드가 움찔했다.
현실의 그는 게임에서와 달리 무력했으니까.
고지명의 협박을 쉬이 넘길 수 없었다.
‘이 치사한 새끼가.’
이를 갈며 망설이던 그리드가 문득 야수인간 툰을 떠올렸다.
체다카 길드 시절부터 쭉 템빨단의 멤버로 활약해오고 있는 그, 현실에서는 마피아 출신이라지 않았던가?
그 또한 다른 길드원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에 빌딩을 올리는 중이다.
그리드의 입가로 사악한 미소가 번졌다.
“네 지인 중에 조폭이 있다고?”
“그래! 아주 잔인한 놈이지!”
“그래봤자 이탈리아 마피아보다 더할까?”
“뭐? 마피아?”
“그래, 마피아. 내 친구 중에는 마피아가 있거든!”
콧대를 세우고 잘난 듯이 지껄이는 그리드였다.
그에 고지명은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마피아가 친구라고?
뭐 이딴 황당무계한 허풍을 깐단 말인가?
‘미친놈!’
한껏 비웃은 고지명이 소리쳤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를 죽여 보던가!!”
그리드는 망설이지 않았다.
“매직 미사일.”
퍼엉!
“커억…!”
또 한 번 가운데손가락으로부터 방출 된 백색 섬광이 고지명의 머리를 꿰뚫었다.
고지명은 아차 싶었다.
‘이놈이 정말로 마피아랑 친군가…!’
[사망하였습니다.]
[경험치 18.7퍼센트와 화염의 메이스(유니크)를 잃었습니다.]
***
“크아아아!!”
고지명이 캡슐을 박차고 나왔다.
경험치, 아이템을 손실한 게 문제가 아니었다.
레이나의 분노가 두려웠고, 또한 쪽팔렸다.
수천 관객 앞에서 고작 매직 미사일에 맞아 죽다니!!
“용서 못한다!”
격분한 고지명이 팔을 걷어붙였다. 그리고 씩씩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그리드가 앉아 있는 캡슐을 발견하고 달려갔다.
아니, 달려가려고 했다.
“작작하지?”
“넌 또 뭐야?”
고지명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김두현.
월드스타인지 나발인지 하는, 내 연인 레이나의 옛 남자다.
쭉 눈엣가시였던 놈이 이 중요한 순간에 내 앞길을 가로막자 고지명은 열 받아 환장할 따름이었다.
“뒤지기 싫으면 꺼져!”
고지명은 한때 최고의 장타자였던 인물답게 풍채가 훌륭했다. 특히 팔과 어깨 근육이 매우 발달했다.
그가 위협적으로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깔고 피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김두현은 달랐다.
무심한 표정으로 고지명을 응시한 채 앞길을 끝까지 가로막고 섰다.
그에 자극받은 고지명이 급기야 주먹을 날렸다.
그와 동시였다.
“억?”
고지명의 머리가 핑 돌았다.
뒤늦게 인지하고 보니, 김두현의 팔꿈치가 내 턱을 올려치고 있었다.
“저, 절권…도…!”
풀썩!
경악한 고지명이 맥없이 고꾸라졌고, 김두현은 그의 귀에다가 대고 속삭였다.
“가서 레이나에게 전해. 내가 그동안 너의 행동들을 눈감아 줬던 이유, 네가 아직 어리기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이제 너도 성인이 되었으니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지게 될 거라고.”
“크, 크윽…”
타고난 힘과 운동신경 덕분에 학창시절 쭉 왕으로 군림했던 고지명.
학교 졸업 이후 프로 데뷔를 하고서도 승승장구해왔던 그에게 있어서 오늘처럼 수치스러운 날은 없었다.
‘빌어먹을 놈들…! 언젠가 두고 보자!’
훗날을 기약한 고지명이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캡슐 안에 숨은 채 바깥 상황을 염탐하던 그리드가 그제야 뛰쳐나왔다.
‘정말로 기절했군!’
고지명의 상태를 확인한 그리드가 그를 힘껏 걷어찼다. 그제야 속이 좀 후련해진 기분이었다.
“근데.”
그리드가 김두현을 노려봤다.
“고지명을 이 꼴로 만들어서 멋있는 척 하다니, 당신은 끝까지 세희를 꼬실 생각이군?”
김두현은 그리드가 자신을 왜 적대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내 소문을 듣고서 정말로 여고생 킬러인 줄 아는 거구나.’
한숨 쉰 두현이 솔직하게 말했다.
“제가 이번 축제에 참가해서 세희 양에게 접근하려고 한 의도는 그쪽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를?”
그리드는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꺼낸 두현이 노에의 팬카페에 접속하더니 그리드에게 건네주었다.
“보십쇼.”
“응?”
무슨 의도지?
그리드가 경계한 채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했다.
그리고 두현의 진정한 정체를 알게 됐다.
회원 아이디:노에님의 노예
회원 등급:최우수 회원
“…헐.”
당황하는 그리드.
그에게 두현이 고개 숙여 부탁했다.
“부디 절 템빨단에 받아주십시오!”
“…렙 몇인데?”
“그게… 제가 최근 활동이 바빠 게임을 별로 못했습니다. 190레벨밖에 안 됩니다.”
역시, 템빨단에 가입하기에는 자격이 부족하겠지?
노심초사하는 두현의 표정과 태도가 평소 이미지와 너무 달랐다.
차도남은 사라지고 측은지심을 유발했다.
‘190레벨이면 그래도 꽤 고렙 아닌가?’
생각해본 그리드가 재차 질문했다.
“클래스는 뭡니까? 생산직이면 길드에 가입시켜줄지 말지 고려해보죠.”
“생산직은 아니고 펫 마이스터라고… 유니크 클래스입니다. 역시 전 안 되는 겁니까?”
덥썩!
그리드가 두현의 두 손을 꽉 잡아 쥐었다.
“환영합니다!”
“…”
***
“앞으로 채 한 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에트날 왕국의 국왕, 비스바덴의 수명을 말함이다.
왕위계승서열 1위 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버지의 죽음이 슬퍼서가 아니었다.
레이단에 서식 중인 괴물과 마주해야할 때가 왔음에 두려웠던 까닭이다.
라인하르트 골렘 침공전 직후.
대규모 작위 수여식에서 그리드 공작이 했던 말을 렌은 여전히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신 그리드, 국왕 전하께 영원한 충성을 서약하는 바입니다.”
왕실 그 자체가 아닌, 비스바덴에게만 국한한 충성 서약.
그것은 1왕자 렌에게 있어서 선전포고나 다름이 없었고, 렌은 늘 두려웠다.
‘내가 먼저 쳐야한다.’
렌은 레이단의 정세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현재 레이단의 병력이 고작 1천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어.’
마음을 정한 렌이 서둘러 자신의 궁으로 향했다.
그리고 대륙 각지로부터 초빙해온 최강의 전사들을 소집하더니 말했다.
“내 군세의 레이단 정벌에 그대들이 동참해주기를 바라는 바이오.”
“기꺼이.”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전사들 중에는 회색머리 중년인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이름은 휴렌트.
제1회 국가대항전에서 그리드에게 단 5초 만에 패배하고 큰 파장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연계 퀘스트가 진행됩니다.]
눈앞에 떠오르는 알림창을 확인한 휴렌트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드, 과거의 굴욕을 갚아주마.’
다짐하는 휴렌트의 얼굴에 자신감이 충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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