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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48화 (143/1,794)

템빨 17권 - 3화

아이린의 침실.

“아버지!”

“내 딸아!”

아이린과 스테임 후작이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약 9개월만의 부녀 상봉이었으므로 두 사람은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서로의 건강을 확인하고 기쁨에 눈물을 흘렸다. 특히 스테임 후작은 콧물까지 훌쩍였다.

아빠, 아빠 거리며 쫄래쫄래 따라다니던 아이린의 옛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아직도 소녀 같기만 한 내 딸아이가 어느덧 엄마가 되려하고 있었으니 기분이 묘하고 쓸쓸했다.

만삭의 배를 확인한 스테임 후작이 그리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 딸을 늘 지금처럼만 아끼고 사랑해주길 바라네.”

그리드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진정어린 마음으로 답했다.

“늘 지금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겠습니다.”

그와 동시였다.

[부부의 진실 된 사랑을 느낀 뱃속 아이의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그리드가 매일 같이 아이린에게 사랑을 속삭여도 반응이 없던 알림창이 보름 만에 떠올랐다.

출산까지 앞으로 5일.

아마도 오늘이 마지막 태교인 듯 보였다.

***

그리드와 스테임 후작이 아이린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그때.

아이린의 침실 바깥에는 양가의 가신들이 나란히 도열하고 있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 묵묵히 사위를 경계하던 그들 중 한 청년의 눈빛이 갑자기 사나워졌다.

청년의 이름은 라덴.

피닉스 단장의 뒤를 이어 북부 최고의 기사라는 칭호를 거머쥔 인재였다.

“침실로부터 느껴지는 기척이 3개가 아닌 4개입니다만. 그리드 공작각하의 그림자인 겁니까?”

‘기척이 4개라고?’

라덴의 질문에 피아로와 아스모펠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들이 느끼기로 아이린의 침실에 존재하는 기척은 단 3개.

그리드 공작과 아이린, 그리고 스테임 후작의 것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젊은 치기에 스스로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어 일단 찌르고 보는 건가?’

라고 여기기에는 후작의 기사다.

단순한 치기로 일을 크게 만들 리 만무했다.

“라덴 경이라 하였던가? 경을 믿고 감히 공작부인의 방문을 두드려보아도 되겠는가?”

아이린은 절대 안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때 위험을 무릅쓰고 아이린의 침실에 들어가 소란을 피웠는데, 제3자가 존재하지 않을 경우?

그리드 공작과 스테임 후작의 격노를 살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피아로는 이에 대해서 라덴이 책임져야할 것이라는 경고를 하고 있었다.

제대로 알아들은 라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지체할 필요가 없다.

피아로가 아이린의 침실 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이야?”

그리드의 응답을 확인한 피아로와 라덴. 그들을 필두로 양가의 가신들 모두가 아이린의 침실로 들어갔다.

“무슨 일인가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자 아이린이 동요했고 그리드는 눈살을 찌푸렸다.

“왜 그렇게 요란이지?”

라덴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쥐새끼가 한 마리 있습니다.”

“뭐?”

쥐새끼라니?

섣불리 이해하지 못하는 그리드에게 목례한 라덴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천장으로 검을 찌르려다가 멈추는 게 아닌가?

“…사라졌군요.”

“뭐?”

최악이다.

피아로는 이마를 감쌌고 그리드의 얼굴은 무섭게 일그러졌다.

라덴이 설명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천장 위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리드는 어이가 없었다.

그의 통찰력은 무려 1,550이다.

살신 페이커조차도 그의 반경 3미터까지 은밀히 접근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근데 내 바로 머리 위에 쥐새끼가 숨어있었다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걸 왜 내가 몰랐을까?”

“…”

라덴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조아린 채 죗값을 기다릴 따름이었다.

이를 간 그리드가 스테임 후작에게 따지듯 물었다.

“저자는 대체 뭡니까?”

스테임 후작은 난처할 따름이었다.

“뛰어난 자일세. 아직 젊어 치기가 있어 간혹 실수를 하고는 하니 자네가 이해해주기를 바람일세.”

“거참.”

북부의 신성, 라덴.

그가 그리드 일행에게 허풍쟁이로 낙인찍히는 순간이었다.

***

‘놀랍군.’

그림자의 왕, 카심.

현존 최강의 어쌔신인 그가 십년감수하고 있었다.

이제 갓 약관을 넘긴 듯한 청년에게 은신을 발각 당하였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세월이 인재를 낳는다 했던가.’

에트날 왕국.

사하란 제국과 비교하면 한낱 소국에 불과한 이곳에서조차 엄청난 인재들이 태동하고 있었다.

단순하게 계산해 봤을 때, 에트날 왕국보다 인구가 수십 배는 많은 사하란 제국은 훨씬 더 많은 인재를 낳고 있을 터였다.

이는 제국에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는 카심의 입장에서 썩 좋은 일이 아니었다.

‘어찌됐든 당분간 더욱 더 조심해야겠어.’

스륵.

카심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내 원.”

따앙! 따앙! 따앙!

그리드가 오래간만에 대장간을 찾았다.

단조질 중인 그의 옆에는 2개의 모루가 나란히 놓여있었고, 그를 토대로 4개의 갓 핸드가 그리드와 마찬가지로 단조질에 열중하는 중이었다.

젊은 대장장이들은 그 경이적인 모습에 그저 붕어처럼 입만 뻥긋거릴 따름이었다.

칸이 그리드에게 다가왔다.

“기분이 언짢아 보이는군. 무슨 일이기에 그러시는가?”

“스테임 후작이 어떤 젊은 기사를 데리고 왔는데, 그 자식이 영 마음에 안 들지 뭡니까.”

“허허, 하필이면 자네에게 찍히다니. 그 젊은이도 영 불쌍하구만.”

“그 자식 때문에 아이린이 놀란 걸 생각하면… 씁, 아예 출세길을 막아버릴까.”

“크음, 평민인 내 입장에서는 썩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생각이로구만. 사소한 감정으로 월권을 행사하는 권력자 하나가 힘없는 자들을 무수히 핍박할 수 있음을, 나는 늘 피해자의 입장에서 목격해 왔으니까.”

“…그렇죠. 저도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고 있었군요.”

불과 재작년까지만 해도 그리드 또한 늘 약자였다.

강자들에게 핍박당하는 일이 얼마나 서러운 것인가 그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한데 그러면서도, 이젠 또 힘이 있다하여 그것을 함부로 사용할 생각을 하고 있다니?

그리드는 스스로에게 실망했고 마음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고맙습니다. 역시 난 당신이 너무 좋아요.”

“허허, 난 자네가 너무너무너무 좋다네.”

“노인네가 체통 없기는.”

미소지은 그리드가 칸의 어깨에 잠시 머리를 기댔다.

마치 손주가 할아버지에게 기대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젊은 대장장이들은 다르게 받아들였다.

‘두 분이 유난히 친하다 싶더니만.’

‘권력과 성별, 심지어 나이까지도 초월한 사랑이었던 건가.’

‘으음… 입 조심들 하자.’

따앙! 따앙!

오해가 깊어지는 와중에도 갓 핸드들은 쉬지 않고 단조질에 열중했다.

양산형 그리드 세트에 필요한 부속품들을 제작해서 그리드에게 전달했고, 그리드는 그중 완성도 높은 것들만 선별하여 재료로 써먹었다.

[<갓 핸드>의 대장장이 기술 레벨이 고급 2로 올랐습니다.]

[<(신의 무기를 이해한)전설적 대장장이의 기술> 레벨이 7로 올랐습니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창조>의 창조 가능 횟수가 3개 올랐습니다. 현재 창조할 수 있는 아이템 제작법 횟수(13/21)]

그리드의 성장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었다.

***

“뛰어!”

‘썩을!’

“굴러!”

‘염병!’

“기어!”

‘빌어먹을!’

레이단의 연병장.

“이것이 공작각하의 뜻이다!”라는 미명 하에 병사들은 오늘도 혹사당하고 있었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 불판처럼 달아오른 모래 위를 구르고, 기어나가 또 온갖 위험한 장애물을 뛰어넘은 뒤 칼과 창을 찌르기를 무한히 반복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되는 거지?’

이와 같은 의문도 이제는 거의 사라지기 직전이다.

체내의 지방은 물론이고 뇌까지 모조리 연소되는 듯하다.

오로지 근육만이 남은 살인병기로 재구성되는 과정 같았다.

솔직히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었지만.

“너희들이 흘리는 땀방울이 많으면 많을수록 너희들의 가족이 안전을 보장 받는다.”

“또 옛날처럼 굶어 죽어가고 싶은가! 그게 아니라면 악착같이 버텨라! 스스로 삶의 터전을 지켜라!”

피아로 총사령관과 아스모펠 단장의 외침이 나약해지는 마음을 몇 번이나 붙잡아줬다.

‘그래, 버틴다!’

병사들의 눈에는 독기만이 충만했다.

이제와 포기하기도 우습지 않은가?

반드시 이 시련을 이겨내겠다는 일념만으로 훈련에 임했다.

그래도 정 힘들 때면 그리드를 욕했다.

‘생각해 보면, 당장 전쟁이 일어날 것도 아닌데 우리를 굳이 이렇게까지 굴릴 필요가 어디에 있지?’

‘그리드 공작각하는 우리를 일부러 괴롭히는 게 분명해!’

‘공작각하는 개뿔! 레이단의 태양은 염병! 길 가다가 자빠져서 코나 깨져라!’

[레이단 병사들의 충성도가 7 하락하였습니다.]

[레이단 병사들이 당신을 증오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헐.”

충성심이야 언제든지 다시 올릴 수 있다.

그와 같은 생각에 병사들의 훈련 강도를 낮추기는커녕 점점 더 올리라고 지시했던 그리드.

그가 슬슬 경각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증오라니?

원망을 넘어서는 단계로서 언제 반기를 일으켜도 이상한 상태가 아닌가?

‘당근을 줄 때가 됐어.’

마음을 정한 그리드가 <레이단 병사 명단>을 펼쳤다.

명단에는 레이단 1,003명 병사들의 간략 정보가 쭉 나열되어 있었다.

이름, 성별, 레벨, 병과다.

상세 스탯이나 스킬, 고유 스토리 등은 일일이 대영주의 검으로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어?”

병사 목록을 레벨 순으로 정렬시켜본 그리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1명.

단 1명의 병사가 어느덧 150레벨을 달성한 것이 아닌가?

다른 병사들의 레벨이 평균 136에서 139인 점과 비교하면 엄청난 성장속도였다.

‘뭐지?’

그리드가 피아로를 소환했다.

“부르셨습니까?”

피아로는 이제 라우엘과 라빗 다음으로 바쁜 사람이었다.

군대와 밭을 동시에 관리하니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피곤에 쩔어있는 라우엘, 라빗과 달리 그의 혈색은 무척이나 좋았다. 기본 체력이 비상식적으로 높아서인지 혹사라는 개념이 없는 듯했다.

피차 바빴기에, 그리드가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명단을 보니까 로이먼이라는 병사의 성장이 눈에 띄더군. 어떻게 된 거야? 걔한테만 무슨 특수한 훈련을 시킨 건가?”

“그렇지 않습니다. 저와 아스모펠은 모든 병사들에게 똑같은 훈련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근데 성장속도가 왜 이렇게 차이나는 거지?”

“재능과 의욕의 차이입니다. 똑같은 훈련을 받을지라도 아무 생각 없이 일정에만 따르는 병사들이 있는 반면, 이 훈련이 자신의 성장에 더 좋게 작용하게끔 강구해보는 병사들이 있으니까요.”

“흐음, 그 로이먼이라는 병사에게 별도의 훈련을 부과할 수는 없을까?”

“보다 빠르게 성장하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그래, 적어도 160레벨까지는.”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특무대를 구성할 계획이 있었는데, 로이먼을 그에 소속시키는 쪽으로 일을 진행시킴으로서 별도의 훈련을 지시하도록 하겠습니다.”

“특무대?”

뭔가 굉장히 있어 보인다.

특무대의 이름은 또 뭐라고 지어줄까?

‘템빨 특무대가 무난하려나?’

그리드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생각해보는 그때였다.

“공작각하! 아이린님께서 진통을 시작하셨습니다!”

“뭐라고!”

출상예정일은 아직 이틀이나 남아있었지만, 예정일은 막말로 예정일일 뿐이다.

제작 중인 아이템을 내동댕이친 그리드가 허겁지겁 성으로 달려갔다. 피아로 또한 그 뒤를 따랐다.

그리드의 시야에는 알림창이 떠오르고 있었다.

[태어날 아이가 남성이길 바랍니까, 여성이길 바랍니까? 당신의 대답이 아이의 성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리드는 지체 않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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