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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49화 (144/1,794)

템빨 17권- 4화

그리드는 지체 않고 대답했다.

“딸! 딸이다!!”

딸은 후계로 삼기에 여러모로 불리하다고?

그리드에게 그런 건 상관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아이린을 닮은 아이였다.

나와 달리 영민하고 착하며 아름답기까지 한 여자아이.

‘만약에 아들이 태어난다면 나를 닮을 것 같아 걱정이니까!’

일반적으로 딸은 아빠를 닮고 아들은 엄마를 닮는다지만, 그리드는 믿지 않았다.

설마, 명색이 여자아이가 내 외모와 성격을 닮겠느냐는 막연한 믿음에서였다.

[정말로 여자아이를 원하십니까?]

“그래!”

[확인되었습니다. 잠시 후 태어날 아이의 성별에 당신의 뜻이 반영될 것입니다.]

“좋아!”

대장간부터 영주성까지.

그리드는 결코 짧지 않은 거리를 쉬지 않고 내달렸다.

곧 태어날 아이의 얼굴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

“늦지 않게 오셨군요.”

내성문 어귀에서 라우엘이 기다리고 있었다.

“산파가 들어가고 30분이 지났습니다. 아마 곧 아이가 태어나겠죠. 그 전에 그리드님, 당신 설마 진짜로 아이 이름을 그리린이라고 지을 겁니까? 네? 제정신이 맞다면 지금이라도 이름을 다시 짓는 건 어떻겠습니까?”

라우엘은 언제나 늘 그렇듯 수면 부족 상태였다.

레이단, 바이란, 코크로 섬 3개 영지를 총관하는 동시에 밤낮 가리지 않고 쇄도해오는 길드 가입 문의에 대응하고 있었으니 게임에서나 현실에서나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래서인지 다소 신경질적인 라우엘의 타박을 들으며 3층까지 오른 순간이었다.

응애-! 응애!!

복도 끝 아이린의 침실로부터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축하드립니다!”

산파를 보조하던 시녀장이 뛰쳐나와 소리쳤다.

그리드의 가슴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벅차올랐다.

내가 정말로 아빠가 되다니!

막연한 두려움도 생겼지만 그보다는 기쁨이 훨씬 더 컸다.

“딸이냐!!”

상기 된 표정으로 묻는 그리드에게 시녀장이 환한 얼굴로 답했다.

“아드님이십니다!”

엉?

“뭐라고!!”

전혀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답변이었다.

경악한 그리드가 정신적 타격을 입고 휘청거렸다.

반면 스테임 후작과 가신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손 귀한 우리 집안에 사내가 태어나다니! 경사로군, 경사야!!”

“이 모두 공작각하와 후작각하의 은덕이 아니겠습니까!!”

“두 분께 경하드리옵니다!!”

“…”

경사고, 경하고, 나발이고.

‘아들이라니?’

태어날 아이의 성별에는 내 뜻이 ‘크게’ 작용할 거라더니, 결과는 왜 이 모양이지?

“…아!”

어이가 없어 말문을 닫고 있던 그리드가 뒤늦게 상기했다.

‘나 원래 재수 없는 놈이었지.’

내가 바라는 대로 일이 이루어졌던 경우?

거의 없다. 늘 바람에 반대되는 결과만이 발생했었다.

그나마 파그마의 후예로 전직한 이후부터 행운이 따르기 시작한 것이지, 그전까지는 내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놈은 아니었을지 심각하게 고민해봤을 정도로 불운만 따랐었다.

그래, 이게 현실이다.

“하.”

한숨 쉰 그리드가 아이린의 침실로 향했다.

***

“낭군님… 낭군님을 쏙 빼닮은 사내아이에요. 소녀 너무 기뻐요.”

아이린의 안색이 눈에 띄게 초췌했다. 출산의 고통이 어느 정도였을지 감히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아이린의 미소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를 본 그리드가 깨달았다.

‘나보다는 아이린의 바람이 더 크게 작용한 건가.’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눈물까지 흘리며 기뻐하는 그녀를 보자 그리드는 마음이 한층 누그러졌다.

딸이면 어떻고 아들이면 또 어떤가?

소중한 이와 사랑을 나눴고 그 결실이 태어난 것이다.

응당 기쁘고 행복했다.

애초에,

‘딸이 갖고 싶다면 또 낳으면 될 일이다.’

아이린은 손 귀한 집안의 외동딸이라 그런지 자식 욕심이 매우 강했다. 힘닿는 데까지 쉬지 않고 낳고 싶다며 노래를 부를 정도였다.

떠올리고 미소지은 그리드가 아이린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정녕 고생이 많았소. 또한 고맙소. 내게 선물을 줘서. 무엇보다도 그대가 건강해줘서.”

“낭군님…”

아이린에게는 늘 애정을 쏟는 그리드였다.

그에 감격한 아이린이 그리드에게 아이를 건넸다.

“낭군님께서도 안아보세요.”

“으, 음.”

그리드가 흠칫 놀랐다.

아이의 뒤통수를 보아하니 머리카락이 나를 닮아 검정색인 거 아닌가?

염려한대로다.

이 아들 놈, 필시 나를 닮았다.

‘부디 성격만은 다르기를…’

간절히 바란 그리드가 아이린으로부터 아이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얼굴을 확인하더니 눈을 크게 떴다.

‘뭐가 이렇게 예쁘지?’

본디 갓난아기란, 피부가 쭈글쭈글하고 눈도 뜨지 못해서 꼭 원숭이 같다 들었다.

한데 이 아이는 뭐란 말인가!

새하얀 피부엔 탄력이 넘쳤고 아이린을 닮아 크고 푸른 눈동자엔 벌써부터 총기가 깃들어 있었다.

똘망똘망한 시선을 보내오는 득템이.

녀석을 바라보는 그리드의 입가가 헤벌쭉 찢어졌다.

자신과 아이린을 절묘하게 닮은 피붙이를 보자 무한한 애정이 솟구쳤다.

“우리 손주 이름이 무엇인가?”

어느새 다가온 스테임 후작이 질문했다. 그 또한 득템이를 보더니 입이 헤벌쭉 찢어져 있었다. 기색만 보면 그리드보다 훨씬 더 기뻐하는 듯했다.

“아이의 이름은…”

그리드가 입을 열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를 바라보는 무수한 시선들 속에서 특히 라우엘은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제발 그리린만은 아니길!’

그 바람에 응답한 것일까?

그리드가 웬일로 정상적인 이름을 꺼냈다.

“로드(Lord).”

나처럼 멸시 당하지 말고 만인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기를.

나처럼 타인을 시기하지 말고 넓은 도량을 갖기를.

진실 된 바람에서 지은 이름이다.

‘로드…!’

좋은 이름이다.

노심초사하던 라우엘을 비롯한 모두가 흡족해하는 그때였다.

“거기에 내 이름 앞 글자를 따서 그-로드다.”

“……!”

라우엘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화를 주체하지 못한 그가 소리쳤다.

“그로드라니! 그거 초보존에 서식하는 오크족장 이름 베낀 거잖아!!”

“아하.”

그리드는 답답함이 해소되며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을 느꼈다.

그로드.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너무 익숙하다 싶어 이상했는데 드디어 의문이 풀린 것이다.

“어휴, 속이 다 시원하네.”

좋다고 실실거리는 그리드를 보고 더욱 더 열이 뻗친 라우엘이 재차 외쳤다.

“제발 그냥 로드라고 합시다!”

“그건 너무 평범하지 않나?”

“오크족장 이름을 따라 짓는 것보다야 차라리 평범한 게 낫죠!!”

그것도 그렇다.

그로드라는 이름은 Satisfy 내에서 고유명사나 다름이 없었으니 기피함이 옳아 보였다.

고심 끝에 그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이 아이의 이름은 로드로 짓는다.”

그 순간이었다.

[부부가 나눈 사랑의 결실을 거두셨음을 축하드립니다!]

[유저 최초로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칭호, 최초의 아빠를 획득하셨습니다!!]

<최초의 아빠>

자식과 파티를 맺을 경우, 모든 능력치가 8퍼센트 상승합니다.

자식의 생명력이 30퍼센트 이하로 떨어지면 패시브 스킬 <최초의 부성애>가 발동, 20초 동안 이동속도가 80퍼센트 상승하고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기화됩니다.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 초기화!

실로 엄청난 패시브 스킬이었다.

감탄하며 기뻐하던 그리드가 문득 의문을 느꼈다.

‘파티?’

설마 애랑 같이 사냥도 다니고 그래야 되나?

‘내가 이런 쪼렙이랑?’

어이가 없어서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는 그리드의 시야로 로드의 상태창이 떠올랐다.

이름:로드 스테임

나이:0세 성별:남

직업:공자

칭호:그리드의 아들

*전설적 대장장이의 아들입니다. 부친의 능력을 대부분 물려받았습니다.

칭호:에트날의 천재

*일국을 대표할만한 천재입니다. 이는 지역구 천재들을 압도한다는 뜻이며 레벨과 능력치 상승 속도가 보통보다 40퍼센트 빠릅니다. 또한 광범위한 분야의 스킬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단, 15세가 되기 전까지는 올릴 수 있는 레벨과 능력치에 제한이 있습니다.

칭호:전설이 될 자

역사에 이름을 남길 인물이므로 절대적인 가호를 받습니다. 질병에 걸리지 않고 모든 종류의 상태 이상에 80퍼센트 확률로 면역합니다. 공격을 받아 생명력이 1이하로 떨어지는 피해를 입을 경우 2.5초 동안 불사 상태에 돌입합니다.

레벨:1

근력:31 체력:39

민첩성:25 지력:47

손재주:90 매력:100

위엄:15 통찰력:78

스킬:[초급 대장장이 기술(F)]/[초급 웨폰 마스터리(C)]/[안목(S)]/[압도적인 매력(S)]/[명문과 전설의 혈통(SS)]

모친은 에트날 왕국 최고 명가의 후계자이며 부친은 전설적인 존재입니다.

부모의 장점들을 고스란히 물려받았으므로 잠재력이 독보적인 수준으로 뛰어납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치고도 남습니다.

단, 재능과 환경이 너무 훌륭하다보니 자칫 오만해질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훈육이 역사를 가를 것입니다.

“이거 완전…”

Satisfy판 금수저다.

그리드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로드 스테임.

훗날, 템빨家의 이름을 온 세상에 아로새길 대군주가 태어난 날이었다.

***

“아부. 아부.”

로드가 태어나고 일주일이 지났다.

갓 태어났던 당시와 비교하면 무척이나 생기발랄한 아이의 미모는 벌써부터 빛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리드의 유이한 외모적 장점인 긴 눈매와 높은 콧대를 쏙 빼닮았고, 거기에 아이린의 얼굴형과 피부, 입술, 눈동자를 닮았으니 아직 기저귀를 차고 있는 주제에 꽃미남의 자질이 엿보였다.

“너무 예쁘다.”

성녀 루비가 이틀 전 레이단에 도착했다. 오로지 조카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일념에서였다.

그녀는 로드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못한 채 싱글벙글이었다.

반면 세 명의 여자들은 마음이 썩 편치 못했다.

유라, 지슈카, 섹시여고생이었다.

오래간만에 한 자리에 모인 그녀들은 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뭐, 저 아기가 예쁜 건 인정하겠는데. 그래도 훗날 내가 낳을 아이에 비하면 영 별로지. 생각해봐. 나와 그리드를 닮은 자식이 태어나면 얼마나 늠름하고 섹시하겠어?”

자신만만하게도 말하는 지슈카였다.

섹시여고생이 콧방귀 뀌었다.

“어머~ 지슈카 언니도 그리드 오빠랑 결혼하려고요? 아, 아이린처럼 게.임.속.에서요?”

“후훗, 이 젖살도 안 빠진 꼬맹이가 무슨 헛소리람? 내가 만약 그리드랑 결혼을 한다면 현실에서 해야지. 게임 속 첩 역할은 너나 맡으렴.”

“언니, 나 마음에 안 들죠? 내가 여기서 한두 살만 더 커도 언니보다 훨씬 더 섹시해질 것 같아서 막 경계되고 그렇죠? 네?”

“주제에 안 맞게 자의식이 강한 아이구나?”

“조용히들 해. 아이 정서에 안 좋겠어.”

슬슬 언성이 높아지자 유라가 중재했다. 그녀는 로드를 앞에 두고도 지슈카, 섹시여고생과 달리 차분할 따름이었다.

“유라 언니는 걱정되지도 않아요? 로드가 태어난 후로 그리드 오빠랑 아이린 둘이서 깨 쏟아지는 것 봐요. 우리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요.”

초조해서 말하는 섹시여고생에게 유라가 무심한 표정으로 답했다.

“난 이미 병풍이야. 초조해할 자격도 없어.”

“…”

그러고 보면, 그리드가 유독 유라에게 무관심하긴 했다.

세계 최고 미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유라를 병풍취급 하는 사내라니, 솔직히 같은 여자인 지슈카와 섹시여고생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리드가 뽑기로 구해왔다는 아기 장난감으로 로드와 놀아주던 세희가 빙그레 웃었다.

‘오빠가 수줍음이 많아서 그래요.’

그리드가 유부남인지라 다들 망각하고 있는 사실인데, 그리드는 연애 경험이 전무한 쑥맥이다. 현실에서 그는 여자와 손도 한 번 제대로 잡아본 적이 없다.

그에게 유라처럼 비현실적으로 예쁘고 능력까지 좋은 여성은 첫 애인 후보로 삼기엔 장벽이 너무 높았다.

아, 지슈카처럼 가슴이 무척 컸다면 사정이 좀 바뀌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같은 시각.

“이거 놀랍군.”

피아로와 아스모펠의 철저한 지도 아래 레벨 160을 달성한 병사, 로이먼.

대영주의 검으로 그의 정보를 확인한 그리드가 전율에 휩싸였다.

또한 이때, 무려 5천의 대군이 레이단의 광활한 사막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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