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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73화 (168/1,794)

템빨 17권 - 22화

“절구질!”

피아로가 숨겨왔던 극의를 꺼낸 순간.

쿠르르르르르르르릉…

하늘로부터 심상찮은 울림이 닥쳐왔다.

천둥?

아니다. 이건 보다 위협적이면서도 인위적인 느낌이 강했다.

쿠오오오오오-

거대한 연병장에 그림자가 드리울수록 일대의 기류가 무겁게 짓눌렸고,

찌릿! 찌릿!

본능적인 두려움에 휩싸인 크라우젤의 몸이 경기를 일으켰다.

‘이럴 수가.’

격동하는 대지 위의 크라우젤.

시선을 하늘로 올려본 그가 재앙과 직면했다.

집채만큼 거대한 강기의 집약체.

광속으로 추락하는 그것이 덮쳐오고 있었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

크라우젤은 비명조차 지를 수가 없었다.

거대한 절굿공이에 육신과 정신이 통째로 짓눌려선 무한한 고통과 공포에 사로잡혔다.

압살(壓殺)의 현장이었다.

***

[치명적인 일격을 당했습니다!]

[<평범한 밀짚모자(노말)>의 내구력이 완전히 손실되어 영구히 파괴됩니다.]

[<백운도포(유니크)>의 내구력이 128 하락합니다.]

[<백운신발(유니크)>의 내구력이 150 하락합니다.]

[<백운장갑(유니크)>의 내구력이 163 하락합니다. 파손의 위험이 있습니다.]

[<백아도(레전드리)>의 내구력이 61 하락합니다.]

[대련 모드 중에는 사망하지 않습니다. 생명력이 최소치로 고정되며 대련 모드가 종료됩니다.]

절굿공이의 형상을 하였던 강기의 집약체.

크라우젤과 연병장을 통째로 ‘짓뭉개’버렸던 그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

다시금 시야에 들어오는 창천에 떠다니는 구름 중 성한 것이 없다. <절구질>의 후폭풍으로 죄다 갈기갈기 찢겨있다.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있던 크라우젤이 뒤늦게 자각했다.

‘졌다.’

피아로의 레벨이 400을 넘기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겼다?

헛소리다.

게임에서 레벨의 차이란 즉 실력의 차이다.

성장과정에서부터 뒤쳐졌다.

‘완전히 졌다.’

다시 싸운다면?

‘그래도 진다.’

지금의 피아로, 과거와 달랐다.

농부로 전직하고도 검술에 의존하던 미성숙함을 완전히 극복해낸, 완연한 전설이었다.

‘넘을 수 없는 벽이다.’

깨닫는 크라우젤의 마음, 나락까지 추락하는가?

아니다.

‘…아직은 넘을 수 없다.’

사람들은 크라우젤을 천재라고 칭송한다. 시련과 역경 없이, 오로지 재능만으로 최고가 되었다고 믿는다.

물론 그건 큰 착각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기필코 넘어 보인다.’

천재라고해서 어디 세상이 쉬울까?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크라우젤은 패배와 실패에 익숙했다. 늘 도전했기에 그만큼 더 많은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노력하여 극복함으로서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성장시켜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큭… 큭큭큭.”

넝마가 된 밀짚모자 사이로 상처투성이 얼굴을 드러낸 흑발의 미남자.

<크라우젤>

세계 제일의 이름을 당당하게도 드러낸 채 누워있던 그가 급기야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하핫!!”

듣는 이의 속을 후련하게 만들 정도로 시원한 웃음소리였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통감할 수 있었던 이번 대련, 본인에게 얼마나 큰 가치가 되어줄지 알고 기뻐하는 것이었다.

***

피아로와 크라우젤이 대련 중인 연병장 외곽에는 루비와 로드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아로가 극의를 펼칠 수 있었던 이유?

아스모펠을 신뢰하였기 때문이다.

쿠우우우우우우웅-!!

강기의 집약체가 크라우젤과 연병장을 통째로 짓뭉개는 순간,

“흠!”

아스모펠이 몸을 날려 루비와 로드를 보호했다.

두 사람이 지진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도록 품에 안고서 모래폭풍을 막는 장벽이 되어줬다. 짜릿한 기파는 오러로 날려버렸다.

“고, 고마워요.”

“아부부!”

십년감수한 루비가 감사를 표했고 신명난 로드는 연신 뭐라고 떠들어댔다.

“세상이 멸망할지언정 두 분은 반드시 지킵니다.”

단언하는 아스모펠이었다.

충신의 기개가 루비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반면 로드는 아스모펠에게 관심도 없었다.

“아부! 아부부!!”

아기가 어찌 이리도 힘이 세단 말인가?

억지로 루비를 밀쳐내더니 바닥으로 떨어진 로드가 연병장 중심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움푹 파인 대지를 엉금엉금 기어나가는 속도가 아기라고는 믿기지 않게도 빨랐다.

“허억… 허억… 으음?”

절구질을 사용한 여파로 지쳐있던 피아로.

그가 차츰 다가오는 로드를 발견하더니 감격했다.

“로드 공자님…! 신을 치하해주시려는 겝니까?”

피아로는 안목이 뛰어나다. 일찍부터 로드의 천재성을 엿보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평생 함께 밭일을 하자고 제안하고 싶을 정도로 그는 로드의 재능이 탐났다.

‘공자님이시라면.’

내 신위의 고강함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셨을 터다. 내게 반하여, 나를 스승으로 섬기고 싶어 하실 수도 있다.‘함께 밭일을 할 수 있는 건가!’

공자님 정도면 내 수제자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니, 도리어 내가 부족할 지경이지!’

한껏 들뜬 피아로가 기대하는 그때였다.

엉금엉금 기어서 피아로의 앞까지 도달한 로드.

녀석이 피아로를 그냥 지나쳐버렸다.

“…”

휘이잉~

바람이 분다.

피아로는 민망했다.

‘웬 아기가…?’

절구통처럼 움푹 파인 연병장 중앙.

그 중심까지 기어 내려온 아기를 발견한 크라우젤이 크게 당황했다.

너무 비현실적이라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그에게 로드가 떠들었다.

“아부! 아부부부! 부부!!”

“…?”

크라우젤은 갓난아기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렴풋이나마 뜻은 이해했다. 나를 바라보는 청색의 눈동자. 보석처럼 빛나는 그 눈동자 속에 뚜렷한 선망이 담겨있었으니까.

***

<썬더 보우>

등급:유니크

내구력:366/490

공격력:370~601

*화살 장전 불가능.

*매 공격 시 100의 마나 소모.

*스킬 ‘섬광의 관통’ 생성.

*연사 속도 10퍼센트 상승.

에트날의 명가 번 가문의 가보입니다.

우레석과 마석을 혼합하여 제작한 활로서, 활시위를 당길 때마다 사용자의 마나를 소모하여 전격의 화살을 생성합니다.

일반적인 화살을 시위에 장전하면 전격을 견디지 못하고 잿더미가 됩니다.

사용 조건:레벨 300 이상. 민첩성 2,000이상. 고급 보우 마스터리 5레벨 이상.

에트날 제일궁사 페럴이 드롭한 활이다.

수많은 궁사들이 탐낼만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리드는 썬더 보우의 성능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마나 높은 궁사가 몇이나 된다고.’

활 한 발 쏘는데 100의 마나가 소모된다?

궁사 랭킹 1위인 지슈카조차도 40발을 채 못 쏠 터였다. 지속력이 형편없었다.

‘공격력은 동급 활에 비해서 2배 이상 높다만.’

애초에 활 자체의 공격력은 중요하지 않다.

‘화살의 공격력이 중요하지.’

화살 장전이 불가능한 활? 그걸 과연 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쓰레기다.”

결론을 내린 그리드가 <전설적 대장장이의 분해>를 사용, 썬더 보우를 분해시켜버렸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리드가 이 활을 탐냈던 이유, 처음부터 <우레석> 때문이었다.

“자, 그럼.”

그리드가 용광로 앞으로 다가갔다.

4개의 갓 핸드가 용광로 온도를 한껏 높여놓고 있었다. 풀무질 솜씨가 어지간한 고급 대장장이들의 뺨을 후려치는 수준이었다.

“이정도면 충분하겠군.”

온도를 확인한 그리드가 용광로에 분해 된 썬더 보우를 집어던졌다.

녹이고 제련을 통해서 마석 등의 이물질을 걸러내고 순수한 우레석을 채취하기 위함이었다.

잠시 후.

[광물 제련에 성공하였습니다!]

[우레석 3개를 획득하였습니다!]

띠링~

<우레석>

대악마 아스타로트가 인간계에 출몰할 때만 생성되는 광물입니다.

아이템에 전격 속성을 부여할 수 있으며 마수의 먹이로도 좋습니다.

마수에게 먹이로 주면 아주 기뻐할 겁니다.

무게:5

“헬가오가 출현할 때 나타났던 화석과 비슷한 개념의 광물이었… 엉?”

몰입해서 아이템 설명을 읽어나가던 그리드가 황당해했다.

“마수의 먹이?”

미쳤나?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이런 귀한 광물을 마수 먹이로 주겠어?”

참으로 쓸데없는 기능이다.

‘노에에게 먹이로 주면 기뻐하겠다.’라는 생각 같은 건 추호도 안 했다.

콧방귀 뀐 그리드가 우레석 3개를 인벤토리에 챙겨 넣었다.

새로운 아이템을 제작할 때 재료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그때였다.

쿠웅!!

이제는 100명이 넘는 대장장이들이 활동하고 있는 초대형 대장간이 크게 한 번 들썩였다.

대장간 한쪽에 진열되어 있던 온갖 무구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굴었고, 수십 대의 용광로로부터 화마가 솟구치니 삽시간에 불바다를 일으켰다.

그에 광물들이 타들어가며 가치를 상실했다.

“지, 지진?”

“뭣들 하느냐! 어서 광물을 챙겨라!!”

대장간이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사막 한복판에 있는 도시에 지진이라니?

대장장이들은 생소한 자연재해에 혼란을 느끼면서도 프로정신을 발휘, 광물과 무구들을 챙기고 불을 끄느라 바빴다.

한편 그리드는 분노하고 있었다.

‘지진 따위가 아니다.’

높은 통찰력이 알려주고 있다.

조금 전의 충격, 전투의 여파임을.

“칸, 이곳의 수습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으로 좋은 일이다.

칸에게 뒷일을 맡긴 그리드가 대장간을 떠났다.

***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한 크라우젤이 피아로에게 예를 갖췄다.

“역시 형님은 대단하십니다. 실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거짓 한 점 없이 존경합니다.”

“…”

피아로는 늘 최강이고 싶었다.

최강에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강자의 숙명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있다.

크라우젤의 재능, 본인의 예측을 초월하였으니 피아로는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자네만 하겠는가? 언젠간 자네가 나를 넘어설 테지.”

그 사실, 당장 로드 공자부터가 알아보고 있었다.

로드 공자는 크라우젤에게 찰싹 들러붙은 채 떨어질 생각을 않고 있었다.

오늘의 승자가 피아로일지언정, 훗날은 다를 거라는 사실을 로드 공자는 느끼는 것일 터였다.

질투어린 시선을 보내오는 피아로에게 크라우젤이 질문했다.

“당최 이 아이는 누굽니까?”

얼핏 보기엔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이건만 범상치가 않다.

의아해하는 크라우젤에게 대답하는 이, 피아로가 아니었다.

“내 아들이다.”

무겁게 가라앉은 음성이 공허한 연병장에 울려 퍼졌고,

“주군을 뵙습니다!!”

세상 전체를 굽어볼만한 절대강자 피아로와 최고의 기사 아스모펠이 고개를 조아린다.

그 모습, 크라우젤에게는 파격적이었다.

저벅저벅.

“아부! 아부부!”

밝게 웃는 로드.

녀석에게 미소로 화답해준 음성의 주인, 그리드가 크라우젤을 노려보았다.

“소문만 무성했던 랭킹 1위 양반께서 내 땅엔 무슨 용무실까.”

그리드는 명백한 적의를 보이고 있었다.

당연했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놈이 내 가족, 부하들과 웃고 떠들어대는 모습을 목격하였으니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심지어 연병장을 초토화시킨 주범으로 추정되지 않는가?

“…”

크라우젤은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를 대신하여 피아로가 입을 열었다.

“주군, 저자는 크라우젤이라고 합니다. 저와 호형호제하며 막역히 지내는 사이이지요.”

‘형님…’

크라우젤의 가슴이 뭉클해졌다. 피아로가 자신을 위해서 변호하려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감동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피아로는 ‘변호’를 하는 게 아니라 ‘보고’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형호제?

그 또한 중요하나, 충신에겐 신하 된 도리가 먼저다.

“오래간만에 찾아오더니만 대련을 신청하기에 저는 그에 응했고, 그 결과 연병장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습니다. 처분은 주군께서 결정해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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