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18권 - 8화
[첫 번째 섬에 입장하였습니다.]
첫 번째 섬은 그리드의 예상보다 많이 작았다. 면적이 여의도 공원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구조 또한 무척 단순했다.
드문드문 몇 개의 바위더미가 솟아있을 뿐, 대부분 백사장으로 구성 된 평지형태였다.
“왜 아무 것도 없지?”
의아해하면서 주변을 살피는 그리드의 시야로 알림창이 떠올랐다.
[미션이 생성됩니다.]
<첫 번째 섬>
20분 동안 생존하라!
최초 클리어 보상:도전자 포인트 1.
[지금부터 30분 후에 미션이 시작됩니다.]
“생존?”
이곳 번헨 열도, 하이랭커들조차 죽어나간다는 고난이도의 인스턴트 던전이다.
앞으로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에 ‘생존’이라는 무거운 타이틀이 걸리는 것인지, 평범한 사람이라면 극도로 긴장하고 불안해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리드는 하늘 밖의 하늘을 부순 남자다. 높은 긍지를 품게 된 그는 이제 쉽사리 동요하지 않았다.
그리드가 주목하는 부분은 보상에 있었다.
‘도전자 포인트는 뭐지? 특정 구역에서만 따로 적용되는 재화 같은 건가?’
명성 상점에서 통화로 이용되는 명성 포인트 같은 개념 말이다.
‘이걸로 과연 뭘 살 수 있으려나.’
그리드는 기대하면서도 방심하지 않았다. 브라함의 부츠에 귀속 된 플라이를 전개, 상공에서부터 섬의 전경을 살폈다.
미션이 시작되기에 앞서 사태파악을 해놓기 위함이었다.
‘마법진?’
섬 사방위에 4개의 거대한 마법진이 음각되어 있음이 보였다.
저것은 무슨 용도일까?
영민한 사람이라면 훨씬 더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을 테지만, 이제 막 일반인 수준의 지성을 갖추게 된 그리드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서야 떠올릴 수 있었다.
‘몬스터가 생성되는 지점인가?’
20분 동안 생존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 20분 동안 위협을 받게 될 거라는 예고나 다름이 없다.
그리드는 생존 미션이 시작됨과 동시에 마법진들로부터 몬스터가 쏟아지는 것은 아닐까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섣부른 확신을 갖지는 않았다.
혹 예상외의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끔 마음을 비워두는 것이었다.
“우선 준비해볼까.”
미션 시작까지 몇 분 남지 않았다.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함과 동시에 마나의 낭비를 막고자 바위 위로 착지한 그리드가 갓 핸드를 소환, 각자 최강의 무기를 쥐어주더니 사방의 마법진으로 이동시켰다.
“적이 나타나는 즉시 베어라.”
그리드의 명령을 받든 4개의 갓 핸드가 대답하듯이 무기를 붕붕 휘둘러 보였다.
잠시 후.
[첫 번째 섬 미션이 시작됩니다.]
팟!
파파파파팟!!
그리드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자신의 예상이 정확하게 적중하였음에 기뻐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4개의 마법진은 몬스터 생성 지점이 맞았다.
키에에!
캬악!
마법진들로부터 소름끼치는 기성을 토해내면서 등장한 몬스터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셀로브였다.
‘오래간만에 보는군.’
셀로브.
방어력과 체력이 낮은 대신 공격력이 높고 속도는 매우 빠른 거미형 몬스터다. 어찌나 빠른지 인간은 도무지 셀로브를 뿌리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륙 각지에서 플레이어들을 학살하고 있을, 실로 무시무시한 놈들이었다.
‘그래봤자 고작 200레벨.’
지금의 그리드는 셀로브들을 일격에 해치울 수 있었다.
하지만 갓 핸드는 사정이 달랐다.
갓 핸드(유니크)의 능력치는 그리드의 능력치를 30퍼센트밖에 적용받지 못한다. 또한 소드 마스터리 레벨이 아직 초급 7에 불과했다.
제아무리 지존급 무기들을 무장시켰다고는 하나, 마법진으로부터 생성되는 셀로브들을 갓 핸드들은 일격에 해치울 수가 없었다.
평균 3~4방은 때려야만 했다.
‘너무 느린데.’
갓 핸드가 셀로브를 사냥하는 속도보다 새로운 셀로브가 생성되는 속도가 월등히 빠르다.
걷잡을 수 없이 숫자를 늘려가는 녀석들이 바위 위 그리드에게 독액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큭.”
과연 공격형 몬스터답게 공격력이 막강했다. 제아무리 그리드라도 누적되는 피해를 감당하기엔 부담스러웠다.
‘경험치 나누긴 아깝다만 어쩔 수 없지.’
파그마의 검무, 초연(超聯)을 전개, 주변의 셀로브들을 몰살시킨 그리드가 경각심을 품고 차선책을 꺼냈다.
“노에, 랜디.”
“간식 시간이냐! 냥!!”
“랜디, 그리드가 좋아.”
네 다리를 활짝 펼치면서 등장하는 노에와 그리드의 모습을 복제하면서 나타난 랜디.
둘에게 그리드가 지시했다.
“동쪽과 북쪽의 갓 핸드를 지원해. 나는 남쪽과 서쪽의 갓 핸드를 원호하겠다.”
“냥!!”
힘차게 대답한 노에가 날개를 움직여 동쪽으로 향했다.
반면 랜디는 북쪽이 어디인지 몰라 잠시 우왕좌왕 하였으나, 이내 그리드가 손가락으로 방향을 일러주자 신속히 이동했다.
둘이 합류한 덕분에 동쪽과 북쪽의 갓 핸드는 빠르게 셀로브들을 썰어나갈 수 있었다.
그리드 또한 놀고 있지 않았다.
양손을 좌우로 뻗더니 전설의 매직 미사일을 발사, 셀로브들에게 애를 먹고 있는 갓 핸드들을 원호했다.
이때부터 그리드는 무수히 갱신되는 알림창과 직면하게 되었다.
[셀로브를 처치하였습니다.]
[경험치 612,000을 분배 받았습니다.]
[펫 ‘노에’가 경험치 204,000을 분배 받았습니다.]
[펫 ‘랜디’가 경험치 204,000을 분배 받았습니다.]
[셀로브를 처치하였습니다.]
[경험치 612,000을 분배 받았습니다.]
[펫 ‘노에’가…]
…
..
“와, 이거 대박이네.”
그리드가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2초당 거의 4마리의 셀로브를 잡아죽이다보니 경험치 오르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했던 까닭이다.
현존 최상의 사냥터, 뱀파이어의 도시보다 약 10배는 빠른 경험치 획득 속도였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갓 핸드>의 소드 마스터리 레벨이 초급 7에서 초급 8로 상승하였습니다!!]
[<갓 핸드>의 소드 마스터리 레벨이 초급 8에서 초급 9로 상승하였습니다!!]
한시도 쉬지 않고 몬스터를 썰어 넘기는 갓 핸드의 소드 마스터리 레벨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드는 기쁨을 넘어서 전율에 휩싸였다.
갓 핸드의 소드 마스터리 레벨이 오름에 따라서 셀로브 사냥 속도가 한층 더 빨라졌고, 그에 따라서 경험치 획득 속도 또한 빨라진 까닭이었다.
이제는 뱀파이어의 도시에서 사냥할 때보다 족히 20배 이상은 빠르게 경험치를 획득하는 수준이었다.
[셀로브를 처치하였습니다.]
[셀로브를 처치하였습니다.]
[셀로브를…]
…
..
[펫 ‘노에’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펫 ‘랜디’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펫 ‘랜디’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아싸!! 개꿀!! 대박!!”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연신 환호하는 그리드였다.
여태까지 수많은 도전자들을 좌절시켰던 첫 번째 섬…
그 절망의 땅이 그리드의 몰이사냥 작업장으로 변질된 날이었다.
***
[첫 번째 섬을 클리어하였습니다.]
[미션 성공 보상으로 도전자 포인트 1개를 획득하였습니다.]
<도전자 포인트>
번헨 열도 어딘가에 존재하는 도전자 상점에서 상품을 구매할 때 사용한다.
“아, 아쉽네.”
20분 동안의 사냥(?)을 끝낸 그리드.
경험치를 무려 15퍼센트 가까이 올린 그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20분이 아니라 20일 동안 생존하는 미션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면 20시간만이라도…”
그리드의 마음 같아서야 첫 번째 섬에 재도전하고 싶었다. 첫 번째 섬만 반복적으로 클리어함으로서 광렙, 크라우젤의 레벨을 따라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아직도 공략해야할 섬들이 많이 남은 상황인 바, 그중 이보다 더 훌륭한 사냥터가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지 않은가?
‘애초에, 재도전하려면 우선 이곳을 탈출해야하는데 탈출 방법도 모르겠고.’
그리드는 아직 번헨 열도의 시스템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보다 신중해야만 했다.
마음을 달랜 그가 새로이 생성 된 목교로 걸음을 옮겼다.
목교 끝에는 두 번째 섬으로 향하는 게이트가 자리 잡고 있었다.
***
[두 번째 섬에 입장하였습니다.]
이번 섬은 첫 번째 섬보다 최소 10배 이상 더 컸다.
이에 따라서 풍광 또한 다채로웠다.
우거진 정글 곳곳에서 폭포 소리가 들려왔고, 섬의 양끝에는 작은 산도 하나씩 솟아있었다. 군데군데 호수와 동굴도 보였다.
“응? 보물 상자?”
주변을 살피던 그리드가 한곳에 시선을 사로잡혔다.
스타트 지점 바로 뒤편에 우뚝 솟은 암벽 위.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색 상자가 무려 10개나 가지런히 놓여있음이 보였다.
“이게 웬 떡… 아니, 미믹의 함정인가?”
과거와 달리 섣불리 행동하지 않는 그리드의 시야로 알림창이 떠올랐다.
[미션이 생성됩니다.]
<두 번째 섬>
잠겨있는 보물 상자를 개봉하라!
섬 전역에 10개의 열쇠가 숨겨져 있다.
상자마다 적합한 열쇠가 다르니, 최대한 많은 열쇠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제한 시간:3일
최초 클리어 보상:상자 개봉시마다 도전자 포인트 1.
*정해진 시간 내에 상자를 2개 이상 개봉하지 못할 경우 섬에서 추방당합니다.
[지금부터 30분 후에 미션이 시작됩니다.]
“이번엔 수색인가.”
제한 시간이 무려 3일이나 되는 것을 보면 열쇠 찾기란 무척 어려운 일 같았다.
‘당연히 어렵겠지.’
섬이 큰 건 둘째 치고 지형이 너무 복잡했다.
온통 수풀이 우겨져 있었고 호수와 폭포, 동굴과 벼랑이 난무하였으며 몬스터 서식지역 또한 여러 개였다.
이곳에서 이 작은 자물쇠를 딸만큼 작은 열쇠를 찾아내는 일?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행위였다.
하지만 그리드는 조금도 골치 아픈 기색이 없었다. 도리어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
“두 번째 섬에서 가장 많은 탈락자가 배출되지.”
마법구를 통해서 그리드를 관찰 중인 현자 스틱세이.
그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저 흑발의 사내가 파격적인 수법으로 첫 번째 섬을 돌파한 것은 사실이나, 두 번째 섬의 난이도는 첫 번째 섬과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높았던 까닭이다.
“두 번째 섬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단서들마저도 놓치지 않고 수집할 수 있는 관찰력과 섬세함, 모은 단서들을 하나의 답으로 귀결시킬 수 있는 지성을 갖춰야만 한다. 하지만…”
마법구 속 흑발 사내, 미션이 시작되기 전 주어지는 30분의 준비 시간 동안 앉아서 휴식이나 취하고 있다.
천금 같은 시간을 활용, 단서 찾기에 힘 쓸 생각은 않고 시간 낭비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저 사내는 이미 진즉에 포기한 건지도 모른다.
“역시나 기대하지 않기를 잘했군.”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스틱세이가 마법구로부터 시선을 돌리려다가 경악했다.
어찌나 놀랐는지 사레가 걸릴 지경이었다.
“켁…! 켁켁…! 아, 아니! 저자는 설마 전설의 도둑이라도 되는 건가!!”
스틱세이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지정 된 열쇠가 아니면 결코 개봉할 수 없는 10개의 보물 상자들, 흑발 사내는 본인 소유물의 열쇠 하나로 모조리 후다닥 열어버렸으니까. 그저 경탄밖에 나오지 않는 손재주였다.
“두, 두 번째 섬을 단 10초 만에 돌파하다니…!”
전무후무한 대기록이었다.
남보다 지혜롭기에 현자라고 불려온 스틱세이가 이 순간 바보처럼 입만 뻥긋거렸다.
이날, 그리드는 아홉 번째 섬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스틱세이가 총 아홉 번 놀랐다는 뜻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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