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18권 - 12화
<후드짚업>
등급:유니크
내구력:57/61 방어력:10
*이동속도 30퍼센트 증가
*바람 속성 저항력 20퍼센트 증가
전설이 된 대장장이가 설계한 망토입니다. 하지만 이름만 망토일 뿐, 생김새는 망토와 거리가 멉니다.
실피드의 비늘을 재료로 사용하여 바람과의 친화력과 이동속도가 상승합니다. 착용 시 은신할 수 있으며, 적을 공격하거나 기척을 감지당할 시 은신이 해제됩니다.
사용 조건:없음.
무게:5
후드짚업의 가장 큰 장점은 지속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그냥 입고만 있으면 은신이 유지됐다. 그렇다고 마법 인비지블리티처럼 마나를 소모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어쌔신들의 은신 계열 스킬들과 달리 기척을 없애지는 못했다. 감각이 예민한 상대들에겐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 스무 번째 섬에서는 그 단점이 문제시되지 않았다.
지옥달은 오로지 시각만 발달한 존재였던 까닭이다.
이동속도 상승 버프를 받고 질주하는 그리드를 지옥달은 끝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드는 도처에 깔려있는 몬스터들만 주의해 이동함으로서 쉽사리 스무 번째 섬을 돌파할 수 있었다.
스무 번째 섬의 완벽한 카운터, 후드짚업의 절대적인 위엄이었다.
***
[스물한 번째 섬에 입장하였습니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20개의 섬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그리드는 몇 번이고 전율을 느꼈다.
스스로의 능력을 우러러 감탄하는가?
아니다.
그리드는 본인이 아닌 크라우젤을 경탄하고 있었다.
검성 후보라고는 하나 결국 노멀 클래스에 불과한 크라우젤.
나와 달리 온갖 템빨을 갖춘 것도 아니면서, 그는 무슨 수로 30번째 섬까지 도달할 수 있었을까?
참으로 경이적인 실력이다.
‘단지 전투와 사냥에만 강한 게 아니었어. 정녕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괴물이다.’
크라우젤이 스무 번째 섬을 돌파하는 과정을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그리드는 천외천이라는 칭호의 무게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도전자님?”
넋을 잃고 있는 그리드를 빈이 불렀다.
덕분에 정신을 차린 그리드가 주변을 살폈다.
스물한 번째 섬은 안개가 자욱하게 펼쳐져 있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가 없었다.
‘내 손조차 보이질 않는군.’
바로 코앞에 있는 것조차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안개가 짙다. 시야를 완전히 상실한 느낌인지라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긴장하는 그리드에게 빈이 방실방실 웃어보였다.
“안개섬에 당첨되다니, 운이 좋으시군요. 스물한 번째 섬은 공짜로 통과하시게 됐네요.”
“안개섬?”
“상점이 있는 섬이에요.”
‘상점이라면…’
그리드의 뇌리로 도전자 포인트가 스쳐지나갔다.
“도전자 상점을 말하는 건가?”
“네, 도전자 포인트로 상품을 거래할 수 있는 상점이죠.”
“상점… 즉, 이 안개섬의 출현 조건은 랜덤인거고?”
“맞아요. 극도로 운이 좋은 사람은 10번대 섬에서도 안개섬을 만난 경우가 종종 있어요. 어느 운 나쁜 사람은 30번째 섬까지 갔는데도 만나지 못했지만.”
‘그 운 나쁜 사람이라는 게 크라우젤이군.’
세상에,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게 아닐까 의심했을 정도로 재수 없는 나보다 운 나쁜 사람이 있었다니.
측은지심을 느낀 그리드가 빈에게 물었다.
“그래서, 상점의 위치는 어떻게 파악해야하지? 안개 때문에 앞이 조금도 보이질 않는데?”
“그냥 어디로든지 쭉 가시면 되요. 그럼 자연히 상점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단, 상점에서 어떤 물건을 살 건지는 미리 생각해놓는 편이 좋아요. 상점이 열리는 시간은 5분으로 제한되어 있거든요.”
“무슨 물건을 파는 줄 알아야 생각을 해놓지.”
“후훗, 도전자님은 제가 도우미 요정이라는 사실을 잊었나요? 상점에서 판매 중인 물품 중 대부분을 제가 이미 파악해놓고 있답니다.”
“오호?”
알면 알수록 많은 도움이 되는 녀석이다.
감탄하는 그리드를 보고 득의양양해진 빈이 안경을 고쳐 썼다.
“안개섬의 상점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크게 4종류에요. 동대륙 이동 포탈 스크롤과 엘릭서, 그리고 각종 전직서와 스킬북이죠. 전직서는 노말에서 레어 등급 상품들로 구성되어 있고 스킬북은 노말에서 유니크 등급 상품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그리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점에서 판매하는 물품들이 대단했던 까닭이다. 돈 주고도 못살 진귀한 것들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가치가 낮은 상품은 동대륙 이동 포탈 스크롤이에요. 하지만 이곳을 찾는 도전자들의 목적이 대부분 동대륙이라서 그런지 동대륙 이동 포탈 스크롤이 가장 잘 팔리더라고요? 나중에 스틱세이를 만나면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건데.”
“크라우젤… 30번째 섬까지 도달하였다는 그자는 스틱세이에게 스크롤을 얻었던 건가?”
“맞아요. 하지만 그를 제외하고 운 좋게 10번대 섬에서 상점을 만났던 6명의 도전자들은 전부 다 포탈 스크롤을 구매해서 이곳을 탈출했어요. 섬에 끝까지 도전해보지도 않고요. 겁쟁이들이죠.”
‘겁쟁이가 아니라 현명한 거겠지. 동대륙으로 이동한 유저는 여태까지 총 7명이라고 보면 되겠군.’
생각해보면서 안개를 헤치고 나아간 그리드가 한 대의 마차와 조우했다.
은은하고 평온한 빛을 발산하는 호박모양의 마차였다.
“저게 바로 도전자 상점이에요.”
빈의 안내를 받은 그리드가 마차 곁으로 다가갔다.
각종 상품이 진열되어 있는 마차에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상점 주인은?”
“없어요. 무인 상점이에요.”
“거참.”
주인이 있었다면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입맛을 다신 그리드가 상품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동대륙 이동 포탈 스크롤>
동대륙 시작의 마을 <판게아>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무게0.1
가격:도전자 포인트 50개.
<엘릭서>
특정 능력치를 영구히 10 올려주는 비약입니다.
무게:10
가격:도전자 포인트 250개.
‘엘릭서가 이렇게 싸다니!’
총 20개의 섬을 완벽하게 클리어한 그리드의 도전자 포인트는 정확히 901개였다.
개당 수백만 골드의 가치를 호가하는 엘릭서를 무려 3개나 구매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여 엘릭서를 값싸다고 인식했으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운 좋게 10번대 섬에서 호박 마차를 발견했던 도전자들, 그들의 당시 도전자 포인트는 평균 150 수준에 불과했고 그게 한계였다.
즉, 일반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엘릭서는 조금도 싼 게 아니라는 뜻이다.
이곳 번헨 열도, 그리드를 제외한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는 조금도 친절하지 않았다.
그리드는 다른 상품들도 살펴보고 있었다.
<번개검사의 기서>
등급:레어
번개검사로 전직할 수 있는 전직서입니다.
무게:100
가격:도전자 포인트 1,000개.
<폭렬술사의 기서>
등급:레어
폭렬술사로 전직할 수 있는 전직서입니다.
무게:100
가격:도전자 포인트 1,000개.
“흠.”
레어 등급의 히든 클래스 전직서.
1년 전이었다면 족히 수십억 원을 호가했을 물품들이다.
하지만 현재 레어 클래스의 가치는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
3차 전직한 노말 클래스와 레어 클래스의 격차가 매우 적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게 됐기 때문이다.
굳이 비싼 돈 주고 레어 클래스로 전직할 사람, 이제 거의 없었다.
‘빈의 말대로 에픽 전직서 이상은 없군.’
전직서 목록을 확인하고 실망한 그리드가 이어서 스킬북 목록을 살폈다.
<역전을 노리는 돌진>
등급:레어
대상에게 돌진하여 대상의 방어력에 비례하는 피해를 입힙니다. 맞은 적은 0.3초 동안 상태이상 경직에 빠집니다.
습득 조건:없음
가격:도전자 포인트 400개.
<타오르는 여우비>
등급:에픽
지정한 범위에 3초 동안 불의 비를 내립니다. 적에게 화상을 입히며 공격력은 시전자의 마력과 물리 공격력에 비례합니다.
습득 조건:없음
가격:도전자 포인트 900개.
‘패스.’
레어, 에픽 스킬들은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탐낼만한 성능을 발휘한다.
하지만 레전드리급 스킬을 보유한 그리드가 관심 가질 수준은 아니었다. 그리드에게 있어서 그것들은 괜한 포인트 낭비에 불과했다.
하지만 유니크 등급 스킬은 이야기가 달랐다.
19번 적기사 플뤼톤.
그가 최후를 맞이하면서 드롭했던 스킬북 <오러 페스티벌>이 그랬듯, 유니크 등급의 스킬들은 하나 같이 탁월한 성능을 자랑한다. 그리드도 탐낼만한 수준이었다.
‘정작 오러 페스티벌은 창고에서 썩고 있지만.’
오러 페스티벌은 파그마의 검무, 초연(超聯)의 하위호환이었다. 굳이 그리드가 습득할 이유가 없었기에 그리드는 우선 보관 중이었다. 언젠가 비싼 값을 받고 팔 기회가 올 날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어?”
스킬 목록을 유심히 살피던 그리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가 주시하는 스킬은 레어, 에픽, 유니크 등의 히든 스킬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말 등급의 스킬이 그리드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웨폰 마스터리>
등급:노말
종류:패시브
웨폰 마스터리 스킬이 생성된다.
가격:도전자 포인트 6,000
‘웨폰 마스터리라고!!’
웨폰 마스터리.
‘어떤 종류의 무기를 장착하든’ 공격력과 명중률을 상승시켜주는, 마스터리류 스킬계의 최고봉이다.
이는 전투 특화 직업군들만의 전유물로서 후천적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극소수 직업군 고유의 최강 무기라고 설명할 수 있었다.
한데 이 미친 상점이 극소수만을 위한 그 최강의 무기를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갖고 싶다!’
그리드가 극한의 탐욕에 휩싸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리드는 ‘모든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실로 말도 안 되는 최강의 패시브 스킬을 보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비전투직업군인 바.
마스터리류 스킬이 없다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었다.
한데 지금,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탐욕이 끓어오르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하지만 문제는 가격이다.
“노말 클래스 스킬이 뭐가 이렇게 비싼 거지?”
“원래 패시브 스킬이 비싸요. 그중에서도 웨폰 마스터리 스킬은 가장 비쌀 수밖에 없죠.”
“이런 제길.”
잠시 후면 상점이 닫힌다.
제한시간을 확인한 그리드가 초조해하다가 물었다.
“이 상점, 지금 놓치면 두 번 다시는 이용하지 못하는 건가?”
“아니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안개섬은 무작위 확률로 등장합니다. 앞으로 또 나타날 수도 있어요. 다만 기약은 없지만요.”
‘그럼 다음을 노려야겠군.’
반드시 모든 섬을 클리어하여 웨폰 마스터리를 얻고 만다. 동대륙 이동 스크롤은 그 과정에서 스틱세이를 만나서 얻으면 될 일이다.
결심한 그리드가 순순히 상점을 떠나보냈다.
그를 보는 빈의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혹시라도 포탈 스크롤을 구입해서 떠나시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과연, 스무 번째 섬까지 돌파한 도전자님의 용맹함은 남다르군요.”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걸 굳이 돈 주고 살 필요 없지.”
6,000도전자 포인트, 과연 모을 수 있을까?
‘설령 이번엔 실패하더라도…’
다음에 더 강해져서 다시 도전하면 된다.
냉정하게 생각한 그리드가 게이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스물두 번째 섬에 입장하였습니다.]
“빠르게 가자.”
그리드의 의욕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새로운 섬에 입장하자마자 플라이를 전개, 늘 그랬듯이 섬의 구조를 살피면서 빈에게 공략법을 요구했다.
빈이 설명했다.
“스무 번째 섬을 돌파한 이상 스물다섯 번째 섬까지는 시간과의 싸움에 불과해요.”
그 말을 증명하듯, 때마침 미션이 생성됐다.
<스물두 번째 섬>
몬스터를 전멸시켜라!
최초 클리어 보상:도전자 포인트 162개.
“좋아, 그렇단 말이지.”
그리드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다.
즉시 갓 핸드와 노에, 랜디를 소환하여 섬의 몬스터들을 썰어나갔다.
차곡차곡 쌓이는 레벨 경험치와 스킬 경험치, 그리고 도전자 포인트가 그리드의 의욕을 점차 더 불태웠다.
나흘 후.
3개 섬의 몬스터 수천 마리를 몰살시킨 그리드가 드디어 스물다섯 번째 섬에 도착했다.
스틱세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 당신 설마 파그마의 후예… 심지어… 지옥 최강의… 마수를 동원… 당신이라면… 오염 된 명예의 전당… 도달… 윽! 끅!”
“…?”
뭐라고 떠들다가 말고 풀썩 쓰러지는 스틱세이였다.
꾀죄죄한 로브에 파묻힌 그가 가쁜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보자니 어째 영 불안했다.
‘낌새가 이상한데.’
그리드는 본인이 얼마나 재수 없는 인간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하여 경계하였고, 역시나 냉혹한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퀘스트가 생성 됩니다!!]
<스틱세이를 살려라!>
★히든 퀘스트★
당신의 연이은 활약을 목격하면서 크게 놀란 스틱세이의 협심증이 악화되고 말았다.
다행히도 아직 약물로 치료할 수 있는 단계다.
스틱세이로부터 약의 조제법을 배운 후 그를 간병하라!
퀘스트 수락 보상:<조제법:엘프족의 영약> 획득.
퀘스트 성공 보상:스틱세이와의 호감도 최대치.
퀘스트 실패 시:스틱세이의 사망.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아니, 아직 약물로 치료할 수 있는 단계라면서 왜 죽는다는 거지?”
납득은 안 가지만 어쨌든 히든 퀘스트다. 보상도 나름 특별해 보였고 스틱세이가 죽어서도 안 됐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한 그리드가 스틱세이를 부축했다.
스르륵.
벗겨지는 로브 사이로 드러나는 스틱세이의 맨 얼굴.
땀으로 범벅이 된 채 괴로워하는 그는 놀랍게도 젊은 남성이었다. 심지어 아름답고 귀가 뾰족한 남성.
“엘프족…?”
Satisfy를 2년 가까이 플레이했지만 엘프족을 처음 보는 그리드였다.
그저 신기해할 법도 하건만, 그리드의 얼굴은 불만으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보통 이럴 땐 여자 엘프여야하는 거 아닌가?’
생전 처음으로 만나게 된 엘프가 남자라니?
아무도 없는 섬에서 홀로 간호해야할 상대가 남자라니!
역시 현실은 영화나 만화와 달리 냉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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