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19권 - 7화
[이야루그트에 새로운 옵션 부여를 시도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새로운 옵션 부여에 성공하였습니다!]
번쩍이는 빛 속에서 이와 같은 알림창과 대면한 순간, 그리드는 전율에 휩싸였다.
‘설마 한 번에 성공할 줄이야!’
그리드는 운이 나쁜 인물이다.
그가 확률 게임에서 승리한 경우, 여태까지 살면서 거의 없었다.
당첨 확률 99퍼센트, 꽝 확률 1퍼센트의 경품 이벤트 행사에서 꽝을 뽑은 경험이 있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
한데 21퍼센트의 확률 게임에서 단박에 승리한 것이다.
그리드는 감회가 깊었고 기쁨에 전율했다.
하지만 아주 짧은 기쁨이었다.
[이야루그트에 B급 옵션 <멋짐>이 부여됩니다.]
“뭐라고??”
[이야루그트가 한층 더 멋있어졌습니다.]
띠링~
<+8이야루그트>
등급:유니크(성장형)
내구력:351/351 공격력:793+365
…
..
*연금술 추가 옵션으로 <멋>이 올랐습니다.
“?????”
뭐? 멋? 멋이 올랐다고?
‘아니, 왜?’
하고 많은 옵션 중에서 하필이면 멋이 오르다니?
어쩐지 일이 잘 풀린다 싶었다.
설마 이 정도로 쓸모없는 옵션이 붙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그럼 그렇지… 일이 한 번에 잘 풀릴 리가 없지…”
좌절하는 그리드 곁에서 실베른은 환호하고 있었다.
“오오…! 오오오!! B급 옵션 중에서도 최고라는 <멋짐>이 부여되었군요!! 기대 이상의 쾌거입니다!!!”
“…?”
단지 멋있어질 뿐인 옵션이 B급 최고라니?
그리드가 귀를 의심했다.
‘이게 B급 최고 옵션이라고? 그럼 그 이하 등급의 옵션들은 얼마나 쓰레기라는 뜻이지?’
연금술이라는 학문, 알면 알수록 구리다.
여태까지 투자한 돈이 아까워서 미칠 노릇이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주저앉는 그리드에게 라빗이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멋이란 중요한 법입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외관이 훌륭한 쪽이 호감을 사기 쉬우니까요.”
현실에서도 그렇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멋을 가꿨다.
기본적으로 머리스타일과 옷차림을 신경 썼고, 심할 경우 수천만 원, 수억 원대의 거금을 들여서 명품을 치장하거나 성형수술을 받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이유야 간단하다.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함이다.
실제로 사람이 대상을 판단할 때 우선 보는 게 외관이었으니 멋이란 그만큼 중요한 개념이었다.
“…그런가.”
생각해보면, 최근 <스킨 제작자>라는 히든 클래스 전직자가 떼돈을 벌어들이는 중이라는 소문을 들었던 적이 있다.
아이템의 성능이 바뀌는 것도 아니건만, 그저 외형을 예쁘게 꾸미기 위해서 큰돈을 지불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한 그리드가 이야루그트를 관찰했다.
투명하고 매끄러운 혈빛의 긴 검신으로부터 은은한 광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확실히 멋지긴 멋졌다.
부웅! 붕!
휘두를 때마다 보석처럼 흩어지는 광채를 수놓는 이야루그트.
녀석을 휘두르는 그리드의 모습 또한 전보다 한층 더 멋져 보인다.
국가대항전에서 전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역시, 그리드는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
“연금술 시설의 레벨이 고급으로 성장할 때까지, 페어리 더스트는 사용하지 않고 계속 축적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기운 빠진 음성으로 대답하는 그리드였다.
그만큼 이야루그트에 부여 된 옵션에 실망하고 있는 것이다.
어색한 표정을 지은 라빗이 꾸벅 인사했다.
“그럼 전 이만 돌아가서 업무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수고하도록.”
라빗과 헤어진 그리드는 다시 대장간을 찾아갔다.
번헨 열도로 출발하기에 앞서 <스피어 샷>과 <보우 마스터리>를 활용할 무기들을 제작하기 위함이었다.
‘활은 지슈카에게 만들어줬던 것과 같은 걸 만들어서 사용하면 충분할 테고.’
창은 투창에 특화 된 형태로 제작하고 싶다.
그리드는 궁리하고 또 궁리했다.
***
“호미의 요란.”
[농기구 호미를 현상화합니다.]
스파아아앗-!
알테스 산맥 인근에 새로 개간한 논밭 위로 호미 50여 자루가 일제히 떠올랐다.
일반적인 호미가 아닌, 오러로 현상화한 호미였다.
파파파파파파파팟!!
50여 자루의 오러 호미가 일제히 땅을 파내기 시작했다.
실로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마치 1백 명의 농부가 동시다발적으로 밭일을 하는 것만 같은 효율을 보였다.
오러 마스터 휴렌트의 위엄이었다.
휴렌트.
그리드와의 PvP에서 단 5초 만에 패배, 전 세계적으로 망신을 당한 비운의 인물이다.
그는 그리드를 상대로 설욕하고 싶다는 일념에 휩싸여 있었다.
‘앞으로 40일.’
40일 후면 제2회 국가대항전이 개최된다.
휴렌트는 미국 대표로서 국가대항전에 참가, 그리드와 다시 겨루고 이번엔 기필코 승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과연 내 안목은 정확했군. 그대의 기술은 매우 훌륭해-밭일을 하기에 적합하다- 기왕이면 나와 조금 더 함께 일하는 게 어떻겠는가?”
전설의 농부, 피아로.
나를 납치해서는 농노로 부려먹은 악독한 자이긴 하나, 그가 부여해준 히든 퀘스트 ‘즐겁고 신나는 수련’이 얼마나 가치 높은 것이었는지 휴렌트는 잘 알고 있었다.
어느덧 피아로에 대한 원망을 눈처럼 녹여내고 섬기게 된 휴렌트가 조심스레 물었다.
“얼마나 더 함께 말입니까?”
“석 달쯤?”
“석 달…!”
너무 길다.
40일 후에 열릴 국가대항전에 참가하려면 여러모로 준비해야할 것이 많았고 시간이 부족했다.
“한 달은 안 됩니까?”
질문하는 휴렌트에게 피아로가 고개를 저었다.
“고작 한 달 일 도울 거라면 차라리 그냥 지금 떠나시게. 내 그대에게 새로운 기술-농사에 적합한-을 가르쳐주려하는데 한 달 만에 습득하기엔 턱도 없는 기술이니…”
“…”
휴렌트는 선택의 기로에 서야만 했다.
그리드에게 복수를 꿈꾸며 피아로의 곁을 당장 떠나느냐, 아니면 그리드에 대한 복수심을 접고 피아로 곁에 머물면서 더욱 더 강해지느냐.
“으, 으으음…”
휴렌트는 객관적으로 생각해보기 위해서 노력했다.
지금의 내가 그리드와 승부해서 이길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서 장담할 수 없다.’
Satisfy시간으로 약 3달 전.
렌 왕자와 함께 레이단을 침공해왔을 당시만 해도 자신이 그리드보다 강하다는 확신이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피아로가 했던 말 때문이다.
“그대도 강하긴 하다. 하지만 그대만큼 강한 사람은 많아. 뭐? 내 주군과 비교하면 어떻냐고? 당연히 주군이 그대보다 한 수 위시지.”
처음에는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피아로의 성격을 체험하고 보니, 피아로는 결코 빈 말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지금 이 상태로 그리드와 겨뤄봤자…’
전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또 한 번 망신을 당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당신의 일을 더 돕도록 하겠습니다.”
기회는 많다.
굳이 올해 국가대항전에 집착하지 않더라도, 내년, 내후년 국가대항전을 노려보면 된다.
그때까지 휴렌트는 최대한 성장하고 싶었다.
오러 마스터라는 클래스를 반드시 레전드리까지 진화시킬 각오였다.
“잘 선택했네.”
새로운 다짐을 세우는 휴렌트를 바라보는 피아로의 눈매가 인자한 미소를 그렸다.
이날 이후 레이단의 농업은 더욱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휴렌트는 점차 농노의 생활에 적응해나갔다. 그리드에 대한 복수심이 무색할 정도로 레이단을 위해서 힘썼다.
***
스네이크 길드의 지발, 자이언트 길드의 크리스, 골든 길드의 수에론, 하데스 길드의 하오, 아이스 플라워 길드의 봉드레, 야크 길드의 부바트, 제라프 길드의 제프&랄프.
7대 길드의 수장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전원 통합 랭킹 30위권의 최강자이며 제2회 국가대항전의 참가자이기도 했다.
“우리가 연합하여 레이단을 침공하였다가 망신을 당한 것이 벌써 9개월 전의 일이다.”
그 후로 7대 길드는 명예와 위엄을 잃었다.
7대 길드를 선망하는 동시에 두려워했던 유저들이 이제는 7대 길드를 우습게 여겼다. 오로지 템빨단만이 최고라고 떠들어댔다.
“우리는 반드시 명예를 회복해야하며, 그 수단으로 국가대항전을 이용한다.”
지발의 말에 수에론이 의문을 표출했다.
“국가대항전에서 템빨단을 박살내잔 뜻인가? 무슨 수로?”
국가대항전은 길드전이 아니다. 말 그대로 국가끼리 대항하며 승부를 겨루는 대회다.
템빨단원들 또한 국적이 여러 개로 나뉘어있었기 때문에 따로 템빨단만 특정 지어서 적대시하기엔 무리가 컸다.
지발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그렸다.
“템빨단의 상징은 그리드다. 또한 그리드는 한국인이지. 한국을 철저히 박살내면 된다.”
상징이 갖는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템빨단의 수장으로서 명망 높은 그리드가 이끄는 한국팀을 완벽하게 짓밟는다며?
7대 길드가 아직 건재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동시에 템빨단의 명성을 추락시킬 수 있었다.
“템빨단은 더 이상 최고가 아니야.”
단언하는 지발의 인벤토리에는 대장장이 랭킹 1위 판미르가 제작한 아이템들이 있었다.
드워프의 기술력이 집약 된 아이템들로서, 그 위력은 그리드가 제작한 아이템들과 비교해도 결코 손색이 없을 터였다.
“힘을 합쳐서 한국을 우선 짓밟고 7대 길드의 명예를 되찾도록 하자.”
최고와 최고가 아닌 것의 차이는 크다.
7대 길드가 최고라고 불리던 시절, 7대 길드의 마스터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였었다.
그 시절이 그리울 수밖에 없었다.
이를 갈며 벼르는 지발을 잠자코 바라보던 크리스가 입을 열었다.
“근데 지발, 네가 언제부터 우리의 대표가 된 거지?”
본래 7대 길드는 하나가 아니었다.
일반적인 길드들처럼 서로를 견제하고 때로는 적대하며, 동맹하고 그렇게 함께 경쟁하면서 커나갔었다.
한데 어느 순간부터 지발이 7대 길드 연합을 세웠고 자신이 대표인양 연합을 주도하고 있었다.
크리스는 그 사실이 마음에 안 들었다.
“이봐, 크리스. 뭘 굳이 까칠하게 굴어? 대표? 내가 대표라고?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인식한 적이 추호도 없다. 너희들과 나를 동등하게 인식하고 동반자로 여기고 있지.”
7대 길드 마스터들은 하나 같이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존재들이었다.
그들을 자극시킬만한 발언을 함부로 꺼낸 크리스를 속으로 욕하면서도 지발은 애써 웃어보였다.
혹 연합의 분위기가 나빠지지 않게끔 노력하는 것이었다.
그에 크리스가 조소했다.
“누구 마음대로 동반자라는 거지.”
크리스는 7대 길드 연합에 참가한 적이 없다. 레이단 침공전에도 참전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이번 모임에 참석한 이유는 확실하게 말해두기 위함이었다.
“7대 길드 연합이라는 명칭, 앞으로 함부로 사용하지 마라. 우리 자이언트 길드는 그 연합에 가입한 기억조차 없으니까.”
선언한 크리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길드 마스터들은 그의 행동에 딱히 토를 달지 않았다. 7대 길드라고 불린다고 해서 굳이 연합에 가입하라고 강요할만한 근거, 어디에도 없었기에.
하지만 지발의 생각은 달랐다.
써먹지 못할 패, 변수로 남겨두느니 차라리 부셔버리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이었다.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지발이 크리스의 앞길을 가로막고 섰다.
“그리드와 한통속이 되었다더니, 그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군.”
“크리스와 그리드가 한통속이라고?”
무표정하게 있던 7대 길드의 수장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크리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그리드와? 무슨 근거로 하는 소리지?”
“내 부하 중 하나가 우연히 너를 사냥터에서 보았는데… 그때 네가 사용하던 무기가 그리드의 무기 중 하나와 완전히 똑같이 생겼다고 하던데.”
장내의 분위기가 사늘하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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