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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219화 (20권) (214/1,794)

템빨 2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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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 20권 - 1화

번헨 열도, 쉰한 번째 섬.

4마리의 골든 크라운과 대치한 백발의 그리드가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파이어 볼! 파이어 볼! 파이어 보올!!”

[지력이 낮아서 마법이 발현되지 않습니다.]

[지력이 낮아서 마법이 발현되지 않습니다.]

[지력이 낮아서…]

“…”

재차 시도해보지만 결과는 같다.

백발 그리드, 즉 브라함은 도통 납득할 수가 없었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당최 얼마나 머리가 나쁘면 고작 파이어 볼의 수식을 자꾸만 틀리는 거냐?”

울컥한 그리드가 따지고 들었다.

‘나 머리 안 나쁘다만?’

사실이다.

머리의 좋고, 나쁨의 척도를 <지력 스탯>으로 삼을 경우, 그리드의 머리는 나쁜 편이 아니라 도리어 좋은 편이었다.

왜냐?

착용자의 지력을 200 상승시켜주는 <말락서스의 망토>와 착용자의 지력을 15퍼센트 상승시켜주는 <흑수정 귀걸이>를 착용한 그리드의 지력 수치는 무려 1,200에 육박하고 있었으니까!

비록 템빨의 영향이 크다고는 하나, 세상에 어느 대장장이의 지력이 1천을 돌파하겠는가?

아니, 굳이 대장장이를 국한해서 말할 것도 없다.

그리드의 현재 레벨은 305.

305레벨 플레이어 중에서 마법사나 학자계열의 플레이어가 아닌 이상 1천 이상의 지력을 쌓은 사람은 지극히 드물었다.

즉, 그리드는 평균보다 똑똑하다는 뜻이다. 누차 말하지만, 똑똑함의 척도를 <지력 스탯>으로 삼았을 경우에 말이다.

하지만 어찌됐든 브라함이 봤을 때 그리드는 거의 백치 수준이었다.

“이건 뭐 바보로군.”

브라함이 습득하고 있는 마법의 등급은 10단계로 세분화시킬 수 있다. 종류도, 용도도 무궁무진하였다.

하지만 현재 그리드의 지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은 최하 등급인 10단계밖에 없었다. 고작 9단계 마법인 파이어 볼조차 사용할 수 없다니, 브라함은 답답해서 속이 터질 노릇이었지만 어쩌겠는가?

브라함의 파이어 볼은 일반 파이어 볼이 아닌 강화판 파이어 볼이었다. 그리드의 현재 지력으로는 그 복잡한 수식을 완성시키기가 불가능했다.

“너의 지력은 위기 극복 수단이랍시고 방구나 뀌어대는 스컹크와 동급이다.”

‘…뭐, 뭐라고?’

지가 마법을 못 쓰고 있는 주제에 왜 자꾸만 내 탓을 하는가?

그리드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조차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브라함이 설명했다.

“현재, 내 영혼의 이지 대부분은 네 몸속에 잠들어 있다. 지금의 나는 영혼의 파편 중 일부에 불과해. 이런 내가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선 너의 두뇌와 마력을 빌려야만 한다. 한데 네 상태가 이래서야 아무런 의미가 없군.”

‘이익…!’

그리드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게 되었다.

강한 힘을 원하여 브라함의 영혼을 받아들였건만, 겪으면 겪을수록 현실은 시궁창이었으니 화가 날만도 했다.

역시 저주 받은 인생이다. 세상만사 뜻대로 풀리는 바가 없다.

‘이래서야 내가 당신을 받아들인 의미가 없잖아?’

“글쎄.”

흥분하는 그리드에게 브라함은 콧방귀만 뀔 따름이었다.

그 느긋한 태도가 그리드를 더욱 더 열 받게 만들었다.

‘빌어먹을!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할 거냐고!!’

급기야 욕설을 지껄인 그리드가 따지듯이 외치는 사이,

“키에엑!!”

“캬악!!”

갑자기 분위기가 변한 그리드를 경계하고 있던 골든 크라운들이 일제히 기성을 토해내며 덤벼들었다.

백발의 그리드, 분위기가 종전과는 다르다고는 하나 결국은 똑같이 별 거 아니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리드는 울고 싶었다.

‘이대로 죽는 건가.’

1+1=0이라는 기적을 일궈낸, 정말이지 하등 쓸모없는 스킬 <동화>의 지속시간은 아직 2분 30초나 남았다.

육체의 주도권을 브라함에게 넘겨준 상태인 그리드는 템빨이나 갓 핸드에 의지할 수도, 노에와 랜디를 소환할 수도 없었으므로 이대로 자신이 죽으리라 여겼다.

그리드의 두려워하는 마음을 읽은 브라함이 이죽거렸다.

“네가 나를 아주 우습게 보는구나.”

브라함은 전설 중에서도 특별하다.

인간 출신인 다른 전설들과 달리 타고난 능력 자체가 압도적으로 뛰어났고, 마법이라는 학문 자체를 몇 단계나 승화시켰을 정도로 독보적인 인물이었다.

“이 몸이 고작 잡종들에게 당할까봐서?”

‘…!’

그리드가 감탄을 넘어서 경악했다.

쇄도해오는 4마리 골든 크라운들을 차례대로 포착하는 브라함의 동체 시력, 자신의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뛰어났기에.

“매직 미사일.”

펑!

퍼퍼펑!!

대마법사. 그것도 전설의 대마법사는 과연 차원이 달랐다.

마법 설명에는 재사용 대기 시간이 5초로 명시되어 있는 <매직 미사일(강화)>를 시간 차 없이 4발 쏘는 게 가능한 수준의 존재였다.

“크엑!”

동시다발적으로 왕관을 관통당한 골든 크라운들이 고통에 주춤거렸고, 브라함은 놈들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매직 미사일.”

퍼펑!

퍼퍼퍼퍼퍼펑!!

오로지 매직 미사일을 사용할 뿐이다.

하지만 그 위력은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동화 상태의 브라함. 즉, 그리드의 클래스는 <대마법사>인 바.

그의 <매직 미사일(강화)>는 무려 10레벨 마스터였고 그리드가 쏘는 것과는 위력을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급기야.

[골든 크라운을 해치웠습니다.]

[경험치 13,498,000을 획득하였습니다.]

[골든 크라운을 해치웠습니다.]

[경험치 13,498,000을 획득하였습니다.]

[골든 크라운을…]

..

골든 크라운.

몬스터를 유혹하는 빛을 발산하는 황금 왕관.

녀석들은 유혹한 몬스터를 습격, 숙주로 삼아 기생하면서 압도적인 전투능력을 펼치지만 한 가지 약점이 있다. 본체-왕관-의 생명력이 동레벨 몬스터와 비교하면 무척 낮다는 점이었다.

마스터 레벨의 매직 미사일의 폭격을 오래 감당하지 못하고 잿빛으로 산화하는 놈들을 보면서 그리드는 환희에 휩싸였다.

‘이거 어쩌면!’

쉰한 번째 섬의 미션을 클리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션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7분 34초.’

동화의 지속 시간은 1분 59초 남았다.

브라함이라면 그 안에 6마리의 골든 크라운들을 해치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드는 기대하였고, 브라함은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고자 노력했다.

매직 미사일과 동급의 마법인 <마력 탐지(강화)>를 사용, 섬 내에 존재하는 골든 크라운들의 위치를 빠르게 파악한 후 놈들을 향해서 매직 미사일을 발사했다.

퍼퍼퍼펑!!

“캬악!!”

‘헐.’

그리드는 감탄하고 또 감탄하였다.

그리드의 경우, 매직 미사일을 4~50미터 전방의 표적에게 적중시키기도 어려워하는 반면 브라함은 무려 200미터 전방에 있는 골든 크라운에게조차 정확히 매직 미사일을 명중시킨 까닭이었다.

‘엄청나다.’

섬 곳곳을 누비다가 브라함에게 기습당하고 몰려오기 시작하는 6마리의 골든 크라운.

점차 가까워지는 놈들과 대면한 그리드가 전율하며 미션의 성공을 직감하는 그 순간이었다.

“이런, 마나가 다 떨어졌군.”

“…?”

300레벨대 지력 스탯은 1당 마나를 6 올려준다.

정확히 1,193의 지력을 보유한 그리드의 총 마나는 7,158. 그리고 <매직 미사일(강화)> 마스터 레벨의 마나 소모율은 350, <마력 탐지(강화)> 마스터 레벨의 마나 소모율은 2,000이었다.

마나가 다 떨어졌다고 말하는 브라함, 지금 농담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온 여섯 마리의 골든 크라운을 보고 질겁한 그리드가 울컥해서 소리쳤다.

‘명색이 대마법사라는 인간이 마나의 안배도 제대로 못 하는 건가!’

“이렇게 적은 양의 마나를 운용해본 경험은 처음인지라 실수하고 말았다.”

‘에이, 썩을! 핑계 댈 시간에 어서 마나 물약이나 꺼내 먹어!!’

그리드가 보유한 스킬들은 원체 마나 소모율이 높기 때문에 그리드는 늘 마나 물약을 상비하고 다녔다.

덜컥.

그리드의 인벤토리에 가득한 마나 물약을 확인한 브라함이 그중 하날 꺼냈다.

한데 하필이면 개당 시세 20골드의 <상급 마나 물약>이 아닌, 레이단의 연금술 시설에서 제작하여 아직 시세를 매길 수도 없는 <극상의 마나 물약>을 꺼내는 게 아닌가?

‘아니, 지금 뭘…’

사실 상급 마나 물약만 해도 그리드에겐 사치다.

상급 마나 물약이 회복 시켜주는 마나가 그리드의 총 마나량보다 더 높았으므로.

하지만 그리드가 상급 마나 물약을 상비해놓는 이유는, 중급 마나 물약이 회복 시켜주는 마나량은 부족한 감이 있었던 까닭이다.

어쨌든, 상급 마나 물약을 하나 마실 때마다 늘 가슴 아파하던 그리드로서는 상급 마나 물약도 아닌 극상의 마나 물약을 원샷하는 브라함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심지어 증오스러웠다.

‘너…! 너 지금 무슨 짓을…!’

상급 마나 물약의 가격만 해도 치킨 한 마리보다 비싸다. 한데 최소 그 10배는 비쌀 극상의 물약을 처마시다니?

눈앞에서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광분하는 그리드에게 브라함이 어깨를 으쓱였다.

“내 입은 고급이다.”

‘뭣…! 이런 된장남 같은!!’

분노와 짜증의 연속이다.

브라함의 영혼을 괜히 받아들였다는 그리드의 후회가 깊어지는 가운데, 브라함은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보였다.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오로지 하나의 마법으로 말이다.

덕분에 그리드는 쉰한 번째 섬을 무사히 클리어할 수 있었다.

[도전자 포인트 1,900개를 획득하였습니다.]

[쉰두 번째 섬으로 향하는 게이트가 열립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세컨드 클래스 전직자로서 레벨 업 보너스를 받습니다. 스탯 포인트를 총 12개 획득합니다.]

[스탯 포인트 6개가 지력에 강제적으로 투자됩니다.]

[동화의 지속 시간이 끝납니다. 브라함의 영혼이 앞으로 열흘 동안 완전한 수면에 듭니다.]

“…”

오로지 브라함 덕분에 손쉽게 쉰한 번째 섬을 클리어하고 레벨을 306으로 복구할 수 있게 된 그리드.

한 마디로 말해서 버스를 탔지만 어째 썩 기쁘다고 표현할 순 없었다.

그리드는 다짐했다.

‘앞으로 어지간해서는 소환하지 말아야겠다.’

브라함과 자주 대면하게 되었다가는 속 터져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그리드였다.

하지만 그리드 또한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브라함이 자신에게 제법 큰 호감을 품어가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말투며, 표정이며 예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부드러워지고 있음이 반증이다.

‘파그마에 대한 비밀도 차츰 알려줄 것 같긴 해.’

브라함이라는 든든한 보험을 얻은 그리드, 앞으로 수년 동안 스탯을 지력에 낭비하게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표정이 나름 밝다.

현실 시간 기준, 국가대항전까지 정확히 30일 남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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