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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228화 (223/1,794)

템빨 20권 - 10화

-레이단 백성들의 출산율을 높이려면 영주로서 모범을 보이셔야죠. 만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더 뜨거운 사랑을 나눠주십시오.

라우엘이 말하는 뜨거운 사랑이란, 보다 적극적인 애정표현을 뜻했다.

간단한 예로 뺨을 쓰다듬거나 귓가에 사랑을 속삭이는 행위 등을 함으로서, 백성들에게 ‘아! 부부 관계란 저토록 아름답고 행복한 것이구나!’라는 인식을 심으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그리드는 크게 오해하고 말았다.

‘이 녀석이 일본 동영상을 너무 많이 봤구나.’

만인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라니?

키스 이상으로 뜨거운 사랑이라면 그것밖에 더 있겠는가!

그 성스러운 행위를 침실도 아닌 시가지 한복판에서, 그것도 2만 명이 넘는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하라고?

제대로 변태가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완전히 미친 발상이었다.

-왜, 왜 그러십니까?

자신을 노려보는 그리드의 눈빛에 경멸이 담겨있음을 읽은 라우엘이 당황했다.

순수하기 때문에 중2병인, 순수청년 라우엘이 한낱 변태로 낙인찍힌 날이었다.

그리고 이날.

그리드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실망한 라우엘은 한 가지 다짐을 세우게 된다.

‘이렇게 된 이상 영주대행인 내가 솔선수범해야겠다.’

라우엘의 2세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훗날 전설이 될 <레이단 여성NPC 공략집>이 저술 된 시점이 바로 이때였다.

***

국가대항전까지 단 6일 남았고, 그리드는 4일 후 프랑스로 출국해야하는 입장이었다.

Satisfy 기준으로 그리드에게 남은 시간적 여유는 12일에 불과했다.

‘그 안에 모든 준비를 끝마쳐야한다.’

그렇기에 레이단으로 다급히 귀환한 것이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사랑하지만 미안하오. 오늘은 이것으로 만족해주시오.”

시간이 촉박하다.

순백의 나신을 드러내는 아이린에게 다시금 옷을 입힌 그리드가 오래간만에 손기술을 발휘했다.

잠시 후.

“…사랑해요, 낭군님.”

그리드의 손재주 스탯은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지 오래다.

짧은 시간 만에 아이린을 만족시켜준 그리드가 드디어 대장간으로 떠났다.

***

레이단의 초대형 대장간.

몇 달 만에 찾아온 그리드를 칸과 젊은 대장장이들이 반겨주었다.

대영주의 검으로 칸을 관찰한 그리드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고급 8레벨?’

사실, 그리드는 칸의 대장장이 기술 레벨이 고급 7에서 정체되리라 보았었다.

하지만 그리드의 예상과 달리 칸은 꾸준한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

재능 있는 젊은 대장장이들을 육성하는 과정이 칸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선사한 듯했다.

“어쩌면 장인의 경지를 노려볼 수도 있겠는데요?”

“허허, 과찬일세.”

장인급 대장장이는 역사적으로 10명 내외밖에 등장하지 않았다.

노년인 칸은 스스로를 지는 해라 인식하였으므로 감히 장인의 경지를 노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리드의 생각은 달랐다.

‘칸은 알바티노의 후손이다. 혈통이 뛰어나고 무엇보다도 오랜 경험과 열정이 있어. 내가 잘만 서포트한다면 장인이 될 수 있을 거야.’

어쩌면 네임드 NPC로 거듭날 수도 있지 않을까?

너무 큰 욕심일지는 몰라도, 일단 기대해본 그리드가 대장간 가장 안쪽에 마련되어 있는 용광로 앞으로 향했다.

일반적인 용광로는 그을림과 찌든 때에 더러워져 있는 반면, 그리드가 마주보고 선 용광로는 잡티 하나 없이 깨끗했다.

칸이 늘 그리드를 위해서 청소해놓은 덕분이었다.

‘정말이지, 노인네가 매번 사람 감동시키는군.’

내 첫 친구 칸.

부디 오래 살아주기를 몇 번이나 바라게 되는 줄 모른다.

눈시울을 붉힌 그리드가 장작을 준비하기 시작하자 그를 본 젊은 대장장이들이 기겁했다.

“공작각하! 그런 궂은일은 저희들에게 시키시지요!”

“공작각하께서 하실만한 일이 아닙니다!”

감회가 새롭다.

현실시간으로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바이란의 늙은 대장장이에게 장작 하나 못 패느냐고 욕먹었었는데 이제는 장작을 패면 안 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뭔가, 성공했다는 실감이 난다.

너털웃음 흘린 그리드가 젊은 대장장이들에게 손짓했다.

“너희들은 가서 일 봐라. 난 오늘 오래간만에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구나.”

대장장이로서 일하는 일련의 과정, 그 모든 것이 내 집중력을 높여주는 일환이 되리라 그리드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장작을 충분히 마련한 그가 곧바로 용광로에 불을 붙였다.

탁! 타닥!

용광로 속 불길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꼬챙이로 불길의 정도를 조절해나가던 그리드가 문득 실소를 흘렸다.

‘브라함이 봤으면 또 비웃었겠구만.’

불길 따위, 마법의 힘으로 한 번에 일으킬 수 있다며 거만하게 지껄였을 터다.

하지만 지금의 브라함은 잠잠했다. 정확히 말하면, <동화>를 사용한 직후와 마찬가지의 이치로 잠들어 있었다.

이는 그리드가 최근에 동화를 사용했단 뜻이 되는가?

아니다.

그리드는 최근 보름 동안 동화를 사용한 일이 없다.

브라함이 힘을 소진하고 잠에 든 이유는 얼마 전, 61번째 섬에서 그리드가 사망했을 때 발생했던 사건 때문이었다.

‘설마, 지옥으로 떨어지는 걸 그렇게까지 싫어할 줄이야.’

흑화까지 사용해서 란스티어에게 전력으로 맞섰던 그리드, 흑화 상태로 죽는 바람에 지옥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했었고 그때 브라함이 질색을 했다.

자신이 지금 이 상태로 지옥에 떨어졌다가는 대악마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것이라며, 그리드를 지옥으로 빨아들이려는 다크 게이트를 마력으로 억눌러버렸다.

그 대가로 현재 그리드의 상태창에는 한 가지 메시지가 추가되어 있었다.

*브라함이 마력을 회복하고 잠에서 깨어나기까지 앞으로 69일 9시간 3분 15초 남았습니다. 브라함이 깨어나기 전까지 스킬 <동화>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Satisfy시간으로 69일 후면 현실의 국가대항전 또한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이다.

즉, 국가대항전에서 그리드는 한 가지 강력한 무기를 잃어버린 셈이었다.

하지만 그리드는 동요하지 않았다.

브라함의 도움이 없더라도, 본인의 능력만으로 국가대항전에서 활약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믿음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템빨을 갖춰야만 한다.

크라우젤이나 템빨단원들 같은 천재가 아닌 이상, 아무리 노력해도 컨트롤 발전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러니 템빨이야말로 내가 무기로 내세울 수 있는 최선이다.

‘목마 기사의 투구, 트롤 로드의 조끼, 크라잉 오우거의 건틀렛, 골든 크라운의 각반.’

그리고 란스티어의 망토.

그리드는 번헨 열도 후반부에서 만났던 몬스터들이 무장했던 아이템 중 일부를 재현해볼 심산이었다.

보다 새롭고 강력한 방어구가 필요한 시점이었던 까닭이다.

‘성스러운 빛의 무구 세트도 충분히 뛰어난 방어구이기는 하다. 하지만…’

높은 확률로 암흑 계열 마법에 저항하고, 회복 계열 마법의 효력을 300퍼센트 상승시킴과 동시에 물리공격에 대한 내성까지 갖추고 있는 <성스러운 빛의 갑옷>.

공격속도와 명중률을 상승시켜주면서 낮지 않은 확률로 ‘5연격’스킬을 전개하는 <성스러운 빛의 장갑>.

지력과 위엄 스탯을 상승시켜주는 <성스러운 빛의 왕관>.

이 3개 아이템은 세트로 착용 시 방어력과 생명력을 큰 폭으로 상승시켜준다.

그리드가 170레벨 전부터 지금까지 오랜 세월 동안 꾸준히 애용해올 수 있었던 이유다.

그래, 성스러운 빛의 무구 세트는 정녕 뛰어난 방어구였다.

‘지금이 반 년 전이었다면, 여전히 지존급 방어구라고 자부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몬스터와 플레이어들의 수준이 상승함에 따라서 성스러운 빛의 무구 세트는 가치가 떨어져가고 있었다.

크라우젤과 만나고 번헨 열도를 경험하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기본적인 방어력이 낮은 게 문제다.’

특히 왕관과 장갑의 방어력이 형편없다. 거의 방어력이 없는 수준이다.

성스러운 빛의 갑옷의 경우 방어력이 나쁘지 않았지만 각반까지 일체형인 점을 고려해봤을 때 썩 높은 방어력도 아니었다.

세트 효과가 없었다면 진즉부터 사용하지 못했을 아이템들이었다.

‘장갑의 5연격도 요즘 따라 너무 안 터지고.’

현재 시점에서 성스러운 빛의 무구 세트는 힐러와 파티 플레이를 할 때, 혹은 대(對)마법사용으로만 활용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는 그리드였다.

란스티어에게 단 두 방에 당해버린 이후 경각심이 더 커졌다.

‘이제 대(對)전사용 방어구 세트를 제작한다.’

번헨 열도에서 내 공격을 쉽사리 무력화시켰던 몬스터들.

놈들이 무장했던 방어구들의 특징을 모아서 말이다.

‘우선은.’

용광로의 온도가 적정량까지 올랐음을 확인한 그리드가 흑철과 오우거의 피를 꺼냈다.

‘트롤 로드의 흉갑부터 만들자.’

레이단의 공작이 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리드가 사냥하고 각종 퀘스트를 클리어하면서 꾸준히 모아온 골드는 약 14만 7천 골드다. 물론 별도의 경비와 레이단에 투자한 금액 등은 빼고 남은 액수다.

어쨌든 14만 7천 골드면 현금으로 약 2억 원에 육박하는 가치였다.

그리드는 이번 아이템 제작에 이 모든 골드를 쏟아 부울 심산이었다.

‘최고급 재료들만 엄선해서 사용해주마.’

국가대항전.

전 세계가 주목하는 Satisfy 최고의 무대.

그곳에서 활약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리드였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충분’의 개념을 서민 출신인 그리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2억이란 큰 액수가 아니다.

국가대항전에 출전하는 각국의 랭커들, 아이템을 업그레이드하고 스킬북을 구하기 위해서 최소 수십억 단위를 쏟아 붓고 있는 실정이었다.

미쳤냐고?

전혀 그렇지 않고 이게 현실적인 액수이다.

무려 수십억 시청자가 지켜보는 대회에 참가하는 랭커들에겐 그만큼 엄청난 스폰서들이 달라붙었고, 자금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풍족하게 돌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리드에게도 많은 회사가 스폰 제의를 해왔었다.

하지만 그리드는 거절했다.

액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국가대항전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저격 너프를 당해버린 그리드의 몸값을 높이 책정하는 회사는 없었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그리드가 각 종목에서 예선탈락하리라 전망했고, 그리드의 몸값을 평균 3억으로 책정했다.

이는 하이랭커인 지발, 크리스 등과 비교하면 무려 12배 이상 낮은 액수였다.

그리드는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스폰 제의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고작 자존심 때문에 굴러 들어온 3억을 발로 차버리다니, 누군가는 배가 불러 터졌다고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리드의 생각은 달랐다.

‘난 최고의 성적을 낼 거고.’

나를 스폰하게 되는 기업들은 천문학적인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고작 3억의 계약조건을 받아들인다는 건, 그리드의 입장에선 위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짜증나고 열 받는 일이었다.

그리드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나를 과소평가하고 있는 존재들에게 내 가치를 증명해보이고, 그들이 통한의 눈물을 흘리게끔 만들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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