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21권 - 18화
“쿠워어어어어어!!”
그리드에게 맞은데 또 맞고 맞은데 또 맞기를 반복하던 드레이크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포효했다. 그와 동시에 휘두르는 꼬리치기가 무척이나 신경질적이다.
쩌어어어어엉!!
“큭!”
빠르면서도 예리한 꼬리치기에 옆구리를 얻어맞은 그리드의 몸이 활대처럼 꺾였다.
신음을 토하는 입으로부터 피를 쏟아낸 그가 치를 떨었다.
‘용족은 마법 공격력이 더 세야하는 거 아닌가?’
비룡의 최강 기술은 브레스라고 알려져 있다.
하여 그리드는 드레이크 또한 마찬가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보니 착각이었다.
드레이크는 브레스가 약하고 육탄전에 강한 존재로서 비룡과 정 반대였다.
‘빌어먹을! 처음에 얻어맞았던 브레스가 약하기에 허접인 줄 알았더니만!’
실제로는 엄청 강하다.
꼬리치기와 박치기를 얻어맞을 때마다 생명력이 6천씩 떨어져나갔고 상태이상 ‘스턴’과 ‘경직’이 유발됐다.
그리드가 장담하건데, 드레이크를 1대1로 레이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었다.
지발의 레이드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면 뭐하는가?
박치기나 꼬리치기를 허용하는 순간 상태이상에 걸려서 그대로 골로 가버릴 텐데!
하지만 그리드는 사정이 달랐다.
[저항하였습니다.]
꼬리치기를 얻어맞는 순간 유발되었던 상태이상 경직을 씹어버린 그리드!
드레이크가 그 기다란 꼬리를 회수하는 틈을 노리고 앞으로 파고 들더니 검을 크게 찌른다. 이번에도 그리드는 드레이크의 미간을 표적으로 삼았다.
“살(殺)!”
[크리티컬!]
[대상에게 635,9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효율적인 사냥 검의 위력은 실로 놀라웠다.
스킬만 사용했다하면 거의 크리티컬이 터졌고 데미지가 시원시원하게 박혔다.
국가대항전 내내 ‘PvP데미지 50퍼센트 감소’의 영향을 받아 힘이 봉인 된 느낌을 받았던 그리드에게 있어서 작금의 상황은 무척이나 즐거웠다.
손발을 구속하고 있던 족쇄를 풀게 된 기분이랄까!
“크라라라랄!!”
왜 자꾸 마빡만 때리는가!
즐거워하는 그리드와 상반되게 격분한 드레이크가 눈까지 뒤집고 브레스를 쏘았다.
거대한 화염기둥이 그리드를 일직선으로 관통해버렸다.
드레이크는 속이 다 후련했다.
빌어먹을 인간 놈이 통구이가 되었으리라 확신하며 크를를 웃었다.
하지만 그리드는 멀쩡했다!
그리드가 무장하고 있는 <란스티어의 망토>에는 기후에 따라서 각종 저항력이 상승한다는 옵션이 붙어있는 바!
타오르는 화염처럼 붉게 물든 망토를 펄럭이면서 브레스를 꿰뚫고 전진한 그리드가 방심하고 있는 드레이크의 마빡을 또 한 번 가격했다.
“극(極)!”
“크에에에에에엥!!”
크리티컬이 빵빵 터질 때마다 장난감 뺏긴 갓난아기처럼 울부짖는 드레이크였다.
몸서리치는 놈이 이젠 안쓰러워 보일 지경이다.
“와… 진짜 악독하다.”
“저렇게 계속 때린 곳만 또 때리다니… 악마군, 악마야.”
그리드의 잔혹함에 혀를 내두르는 한국 대표들이었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다.
때린데 또 때리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한국 대표들은 감탄을 금할 길이 없었다.
‘같은 곳만 계속 때리면 그 부분의 방어력이 약해지고 더 큰 데미지가 박히는 건 상식.’
‘하지만 움직이는 대상의 원하는 부위만 노리고 때린다는 건 사실 엄청 어려운 일이다.’
근데 그리드가 해내고 있다.
‘그리드는 컨트롤 솜씨가 별로다.’라는 평가를 완전히 뒤엎어버리는 실력이었다.
“이제야 알겠냐! 갓리드의 실력을!!”
그리드의 활약을 지켜보며 흥분한 극검이 침까지 튀어가며 소리쳤다.
“갓리드는 늘 자신보다 강한 적들을 상대해왔다!”
템빨단원들을 제외하면 모르는 사실이지만, 현존하는 최강 NPC 피아로와 20억 유저의 정점 크라우젤을 상대로 대련한 경험까지 있는 인물이 바로 그리드다.
그리드가 아무리 병신천치라고 해도 컨트롤 솜씨가 안 늘래야 안 늘 수가 없었다.
하지만 국가대항전 내내 그리드의 컨트롤 솜씨가 주목받지 못했던 이유는 압도적인 템빨이 있었기 때문이다.
컨트롤 솜씨를 선보이기도 전에 템빨로 적들을 이겨버렸으니 그 실력을 드러낼 기회조차 없었다.
하지만 드레이크는 강했고, 그리드는 전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었다.
“두 유 노우 갓리드으으으으으!!!”
극검의 외침이 하늘 위 그리드의 귀에까지 닿는다.
그리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저 양반 진짜 엄청 시끄럽네.”
방해가 될 정도다.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차라리 헬가오 레이드 당시처럼 조용해줬으면 좋겠다.
‘조만간 곡괭이를 하나 만들어줘야겠다.’
앞으론 떠들 시간에 광물이나 캐고 있으라고 말이다.
극검이 알게 되면 서운함을 느끼게 될 생각을 하면서, 드레이크의 할퀴기와 박치기를 연달아 회피한 그리드가 드레이크의 생명력 게이지를 확인했다.
50퍼센트.
그리드가 7분 동안 맹공을 퍼부어 만들어낸 결과다.
모두가 힘을 합쳐서 드레이크를 레이드 중인 미국, 일본, 러시아, 스페인 등과 비교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특히 미국과 일본은 벌써 드레이크의 생명력을 70퍼센트 가까이 까놓고 있었다.
그리드도 그쯤은 예상했다.
하지만 초조해하지 않았다.
따라잡으면 그만이니까!
퍼엉! 퍼엉!
생명력이 50퍼센트까지 떨어지자 패턴을 바꾼 드레이크가 연속적으로 브레스를 발사했다.
‘이걸 다 맞아줄 순 없지.’
드레이크의 브레스가 생각보다 약하다고는 하나 3~4천씩의 데미지가 들어왔다. 피해를 누적시키기엔 부담이 컸다.
집중한 그리드가 브레스를 피하고자 움직였다.
지난 2년 넘게 사용해온 플라이 마법에 완전히 적응해서는 하늘을 자유롭게 유영했다.
하지만 드레이크의 브레스 쿨타임이 일시적으로 제로가 된 것이 문제였다.
퍼펑! 퍼퍼퍼펑!
시간 차 없이 쏘아지는 브레스를 언제까지고 피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한 방의 브레스를 허용하고 만 그리드의 신형이 흔들렸다. 아주 찰나동안에 불과했지만, 드레이크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고 꼬리를 힘껏 휘둘렀다.
퍼어억!!
꼬리치기가 그리드의 얼굴을 정확하게 가격했다. 정통으로 들어간 공격이었다. 크리티컬이 터지는 게 당연할 정도의!
그를 본 한국의 대표들과 각국 방송사 해설진이 침음을 토했다.
그리드가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그리드 또한 등골이 오싹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운이 좋았다. 그리드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았다.
뱀파이어 자작 티라멧이 드롭했던 <티라멧의 견갑>에 귀속 된 ‘낮은 확률로 물리 공격 무효화’가 발동해준 덕분이다.
기껏 정통으로 들어간 드레이크의 꼬리치기가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크라라라라라라!!”
뭐 이딴 빌어먹을 템빨이 있냔 말이다!
드레이크가 마치 그렇게 외치는 것 같다고 한국 대표들은 생각했다.
‘내가 드레이크였으면 억울해 죽었을 것 같아.’
‘나도.’
‘지금 쟤 쌍욕하고 있는 걸수도.’
한편, 그리드는 드레이크가 꼬리를 회수하는 틈에 파고 들어서 또 한 번 놈의 마빡을 때리고 있었다.
드레이크의 꼬리치기는 강력하고 빠른 대신 빈틈을 드러낸다는 취약점을 가졌고 그리드는 그 부분을 철저히 공략하는 중이었다.
“키에에엥!!”
생명력이 50퍼센트 이하로 떨어지게 된 드레이크의 비명 소리가 더욱 구슬퍼졌다.
놈이 슬슬 위험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변화가 찾아왔다.
[드레이크가 생존본능을 발동합니다!]
[드레이크의 심장이 빠르게 뜁니다!]
[드레이크의 전신이 불타오릅니다!]
[드레이크의 방어력과 저항력이 하락하고 모든 속도와 공격력, 마법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와우.”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몸에 두른 드레이크의 모습이 마치 화산 같았다.
하늘을 부유하는 화산!
그 위압감이 대단하여 그리드의 가슴을 떨리게 만들 정도였다.
콰앙!
드레이크가 그리드와의 거리를 좁혔다.
민첩성이 무려 2천에 육박하는 그리드를 가뿐히 상회하는 속도다. <도살귀의 안대>의 힘을 빌리고 있는 그리드조차 드레이크의 움직임을 완전히 포착하는 건 불가능했다.
날개를 한 번 펄럭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코앞까지 도달해온 드레이크가 휘두른 앞발에 맞은 그리드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9,3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1,71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겁나 아프다.
물리 저항력을 상승시키는 각종 방어구와 받는 피해를 10퍼센트 경감시키는 <티라멧의 허리띠>를 착용 중임에도 불구하고 일격에 생명력이 7분의 1 가까이 날아갔다.
거기에 덤으로 화염 데미지까지 추가로 입었다.
‘역시 레벨 차이는 무시할 수 없군.’
드레이크의 강함을 단지 레벨빨로 치부하는 그리드였다.
다른 국가 대표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가는 어이가 없어서 뒤로 나자빠졌을 수도 있다.
왜?
‘하늘을 난다.’라는 이점을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비행형 몬스터는 본래 전체적인 능력치가 낮아야 정상이었기 때문이다.
비행형 몬스터임에도 불구하고 공격력과 마법력, 방어력, 저항력 모든 면에서 월등히 뛰어난 드레이크는 사실 기형적인 몬스터였다.
20종에 이르는 네임드 보스를 레이드한 전력이 있는 지발조차도 ‘이 정도로 강력한 보스는 처음이다.’라면서 혀를 내두르고 있을 정도.
현재 상황을 중계 중인 각국 각 분야의 전문가들 또한 드레이크를 ‘언밸런스’라고 표현하며 상위종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리드는 아무 감흥 없다.
야탄의 종 말락서스과 니베리우스.
교황 드레비고와 교황후보 파스칼.
대악마 헬가오와 브라함의 진화한 고렘.
뱀파이어 자작 티라멧과 뱀파이어 백작 엘핀스톤.
그리고 피아로와 크라우젤…
그리드가 싸워왔던 터무니없는 존재들과 비교해서 드레이크는 딱히 특별하지 않았기에.
상위종?
그래봤자 어차피 양산형일 뿐이다.
유일한 존재들과는 격이 달랐다.
그리고 애초에 언밸런스의 대명사가 그리드였다.
“흑화.”
키잉-!
그리드의 피부가 창백하게 질렸고 흰자위는 검게 물들었다. 동시에 검은 마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암흑 마력을 증폭시킵니다.]
[암흑 마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악마력으로 대체합니다.]
[흑화가 유지되는 동안 종족이 반마(半魔)로 변경됩니다.]
[반마 상태에서는 생명력 최대치가 50퍼센트 하락합니다. 공격력, 마력, 민첩성이 각각 20퍼센트씩 상승합니다.]
[모든 종류의 공격이 암흑 속성으로 전환됩니다.]
드레이크의 공격을 연달아 허용하고 생명력이 절반가량 떨어지고 나서야 발동시키는 흑화.
어차피 흑화를 사용하면 생명력 총량이 50퍼센트 하락하기 때문에 좋은 타이밍에 사용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제부터는 공격을 허용하면 위험해진다.’
생각하면서 도란의 반지를 착용하는 그리드에게 드레이크의 박치기와 꼬리치기가 연속적으로 날아왔다.
<신속한 몸놀림>까지 발동하여 회피하고 드레이크가 꼬리를 회수하는 틈을 노려 반격하려던 그리드였으나 드레이크가 브레스를 발사함으로서 그 행동을 차단시켰다.
드레이크에게 학습능력이 있다는 증거였다. 드레이크의 지능이 비록 비룡보다는 떨어진다고 해도 바보는 아니었던 것이다.
더 이상 꼬리치기는 드레이크의 약점이 아니었다.
‘나보다 배움이 빠르다니…’
그냥 빠른 정도가 아니라 몇 배는 더 빠르다.
이젠 살다 살다 몬스터보다 못한 그리드였다.
좌절감에 휩싸여있는 그에게 드레이크가 앞발을 휘둘렀다. 집채만큼 거대한 몸집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작아 앙증맞게 보이는 발이었지만 그 위력은 강력하다. 발톱은 강철보다 단단하였고 빠르기는 복싱 세계 챔피언이 날리는 잽처럼 전광석화 같았다.
하지만 흑화와 신속한 몸놀림을 전개한 그리드를 위협할 수준에는 못 미쳤다.
도살귀의 안대의 힘까지 빌려서 드레이크의 공격을 회피한 그리드가 <대장장이의 분노>를 발동, 순간적으로 공격력과 공격속도를 증폭시키더니 또 한 번 드레이크의 마빡을 때렸다.
“키야아아아아!!”
드레이크는 종전과 비교할 수 없이 큰 데미지를 입고 말았다.
생명력이 50퍼센트 이하로 떨어지면서 저항력과 방어력이 약화 된 결과였다.
하지만 드레이크는 물러서지 않았다. 마빡에서 피를 쏟으면서도 광포하게 울부짖으며 브레스를 토해냈고 동시에 날개를 펄럭였다.
“……!”
화염에 휩싸인 그리드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드레이크가 발생시킨 강력한 풍압을 견뎌내지 못한 그의 몸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대위기!
땅에 처박힌 채 움찔거리는 그리드의 상체를 노리고 하강하는 드레이크!
메테오를 연상하게 만드는 놈의 박치기가 그리드에게 작렬하려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사람 대부분은 직감했다. 그리드의 레이드 실패를 말이다.
이는 즉 그리드의 레이드 성공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뜻과 일맥상통했다.
그리드의 주특기가 바로 사람들의 예상을 뒤집는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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