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286화 (23권) (281/1,794)

템빨 2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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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 23권 - 1화

[불사의 지속 시간이 끝났습니다.]

최악의 알림창이 떠오름과 동시에 목덜미를 파고들어오는 크라우젤의 백아도.

역시 지는가?

간담이 서늘해지는 그리드였으나 아직 비장의 수단이 남아있었다.

[지옥 문을 닫는 과정에서 큰 힘을 손실하였던 브라함의 영혼이 수면에서 깨어납니다!]

[스킬 <동화>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실드.”

쩌저저저정!

동화와 동시에 실드를 펼침으로서 크라우젤의 공격을 막아내는 순간, 그리드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브라함이 주둥이를 털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늘이 내린 재능인가. 하지만 그래봤자 아직은 애송이다.”

‘떠들어댈 시간에 마법을 써!’

초조해진 그리드가 소리쳤지만 브라함은 본인의 실드를 신뢰하고 있었다.

애송이 따위에겐 결코 깨어지지 않으리라 믿고 느긋하게 불꽃을 소환하였다.

그것은 특정한 형태를 지닌 마법이 아니었다. 그저 단순하게 마력으로 만들어낸 순수한 불꽃에 불과했다.

현재 그리드의 마나가 텅텅 비어있는 터라 마법을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던 것이다.

‘뭐, 그래도 이거면 충분하지.’

눈앞의 애송이 또한 이미 망신창이인 상황이다. 가볍게 해치울 수 있다.

브라함이 기고만장하게 웃는 순간이었다.

턱.

진각을 펼친 크라우젤이 실드 위로 손을 얹었다.

몸의 회전력을 이용하여 순간적으로 체중을 증폭시키는 모습, 레가스가 애용하는 발경의 전조와 흡사했다.

‘설마…!’

그리드와 브라함이 동시에 불안감에 휩싸였고,

“호랑이 울음.”

퍼엉!

무형의 기가 실드 너머 그리드의 가슴을 관통했다.

공격력이 강하진 않았으나 <스피어 샷>과 <엘핀스톤의 반지>효과로 그리드가 회복한 생명력은 400대에 불과했던 바.

그리드는 타격을 견디지 못하고 즉각 사망판정을 받았다. <암흑의 룬>에 귀속 된 <티라멧의 힘>의 효과를 또 다시 누리지 못한 것이다.

최후의 순간에 날린 불꽃이 크라우젤의 몸을 불태우고 있었지만 한 발 늦었다.

***

크라우젤은 그리드와 싸우는 내내 불안했다.

결국 내가 지는 게 아닐까?

어머니의 병을 고쳐드리지 못하는 건 아닐까?

대인전 최강자라는 크라우젤조차도 이러한 생각들을 품게 만들 정도로 그리드는 강했다.

전장의 지배자 아레스.

백요와 흑요 자매.

그리고 바알의 계약자 아그너스.

Satisfy의 중심적인 스토리를 진행하고 있는 그 4인방과 비견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고 심지어 발전가능성조차 뒤처지지 않았다.

특히 최후에.

“동화.”

흑화를 해제시킴과 동시에 머리를 백발로 물들인 그리드의 차가운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한 순간, 크라우젤은 심장이 얼어붙고 말았다.

야탄의 첫 번째 종을 파이어 볼로 해치웠던 백발 버전 그리드.

특정 퀘스트에서만 사용가능한 줄 알았던 힘을 설마 PvP에서도 사용할 줄이야?

크라우젤의 상정 범위 외였고 실제로 크라우젤은 큰 위기에 봉착했다.

하지만 결국 이겼다.

백발 그리드의 불꽃보다 크라우젤의 호랑이 울음이 한 발 앞서 발동한 것이 컸다.

종이 한 장 차이였다.

만약, 그리드가 자만하지 않고 실드를 사용하는 즉시 마법을 전개하였다면 결과는 바뀌었을 것이다.

[전설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였습니다.]

[레전드리 클래스 검성으로 전직합니다.]

[레벨이 하락하여 1이 됩니다.]

“어머니…”

감정이 복받친다.

어머니를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드릴 수 있게 되었음에.

어머니께서 평생 내게 주신 사랑에 보답할 수 있게 되었음에.

또한, 다시금 ‘아들’이라고 불릴 수 있게 되었음에.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는 크라우젤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환희의 눈물이었다.

***

비디오 판독 결과, 그리드와 크라우젤 중 먼저 잿빛으로 산화한 사람은 그리드였다.

불과 0.1초의 차이였다.

『단 0.1초… 그 찰나의 시간이 한국과 러시아, 그리고 그리드와 크라우젤의 운명을 바꿔버렸군요.』

『승자는 크라우젤입니다! 이로서 러시아가 종합순위 1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드와 한국의 입장에서는 정말 아쉽게 되었네요. 만약 그리드의 마법이 0.1초만 빨랐어도 결국 한국이 1위를 차지했을 텐데 말이죠.』

참으로 치열한 명승부였다.

결과적으로 그리드가 패배하였다고는 하지만 결국 하늘은 무너졌다.

과연 그 누가 그리드에게 패자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을까?

『지존이라는 타이틀은 더 이상 크라우젤의 전유물이 아닌 게 되었군요.』

『맞습니다. 그리드에게도 지존이라고 불릴 자격이 차고 넘칩니다.』

『이 순간부로 Satisfy의 태양은 두 개가 되었다고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각국 방송사의 해설진이 그리드를 극찬하기 시작하였고 세상사람 대부분이 이에 동조하였다.

하지만 정작 그리드는 생각이 달랐다.

‘결국 나는 졌다.’

아직 지존이라는 타이틀을 얻기엔 부족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하지만 그리드는 좌절하지 않았다. 도리어 기뻤다.

자신과 크라우젤의 실력차이가 조금씩 좁혀지고 있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다음엔.’

다음엔 다를 거다.

그때는 반드시 내가 최강이라는 칭호를 쟁취하겠다.

다짐하면서 크라우젤을 바라보는 그리드의 입가로 짙은 미소가 번졌다.

‘내게 이긴 게 그렇게까지 기쁜 거냐?’

저 멀리, 가슴을 부여잡은 채 눈물 짓고 있는 크라우젤.

그리드가 그 눈물의 의미를 철저하게 오해했다.

‘나를 이겼다고 울 정도로 기뻐하다니…’

후후훗!

비록 졌지만 으쓱해지는 그리드였다.

***

1위. 러시아 (금5 은3 동2)

2위. 대한민국 (금5 은1)

3위. 미국 (금4 은4 동6)

4위. 캐나다 (금3 은3 동3)

5위. 스페인 (금1 은2 동1)

6위. 일본 (금1 동3)

7위. 브라질 (금1)

8위. 영국 (은4)

9위. 프랑스 (은3)

공동 10위. 아르헨티나, 중국 (각 동 2)

12위. 터키 (동1)

국가대항전 최종 순위가 공개되었다.

강력한 1위 후보국이었던 미국과 캐나다가 각각 3위와 4위에 그칠 줄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특히 최약체라고 평가받았던 한국이 2위에 오른 건 가히 충격적이라고 표현함이 옳았다.

『한국은 무척 특이한 케이스죠. 총 6개의 메달 중 무려 5개를 그리드 혼자서 땄으니까요.』

『그것도 금메달 4개와 은메달 1개를 말입니다.』

『이번 대회의 MVP를 뽑는다면 저는 단연코 그리드 선수를 뽑을 것입니다.』

물론 크라우젤의 활약 또한 눈부셨다. 임팩트만 놓고 비교하면 그리드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메달을 더 많이 딴 사람은 그리드였다.

그리드가 대회의 MVP로 뽑혀도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거의 없었다.

***

제2회 Satisfy 국가대항전.

무려 한 달 가까운 기간 동안 프랑스 파리에서 진행되었던 역사상 최고의 축제.

축제를 마무리 짓는 성대한 폐막식 무대에 각국 선수들이 도열하고 섰다.

여기서도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물은 단연 그리드였다.

새로운 지존!

두 번째 태양!

등등.

온갖 새로운 수식어를 갖게 된 그리드에 대한 각국 언론의 관심이 어마어마했다.

미인… 특히 글래머 리포터들이 폐막식 후 인터뷰에 응해달라며 눈치를 보내자 헤벌쭉해진 그리드의 옆구리를 유라가 콕콕 찔렀다.

“침 흘리고 계세요.”

“헐.”

이럴 수가!

전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침이나 흘리고 있었다니!

‘D컵이 뭐기에…!’

기껏 열심히 이미지를 관리해왔건만 한 방에 날아가게 생겼다.

그리드가 쪽팔려서 얼굴을 붉히는 사이, 품에서부터 손수건을 꺼낸 유라가 그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

정말이지,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만한 행동만 하는 여자다.

관중들은 물론이고 각국의 플레이어들조차도 자신에게 질투의 시선을 보내오자 그리드는 억울했다.

“네가 자꾸 그런 식으로 행동하니까 사람들이 오해하잖아. 적당히 해, 자꾸 그러면 네가 나 좋아한다고 나까지 착각할 것 같다.”

“…”

유라의 분홍빛 입술이 꿈틀거렸다.

그리드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니 입이 근질거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솔직히 고백할 수 없었다.

타인에게 사랑고백을 받아본 횟수는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자신이 먼저 고백해본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어색하고 부끄러웠던 것이다.

“아주 풋풋해.”

극검이 피식피식 웃었다.

그리드와 유라를 보고 있으면 마치 순수한 어린이들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아 재밌었다.

물론 답답한 마음이 더 컸지만 말이다.

참고로 극검 또한 모태솔로였다.

그리드와 유라의 애정행각(?) 때문에 곳곳이 소란스러워진 가운데 S.A그룹의 회장 임철호가 무대 위로 올랐다.

그리드에게 의미불명의 눈인사를 건넨 그가 카메라를 보고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Satisfy를 개발했고 또한 운영하고 있는 임철호입니다. 이번 대회를 위해서 힘써주신 모든 스탭들과 선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지금 TV를 시청하고 계실 각국 플레이어분들께 기쁜 소식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임철호가 전달하는 기쁜 소식이란 아래와 같았다.

첫째, 국가대항전을 성황리에 마친 기념으로 Satisfy의 모든 플레이어에게 경험치 획득률 10퍼센트 상승 버프를 준다.

둘째, 국가대항전 순위권에 진입한 국가 소속 플레이어들에게는 별도의 버프를 추가로 지급한다. 버프의 효과는 국가 순위에 따라서 다르다.

누군가는 불공평하다고 소리쳤다.

국가대항전에서 메달을 획득한 국가 소속 플레이어들에게만 너무 큰 혜택을 주는 게 아니냐며 비난했다.

하지만 S.A그룹의 목적은 국가대항전의 영향력을 키우는 것이었다.

제3회, 제4회 국가대항전의 더 큰 흥행을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보상을 마련해놓는 게 당연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한국인 플레이어들은 앞으로 보름 동안 경험치와 아이템 획득률 27퍼센트 상승 버프 효과를 누리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리드는 진정한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하였다.

그리드 덕분에 빠르게 성장할 기회를 얻게 된 한국인 플레이어들의 그리드에 대한 애정이 더욱 커졌다.

그리고 총 4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을 획득한 그리드는 ‘대장장이 보상’으로 신의 광물 아다만티움 4개와 지옥의 광물 블러드 스톤 1개를 얻었다.

또한 통장에는 무려 200억 원이라는 거액이 찍혔다. 혜성그룹이 입금한 광고료였다.

가을이 지나가고 있는 시점.

내년 종합소득세 신고에서 또 다시 38퍼센트의 세금폭탄을 맞게 될 것이란 사실을 깨달은 그리드가 피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내는 세금이 조국의 발전에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며 애써 위로해보지만, 아무리 그래도 수십 억대의 세금은 너무 큰 부담이었다.

혹시 다시 탈모가 재발하는 건 아니겠지?

폐막식이 끝난 후.

정수리를 부여잡은 채 걱정하는 그리드에게 라우엘이 다가왔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

“헤에~~ 여기가 말로만 듣던 수인족의 왕국이구나. 예쁜 곳이네? 열 받게.”

“히힛! 이히히힛!!”

수인족의 왕국, 세이렌.

복제술사 유페미나가 벌써 몇 달째 머물고 있는 그곳에 불청객들이 찾아왔다.

유페미나의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일어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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