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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299화 (294/1,794)

템빨 23권 - 13화

사냥감이 되어본 경험이 있는가?

누군가가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블러드 카니발 전원은 ‘NO’라고 답할 것이다.

그들은 늘 먹이사슬의 최상위층에 군림해왔던 존재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제까지였다.

“허억… 허억…! 뭐 저딴 괴물 같은 새끼들이 다 있지?”

블러드 카니발의 폭술사 마르티는 안색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막대한 악명 수치를 쌓은 상태에서 자신보다 강한 적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는 진심으로 두려웠다.

‘어떻게든 도망쳐야한다.’

경험치 손실보다 두려운 것은 재산의 손실이다.

당장 두르고 있는 아이템들이 워낙 고가품인지라, 자칫 죽기라도 했다가는 지난 반 년 동안 번 돈을 몽땅 날려버리는 수도 있었다.

“…지금!”

‘이벨린’이라는 이름의 소년 검사.

비싼 돈 주고 고용한 용병단을 순식간에 도륙하며 접근해오던 놈이, 후방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향해서 시선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슉!

타이밍을 정확히 잰 마르티가 폭탄을 집어던졌다.

직접 제조한 폭탄으로서 그 위력은 어지간한 A급 단일마법보다 더 강력했다. 패시브 스킬 <중급 폭탄 던지기>의 레벨을 무려 8까지 올린 마르티였기 때문에 폭탄의 투척 속도와 명중률도 일품이었다.

퍼어어어어어어엉!!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간 폭탄이 이벨린이 서있는 지점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의 위력은 어마무시했다. 세이렌을 감싸고 있는 투명 외벽 너머 심해에 옅은 파동이 생겨나는 수준이었다.

‘완벽해!’

제대로 들어갔다.

데미지를 보아 이벨린은 필시 스턴 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마무리를 지을까?’

잠시 고민해보던 마르티가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고작 꼬맹이 하나 잡겠답시고 시간을 끌 수는 없지.’

시간을 끌었다가는 다른 템빨단의 표적이 되는 수가 있었다.

퇴각을 판단한 마르티가 채 두 걸음을 떼기도 전이었다.

“아프네. 아저씨 공격력이 엄청나잖아?”

이벨린의 목소리가 바로 귓전에서 들려왔다.

‘이 자식…!’

폭탄에 맞는 순간 발생해야할 스턴을 저항하고, 동시에 검사 고유의 돌진기를 사용하여 쫓아온 건가?

이벨린이 착용하고 있는 액세서리의 종류를 찰나지간에 훑은 마르티가 어금니 사이에 끼워두었던 소형 폭탄을 퉤, 하고 뱉어냈다.

콩알만한 폭탄이었다.

그것이 이벨린의 곱상한 얼굴을 정확히 노리고 쏘아졌다.

하지만 채 닿기도 전.

푸욱!

이벨린의 프람베르그가 마르티의 미간을 꿰뚫는 속도가 더 빨랐다.

“끅…! 제길!”

접근전에 취약한 게 원통하다.

이대로 죽게 생겼다.

‘하지만 나 혼자 죽진 않는다!’

마르티가 회심의 미소를 그렸다.

‘내가 쏜 폭탄도 곧 폭발을… 뭐?’

마르티의 얼굴이 다시금 일그러졌다.

앞서 쏘아냈던 소형 폭탄.

그것이 반으로 쪼개진 채 바닥 위를 나뒹굴고 있는 광경을 뒤늦게 목격한 까닭이었다.

‘나를 찌르면서 동시에 폭탄을 베어버렸다고?’

푹! 푹푹!

이벨린의 프람베르그가 재차 마르티를 꿰뚫었다.

끔찍한 고통 속에서, 마르티가 분함을 금치 못하고 떠들어댔다.

“꼬맹이 주제에…! 너 이 새끼, 학교는 안 다니고 게임만 했냐! 뭐 이렇게 컨트롤이 좋…! 쿨럭! 쿨럭쿨럭!!”

“거 참. 원래 어린애가 게임 더 잘하는 거 몰라요? 그리고 나,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열여덟 살이라고.”

가볍게 대꾸한 이벨린이 마르티의 목을 베어버렸다.

마르티가 죽으면서 드롭한 <종이>의 정보를 확인한 그가 머리를 긁적였다.

“유니크 등급의 폭탄 제조법… 이거 상당히 비싼 물건인데… 흠… 그래도 연금술 시설에다가 헌납하는 편이 좋겠어.”

최고의 검사가 되어 크라우젤을 넘어서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지닌 소년.

제1대 10인의 루키 중 하나였던 그는 꾸준히 잘 성장하고 있었다. 템빨단의 일원으로서 말이다.

***

“야, 이게 지금 말이 된다고 보냐?”

전장을 살피는 녹스의 얼굴이 멍해졌다.

나름 칼밥 좀 먹었다는 용병들이 템빨단 앞에서는 샌드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와중에 숫자는 왜 이렇게 적어?”

천 명인 줄 알았던 아군의 군세가 이제 보니 채 7백 명이 안 된다.

어리둥절해하는 녹스에게 스캇이 설명해주었다.

“카츠가 출몰했다더군. 안 보이는 삼백 명은 죄다 녀석에게 죽었을 거야.”

“카츠? 블러드 워리어?”

“그래.”

“아니, 그놈이 여기엔 왜?”

“템빨단에 의탁한 것 같던데.”

“허… 무섭구만, 무서워.”

템빨단의 세력이 과연 어디까지 성장하게 될 것인지, 섣불리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특히 소문의 농부가 발휘하는 신위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더불어 아스모펠이라는 이름의 처음 보는 NPC도 엄청났고.

“주군을 설득해서 일찌감치 밟아놓는 편이 좋지 않겠어? 나중에 견제하려면 진짜 답이 없겠는데?”

“형님께서 원하질 않으신다. 길드전은 결국 소모전의 형태이니, 길드전 할 시간에 차라리 NPC들의 세력을 정복하고 세를 불리는 편이 보다 효율적이라고 판단하셨어.”

“하기야… 템빨단이 세지는만큼 우리도 세지면 되는 거니까. 뭐, 굳이 쫄 필요 없겠지. 네임드급 NPC도 점차 영입해가는 추세고.”

“그래, 그중 도닉스는 저기 저 농부급으로 성장할 여지가 충분한 인물이지. 우리는 결코 초조해할 필요가 없다. 결국 싸움의 규모가 전쟁으로 확대되면 필승하는 건 우리가 될 테니까.”

스캇과 녹스.

이들은 ‘황제’를 목표로 삼고 있는 전쟁의 지배자 아레스를 섬기는 인물들이었다.

최근 블러드 카니발에 잠입하여 활동했던 이유는 소문의 듀오, 백요와 흑요의 전력을 소상히 파악해두기 위함이었다.

“그녀들의 실력은 잘 알게 되었으니 이제 더 이상 용무도 없다. 이만 형님께 돌아가도록 하자.”

“잠깐. 템빨단 몇 명이랑 싸워보고 가면 안 돼? 난 저기 페이커라는 녀석이랑 한 판 붙고 싶은데?”

“그리드, 피아로, 아스모펠. 저 셋이 위험하다. 빠질 수 있을 때 빠져. 자칫 시간을 끌었다가는 라우엘이라는 놈이 수작을 부려서 퇴로가 전부 막혀버리는 수가 있다.”

“쩝, 알았다고.”

스캇과 녹스가 서둘러서 자리를 이탈했다. 도중에 길을 막는 수인족 병사들은 굳이 죽이지 않고 제압만 해두었다.

무의미한 살생은 이들이 추구하는 길과 거리가 멀었기에.

***

“파이어 실드!”

반트너의 보호범위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면서 마법을 폭격하고 있던 라엘라.

화염술사 랭킹 1위이자, 레이단에서는 마탑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그녀가 갑자기 날아오는 바람칼날을 보고 급히 방어마법을 전개했다.

퍼엉!

마법과 마법이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충격파.

그로인해 나부끼는 화염 너머로 묘령의 여인이 보인다.

마이카라는 아이디를 지닌 여인이었다.

“헤에, 고작 게임한답시고 활동이 뜸한 세계적인 아이돌을 이렇게 직접 보게 되니까 한심하네. 도대체 뭐하는 거니? 게임할 시간에 노래 한 곡 더 부르는 게 팬들을 위한 행동 아니야?”

다짜고짜 비꼬는 마이카에게 라엘라가 조곤조곤한 말투로 반박했다.

“고작 게임이 아니죠. 이곳 Satisfy는 현실만큼이나 즐겁고 소중한 장소니까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팬 여러분을 등한시하지도 않아요. 방송출현을 자제할 뿐이지 콘서트는 꾸준히 개최하고 있으니까요. 아, 그리고 내년 1월에 신곡이 출시되니까 많이 기대해주세요.”

“흥! 누가 너 따위 계집의 팬인 줄 알아?”

도발하려던 마이카가 도리어 분개하더니 토네이도를 전개하였다.

그녀는 템빨단원들 중 비교적 손쉬운 상대로 보이는 라엘라를 돌파하고 전장으로부터 이탈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라엘라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녀가 비록 템빨단의 에이스들 사이에서는 초라해 보일지언정, 화염술사 랭킹 1위라는 타이틀은 아무나 쟁취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퍼퍼퍼퍼퍼펑!!

토네이도의 흐름을 읽은 라엘라가 불의 화살 다섯 발을 동시에 쐈다.

‘저럴 수가!’

마이카가 경악했다.

라엘라가 바람의 방향을 이용해서 불꽃 화살의 기세를 높인 까닭이었다.

바람 마법과 불의 마법은 사용여하에 따라서 서로에게 카운터가 될 수 있었는데, 두뇌 싸움에서 밀린 마이카가 카운터를 당하는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꺄아아아악!!”

몇 차례의 마법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불길에 휘감겨버린 마이카가 내지르는 비명이 잔혹한 전장에 울려 퍼졌다.

“도와줄 필요가 없네. 많이 컸어, 우리 라엘라.”

템빨단의 가장 후위에서, 적들을 쏘아 죽이는 한편 힐끔힐끔 라엘라를 살피던 지슈카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보다 약간 전방에 있던 바람술사 랭킹 1위 제드노스가 가슴을 당당히 폈다.

“라엘라는 매일 같이 저랑 대련하니까요. 바람술사를 상대하는 건 그녀에게 있어서 식은 죽 먹기죠.”

“식은 죽? 그거 한국 속담 아니야?”

“극검님이 한국 속담을 워낙 자주 써먹으니까… 자연히 저도 영향을 받았네요.”

“하핫.”

평화로운 대화다.

누가 보면 티타임을 즐기는 남매의 대화라고 오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피와 비명이 난무하는 전장이었다.

지슈카와 제드노스가 웃으며 떠들면서도 살육한 적의 숫자만 해도 어느덧 100을 돌파하고 있었다.

‘엄청난 화력.’

하늘 위.

플라이 마법을 전개한 상태로 먹잇감을 찾아 헤매던 그리드가 지슈카와 제드노스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특히 지슈카의 공격력은 볼때마다 감탄만 나왔다.

물리 공격력 최강 클래스가 궁사라는 사실은 역시 부정할 수 없었다.

“찾았다.”

그리드의 눈빛이 다시금 매섭게 빛났다.

전쟁터로부터 약 50미터 떨어진 방향.

해초들이 우거진 그곳을 쥐새끼 한 마리가 슬금슬금 이동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아이디가 일반적이 피라미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시뻘건 것을 보아 블러드 카니발의 3차 전직자로 추정되었다.

“아이템 내놔!”

완전 도적놈 대사다.

욕심에 눈이 멀어 소리친 그리드가 검기를 마구잡이로 발사하기 시작했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게끔 만드는 초(超)를 전개한 그의 공격력은 실로 막강했다.

쿠콰콰콰콰콰쾅!!

폭우처럼 쏟아지는 검기가 지면 곳곳을 박살내었다.

길게 자란 해초들의 틈새를 이동하던 가루다는 간신히 방어 스킬을 전개하여 위기를 넘겼다.

아니, 넘긴 줄 알았다.

‘언제까지…?’

하늘 위에서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는 그리드.

저놈, 대체 언제까지 검기를 쏘아대려는 걸까?

‘마나가 무한하기라도 한 건가…!’

지금의 그리드가 ‘평타’를 사용하는 줄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가루다였다.

검기의 폭우가 끝나길 바라며, 방패를 내세우고 있는 그의 곁에는 의외의 인물이 숨죽인 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리드놈!’

그리드에게 적의를 품고 있는 이 사내, 다름 아닌 타르마다.

크라우젤을 암살하려고 국가대항전에 참가했다가, 그리드와 크라우젤에게 연달아 박살이 나고 개망신 당했던 바로 그 비운의 어쌔신 말이다.

‘내가 망신을 당한 건 모두 네놈의 탓이다!’

표적 맞추기 당시.

본래 타르마는 크라우젤을 암살할 기회를 얻었었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그리드에게 방해를 받았고, 단 수초 만에 죽임을 당하여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그때부터 페이스가 무너져서 결국에는 크라우젤에게도 패배해버렸지…!’

동료들에게 얼마나 놀림을 당했는지 모른다.

지금도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타르마 2초 동영상’을 볼 때면 얼굴이 달아오르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복수해주마!’

마음을 독하게 먹은 타르마가 기회를 엿봤다.

그리고 끝내 버티지 못한 가루다가 사망하면서 떨어뜨린 아이템을 그리드가 줍는 순간을 포착했다.

완전한 빈틈!

‘간다!’

스르륵.

타르마의 신형이 소리도 없이 이동하여 그리드의 후위를 장악했다.

독기 품은 그의 단도가 그리드의 목을 노리고 쏘아지는 순간이었다.

[사망하였습니다.]

‘뭐?’

내가 죽었다고?

‘왜?’

언제? 누구에게? 무슨 수로?

이해하지 못하는 타르마의 잿빛 시야에 ‘페이커’라는 이름이 담겼다.

“응? 이건 또 뭐야?”

가루다가 떨어뜨린 신발을 줍고 일어났던 그리드는 어리둥절해졌다. 자신의 등 뒤에 또 새로운 아이템이 떨어져있었으니 의아할 따름이었다.

그에게 어느덧 전장에 합류해있던 유페미나가 달려왔다.

“상황이 대충 마무리되어가고 있어요. 수인족 왕을 알현… 아니, 만나러 가시죠?”

“흠, 슬슬 가볼까.”

블러드 카니발의 3차 전직자들은 전부 죽거나 사라졌고 이제 전장에 남은 건 피라미 용병들뿐이었다.

가뿐하게 마무리 지은 그리드가 유페미나의 안내를 따라서 왕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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