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23권 - 22화
<아다만티움>
신들의 세상 아스가르드에서만 채집할 수 있는 광물입니다.
제작자가 원하는 수준의 강도와 경도, 그리고 취성을 최대한 구현하는 성질을 지녔습니다. 단, 한계치가 존재합니다.
완벽에 가까운 제작재료라고 표현함이 옳지만, 강력한 신성력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까다롭게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제련 조건:고급 대장장이 기술 레벨7
무게:30
‘호오, 아다만티움이라. 파브라늄을 제외하면 블러드 스톤과 쌍벽을 이루는 최고의 광물이라고 단언할 수 있지.’
브라함이 흥미를 보였다.
‘너는 이걸로 뭘 만들 생각이지?’
“무기.”
사실, 처음에는 방어구를 강화시킬 계획이었다.
질량이 부족하여 경갑으로 분류되는 <성스러운 빛의 무구 세트>에 아다만티움을 덧붙여서 중갑으로 승화시킨다면, 고유의 성능을 잃지 않으면서도 부족한 물리방어력을 충당할 수 있었으니까.
굳이 번거롭게 삼겹갑과 스왑할 필요성이 사라지고, 또한 마법력과 공격력이 모두 강한 상대와 싸워도 이상적인 탱킹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될 터였다.
하지만 그리드는 도중에 생각을 바꿨다.
돌이켜보니, 이 이상 방어력에 집착할 필요가 없어서였다.
‘지금으로서는 삼겹갑과 성스러운 빛의 무구 세트만으로도 충분해.’
애초에 삼겹갑, 큰 장갑, 뿔 투구, 란스티어의 망토 등은 <란스티어>의 공격력을 견딜 목적으로 제작한 방어구다.
그리고 란스티어는 전설의 어쌔신이다.
그 이상으로 공격력이 강력한 존재를 현재 시점에서 적대할 일이 있겠는가?
단언컨대 없다.
그리드에게 있어서 방어력이란, 차고 넘치면 넘쳤지 부족한 부분이 아니었다.
‘방어구야 스왑해가면서 쓰면 된다. 마법공격력과 물리공격력이 전부 강한 상대는 드물기도 하고.’
애초에 그리드에게는 불사 패시브가 있다. 버티는 능력은 충분하다.
버티는 동안에 적을 쓰러뜨릴 수 있는 강력한 공격력이 더 갈급한 시점이다.
‘이야루그트가 레전드리 등급으로 성장하는 바람에 공격력에 공백이 생겼으니까.’
이야루그트를 소환하면 이야루그트에 대한 소유권을 잃는다.
지금의 이야루그트는 무기가 아니라 ‘소환 도구’쯤으로 인식하는 편이 차라리 속편했고, 그쪽이 사실상 효율도 좋았다.
그리드에게는 이야루그트를 대체할만한 무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한 가지 문제점이 발생한다.
바로 흑화다.
강력한 신성력을 보유한 아다만티움으로 제작한 무기를 착용한 상태로 흑화를 사용하면?
리파엘의 창 모작을 사용했을 당시 이미 경험한 바 있듯이, 신성력과 마기가 충돌하면서 큰 페널티를 감수해야한다. 안정적이지가 않다.
‘어쩔 거지?’
그리드의 고민을 엿본 브라함이 이죽거렸다.
그리드가 흑화와 신성력의 상성관계를 어떻게 극복해낼 것인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기껏해야 블러드 스톤과 융합하는 방법이나 떠올리지 않을까.’
아다만티움의 신성력을 블러드 스톤의 마기로 억누르는 방법.
그리드 또한 생각해봤었다.
하지만 역시, 신성력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왜?
신성력이란, 마족과 언데드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강력한 힘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클리어하지 못한 번헨 열도에는 파그마의 데스나이트들이 있고, 아그너스 또한 데스나이트와 리치를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아다만티움의 신성력을 포기하는 건 어리석다.
그리드는 떠올려야만했다.
흑화와 아다만티움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그래서 발상을 뒤집어엎었다.
“무기라는 거, 꼭 내가 직접 사용할 필요는 없잖아?”
‘…?’
무기를 직접 사용하지 않는다고?
보통 사람은 그리드의 뜬구름 잡는 소리를 섣불리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브라함은 바로 눈치 챘다.
‘갓 핸드 전용의 무기를 만들겠다는 뜻이냐?’
“빙고.”
그리드는 갓 핸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아다만티움으로 제작한 무기, 내가 직접 사용하지 않고 갓 핸드에게 쥐어준다면 흑화를 사용함에 있어서 거리낄게 없어지지.”
‘확실히… 재미있는 발상이군.’
하지만.
‘제아무리 파브라늄이 대단하다고는 하나 한계가 있다. 갓 핸드의 검술 솜씨는 너와 비할 바 없이 미약할 터인데? 기껏 좋은 무기를 쥐어줘 봤자 적에게 위협을 주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맞는 말이다.
실제로 갓 핸드는 잉여가 되었던 전력이 있다.
국가대항전 당시 크라우젤을 상대로 큰 위협을 주지 못했었다. 비단 크라우젤 뿐만이 아니라 일정 경지에 오른 존재를 상대로는 늘 부족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갓 핸드 전용의 무기를 만들고 싶어.”
크라우젤과 싸우면서 그리드는 생각했었다.
만약, 적에게 타격을 ‘확정적’으로 입히는 강력한 무기를 만들 수 있고, 이를 갓 핸드에게 쥐어준다면 어떻게 될까?
갓 핸드가 잉여가 될 일은 더 이상 없어진다. 전투에서 갓 핸드의 효용성은 절대적이게 될 것이다.
“적은 나와 싸우면서 나만큼이나 갓 핸드를 경계해야하고, 필연적으로 정신력과 체력을 빠르게 소모하게 되겠지.”
‘의도는 알겠다만. 적에게 확정적으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무기라는 게 존재할 수 있는 게냐?’
검이든, 활이든, 총이든.
아무리 빨라도 결국 절대적인 명중률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논타켓팅 공격은 어떻게든지 회피할 여지가 있었다.
‘그걸 역으로 말하면, 타켓팅 공격은 못 피한다는 뜻이 되지.’
씨익.
의미심장한 미소를 피어올린 그리드가 브라함에게 질문했다.
“브라함, 당신의 능력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적의 위치를 파악하고, 포착하는 기능을 발휘하는 <마력 탐지(강화)> 마법.
“그 마법을 패시브 형태로 변형시킨다면? 그리고 내가 만들 무기에 귀속시킨다면?”
대상이 눈으로 쫓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거나, 혹은 정신을 현혹시킬 정도로 현란하게 움직일지언정 무용지물로 만들 것이다.
마력 탐지(강화)는 한 번 포착한 대상의 마나를 끝까지 추적하는 성질을 지녔으니까.
‘마력 탐지가 인도해주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무기.’
시스템적으로 높은 명중률을 보장받을 게 분명하다.
분명 단점은 있다.
마력 탐지는 마나를 찾아내고 추적할 뿐, ‘판단력’은 제로였고 이에 따라서 위험을 감지하지도 못했으니까.
만약, 마력 탐지가 인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무기를 사람이 직접 사용한다면 도리어 큰 위기를 겪을 수도 있었다. 불나방 신세가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었다.
하지만 갓 핸드가 사용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갓 핸드의 내구력은 무한이고, 갓 핸드가 아무리 타격을 입어봤자 그리드에게 피해가 전가되지는 않았으니까.
“어때? 괜찮지? 어디까지나 당신이 협조해줘야지만 가능한 일이지만.”
‘네놈…’
어떤 무구를 만들어내는지 구경 좀 해보려고 했더니, 결국 또 내게 손을 벌리는가?
어느덧 그리드에게 높은 호감을 품게 된 브라함이라고는 하나, 그리드의 무조건적인 요구를 들어줄 정도로 너그럽지는 못했다.
이용당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쾌해진 그가 거절하려는 순간이었다.
“못하겠으면 말고. 마법을 변형시킨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그리드가 도발하였고.
‘못하긴 누가 못한다는 말이냐! 내겐 쉬운 일이다!!’
자존심 강한 브라함은 쉽게 도발에 넘어가버렸다.
멍청해서가 아니고 성격의 문제다.
‘아차!’
당황하는 브라함에게 그리드가 진정으로 부탁했다.
“당신의 위대한 힘이 꼭 필요해. 제발 내게 힘을 보태줘.”
‘내가 왜 그래야…’
“당신도 기대되지 않아? 전설의 대마법사와 전설의 대장장이가 만들어내는 합작품의 위력, 얼마나 대단할지 말이야. 세상사람 전부를 놀라킬 수 있을 거라고.”
‘…크음.’
기대되기는 한다.
그리드와 함께 작업하는 일은 필시 즐거울 것 같았다.
‘파브라늄처럼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탄생시킬 수도 있을 테고, 내게도 많은 공부가 되겠지.’
파그마와 함께 파브라늄을 만들었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러자 감정이 복잡해졌다.
그리드와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이 즐거우면서도, 동시에 또 언젠가는 버림받을까 두려웠다.
‘핫.’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터진다.
‘이 내가… 천하의 대마법사 브라함이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다니.’
어지간히도 그리드가 마음에 드나보다.
그리고 또한, 파그마에게 배신당했을 때 겪었던 고통이 너무 컸나보다.
‘…무엇보다도 내가 약해졌군.’
육신을 잃고 너무 오랫동안 영혼으로 존재해왔다. 중심이 없으니 마음이 약해졌다.
어쩌면 나이가 너무 많이 먹은 것일 수도 있고.
‘굳이 새로운 삶에 집착할 필요가 있을까?’
시대는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새로운 세대가 하나, 둘씩 날개를 다는 중이다. 과거의 전설들이 퇴물이 되는 시점은 반드시 찾아온다.
굳이 내가 부활해봤자 과거의 영광을 다시 누리긴 어려울 것이고, 도리어 치욕을 겪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내가 없더라도 마리로즈와 대악마들은 자연히 위협받게 될 테지. 이제 그만 미련을 놓을 때가 된 건가.’
브라함은 자신의 나약한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자 애쓰는 중이었다. 그리드가 자신의 마음 속 목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조심조심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그리드와 함께하였음이 문제였다.
브라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리드는 브라함의 심중을 읽고 있었다.
하여 말했다.
“뭘 멋대로 떠나려고 그래? 나한테 마법 다 가르쳐주기 전까지는 당신, 못 떠나.”
‘….그런가.’
브라함은 깨달았다.
그리드와 파그마에게는 명백한 차이점이 있음을.
강한 힘을 얻은 대가로 사명감에 사로잡혀있던 파그마는 늘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애썼고 그렇기에 냉혹한 면이 있었다. 대의 앞에 작은 인연 따위 쉽게 버렸다.
반면 그리드는 그릇이 작다.
대의? 개나 줘버리고 오직 자신과 자신의 주변인들만을 위해서 애썼다. 그렇기에 인정이 넘쳤다.
‘적어도 네놈에게는 배신당할 일이 없겠구나.’
기쁘다.
저도 모르게 벅차오른 브라함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네가 죽을 때까지 발악해봤자 내 마법을 모조리 익힌다는 건 불가능하니까. 네가 정녕 내 마법을 익히고 싶다면, 평생토록 나를 배신하지 못하겠어. 그렇지?’
다시금 기고만장해지는 브라함에게 피식 웃은 그리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렇겠지.”
이제는 별 희한한 인물(?)과도 우정을 쌓아가는 그리드였다.
한편, 대장간 구석에 숨은 채 그리드를 주시하는 인물이 있었다.
다름 아닌 칸이었다.
그가 주름이 자글거리는 눈가에 눈물을 글썽였다.
“이제는 심지어 혼잣말까지… 병이 악화된 겐가.”
크게 오해하는 칸.
이래서 사람의 평소 이미지라는 건 중요하다.
***
“전설적 대장장이의 창조.”
<전설적 대장장이의 창조>
‘전설적 대장장이의 기술’ 스킬 레벨이 하나 오를 때마다 아이템 제작법을 3개 창조할 수 있습니다.
현재 창조할 수 있는 아이템 제작법 횟수 11/24
*이 스킬을 사용해서 창조한 아이템을 생산 시, 아이템에 창조자의 이름이 자동으로 새겨집니다.
그리드가 스킬을 전개하는 순간,
띠링!
경쾌한 효과음과 함께 알림창이 떠올랐다.
[어떤 아이템을 창조하시겠습니까?]
이미 구상은 끝났다.
그리드는 빠르게 진행했다.
“망치. 나는 망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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