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23권 - 23화
‘망치라고?’
그리드가 주력으로 다루는 무기는 검이다.
하여, 브라함은 그리드가 필시 검을 창조하리라고 예상했었다.
한데 망치라니?
당황하는 브라함에게 그리드가 설명했다.
“우선, 둔기류는 기본적으로 명중률이 높아.”
둔기는 모든 면으로 적에게 균등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무기다. 검이나 창처럼 날이 선 면으로만 공격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즉, 사용하기가 무척 쉽다는 뜻이며 이를 토대로 시스템적으로 높은 명중률을 보장 받았다.
‘확실히, 명중률 높은 무기를 만들겠다는 네 취지에 들어맞는군. 하지만 사용하기 쉬운 무기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지 않느냐?’
둔기는 무게 중심이 한쪽으로 쏠려있기 때문에 관성의 법칙을 잘 받는 무기이다.
이를 잘만 활용하면 위력을 극대화시킬 수도 있었지만, 그런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적의 공격을 막고, 피하고, 반격하는 전투과정에서 무게가 한쪽으로 치중되는 무기는 도리어 독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적이 싸움에 능숙할수록 더욱 그랬다.
‘무게를 활용할 기회를 잡기가 어려울 뿐더러 자칫 무게중심을 잃을 수도 있다. 한 마디로 밸런스가 엉망이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고수들이 장검을 무기로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봐라. 검이야말로 공수 모든 면에서 완벽한…’
“이야, 마법사가 무기에 대해서도 잘 아네?”
과연 지공(智公)이라는 이명을 지닌 존재답게 박학다식하다.
“맞아. 둔기는 단점이 많은 무기야. 검이나 창처럼 흔히 쓰이는 무기들과 비교하면 밸런스가 나쁘고 무엇보다도 공격력이 약하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둔기가 검보다 강하다고 생각한다.
시스템적으로도 최대 공격력은 둔기가 검을 월등히 상회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대 공격력. 즉, 무게를 잘 활용했을 때의 이야기다.
둔기는 모든 면으로 적을 ‘때릴’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고, 이를 토대로 높은 명중률을 보장받았지만 ‘찌르기’와 ‘베기’가 불가능하다는 태생적인 한계를 지녔다. 물론 날을 세운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래서야 둔기의 고유 장점이 약화된다.
적에게. 특히 방어력이 높은 적에게 치명상을 입히기 어렵다는 뜻이다.
최대 공격력보다는 최소 공격력이 적용되는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지. 나는 전설의 대장장이이고 갓 핸드는 내 손을 그대로 본떠서 만든 아티팩트야.”
대장장이가 가장 잘 다루는 도구가 바로 망치다.
“나와 갓 핸드는 망치의 장단점을 훤히 꿰고 있고, 이를 이상적인 무기로 활용할 수도 있어.”
물론 그리드가 직접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밸런스 측면에서 검이 훨씬 더 좋은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동등한 실력자와 싸울 때 둔기를 사용했다가는 낭패를 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지금 그리드는 갓 핸드 전용의 무기를 만들 계획이지 않던가?
갓 핸드의 내구력은 무한이다.
적의 반격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적이 어떤 식으로 저항하든지 무시하고, 오로지 공격을 명중시키기만 하면 된다.
“또한.”
실전에서 사용하기 힘든 <아이템 합체>스킬의 효율을 높이고 싶기도 하다.
그렇다.
그리드가 창조하고 싶은 망치는 높은 명중률을 자랑할 뿐만이 아니라 아이템 합체 스킬의 전개 시간을 단축시킬 수도 있는 망치였다.
‘흠.’
브라함도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이견을 제시할 여지가 없었던 까닭이다.
그를 확인하고 마음을 확실히 정한 그리드가 알림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조할 아이템을 망치로 결정하셨습니다. 어떤 재료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아다만티움, 드레이크의 송곳니, 수인족 왕의 눈물. 그리고 오우거의 힘줄.”
[결정하시겠습니까?]
“그래.”
[설계해 주십시오.]
그리드의 눈앞으로 공백의 설계도가 떠올랐다.
벌써 14번째 아이템 창조다.
그리드는 그간의 경험과 높은 손재주 스탯을 활용하여 능숙하게 도면을 그려 나갔다.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신중하게.
‘손잡이는 드레이크의 송곳니로.’
손잡이의 역할은 중요하다. 어떤 도구든지 착용감이 좋아야 성능을 충분히 이끌어내는 법이었다.
특히 망치는 단단한 물건을 때리는 용도로 사용하는 도구이다. 대상을 때릴 때마다 반발력이 발생하고 사용자에게 피로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단단하면서도 탄력이 있는 드레이크의 송곳니로 손잡이를 제작한다면 그 단점을 없앨 수 있었다. 반발력을 손잡이가 고스란히 흡수해줄 터였다.
일반적으로 창대의 재료로 많이 사용되는 이 드레이크의 송곳니는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만큼 확실한 효력을 보장했다.
“또 너무 크면 안 되지.”
갓 핸드가 한 손으로 휘두르기에 용이하려면 적당한 크기가 좋다.
그리드는 손잡이 길이를 15센티미터로 상당히 짧게 설정했다.
“무거운 편이 좋고.”
무게를 높이면 자연히 위력도 상승한다.
근력 제한이 높아진다는 단점이 생기지만 ‘모든 아이템’을 착용하고 사용할 수 있는 그리드와 갓 핸드의 발목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고민 끝에 그리드는 쇠원판의 크기를 세로 15센티미터, 가로 30센티미터로 설정했다.
손잡이가 짧은 반면 쇠원판은 엄청나게 커서 효율적인 측면에서 부족해보였다.
하지만 때리는 면이 워낙에 크다보니까 적을 때릴 때 빗나갈 가능성은 낮을 것 같다.
그리드가 의도한 바다.
‘유틸성도 추가해야지.’
손잡이 가장 아랫부분에는 오우거의 힘줄로 제작한 붉은 끈을 달았다.
손가락을 넣어 돌려서 집어던질 수 있게끔. 상황에 따라서 유성추처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템 합체 과정을 조금이라도 단축시키기 위해서는 정련 속도를 높이는 옵션을 추가해야하는데… 열전도율을 높이면 되겠다.’
슥삭슥삭.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도면 그리기에 집중하다보니 어느덧 창밖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본래 게임 폐인 출신인 그리드답게 야행성인 바.
밤이 찾아오자 집중력이 더욱 더 상승한다.
그리드의 손놀림이 보다 섬세해지면서 도면의 퀄리티가 높아졌다.
2시간 후.
드디어 완성 된 설계도를 보고 만족하며 OK 버튼을 누르는 그리드에게 시스템이 마지막 확인을 요했다.
[결정하시겠습니까? 설계도를 완성할 경우, 사용 가능한 창조 스킬 횟수가 1회 소멸합니다.]
그리드는 망설이지 않았다.
“결정한다.”
바쁘다. 그리드는 오늘 내로 2개의 아이템 도안을 창조할 계획이었다.
하나가 갓 핸드 전용의 망치라면, 또 다른 하나는 본인이 직접 사용할 ‘검’이다.
드레이크를 레이드하고 획득한 제작재료들을 사용한다면, 이야루그트에 비견되는 훌륭한 검을 한 자루 만들어낼 자신이 있었다.
[설계도가 완성되었습니다.]
[창조 스킬의 횟수가 1회 소멸합니다.]
[창조 아이템의 특징을 설명해 주십시오.]
허황된 특징 설명은 부질없다.
아이템의 실제적인 기능을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풀어내야지만 아이템의 퀄리티가 높아진다.
신중하게 생각해본 그리드가 설명을 시작했다.
“쇠원판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이 신의 광물 아다만티움이다. 파브라늄을 제외하면 지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물질보다 단단해서 때리는 대부분의 것을 파괴할 수 있다. 쇠원판 크기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손잡이가 짧아서 휘두를 때 힘이 덜 필요하고, 또한 적중률이 높다. 구조상 한 손으로 사용하기에 편리하며 아이템 정련 속도가 빠르다. 그리고 수인족 왕의 눈물을 녹여냈기 때문에 새로운 마법을 하나 귀속시킬 수도 있다.”
[분석 중입니다.]
지이이잉-
그리드가 힘들게 그려놓은 설계도가 스스로 지워지고, 추가되기를 반복한다.
스킬 보정 효과였다.
[설계도가 완성되었습니다.]
‘좋아!’
완벽하게 완성 된 설계도를 확인한 그리드가 환희했다.
한손으로 휘두를 수 있는 망치.
황금색으로 번쩍이는, 두텁고 각진 쇠원판이 어마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한다. 오우거의 두개골조차도 한 방에 박살낼 것처럼.
또한, 끝에 붉은 끈이 달려있는 검정색 손잡이는 기품이 넘쳤다.
쇠원판 하단에 greed라는 이름이 필기체로 각인 된 그 황금색의 망치를 확인한 브라함이 드물게 감탄했다.
‘멋지군…’
금색과 흑색의 조화는 늘 훌륭하다. 고급지면서도 위엄이 넘쳤다. 브라함의 취향을 저격하는 색상이었다.
‘외관과 색상의 조화가 상당한 위압감을 표출하는구나. 적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할 정도야. 이제 이름만 잘 지으면 되겠어.’
“이름이라…”
때마침 알림창이 이름을 설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잠시 고민해본 그리드가 대답했다.
“아다만티움 망치?”
‘…’
형편없는 그리드의 작명 센스 탓에 브라함의 영혼이 경기를 일으켰다.
그는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외관을 지닌 이 황금망치가 그딴 싸구려 같은 이름을 갖는 걸 원치 않았다.
‘작품의 완성도는 단지 위력과 외관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이름에도 품격이 있어야지.’
“그러니까 아다만티움 망치.”
엄청 센 느낌이라 마음에 든다.
그리드는 진심이었다.
‘후우.’
도무지 답이 없는 놈이다.
한숨 쉰 브라함이 포기하려는 그때, 갑자기 나타난 라우엘이 황급히 제안해왔다.
“묠니르가 어떻습니까?”
“묠, 뭐?”
“천둥신 토르가 사용하는 망치입니다. 당신께서 창조한 망치와 여러모로 특징이 부합해서 말이죠. 비교적 짧은 손잡이, 그리고 투척할 수 있는 점 등이.”
투척하면 되돌아오는 기능은 없어 보이지만, ‘박살내는 것’, ‘파괴하는 것’이라는 뜻을 지닌 묠니르와 그리드가 제작한 망치는 그 위용 면에서는 비견할만 하였다.
“오…”
그럴싸하다.
그리드는 묠니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근데.
“너 왜 여기에 있냐? 언제부터 있던 거야?”
“그것이…”
어색한 표정을 지은 라우엘이 설명했다.
“갑자기 칸님께서 달려오시더니 주군께서 미치신 것 같다고… 걱정하시면서 상태를 봐달라고 하시기에 달려와 보았습니다. 그리고 얼떨결에 주군께서 아이템을 창조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되었지요.”
“엥? 내가 미친 것 같다고?”
이건 또 무슨 황당한 말이지?
어리둥절해진 그리드가 칸에게 시선을 돌렸다.
펑펑 울기라도 한 것인지, 칸의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눈두덩이가 팅팅 부어있었다.
그리드와 시선을 마주치더니 다시금 눈시울을 붉힌 칸이 소리쳤다.
“지켜보고 있자니 자네가 자꾸만 혼잣말을 하지 뭔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마치 누군가와 대화하듯이 혼자서 떠들어대는데 내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드디어 완전히 미친 줄 알고 걱정했다네!! 정말로 걱정했어!!”
“…”
브라함의 영혼과 대화할 때는 주의하는 편이 좋겠다고, 새삼 다짐하는 그리드였다.
그때였다.
[창조한 아이템의 이름을 결정해주십시오.]
시스템이 재차 요구해왔다.
잠시 뜸 좀 들였다고 이렇게 사람을 재촉하다니, 정말이지 각박한 세상이다.
혀를 내두른 그리드가 대답했다.
“묠니르.”
[‘묠니르’로 결정하시겠습니까?]
“어.”
[‘묠니르’라는 이름의 아이템이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구분을 위해서 별도의 모델명을 붙입니다.]
[아이템 창조가 완료되었습니다.]
<묠니르-인계Ver>
등급:유니크~레전드리(성장형)
유니크 등급 정보
내구력:610/610
공격력:660~1,090
*명중률 +20퍼센트
*투척 시 가속력 상승.
*대상을 타격할 때마다 높은 확률로 0.1초의 경직을 유발.
*타격하는 물건의 내구력을 하락 유발(본인 소유의 아이템 제외).
*마족과 언데드에게 고정 데미지 1,990 추가.
*적으로 인식한 대상에게 확률적으로 상태이상 ‘공포’ 유발.
*대장장이 제작 관련 스킬의 전개속도 소폭 상승.
레전드리 등급 정보
내구력:689/689
공격력:790~1,400
*명중률 +35퍼센트
*투척 시 가속력 상승.
*대상을 타격할 때마다 0.1초의 경직을 확정적으로 유발.
*타격하는 물건의 내구력을 하락 유발.
*마족과 언데드에게 고정 데미지 2,400 추가.
*적으로 인식한 대상에게 높은 확률로 상태이상 ‘공포’ 유발.
*대장장이 제작 관련 스킬의 전개속도 대폭 상승.
전설의 대장장이 그리드가 신의 광물 아다만티움을 재료로 창조한 도구입니다.
파괴와 창조, 모든 면에서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만능의 망치입니다.
거대한 쇠원판이 상당한 위압감을 표출합니다.
대상에게 쉽게 명중시킬 수 있고 적에게는 공포심을 선사합니다.
성장 여하에 따라서 신의 무기 <묠니르>와 비견될만한 무기입니다.
*현재 귀속 된 마법:없음
사용 조건:레벨 350이상. 근력 3,000이상. 손재주 3,500이상.
무게:4,900
“…대박.”
완벽하다. 기대 이상이다. 신화 등급으로의 성장가능성까지 열려있었으니 궁극의 무기라고 표현함이 옳았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사용 조건에 붙은 손재주 정도.
그리드 자신과 갓 핸드가 사용하기에 최적화되게끔 설계하다보니 발생한 결과였다.
‘그래도 괜찮아.’
애초에 최강의 반열에 오르고자 만든 무기다. 판매하거나 다른 이와 공유할 생각은 없다.
“어떻습니까? 잘 만들어졌나요?”
만족하고 있는 그리드에게 라우엘이 질문해왔다.
‘실패작과 동급의 무기이되, 실패작보다는 밸런스를 갖췄으려나?’
예측하며 내심 기대감을 품는 라우엘.
그에게 그리드가 도안의 정보를 공유해줬다.
“헉…”
전설의 대장장이와 신의 광물이 만들어낸 명작.
예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창작품의 성능을 확인한 라우엘이 할 말을 잃었다.
감탄을 넘어서 경악하는 그에게 그리드가 선언했다.
“아그너스? 놈이 언제까지고 나보다 더 강할 수 있을까?”
아이템 제작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나는 강해진다.
“내가 최강이 된다.”
단언하는 그리드에게 라우엘은 조금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 그저 무한한 신뢰를 느꼈다.
한편, 브라함은 그리드에게 파그마를 투영하고 있었다.
‘최강의 무구를 만들어서 사용하는 존재…’
전설의 반열에 오른 대장장이란 실로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지닌 것이다.
‘거기에 내 마법의 힘까지 보태진다면 성장에 한계 따위 없을 터.’
브라함은 생각해보았다.
내 실체가 뱀파이어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쉽게 배반하고 척살하였던 파그마.
아이러니하게도, 종국에는 세계의 평화를 위한답시고 악마와 손을 잡았던 그놈이 지옥에서 후회하게끔 만들어주고 싶다고.
‘파그마, 나는 그리드를 돕겠다. 그리드가 바알과 계약했던 네놈보다 더욱 더 강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게끔.’
너는 지옥에서 지켜보며 후회해라.
나를 배신하고 바알 따위를 선택했던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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